중화권의 제목은 斷背山 혹은 斷臂山 두 가지가 있는데, 친절한 Shao군의 정보에 의하면 이에 대해 몇가지 추측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등(背)과 어깨/팔(臂)은 발음이 비슷한데, 이를 통한 오타일 수도 있다는 설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중화권 신문, 잡지에서 양쪽 다 사용하는 것을 보긴 했습니다만...^^;)
두번째 추측은 처음에 브로크백 마운틴이 중국 언론에 소개되었을 때의 제목이 斷壁山이었는데 절벽의 壁과 등이라는 의미의 背를 합친 형태가 臂라서 그렇다는 설입니다.
마지막은 상당히 심오한데, 팔(臂)이라는 글자가 단수(斷袖: 소매를 자르다)라는 고사에서 파생되었다는 가능성입니다. 한나라 애제(哀帝)가 동현(董賢)이라는 남자 애인과 같이 낮잠을 자다가 급히 일어날 일이 생겼는데, 자신의 소매를 베고 자는 동현을 차마 깨울 수 없어 소매를 자르고 자리를 떳다는 이야기지요. (예언자 무함마드는 고양이에게 이런 서비스를 해줬죠-_-;;)
이 고사 때문에 중국에서는 동성애를 가르켜 단수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따라서 소매를 연상시키면서 원래 영어 의미인 back=등의 중국어 의미, 등 배(背)자와고도 발음이 비슷한 팔 비(臂)자를 사용했다는 것이죠.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고단수의 번역...의 차원을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로컬라이제이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로 중국어권에서는 斷背山 혹은 斷臂山. 전자 쪽은 이해가 가는데 후자 쪽은 왜 등짝이 아니라 팔뚝인지 모르겠음. 설마 등이 부러지면 재수가 없다는 중국 미신? 내지는 주인공들 팔뚝이 굵어서?? 아니면 그냥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들어오는 것이나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은어???;---라 하기엔 둘 다 중화권의 언론매체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만주어/광동어나 지역 차이일지도.)
또한 어쩌다보니 반복 관람해버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첫번째는 혼자서 보러갔다가 그만 울어버린 바람에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성격이라고 오해하지 말 건. 단지 감독의 새디스틱함에 고문당한 것 뿐...) 영화평을 객관적으로 쓰기 어려울 것 같아서+어머니 반응이 궁금해서 두번째는 어머니랑 보고 (결론은 나보다 더 펑펑 우셨다. 게다가 친지분들에게 마구 추천하고 다닌다...;), 세번째는 원작과 대본을 다 읽은 후엔 어떨지 궁금해서+K모 언니가 아직 안 보셨다길래+씨네큐브에서 보고 싶어서 보고......
이것으로 저도 명실상부 단배산폐인이군요....(←그런 용어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번달에 또 영화관에 갈 일이 있으면 음~브로크백이나 또 볼까?---라 생각하고 있으니(....어차피 여유가 안되겠지만;;) 뭔가 단단히 걸린 것 같긴 합니다. 단지 [좋다]를 떠나서, 볼 때마다 매번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 있는 영화랄까요.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아무튼 미국에서는 미국 나름의 이유대로, 한국에서는 한국만의 이유대로 좀 취향을 타는 영화니 제가 반복관람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보러 갔다가 [저주하겠다 시바우치!!!]....라 외치며 부두교로 개종하는 일은 아무쪼록 없기를 바랍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약간 불편한 점이 있어도 참고 끝까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고 여깁니다만...사실 그런 거 솔직히 못 참을 것도 아니고 중얼중얼....그래도 각자의 취향은 존중해야 하는 법이니...) 그래서 리뷰를 잘 보고 판단하시라고 이렇게 올리는 것이죠.
일단 앞서 말씀드리는 점은.
이것은 흔히 알려진대로 [게이 카우보이들의 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으면서.
[게이 카우보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차차 밝히겠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63년 미국 와이오밍 주. 아직 스무살이 채 안된 시골 청년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은 브로크백 산의 양 방목 일꾼으로써 만납니다.
양은 정말 많았다...영화를 보면서 난 절대로 양치기 일 못해!--라고 깨달음;
사람이라고는 자신들 뿐인 산과 숲 속에서, 과묵하고 숫기 없는 에니스와 활달하고 소년같은 장난기가 남아있는 잭은 같이 생활하고,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으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단순한 동료애나 우정이라고 믿었던 두 사람은 어느 추운 (그리고 만취한....) 날 밤 충동적으로 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행동에 혼란스러워 하지만...
일단은 고민함. 이 때의 대사가 짤막하면서도 여러가지 의미로 정곡을 찌름(...)
....어차피 인가 하나 없는 (그것도 방대한) 첩첩산중...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는 격리된 장소...에덴동산...만다라케...등등의 은유법이 가능한 지리적, 공간적 이점에다가 눈까지 딱 맞아버린 피끓는 총각 둘 뿐이니 그 다음의 진행은 영화의 광고문구 말대로 Love is a Force of Nature (사랑은 자연의 포오스힘)이죠. 하지만 순수한 열정이 살아있던 청춘의 나날은 한 시절. 방목철이 예상 외로 빨리 끝나고 잭과 에니스는 산을 내려와 아쉬움을 숨기며 제각각 갈 길을 떠납니다.
[나는 내년에 돌아올거야. 징병만 안되면.]*
작별인사를 하는 잭의 표정이 무척 애잔했다. (같은 부분이지만 장면은 틀림)
에니스는 고향에 기다리고 있던 약혼녀 알마(미셸 윌리엄즈. 실제 히스 레저의 여자친구.)와 가정을 꾸리고, 잭은 이전에 말한대로 에니스와 처음 만났던 직업소개소에 다시 돌아왔다가 그를 만나지 못하고 텍사스에서 로데오를 하던 중, 운 좋게 부자집 딸 로린(앤 해서웨이)에게 낚여(←틀린 표현 아님;;;) 역시 결혼하게 됩니다.
에니스의 부인, 알마. 전형적인 60~70년대 미국 농촌의 주부.
개인적으로는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귀여운 외모가 매력적이라고 생각.
잭의 부인, 로린. 부유한 농기구상의 딸이며 카우걸 복장이 귀여운 여성 로데오 선수이기도 함.
이 역 때문에 [앤 해서웨이는 연기도 못하는 바보 아이돌~!]이라는 말을 취소해야 했음;
가난하든 부유하든, 언뜻 보기엔 평탄한 미국 남서부 가장의 삶을 사는 것 같은 에니스와 잭이지만, 4년만의 재회로 뒤늦게야 브로크백을 내려와 헤어질 때의 아쉬움의 무게를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쌓였을까!--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재회 장면.(의 일부. 진국은 본편에...)
