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2015.05.07 15:26

원문: Blame Abe’s bad history on diplomat George Kennan


[외교관 조지 케넌: 아베의 잘못된 역사인식의 원흉]

제임스 깁니 


[뉴욕]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매파 정책, 역사수정주의, 그리고 국내외 언론을 조정하려는 시도는 일본 국내는 물론 이웃 국가들의 비판자들로부터 격렬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 분노의 일부는 미국의 슈퍼 외교관 조지 F. 케넌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전후 미국 점령기 초기, 이상주의적인 뉴딜 개혁주의자들과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휘하의 우파 지사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의 경제와 사회를 자유화하려는 급진적인 시도를 했다. 그런 변화 중에는 전쟁범죄자 기소, 기업집단 해체, 토지개혁과 노동운동 양성도 있었다. 

주로 미국 변호사와 공무원들이 초안을 쓴 새로운 헌법은 시민권을 극적으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일본 여성들에게는 역사가 존 다우어가 “현대 헌법 중에 가장 강력한 평등권 조항”이라고 칭할만한 시민권이 주어졌다. (다우어의 퓰리처상 수상작 [패배를 껴안고]는 이 시기를 매우 훌륭하게 다루었다.) 또한 헌법 9조는 맥아더 특유의 호언장담대로 일본을 “태평양의 스위스”로 만들고자 하는 희망 아래 일본을 공식적인 평화주의 국가로 규정했다.

하지만 케넌은 맥아더의 개혁을 전략적 재난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그는 내전으로 갈라진 중국, 황폐해진 채 분열된 유럽, 냉전이 시동하는 시기에 일본이 “태평양 안보 시스템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1947~48년을 시작으로 케넌과 워싱턴에 있는 그의 우군들은 미국의 대일정책을 180도 바꿔놓았다. 전범 재판은 갑작스럽게 끝나버렸고, 공무원들은 파업할 권리를 잃었으며, 미국은 일본의 기업과 수출 산업체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전쟁 전의 보수적인 정치가와 관료들이 복직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위 “빨갱이 사냥”을 통해 2만명이 넘는 좌파 노조원들과 기타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케넌의 “역코스”에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인물 중 하나는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였다. 기시는 1941년 대미 선전포고문에 공동서명한 인물 중 하나였으며 군수성 차관으로써 수백, 수천명의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의 강제징용을 감독했다. 다우어는 기시를 “우수하면서 부도덕하다”고 평했고, 또 다른 미국 점령기 역사가인 마이클 샬러는 기시에게 “미국이 가장 총애하는 전범”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기시는 도쿄 스가모 교도소에서 A급 전쟁범죄 용의로 조사를 받으며 3년간 복역하다가 1948년에 다른 전범 용의자 18명과 함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왔다.

1957년, 기시는 미국이 원조한 자금에 힘입어 총리가 되었다. 샬러에 의하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CIA가 기시와 당시 신생당이었던 자민당의 특정 당원들에게 비밀리에 선거 자금을 지원하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그 대가로 기시는 일본 국민들에게 호응이 좋지 않은 조항은 일부 폐기하면서 미국이 일본내 미군기지를 계속 주둔시킬 권한은 확보하게끔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유도했다. 동시에 기밀 협약으로 미국이 일본을 “경유해” 핵무기를 이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이 조약에 항의한 안보투쟁이 결국 기시의 사임을 이끌었다.)

전후 미국의 가장 큰 전략적 성과가 나토와 최근에 기시의 손자 아베가 개정된 지침을 통해 더욱 강화된 미일 안보관계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초래한 반대 측면에 대해서는 좀처럼 논해지지 않는다. (국가간 무역 긴장 상태를 대할 때 공리를 위해 경제보다 안보를 우선시하는 미국 노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입는 피해는 물론이고) 미국은 케넌의 행동으로 인해 일본을 지금보다 훨씬 활기 있고 격동적인 사회로 만들 수 있었던 경제적, 정치적 개혁을 저해시키고 말았다.

만약 일본의 노조들이 번창할 기회가 있었다면 높은 임금을 지지하여 디플레이션 문제 타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 있다. 미국 대일정책 역코스 시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강력한 권력이 주어졌던 일본 관료체계는 일본 국민의 생활 전반에 대해 현재만큼 강력한 통제권을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여성을 위한 동등기회 보호는 단순한 지면상의 활자를 넘어 실질적으로 기능하여, 아베가 요란하게 허풍 떠는 “우머노믹스” 추진을 할 필요조차 없앴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일본인들은 미국적 기질에 대해 지금보다 더 호의적인 관점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민당은 아마도 이 정도로 장기집권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자민당을 지키기 위해 1990년대 중반까지 CIA의 자금 지원에 관한 문서의 기밀상태 해제를 거부했다. 국무부가 댄 이유는 “다수의 현직 자민당 지도자가 문제의 시기에서부터 활동했다”는 것이었다. 자민당을 지탱하던 견고한 경제적 이해관계는 현재 아베가 절실하다고 주장하는 구조적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자민당, 특히 아베 정권에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 역사를 새로 써야한다고 믿는 당원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베의 내각 관료 중 다수는 전몰자뿐만 아니라 전범마저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옹호하는 집단에 속해 있고, 또한 난징대학살과 일본군에 의해 매춘을 강제당한 여성들의 전시 기술을 부정하려는 일본회의라는 단체와 교류를 하고 있다. 그런 수정주의와 그것을 부정하지 않으려는 아베의 태도는 중국과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강화된 미일 군사 협동관계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만약 국가적 동화보다 권력정치를 믿었던 현실주의자 케넌이 이 상태를 안다면 실망할 것이다. 케넌은 일본에서의 활동을 마샬 플랜과 함께 “정부 소속으로 행했던 가장 의미 있는 기여”라고 여겼다. 케넌의 “태평양 안보 시스템”이 더욱 가까워진 이 때, 아베의 역사적 망상이 그 비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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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015.05.04 14:02

