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마지막 자막판 상영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아이들 대상 영화라지만 자막판을 서울에서 3 군데, 그것도 몇주만에 금방 내리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뭐 여기서는 영화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니 일단은 넘어가지요.
[폭풍우 치는 밤에]는 작년 말 일본에 개봉해 상당한 흥행몰이를 한 전연령 대상 애니메이션으로, 동명의 동화 시리즈(일본에서는 유명하다고 함)가 원작입니다.
이상 제가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전지식의 전부였습니다.(...)
성우가 누구니, 게이 코드니 어쩌구 같은 것은 찾아보지도 않았으니 알 턱이 없었죠. 사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모르고 가는 편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애니메이션은......어린이용♡ 애니메이션........
따라서......
모름지기 어린이 영화를 볼 때는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 봐줘야 하는 것이지요!!!
(......내지는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거나.........)
물론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특수성에서 느껴지는 감상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특히나 특정 타겟층이 분명한 경우) 입장을 살짝 바꿔서, 또다른 시점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될 수 있고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울 수도 있는 계기가 아니겠습니까. 정 이입하기 어려운 대상층이라면 애초부터 안 보면 그만입니다. 이성애적 성향의 욕구불만 직장남성들과 감수성의 일치점을 찾기 어려우면서 굳이 샐러리맨을 위한 비즈니스만화의탈을쓴에로만화를 찾아보며 욕을 하는 행동은 소모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요. (물론 아주 가끔씩은, 아예 작자의 의도에서 벗어난 관점에서 봐야지만 그 작품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비즈니스만화의탈을쓴에로만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미○의 꽃]이라던가, 최근 영화로는 3500만 달러짜리 코메디인 모 중국 영화가 있음-이미 그 시점에서는 괴작(....)의 경지로 넘어가버린, 한마디로 극단적인 경우이므로 이곳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현대는 죽이 됐든 밥이 됐든 팔리기 위해 모든 것이 카테고라이즈되어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 작품의 의도한 타겟층을 고려해주는 것은 소비자/향유자로써 마땅한 에티켓이자, 예의이자, 매너인 것이지요!
아무튼 [왕의 남자]를 두번째로 관람할 때 꿈많은 사춘기 소녀의 눈♥♥으로 이준기를 보는 것에는 실패한 저였지만,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기준인지는 불명....)---라고 믿고, 기합을 넣고 객석에 앉았습니다.
염소 메이와 늑대 가브는 폭풍우 치는 날 밤, 비를 피해 들어온 어두컴컴한 오두막집 안에서 만납니다. 상대방의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서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대낮의 재회에서 확인한 상대방은 사냥꾼과 먹이감. 한마디로 자연계 법칙상 천적입니다. 그만큼 본능을 억누르기 힘든 가브였지만, 차차 메이를 먹이가 아닌 친구로써 받아들이게 되고 메이와 가브는 간간히 몰래 만나며 우정을 쌓아갑니다. 하지만 서로의 종족에게 이 사실이 발각당하면서, 이 둘의 우정은 몇번이나 시험당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작화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사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그려낸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의 디자인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의 일본 만화나 애니에서는, 포케몬처럼 아예 다른 세계 생물(...)이거나 인간이 짐승귀나 꼬리 달고 나오는 것은 있어도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 본래의 특성을 살리면서 의인화된, 한마디로 톰과 제리같은 캐릭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디즈니나 워너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으로 고정된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가 최신 아동용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과연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자연적이면서 부드럽고 동화적인 느낌의 색채처럼, 동물 캐릭터들도 단순화된 만화적 형태이면서 움직이는 것에는 질감과 사실성이 있고, 그러면서 개그씬에서의 과장된 표정이나 몸짓 및 인간처럼 이족보행할 때의 움직임도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변화무쌍한 가브의 표정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애니메이션과는 뭔가 다른 느낌도 매력적이었구요. 사실 그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동물 캐릭터를 보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용진행은 잔잔한 편이지만 아이들이 보기에 따분할 정도는 아니고, 의인화된 동물들의 모습과 어느 시점에서부터 긴장감 있게 나아가는 전개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와 같은 극장에서 보고 있던 아이들은 굉장히 열심히 보더군요...) 어른들이 보기에도 유치하지 않고, 무난한 진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막은 이미 말이 돌고 있겠지만 거의 개작(....) 수준입니다. 초반부부터 무시하고 봤지요. 그렇다고 히어링이 늘었다고 하기에는 어차피 어린이들 영화니 그렇게 용쓰고 들을 것도 없고(......;)
그리고......