제이크 질렌홀은 코가 부러질뻔 했다는데도 장면 내내 스턴트 없이...(퍽퍽)
하지만 각자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몸이고, 70년대, 특히나 미국의 서부의 농촌사회에서 이들의 관계가 용인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평범한 가장처럼 살아야지, 그래도 만나고 싶어 견딜 수는 없지, 그래서 1년에 몇 번 간간히 산 속에서 만남을 가집니다. 이렇게 20년간 계속되는 불안정한 관계는 에니스와 잭 본인들은 물론, 부인들의 삶과 마음에도 고통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상이 영화의 대체적인 내용입니다. 사실 내용 자체가 잔잔하고 이미 컨셉 자체가 내용이다 보니(=팸플랫에 전부 나온 사실), 스포일러고 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있다면 마지막 부분 정도랄까....) 커다란 반전이나 자극적인 진행을 원하는 관객에겐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마치 흐르는 강과도 같이 잔잔한, 그러면서 곳곳에 거친 소용돌이와 강물에 꿈쩍도 않는 바위가 있는 강, 그러한 템포가 [브로크백 마운틴]의 전체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장르적으로 이 영화는 멜로영화에 가깝습니다. 사실 바로 그러한 멜로영화의, 무난하고 편안한 화법 (그리고 서부라는 낯익은 배경) 때문에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성애적인 정치성을 부곽시키지 않고 스스로를 "러브 스토리"라 마케팅하며 실제로 평소의 (대부분의 동성애가 주 소재인 영화가 해당되는) 인디영화 수요층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일반 관객들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영화는 주역인 두 남자들에게만 주목하지 않고 그들의 부인과 가족, 그리고 각자가 처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의 차이점 역시 심도깊게 다룹니다. 원작과 영화에서 환경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주변'의 비중은 현실감을 더해 이야기가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줍니다. (사실...연애 영화나 스토리에 짜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로 짜증의 원인이 [세상엔 우리 둘 뿐]으로 흐르는 전개 때문이라고 말하긴 하죠...) 세상이 이들의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주인공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이들의 사랑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잭과 에니스의 경우도 자라난 가정환경과, 후반에는 경제적 요인이 성격적 차이와 갈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각박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기에, 되려 사랑 이야기는 설득력을 가집니다. 특히 순진한 농촌 주부였던 알마가 남편의 비밀을 알면서 고통받다가 살아가기 위해 점점 억세지고 굳어져가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공감이 갑니다. 오히려 여성관객들로썬 알마에게 더 감정이입이 잘 될 정도로 캐릭터가 탄탄하고, 위치상으로도 중요하고 또한 미셸 윌리엄즈도 대단히 호연이었지요. (동시에 [모든 위대한 로맨스는 주위에 민폐다]라는 진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기도....) 미셸보다는 등장이 적지만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분노, 질투와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전화 대화 장면을 살떨리게 연기해낸 로린 역의 앤 해서웨이도 훌륭했습니다. 그 몇 분이 캐릭터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느꼈습니다.
잔잔하면서 섬세하고도 강력한 연출 및 심리묘사로 잘 알려진 이안 감독은 멜로적 장르에서도 실력을 거침없이 발휘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대자연(사실 촬영지는 캐나다의 알버타주)과 미국 서부 사회의 풍경, 그리고 마치 진짜 서부 토박이같은 등장인물들의 소박하고 거칠면서도 정감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서부극, 내지는 적어도 미국 서부의 이미지는 은근한 (미국인이나 미국 역사, 문화, 사회에 익숙한 사람으로써는 상당한-그리고 설사 잘 모른다고 해도, 현대라는 시대적 특성상) 일종의 낭만(혹은 노스탈지아)과 함께 미묘한 현실감을 더하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 점은 (물론 다른 이유도 많이 있지만) 사극이라는 특성상 현실과 상당한 공간적 거리감이 있어서, 극중의 동성애에 대해서도 딱히 관객이 큰 거부감을 느끼거나 강하게 의식할 필요가 없었던 [왕의 남자]와 명백히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동시에 사람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해 (보기도 전에 컨셉만으로도)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우선 극중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인 [미국의 서부]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이 영화를 잘 이해하거나, 인물들에게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일단 미국 개척정신의 상징이자 옛날도 현재도 [가장 순수하게 미국적]이라는 평가/인식이 강한 서부는, 동시에 지극히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며, 카우보이의 신화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가치관과 원론주의적 기독교 사상을 뿌리삼아 건설된 사회입니다. 물론 독특한 전통과 문화와 유서가 깊고 서부에도 개방적이고 포용성이 있는 지역과 사람들은 분명 존재합니다만, 원작자 애니 프루의 말을 빌리자면 [브로크백 마운틴의 배경이 되는 와이오밍 주는 현재 와이오밍 대학교가 있는 서부에서 가장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주이며, 동시에 브로크백이 출판된 지 바로 다음해인 1998년, 젊은 게이 대학생이 처참하게 린치당해 살해당한 주]이기도 합니다. (피해자의 이름은 매튜 셰퍼드로, 호모포비아의 예시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사건임) 당연하지만 전반적으로 소수자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사회는 아닙니다. 비단 동성애자 뿐만이 아니라, 백인이 아닌 인종, 백인이라도 다른 종파나 이방인 역시 [소수자]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환경은 극중에서 등장인물들의 사고방식과 자신들의 관계의 향방을 정하는 결정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도저히 영화와 떨어뜨려놓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특히 배경인 60년대는 더욱더 폐쇄적이었을 터이고, 그러한 사회의 개인으로써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자신의 알고 있는 삶의 종류도 극히 제한되어 있었을 뿐더러 그것을 벗어난 선택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낭만적이고 모험적인 성향의, 꿈이 있는(실현여부는 어쨌든간에) 잭과는 달리, 에니스의 경우 저런 사고방식 자체에 대한 무의식적인 제한과 함께 그것이 직접적인 트라우마의 형태로 각인된 경험 때문에 [(현실을)바꿀 수 없으면 참아내야 한다]며 꿈조차 꾸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서부사회의 거부감과 극단적인 혐오감 뿐만 아니라, 그 사회가 주인공들의 의식과 사고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며 진정한 의미로 시대와 환경이 부른 비극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비단 서부의 폐쇄성과 타자에 대한 차별은, 그 감수성과 형태에는 다소 차이가 날지언정 비슷한 환경적, 문화적 기타 조건이 만족된 사회라면 동서고금 불문하고 존재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도시화가 진행되어도 저런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그런 유사성을 발견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동양인 감독이 서부의 낭만과 부조리를 동시에 잡아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환경/경험과 분명한 연결고리를 발견해서라고 여겨집니다. [억누르는 것]에 대한 실감이 아무래도 더 강한 것도 있겠죠.)