원문: 왜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은 많이 미움 받는가?

스타워즈의 날을 기념해 번역해 봤습니다.

필자와 동의하는지 여부는 넘어가더라도, 적어도 왜 대다수의 오리지널 삼부작 팬들이 프리퀄에 격렬히 반응했는지 자비 없이 잘 정리가 되어있는 글이라서 꽤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왜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가?]


왜냐면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은 오리지널 삼부작만큼 좋은 영화들이 아니었고, 그에 비해 기대치는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워즈 프리퀄은 그 자체만으로 매우 형편없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흔히들 프리퀄이 오리지널 삼부작을 망쳤다고 말하지만, 애초에 오리지널 삼부작이 마련해준 지지층이 없었더라면 프리퀄이 흥행조차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만약 [보이지 않는 위험]이 최초의 스타워즈 영화였다면 스타워즈는 지금쯤 극소수의 팬들이나 기억하는 잊혀진 영화 시리즈가 되었을 것이다.

오리지널 삼부작의 장점 중 하나는 단순한 선악 대결구도다. 다스베이더와 황제는 사악했고, 루크와 그 일행은 악하지 않았으며, 나쁜 놈들은 착한 놈들을 없애려고 전쟁을 일으켰고, 결과는 좋은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프리퀄은 무역분쟁에 대한 내용이었다. 무역분쟁에 관한 좋은 영화가 있다면 하나 대봐라. 인물들이 서성대며 대화하거나 상원회에서 투표하는 장면이 많았고 라이트세이버로 재밌는 일을 하는 장면은 적었다. 한마디로 지루한데다가 더 나쁜 점은 각본이 나쁜데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왕 무역분쟁에 관한 대화를 본다면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톡 쏘는 대사를 주고 받는 장면을 보고 싶다. 처참한 대사를 들으면서 “왜 저 사악한 자본자들은 아시아 억양으로 말하는 거지? 대체 왜 그렇게 설정한 거지?”같은 딴 생각이나 하고 싶지는 않다.

오리지널 삼부작은 영화사에 남을만한 악역을 낳았고 카리스마적인 영웅 캐릭터들과 대립시켰다. 2003년 미국 영화연구소는 역대 가장 위대한 영웅 캐릭터와 악역 캐릭터 순위를 매겼다. 다스베이더는 악역 3위에 올랐고, 한 솔로는 선역 14위, 오비완 케노비는 37위에 올랐다. (원작 삼부작에서 알렉 기네스가 연기한 버전의 오비완) 프리퀄 캐릭터는 당연히 한명도 없었다. 그나마 프리퀄에서 가장 흥미로운 악역이라고 칠 수 있는 다스마울의 출연분량은 15분 남짓이고, 유일하게 흥미로운 선역은 오비완이지만 그마저도 맥그레거가 알렉 기네스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삼부작은 훌륭한 스토리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결말을 주었다. [제다이의 귀환] 후반부에 주인공들은 적의 덫에 걸리고 만다. 한과 레이아는 엔도르에서 붙잡혔고, 함대는 데스스타에 의해 폭발당하기 직전이었으며, 루크는 다크사이드로 넘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주인공들은 지고 있었고, 쉽사리 타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프리퀄의 결말에서는 네 명의 주역들 사이에 매우 길고 지리한 라이트세이버 결투가 있었다. (요다 VS 팰퍼틴, 오비완 VS 아나킨) 그리고 누가 살아남을지는 뻔했다. 긴장감도 박진감도 없고, 프리퀄이 다 끝났다는 안도감만이 있었다.