스텝롤이 올라가며........
영화가 끝났을 때의 즉각적인 감상은 이랬습니다.
이런!!!
이 영화는!!!
발렌타인 데이에 보는 건데!!!!(퍼어어어억!!!!)
뭐라고 비난하시기 전에...........
..........변명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영애 언니를 통해서...)
그러니까.......분명 처음에는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 보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 20분까지는 성공했구요.........
그런데.......그런데..............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저같이 수줍음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 정도의 뜨거움은 화상급 레벨입니다....;;
축생들의 대사가 너무나 강........했던 나머지.......
처음에는 [그냥...그려러니...]하고 순수한 어린이의 눈☆☆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그 날, 신촌 모 극장에서는 스토리가 점점 심각하고 가혹해짐에 따라 더더욱 빛을 발하는 영화 속 두 축생의 우정에 팔걸이를 붙잡고 실소인지 전율인지 알 수 없는 충동을 억누르며 정신상태가 대략 멍해져가면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관객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미 더 이상 성별 따위를 따질 범주를 넘어섰습니다. 성별이고 국가고 사상이고 자시고 자연계의 법칙 자체를 뒤집은 금기 중의 초 금기니 이미 위에 나열한 모든 장애물, 금기를 다 포괄하고 있으면서도 더욱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아슬아슬한 기반 위에 서 있는 '우정'이니 어찌 아니 수소폭탄급일 리 있으리오. 무엇보다 영화 도중 나오는 자연계의 약육강식을 묘사한, 어린이에게는 다소 잔혹할 수도 있는 장면들이, 갈등의 원인을 피해가지 않고 극명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고, 내용상의 긴장감과 주제의 무게를 더더욱 돋보이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디즈니 사후 점점 소프트해진 나머지 물컹찐득해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갈등(전쟁)이라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단순한 [미야자키 코드]로 보일 정도로 유순해진 최근의 미야자키 애니메이션과의 차이점이랄까요. 물론 그런 대가들의 작품들보다 빼어나게 뛰어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단지 최근의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어떤 종류의 [화합]이나 [대립]에 대한 내러티브에서 필수적인 [갈등의 깊이와 정도]를 가장 제대로 다루었다는 느낌입니다. (의외로 약한 것이 많습니다, [왜 싸우는지]에 대한 설명과 납득성....물론 그것이 깊을 수록 [화합]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만큼 작품의 무게와 진지함도 더해집니다. 그런데 정작 싸우는 이유가 말로는 설명이 나와도 분명히 납득, 공감이 어렵거나 무게감이 부족한 구도가 많습니다. 최근 읽은 만화 중에서 그런 점이 가장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오] 파리편입니다.) 물론 원작 동화가 좋았고, 동화라는 특성상 대립 설정 자체를 단순화시키다보니 오히려/덕분에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강렬한 갈등구도가 탄생하게 된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로, 이 영화는 어린이들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동시에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한 타자화(他者化) 및 차별의 어리석음, 자연의 약육강식 법칙, 우정의 소중함 등을 배우게 하면서, 어른들에게는 현실 속의 차별이나 갈등 문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끔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외국에도 소개된다는데 서구에서의 반응이 궁금하군요. 현재 한국어 더빙판밖에 상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볼만한 영화입니다.
그 밖에 시시콜콜한 기타사항입니다만......
1. 늑대들은 처음에는 야쿠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닌자였다(...) 그 할일없는 계속 스토킹해서 죽이려 하기.....는 어딜 봐도...........;
2. 사실 기로는 귀에 대한 것보다는 커플이 싫었던 것!! 커플따위 찢어주겠어~!---하는 일념이 분명하다. 질투단 단원이 틀림없다. (잠깐....그럼 뒤에 있던 암늑대는 와이프가 아니라 엄마??!)
3. 메이가 [녹색의 숲]으로 가자고 할 때, 퍼뜩 떠오른 생각은 [그래, 역시 이곳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라 푸른 숲이 끝없이 퍼진 머나먼 캐나다 땅으로 사랑...아니 우정의 자유를 위해 향하는구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