그나마 그런 서부의 사내들이 꿈꾸어도 좋을, 아니 오히려 꿈꿀 것을 권장받았던 대상은 바로 '카우보이'입니다. 단순한 직업을 넘어서 일종의 이상형이자 우상이었죠. 앞서 이 영화는 [게이 카우보이들의 사랑이야기]이면서 그렇지 않다고 했는데, 바로 [카우보이의 신화] 때문입니다. 사실상 진짜 오리지널 원조 카우보이는 19세기 말 미국의 개척시대에 태어나 미국 전대륙에 철로가 깔리면서 시대의 흐름과 함께 사라진, 불과 몇십년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입니다. (사실 에니스와 잭이 하던 양치기 일도 소를 치던 카우보이들은 경멸하던 일이었죠.) 그 [신화]를 부활시키고 전원적인 서부 판타지를 탄생시킨 것이 바로 할리우드입니다. 특히 1949년에는 론 레인저의 TV방영으로 당시 소년들의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혼돈의 서부, 인디언들과 백인들의 사이를 중재하는 정의의 사자 론 레인저.
...와 파트너라기보단 로빈같은 존재였던 인디언 톤토.
죤 웨인으로 대표되는 카우보이의 남성성은 과묵함, 대담함, 용감함, 남자다움, (아버지로써의) 책임감, 냉정침착함, 강인함, 부동성, '필요할 때면' 용인되면 폭력성 등 마쵸함의 극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험란하고 낯선 환경을 지배하기 위한 이상적인 조건들이죠. (라고 하지만 솔직히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실제로 잭은 (여러가지 의미로) 모험심이 강하며 로데오를 동경하고 있고 에니스는 언뜻 보기엔 죤 웨인같은 [강하고 과묵한] 남성으로 보입니다. (사실 그보다는 말주변이 없고 낯을 가리는 쪽이지만...) 잭의 어린 시절의 방에는 말을 탄 카우보이 인형과 BB탄 총이 있고, 원작에서 에니스의 아버지가 가르쳐준 인생 장애물을 뛰어넘는 방법은 [기습해서 죽도록 패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카우보이의 신화]를 바라보도록 길들여진 당시의 전형적인 농촌 청년들입니다. (이러한 마쵸의 신화는 이현세 만화같은 데서도 있으니까 멀리 찾을 것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확히는 [카우보이를 꿈꾸는 남자들의 사랑이야기]인 것이죠.
문제는, 카우보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 존재인 것 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는 마쵸적인 '남성적인 강함'이란 타인에 대해 상당한 거리감을 두어야 유지가 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공격성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흔히 유악함으로 치부되며, 가족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애정표현보다는 책임감이 더 중시되기 때문에, 그러한 마쵸적 페르소나를 유지하려는 사람에게 상당한 정신적, 심적 부담을 가한다는 점입니다. 연인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껴도, 격하고 강한 감정을 품어도 그것을 어찌할 줄 모르는 남성의 유약함과 혼란스러움이 원작 소설은 물론 히스 레저의 뛰어난 연기로 돋보입니다. 에니스와 잭이 20년 동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서로를 애타게 찾는 이유는, 아주 잠시나마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안고 모듬어 줄 수 있는 상대를 갈망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 [브로크백]이 말하고 싶은 사랑이란, 인생의 의미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브로크백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산인 것처럼,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평생의 사랑을 만날 기회도 희박할 뿐더러 제대로 사랑을 전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환상이라고 치부하기엔 [브로크백 마운틴]의 사람들의 삶은 우리의 일상적이고 투박한 현실과 너무나 가까이 맞닿아 있고, 그럴수록 빛이 꺼지지 않는 사랑은 더더욱 찬란해 보이지 않습니까. 마지막 장면에서 에니스의 대사도, 미약하나마 브로크백에서 깨달은 사랑이 현실에서도 계속되기를 맹세하는 것이라고,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이하는 영화 관련 잡담입니다.
*자막과는 다른 대사에 대해: 물론 자막에서는 [군대에 안가면]이었지만...뉘앙스가 미국이 무슨 우리나라처럼 의무 군복무제로 나이 차면 군대 가야하지~같거나 할 일 없으면 군대나 가야지~같은 느낌이 실제적으로 내제된 강제성보다 강한 것 같아서 바꿈. 당시가 1963년이라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군대에 간다는 것은 자주적으로 직업군인에 지원한다기보다는 베트남 전쟁으로 강제징병된다는 의미. 무엇보다 원래 대사가 [If the army don't get me], 직역하면 [군대가 날 안 끌고가면]이므로 어느 정도의 자주성이 보이는 [군대에 간다]보다는 좀더 외부적 강제성이 가해진 [징병]이 어울림. 별 사소한 것 가지고 꼬투리 잡는다고 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농촌총각A도 징병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던 베트남 전쟁이라는 당시 상황과, 떠돌이인 에니스와는 달리 집 주소가 있는 잭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문자 그대로 에니스를 두번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못 쓸쓸해 보이는 잭의 표정의 더 와닿지 않을까 하는 괜한 오지랖에 덧붙임.
-역시 문제의 발차기는 이안 감독 전승 원형 발차기였다!! 아무렴 100% 서부 발차기는 그렇게 멋지구리하지 못하지~
-과연 감독이 같은 중국계라 그런지(무슨 상관이...) [무극]과 공통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참고로 고기를 썰기도 해야한다!!!)
-바람 피울거면 눈치껏 피우라는 크나큰 교훈을 안겨준다....랄까....설마 그 각도에서라면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한거야??!-△-; 이래서 남자는 바보!!!(←편견;) 게다가 확인사살까지 하다니! 그러다가 다시한번 딱 걸리다니!!! 에니스는 절대로 추리소설에 나오면 안돼!!
-이건 스포일러. 잭의 죽음에 대해서 좀 모호하게 처리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국내에서는 린치로 살해당한 쪽이 너무 처참하니 그냥 사고로 치자는 의견이 강한 반면, 서구권에서는 실제 게이에 대한 린칭 사건의 현실감 때문인지 잔혹하긴 해도 에니스의 상상이 옳다고 믿는 편. (원작에서는 잭의 부모님을 찾아간 에니스가 목장감독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으며 린치가 확실하다고 다시 한번 확신함) 로린의 무언가를 억누르는 것 같은, 모호한 태도도 어느 정도 의견을 뒷받힘해 줌.
-사소한 것일수도 있지만 단순한 스트레이트 시점의 멜로영화가 아니라 게이 감수성에도 잘 어필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영화 자체가 게이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얻었고 섹스어필(...)도 했다는 점. AJ...아니 제이크 질렌홀은 여성관객 뿐만 아니라 게이들에게도 크게 인기를 얻어 모 게이사이트에서는 커플링 투표도 함. (사실 본인도 보자마자 수려하다고 생각했음. 게다가 그 OVA블랙잭급 속눈썹이란!!)
-이안 감독은.............
이런 선량한 얼굴을 한 새디스트였다.......
당신 때문에 돈 날아가고 리뷰도 길어졌잖아! 책임져요!!! (버럭버럭~)
......라는 의미로 본전 뽑기 위해(??) 리뷰를 길게 써버린 듯......(그게 왜 본전인데;;)
(여자친구나 배우자 등 외부강제적인 요인 때문에) 브로크백을 보게 될 남성들을 위한 관람 지침서(?)이지요....
아직 브로크백 마운틴을 안 보셨거나 보기에 앞서 두려운 여성, 남성분들께도 참고사항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글이 정말 재미있어서 멋대로 번역합니다.
출저는 http://msnbc.msn.com/id/10342237
이성애자 남성들을 위한 [브로크백] 관람 지침서
-본지의 대담한 게이 칼럼니스트가 스트레이트 독자들에게 바치는 지혜의 어드바이스-
글 : MSNBC 투고작가 데이브 화이트
당신은 이성애자 남성이다. 그리고 게이들에 대해 딱히 감정은 없다. 당신은 교육을 받았고 사회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어쩌다가 가끔 NPR(National Public Radio: 전미 공공라디오)를 듣기도 하고 차별행위를 싫어한다. 당신은 동성애혐오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의 여자친구/부인/동거녀/짝 등등 아무튼 그 귀여운 제이크 질렌홀을 사모하는 어떤 여인이 분명히 말한다. 토요일밤 데이트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정했다고.
"하지만 나는 이성애자 남성이야" 당신은 생각한다. "아주, 아주, 아주, 스트레이트하다고." 그리고 당신은 개봉일이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패닉하기 시작할 것이다-심지어 '개봉'일이라는 표현조차 껄끄러워지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평생 파트너인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게이들은 아주 멋지고, 다채롭고, 재치있는 사람들이고 크레디트 카드 광고에서 엘렌 (레즈비언 코메디언 엘렌 디제네레스)의 춤추는 모습은 정말 재미있었고, 톰 행크스는 그 뭐냐 아무튼 끝에 죽은 그 영화(에이즈 환자를 연기한 [필라델피아])로 충분히 오스카상을 받을만 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무지, 무지, 무지하게 스트레이트하므로 귀여운 제이크(=제이크 질렌홀)가 히스 렛저와 화면에서....음...."그 짓"을 하는 장면을 보는 것으로부터 면제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짓"이 뭔지 지금까지 모르고 잘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알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당신은 그 순간 "대한의 건아"같은 표현에 나오는 "건아"같은 단어가 그다지 복고풍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주: 의역. 영어로는 red-blooded American male.)
그래도, 어차피 당신은 좋든 싫든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딜레마를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만족시키면서, 생애 최초의 게이 소재 영화를, 그것도 엄청나게 큰 화면에서 남자 둘이 실제로 육체행각을 벌이는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 몸이 등장할 차례다. 나는 [브로크백 마운틴]을 이미 관람한 미합중국 건아인 동성애자 영화 평론가다. 물론 얼마나 그 영화가 훌륭한지, 얼마나 강렬하고 감동적인 영화인지 등등 그런 소리를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당신이 듣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에게 관람시 준수사항을 몇 가지 알려주겠노라, 나의 스트레이트 형제들이여. 정말 도와주려고 하는 것 뿐이라니까....
1. 전부 당신이 자초한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여자친구를 [자헤드-그들만의 전쟁 (Jarhead: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미군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전쟁영화. 국내에는 아직 미개봉.)] 상영관에 데려가려고 온갖 오도방정을 떤 것은 당신이었다. 그리고 정작 영화를 보니 순 AJ (앞으로 이 기사에서 Adorable Jake=귀여운 제이크를 지칭할 용어) 투성이로 사막에서 땀이 맺힌 근육질 몸매에 웃통을 벗은채 마구 뛰어다니는 AJ라던가, 거시기만 산타 클로스 모자로 가린 전신 누드로 섹시춤을 추는 AJ라던가, 동료 군인들과 같이 가짜 난교장면을 연출하는 AJ 등등이 나오며 당신은 "뭐야, 사람 죽이는 건 언제부터 나와?"라고 하는 동안 당신의 그녀는 "산타춤 추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이 스스로 초래한 결말, 제 무덤 파기다.
*참고 사진 자료
2. 지금은 입 닥칠 시기라는 것을 깨달아라
당신은 침묵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막중하다. 나는 최근에 어떤 영화 홍보 시사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극장 로비에서 [브로크백]에 대해 떠드는 남자 네명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서로 얼마나 그 영화를 안 보겠다는 거부감이 투철한지를 자랑하며 "그런 영화따위 전혀 궁금하지 않다"느니, 그 중 가장 시끄러운 사람의 말에 의하면 "저 벽처럼 스트레이트(똑바르다)"하다느니 하며 고래고래 떠들어대고 있었다. 저 벽이라고? 그 [대하 게이 카우보이 영화]의 포스터가 붙은 저 벽 말인가? 그렇다면 정작 말한 당사자만 모르고 남들은 아는 진실이 밝혀진다: 그는 아마도 게이다. 침묵이라는 행동은 마치 다른 남자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따위에는 무심한 것처럼, 엄청나게 쿨하게 보인다. 그것은 당신의 평상심을 보여주고 스스로의 본모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어디 스티브 맥퀸이 자신이 저 벽처럼 스트레이트하다고 꽥꽥거리며 떠들고 다녔는가? 전혀 아니다. 남자답고 쿨하게 보이느라 그럴 겨를이 없었다.
3. 좋은 소식은-삐리리 씬이 1분 이하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한 130분 정도의 분량이고 그 중에 129분은 남자들이 섹스를 안하는 내용이다. 물론 당신 생애에서 최고로 긴 60초가 될 수는 있겠지만, 오로지 1분 이하, 그것 뿐이다. 게다가 나머지 129분은 너무나 절절한 그리움과 슬픔과 눈물나는 비극의 러브스토리다. 아주 사실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편집과정에서 살아남았던 남/남 육체관계 씬보다 훨씬 더 포르노틱하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여전히 유치하게 굴 생각이면 그 첫번째 씬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상영관을 나와 다이어트 코카콜라와 점보 사이즈 팝콘이나 사러 가라. 참고로 귀를 틀어막고 "메리에게는 작은 새끼양이 있었지"를 부르는 것도 안된다. 왜냐면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그 속성상 죄다 게이(유쾌)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신은 공공시설인 극장에 있을 것인데, 마침 뒷자리에 덩치 큰 게이 깡패가 앉아 있어서 당신의 엉덩이를 걷어찬다면 더더욱 남성성이 거세된 것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4. 이것이 웨스턴(서부극)임을 기억하라
게다가 각본가 중 한 사람은 다름이 아닌 궁국의 싸나이 래리 맥머트리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 최고의 서부극 작가다. 그리고 [머나먼 대서부 (Lonesome Dove: 1989년에 나온 인기 서부극 시리즈)]를 썼다. 당신 [머나먼 대서부] 좋아하잖아. 사실 어차피 대부분의 서부극은 1000퍼센트 정도 게이한데 그 진실을 모른 척 하려고 하기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것 뿐이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집에 가서 [붉은 강]을 다시 봐라. (폭군 목장주가 되어버린 양아버지와 양아들의 구도가 중점인 영화.)
5. 주인공들이 너무나 고통받아서 보고 있으면 불쌍하다
그 톰 행크스 영화(필라델피아)에서처럼 이 영화의 게이 친구들도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등 고생이 심하다. 1960년대가 배경인데다가 히스와 AJ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자신들이 게이인지조차 모른다. 그냥 자기들이 상대방에게 갑작스럽게 강렬히 이끌리게 된 평범한 스트레이트 남자라고 생각하고, 왜 그리 닭살돋고 정신이 대략 멍해지는 연애감정 따위에 휩쓸리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잠깐...차라리 아예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이유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그냥 이 박해받는 자들을 응원해 주는거다. 루디(영화정보)의 션 애스틴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라.
6. AJ의 부인역으로 나오는 앤 해서웨이의 맨가슴이 나온다. 끝.
나는 이 사실을 전달할 필요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내가 게이 남성으로써, 그 바보같은 [롱기스트 야드] 리메이크 영화를 참아낸 유일한 이유는 친구들이 레슬러 골드버그의 샤워씬이 있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딱 한 장면에. 그게 땡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당신네 이성애자 친구들과 우리들은 사실 다 형제다-단지 보면서 꼴리는 맨살의 종류가 조금 다른 것 뿐이지.
7. 마지막으로, 이젠 당신 차례다.
정말이라니까. 잘 알 것이다. 게이들이 일생에 몇천개의 이성애 러브스토리를 견뎌내야 하는지 한번 상상해 봐라. 말하자면 우리에게 빚진 것이다. 그러니까 당장 나가서 그 카우보이들의 연애질이나 구경하라.
참고로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마지막 자막판 상영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아이들 대상 영화라지만 자막판을 서울에서 3 군데, 그것도 몇주만에 금방 내리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뭐 여기서는 영화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니 일단은 넘어가지요.
[폭풍우 치는 밤에]는 작년 말 일본에 개봉해 상당한 흥행몰이를 한 전연령 대상 애니메이션으로, 동명의 동화 시리즈(일본에서는 유명하다고 함)가 원작입니다.
이상 제가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전지식의 전부였습니다.(...)
성우가 누구니, 게이 코드니 어쩌구 같은 것은 찾아보지도 않았으니 알 턱이 없었죠. 사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모르고 가는 편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애니메이션은......어린이용♡ 애니메이션........
따라서......
모름지기 어린이 영화를 볼 때는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 봐줘야 하는 것이지요!!!
(......내지는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거나.........)
물론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특수성에서 느껴지는 감상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특히나 특정 타겟층이 분명한 경우) 입장을 살짝 바꿔서, 또다른 시점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될 수 있고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울 수도 있는 계기가 아니겠습니까. 정 이입하기 어려운 대상층이라면 애초부터 안 보면 그만입니다. 이성애적 성향의 욕구불만 직장남성들과 감수성의 일치점을 찾기 어려우면서 굳이 샐러리맨을 위한 비즈니스만화의탈을쓴에로만화를 찾아보며 욕을 하는 행동은 소모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요. (물론 아주 가끔씩은, 아예 작자의 의도에서 벗어난 관점에서 봐야지만 그 작품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비즈니스만화의탈을쓴에로만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미○의 꽃]이라던가, 최근 영화로는 3500만 달러짜리 코메디인 모 중국 영화가 있음-이미 그 시점에서는 괴작(....)의 경지로 넘어가버린, 한마디로 극단적인 경우이므로 이곳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현대는 죽이 됐든 밥이 됐든 팔리기 위해 모든 것이 카테고라이즈되어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 작품의 의도한 타겟층을 고려해주는 것은 소비자/향유자로써 마땅한 에티켓이자, 예의이자, 매너인 것이지요!
아무튼 [왕의 남자]를 두번째로 관람할 때 꿈많은 사춘기 소녀의 눈♥♥으로 이준기를 보는 것에는 실패한 저였지만,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기준인지는 불명....)---라고 믿고, 기합을 넣고 객석에 앉았습니다.
염소 메이와 늑대 가브는 폭풍우 치는 날 밤, 비를 피해 들어온 어두컴컴한 오두막집 안에서 만납니다. 상대방의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서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대낮의 재회에서 확인한 상대방은 사냥꾼과 먹이감. 한마디로 자연계 법칙상 천적입니다. 그만큼 본능을 억누르기 힘든 가브였지만, 차차 메이를 먹이가 아닌 친구로써 받아들이게 되고 메이와 가브는 간간히 몰래 만나며 우정을 쌓아갑니다. 하지만 서로의 종족에게 이 사실이 발각당하면서, 이 둘의 우정은 몇번이나 시험당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작화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사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그려낸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의 디자인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의 일본 만화나 애니에서는, 포케몬처럼 아예 다른 세계 생물(...)이거나 인간이 짐승귀나 꼬리 달고 나오는 것은 있어도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 본래의 특성을 살리면서 의인화된, 한마디로 톰과 제리같은 캐릭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디즈니나 워너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으로 고정된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가 최신 아동용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과연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자연적이면서 부드럽고 동화적인 느낌의 색채처럼, 동물 캐릭터들도 단순화된 만화적 형태이면서 움직이는 것에는 질감과 사실성이 있고, 그러면서 개그씬에서의 과장된 표정이나 몸짓 및 인간처럼 이족보행할 때의 움직임도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변화무쌍한 가브의 표정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애니메이션과는 뭔가 다른 느낌도 매력적이었구요. 사실 그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동물 캐릭터를 보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용진행은 잔잔한 편이지만 아이들이 보기에 따분할 정도는 아니고, 의인화된 동물들의 모습과 어느 시점에서부터 긴장감 있게 나아가는 전개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와 같은 극장에서 보고 있던 아이들은 굉장히 열심히 보더군요...) 어른들이 보기에도 유치하지 않고, 무난한 진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막은 이미 말이 돌고 있겠지만 거의 개작(....) 수준입니다. 초반부부터 무시하고 봤지요. 그렇다고 히어링이 늘었다고 하기에는 어차피 어린이들 영화니 그렇게 용쓰고 들을 것도 없고(......;)
그리고......
스텝롤이 올라가며........
영화가 끝났을 때의 즉각적인 감상은 이랬습니다.
이런!!!
이 영화는!!!
발렌타인 데이에 보는 건데!!!!(퍼어어어억!!!!)
뭐라고 비난하시기 전에...........
..........변명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영애 언니를 통해서...)
그러니까.......분명 처음에는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 보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 20분까지는 성공했구요.........
그런데.......그런데..............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저같이 수줍음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 정도의 뜨거움은 화상급 레벨입니다....;;
축생들의 대사가 너무나 강........했던 나머지.......
처음에는 [그냥...그려러니...]하고 순수한 어린이의 눈☆☆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그 날, 신촌 모 극장에서는 스토리가 점점 심각하고 가혹해짐에 따라 더더욱 빛을 발하는 영화 속 두 축생의 우정에 팔걸이를 붙잡고 실소인지 전율인지 알 수 없는 충동을 억누르며 정신상태가 대략 멍해져가면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관객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미 더 이상 성별 따위를 따질 범주를 넘어섰습니다. 성별이고 국가고 사상이고 자시고 자연계의 법칙 자체를 뒤집은 금기 중의 초 금기니 이미 위에 나열한 모든 장애물, 금기를 다 포괄하고 있으면서도 더욱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아슬아슬한 기반 위에 서 있는 '우정'이니 어찌 아니 수소폭탄급일 리 있으리오. 무엇보다 영화 도중 나오는 자연계의 약육강식을 묘사한, 어린이에게는 다소 잔혹할 수도 있는 장면들이, 갈등의 원인을 피해가지 않고 극명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고, 내용상의 긴장감과 주제의 무게를 더더욱 돋보이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디즈니 사후 점점 소프트해진 나머지 물컹찐득해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갈등(전쟁)이라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단순한 [미야자키 코드]로 보일 정도로 유순해진 최근의 미야자키 애니메이션과의 차이점이랄까요. 물론 그런 대가들의 작품들보다 빼어나게 뛰어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단지 최근의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어떤 종류의 [화합]이나 [대립]에 대한 내러티브에서 필수적인 [갈등의 깊이와 정도]를 가장 제대로 다루었다는 느낌입니다. (의외로 약한 것이 많습니다, [왜 싸우는지]에 대한 설명과 납득성....물론 그것이 깊을 수록 [화합]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만큼 작품의 무게와 진지함도 더해집니다. 그런데 정작 싸우는 이유가 말로는 설명이 나와도 분명히 납득, 공감이 어렵거나 무게감이 부족한 구도가 많습니다. 최근 읽은 만화 중에서 그런 점이 가장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오] 파리편입니다.) 물론 원작 동화가 좋았고, 동화라는 특성상 대립 설정 자체를 단순화시키다보니 오히려/덕분에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강렬한 갈등구도가 탄생하게 된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로, 이 영화는 어린이들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동시에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한 타자화(他者化) 및 차별의 어리석음, 자연의 약육강식 법칙, 우정의 소중함 등을 배우게 하면서, 어른들에게는 현실 속의 차별이나 갈등 문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끔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외국에도 소개된다는데 서구에서의 반응이 궁금하군요. 현재 한국어 더빙판밖에 상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볼만한 영화입니다.
그 밖에 시시콜콜한 기타사항입니다만......
1. 늑대들은 처음에는 야쿠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닌자였다(...) 그 할일없는 계속 스토킹해서 죽이려 하기.....는 어딜 봐도...........;
2. 사실 기로는 귀에 대한 것보다는 커플이 싫었던 것!! 커플따위 찢어주겠어~!---하는 일념이 분명하다. 질투단 단원이 틀림없다. (잠깐....그럼 뒤에 있던 암늑대는 와이프가 아니라 엄마??!)
3. 메이가 [녹색의 숲]으로 가자고 할 때, 퍼뜩 떠오른 생각은 [그래, 역시 이곳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라 푸른 숲이 끝없이 퍼진 머나먼 캐나다 땅으로 사랑...아니 우정의 자유를 위해 향하는구나!!!].....였음;;
............................굉장한 영화였습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이것을 강력히(......) 추천해준 ㅎ모님께 한없는 감사를..........
올해 상반기 최고의 초대형 스펙타클 코메디 영화였습니다.........
(........저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저와 ㅎ모님을 제외한 관객들처럼, 영화의 감독, 배우, 제작비의 무게를 의식해 괜히 진지하게 해석하려고 머리 쓰다가 되려 혼란스러워져서, 영화가 계속됨에 따라 서서히 상승해가는 분노게이지로 인해 혈압에 악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고 즐기(....)시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위의 저 조건을 충분히 감안하실 수 있다면) TV가 아닌 극장에서 보실 것을 권하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영화입니다.
예를 들자면.........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동건이~~♪
.............를 200% 실감하기 위해서는 극장에서 보셔야 합니다!!!
(대관절 무슨 소리인지는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저 달리기를 활용한 정말 엄청난 장면이 나오는데....이것도 직접 확인하셔야 합니다......
물론 이 분........
...........의 아름다운 콧수염....아니 마상 챠지, 대쉬 챠지, 무쌍난무, 진 무쌍난무 역시 극장에서 봐야지요!
(이것 역시 진상은 직접 확인하시길.....그나저나 정말 아름다운 콧수염이었습니다....♡)
그러나 캐릭터가............뭐 [풍류를 안다] 정도로 해......두지요.........;;
나름대로 (조금 도중하차에 들쑥날쑥한...여기 캐릭터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세기말 로맨티스트....라던가.......
뭐랄까......정말로 자세한 내용은 쓰고 싶지 않군요.........
일단 내용을 쓰고 싶어도 쓸만한 내용이라는 것이 중구난방이라 뭘 어쩌자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정말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느낌이라.......
한마디로 극상 스타일리스트! 탐미주의자! 패~션~리~더 북공작!---이지요!!!
황금의 삿대질(....)도 강렬하고............
정말 이 캐릭터(+그 센스) 때문이라도 볼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감이라면 마지막에 가서 황당하게 깨진다는 점;; 정말 필요없는 군더더기였습니다...)
덧붙여 운명의 여신은 참.......사악합니다. 괜히 사람 성질 긁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이 영화는 결국 요리영화(....???)였을지도 모릅니다.
(이것도....보시면 압니다.......;;;)
아무튼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합니다.
제가 늘어놓은 알 수 없는 소리의 진상이 정말로 궁금하시던가, 대자본, 대감독, 유명배우라는 네임 밸류에 꿀리지 않고 삼라만상의 모든 권위를 풍자와 희화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으신 분, 좌우지간 어떤 형태로든 스펙타클을 보고 싶으신 분, 좋은 웃음거리나 개그 소재를 찾으시는 분들께는 강력히 추천합니다만, 훌륭한 시나리오의 진지한 대서사시적 무협 활극이나 운명을 뛰어넘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같은 것을 찾으시는 분들은 혈압을 우려해서라도 뜯어말리고 싶습니다(......)
원래 주말에 보려고 했으나 이번 주말에는 어쩌다가 올 겨울 최고의 코메디 영화라는(...) 무극을 보게 되어서, 결국 오늘 혼자서 터벅터벅 [메종 드 히미코]를 보러 종각 시네코아로 향했습니다.
어쩌다가 사정이 생겨 상영시간이 조금 지나서 도착했지만, 어차피 일본영화는 잘들 안 보니 널럴하게 들어갈 수 있겠지~ 좌석번호 따위 무슨 의미가.....
........하고 방심하고 들어갔다가 된통 한방 먹었습니다...........;;
뭐, 뭐냐 이 꽉찬 좌석은..........-_-;;;
집에 와서 보니.....메종 드 히미코가 일본영화에다가 마이너한 영화임에도 불구, 5개 극장에서 1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작은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도저히 이미 영화 시작한 시점의 객석을, 그것도 엄청나게 어두운(...) 환경 안에서 제 자리 찾아갈 자신은 없어서.....결국 가장 윗 자리의 좁은 좌석에 걸치고 앉아 관람했습니다;;
영화는 직장 상사인 유부남과 불륜관계인 직장여성 사오리(시바사키 코우)가, 오래 전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게이 아버지의 애인, 하루히코(오다기리 죠)와 만나면서 시작합니다. 하루히코는 사오리의 아버지가 '히미코'라는 이름의 게이바 마담으로써 게이들의 양로원인 [메종 드 히미코]를 운영하고 있고, 그가 말기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양로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지만, (당연히) 아버지에 대한 쌓이고 쌓인 감정 때문에 사오리는 거부합니다. 하지만 몇년 전 암으로 사별한 어머니의 병원비로 든 빚 때문에 사정이 어려운 사오리는, 이제는 돈을 줄테니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요일마다 메종 드 히미코로 와달라는 하루히코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고, 결국 메종 드 히미코로 향합니다.
사오리가 다다른 게이들의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 그곳은 바다와 함께 마치 지중해의 저택같은 이국적이고 낙천적인 풍미를 풍기는 이색적인 장소이고, 다양한 전력의 게이와 트렌스젠더 노인들이 찌질한(...) 동네 중학생들의 장난 등 이웃 사람들의 냉대에도 상관없이 남은 여생을 밝고 유쾌하게 보내려고 하는 곳이며,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를 부정하면서도 그리워한 딸, 그런 딸을 평범한 일본 아버지로써 대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한 아버지, 죽어가는 늙은 연인과 죽음이 두려운 젊은 연인, 뒤늦게나마 자신에게 솔직해진 사람들과 수십년동안 진정한 자신을 숨기고 죽여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에 게이, 트렌스젠더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던 사오리도, 노인들을 돌보며 차차 마음을 열어갑니다.
이 영화의 주제 중 하나라면 게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만큼 역시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죠. 메종 드 히미코의 남자들 중에는 사회에 억눌려 보통의 '아버지'를 연기하기 위해 겉보기만의 가정을 꾸렸던 이들도 있고, 결과적으로 사오리의 아버지 히미코처럼 자신에게 일찍이 솔직해지지 못한 나머지 또다른 사람들(부인과 딸)까지 상처입히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상사와의 불륜을 잘 끝내지 못하고, 외모와 빚 때문에 자기비하적 콤플렉스가 있는 사오리도 다른 형태로 자유롭지 못하고, 솔직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개인은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안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죽여야하는 지경에 이르는 희생이라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숨 쉴 권리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척박한 현실의 이면이 있지만, 그 와중에도 시대는 조금씩 바뀌고, 시오리가 노인들을 받아들이게 되듯 사람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엔 게이든 스트레이트든,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가슴 속에 쓰디쓴 외로움을 묻은 채, 때늦은 후회와 이루어질 수 없는 감정을 떠안고도, 아니 오히려 그것 때문에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고, 상처를 모듬어 가며 조금이라도 더 밝은 내일을 꿈꾸며 작은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애잔함과 쓸쓸함, 그리고 잔잔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빛나 보이는 따스함이 흐르는 영화가, [메종 드 히미코]였습니다. 일본 영화라서 극장에서 빨리 내리기 전에, (뭐 흥행이 나름대로 괜찮으니 좀 오래 붙어있을지도 모르지만...) 깊이 있는 드라마나, 감정의 흐름이 섬세한 영화를 보고픈 분들께는 반드시 추천하고 싶습니다.
....라는, 제대로 된 영화 감상은 저 정도에서 끝내고.....(어이)
사실 저는 몇달 전부터 모 언니로부터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받았습니다......그 이유는........
순전히 오다기리 죠라는 총각 때문이죠.
(주: 결혼 여부는 모릅니다만 어쨌든 제게 있어 총각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남자는 다 총각입니다.)
소문으로 듣기엔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이 만든다는 [충사] 실사판에서 깅코로도 채택되었다길래 궁금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확인한 오다기리 죠는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참한 총각이었습니다........
(몸도.....)
남자 배우 볼 때 몸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은 예외군요.......
(저 새하얀 차림새로 감싼 마른 근육은! 단정한 역삼각형 구도는! 갸낦은 듯 각진 어째는! 팔다리는! 엉덩이는!!!)
아니, 물론 오다기리 몸만 본 건 아니라(...) 뭔가 심상치 않은 특유의 오오라라던가, 원래의 밑바탕에다가 캐릭터가 꽃미남이라는 설정 탓에 감독이 팍팍 넣어준 빤짝이 효과(...) 덕택에 더더욱 미모가 빛나보이는데다가 캐릭터도 독특하고, 연기도 잘 하니 금상첨화첨향이기 그지 없습니다. 사진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직접 보셔야 합니다. (물론 저같은 경우 은연중에 '콩깍지 어펙트'에 걸려, 객관적인 보증은 어렵습니다만....;)
그러니까 어느 정도냐면, 영화 도중에 typical stupid homophobic teenager인 중학생 소년이 오다기리 캐릭터에게 강제 스킨쉽(*주: 뺨 때리기 6연타)을 당하고 클로즈업까지 보고나서 '매료'(*주: 이건 왜곡 아님)에 걸리는 부분이 너무나 자연스러울 정도입니다(...)
덧붙여 저 소년은 그때의 매료 때문에 일찍이 자신의 정체성에 각성, 좋아하는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티를 안 내며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진실까지 그 나이에 일찍이 깨달아, 메종 드 히미코의 최연소 자원봉사자로 변신하게 됩니다......지금까지 본 다양한 작품의 [마성의 게이 효과] 중에서는 가장 건설적인 것 같군요.
그나저나 패서 반하게 하다니....오다기리가 무슨 죤 웨인입니까???; (*주: 죤 웨인John Wayne은 카우보이, 군인 역 등 미국 흑백영화의 궁극적 마쵸 주인공의 상징인 배우로, 특히 장르, 상대를 불문하고 여자 캐릭터의 싸대기를 갈기면 100%의 확률로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어 순종화 두뇌개조를 시키는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었음. 단, 이것은 언제까지나 죤 웨인 전매특허 기술이므로 실제 생활이나 픽션이라도 여타 작품에 써먹었다간 설득력이 마이너스 제로일 뿐만 아니라 각종 여성독자 및 여성단체 및 피해자 여성 본인에 의한 항의와 법정고소, 각종 무시무시한 보복행위가 뒤따를 것이므로 절대로 시도하지 말 것.)
물론 못생겼다고 무시당하는, 성격까지 숫기 없고 부루퉁한 주인공 사오리를 연기한 시바사키 코우도 매우 좋았습니다. 솔직해지지 못하는 사오리의 당황과 혼란, 연약함과 강함, 그리고 각성과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멋지게 연기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사오리의 아버지 히미코로 분한 연기자의 경우 무용가라고 하시는데, 병자라는 설정이라 움직임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정말 심상치 않은 카리스마와 표현력을 보여주시더군요. 루비나 야마자키 등 메종 드 히미코의 게이, 트렌스젠더 할아버지들도 인상적이고 개성적인 조연이었고, 성적 소수자로써 겪은 아픔과 함께 꿋꿋이 살아가려는 강하고 긍정적인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주인공이 여자라서 다행입니다. 젊은 사람 둘이서라도 충분히 아슬아슬한데 남자이기까지 했다면 정말 큰일났겠군요(.....)
덧붙여서, 만약 속편 매니아인 할리우드의 추세를 따라 2탄(이 나올리가 없잖아!)이 나온다면, 틀림없이 [중학생 A군의 역습]이라는 부제가 붙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봉날 밤 저녁에 나가기 전에 오다기리 죠를 향해 보낸 뜨거운 시선(.....), 아마 관객들도 저도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그 중학생을 연기한 아역배우도 귀여웠고....)
............................생각해보니, 혹시 이 영화 국내개봉 일본영화 치고는 잘 나가는 이유가................
참고로 '반전'이라는 코드도 어떤 전쟁에 대한 '반전'이든지 간에 현재 '전시중(....)' 국가인 미국에서는 '사기를 낮추는 행위'로 간주되어 미국 국내 작품에서도 기피되고 있습니다. 하물며 외국 영화가 '반전' 주제의 근현대물일 경우, 그 화살의 타겟이 (과거의 화려한 경력 탓에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 미국이나 미국 군대나 미국 기업이 많아서 더더욱 미국으로썬 민감하게 느껴지죠.
왜 자기들끼리 서로 욕하면 그나마 나은데, 외부에서 욕하면 더 민감해지는 거 있지 않습니까. 특히 미국은 9.11 이후 (이해가 아니가는 것은 아니지만) 더더욱 피해의식이 강해지고 방어적으로 변해서, 조금만이라도 미국의 책임을 묻는 발언을 하면 "에잇 그만햇! 이 테러리스트!"......하고 오버하는 게 보편적인 감성으로 자리잡도록 미디어에서 조장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하필 그런 상태인 나라의, 그것도 형평성이나 가치가 간혹(?) 심히 의심스러운 영화제에 출품했냐구(...) 솔직히 말하자면 아카데미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굳이 직찹할 필요 없어요.......정말 차라리 유럽으로 보내라니까...........
덧붙여 오늘 라디오에서 부쉬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 대한 뉴스를 들으며.......
[북한은 자유가 필요한 나라]라던가 [우리는 전세계의 폭정 종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말에.........
"그건 댁이 할 소리가 아니잖아??!!!-_-;;;"
---라고 태클걸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올라와서 난감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온라인 지인인 현재 미국에서 공부중인 중국계 미국인 Shao군에게 채팅을 하다가 [아, 요즘 한국에서 이 영화가 히트다~]하고 왕의 남자 정보 페이지 링크를 보낸 데서 시작했습니다.
포스터를 딱 보더니 바로 [와~저 여자애 이쁘다~]하는 감탄사.
나중에 괜히 상처입을까봐 미리 말해두었습니다.
[쟤 남잔데.]
.......상당한 정신적 쇼크 및 연산군 시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Shao군......
그 후로 몇시간 잠적하더니........
저런 걸 그려서 보내덥니다.....;
......혹시 보복인가....?; 아니 그런 것 치고는 저를 너무 미화시켜서 그려주었군요; (참고로 한번도 서로의 실제 모습을 본 적 없는 사이) 게다가 무수리만 되도 감지덕지인데 후궁이라니....본인은 중국인이니까 명나라 사신....
아무튼 아직 국내에도 패러디가 적은데 벌써 외국인이....그것도 영화도 안 보고 패러디를 하다니 참 감회가 신선합니다....;; 역시 이 영화 해외시장도 노려야....(쿨럭;) 물론 Shao군은 DVD 나오면 당장 구해보겠다는군요. 듣자하니 대장금 덕분에 중국어권에도 한류와 한복이 대유행이라고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