사실 어떤 추가적 짜증 요소가 없었더라면 끔찍하게 형편없는 대사와, 의미 없는 플롯과, 캐릭터성의 부재 정도는 잊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자자 빙크스는 모든 의미에서 큰 실수였다. 전혀 웃기지도 않았고, 거의 모든 장면에 삽입되는 바람에 더 큰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자자는 다른 인물들이 대화하는 장면 배경에서 덜렁댔고, 똥을 밟고, 방귀를 맞고, 한마디로 최저급의 싸구려 개그 캐릭터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자자에겐 만회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서, 끝까지 용기나 지혜를 드러내는 장면도 없이 그냥 영화 내내 망한 캐릭터였다. 원작 삼부작에는 순수한 개그캐릭터는 필요 없었다. 전개 과정에 직관적인 개그씬을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자는 두 명의 엄청나게 짜증나는 아나킨들과 함께 프리퀄 삼부작 내내 짜증덩어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증오를 일으키기엔 부족하다. 프리퀄은 지루하고 짜증나고 영혼이 없지만, 그런 영화는 수없이 많다. 프리퀄이 미움받아야 하는 이유는 원작 삼부작을 깎아내리기 때문이다. 프리퀄이 나오기 전까지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포스의 다크사이드로 끌려온 선량한 파일럿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아나킨이 징징대고 짜증나는 아이였고 연기 못하는 낭만적인 바보에다가 하필이면 C3PO와 R2D2의 절친을 디자인한 놈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다스베이더는 속죄의 순간이 주어진 악인 중의 악인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폭소가 터질만큼 끔찍한 “안돼애애애ㅐㅐㅐㅐ”라고 외친 가망 없는 루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프리퀄은 그냥 나쁜 영화들이다. 게다가 좋은 영화들을 악화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니 당연히 미움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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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2015.03.30 23:31



[도검난무]는 DMM에서 서비스하는 웹브라우저 게임으로, 역시 DMM 서비스 게임인 [함대 컬렉션 (통칭 [칸코레])]와 유사한 시스템을 채용한 카드 콜렉팅+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칸코레]와의 가장 중요한 차별점이라면 군함이 아닌 역사상의 도검(창과 나기나타도 있긴 함)을 의인화한 남성 캐릭터 “도검남사(刀劍男士, 그런데 男士와 男子의 일본어 발음이 동일하게 “단시”라서 팬덤에서는 ‘도검남자刀劍男子’와 혼용되기도 함.)”를 내세워 여성층을 노렸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여성향 캐릭터 콜렉팅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성향에 비해선 압도적으로 수가 적었고, 그래픽이나 음성 등 객관적 퀄리티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던 시장에 [도검난무]는 [칸코레]의 검증된 시스템,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 캐릭터성을 잘 살려낸 대사, 풀 음성, 그래픽([칸코레] 식의 대미지를 입으면 옷과 갑옷이 벗겨지는 그래픽 외에도 농사나 말 돌보기같은 잡무를 시키면 나오는 작업복 그래픽이 있음)을 도입하고, 도검이라는 소재의 특징을 이용해 원래부터 많았던 전국시대 및 신선조 팬덤도 자연스럽게 포섭한 결과 올해 1월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에서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한국에서도 [도검난무]를 플레이하거나 [도검난무]의 2차 창작물을 찾아보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아무래도 [칸코레]와 동일한 회사가 서비스하고 있고 일본적 색채가 강한 무기를 의인화한 게임이다 보니 논란도 많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커뮤니티나 게시판은 들어가지 않고 트위터만 이용하지만, 그런 게시판에서 파생된 논란이 타임라인에도 종종 보일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보이는 화제는 “카슈 키요미츠(加州清光)는 A급 전범 도죠 히데키의 검”이라는 주장입니다. 카슈 키요미츠는 게임을 시작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다섯 자루의 타도(打刀) 중 하나로 (역시 원래부터 여성층에 인기가 많던) 신선조 대원 오키타 소우지의 칼이며, 팬덤에서는 미카즈키 무네치카 다음으로 2, 3위를 다투는 인기 캐릭터입니다. 

“신선조의 오키타 소지, 태평양 전쟁으로 유명한 도죠 히데키가 애용했습니다.”


논란의 짤방에서 나오는 이 주장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카슈 키요미츠”라는 칼을 오키타 소우지와 도죠 히데키가 애용했다고 하면 사실이지만, “85번 카슈 키요미츠” 즉 [도검난무]의 카슈 키요미츠가 처음엔 오키타 소우지가 애용했다가 나중에는 도죠 히데키가 애용한 검이라고 하면 거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뜻 궤변 같지만 사실입니다. 즉 두 인물 다 “카슈 키요미츠”라는 칼을 소장하였으나, 동일한 칼은 아니며, 제작자와 이름만 같은 동명이도同名異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입니다. 


사실 논란에서 출처로 삼고 있는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카슈 키요미츠 항목을 살펴봐도 답은 나와 있습니다.


카슈 키요미츠 (생년 불명~1687년) 카슈(현재의 카나자와 지역)의 도공. 정식 명칭은 카슈카나자와츄 쵸베후지와라키요미츠 (加州金沢住長兵衛藤原清光). 카슈카나자와츄 쵸베후지와라키요미츠는 6대째 ‘키요미츠’로, 1대 키요미츠는 “코지로(小次郎)”라고 하였으며 이즈미무라(泉村)에 살았다. 6대 쵸베후지와라키요미츠는 원래 도공 마을에 살았으나 별안간 비인소옥(非人小屋: 일본의 천민계급에 해당하는 비인非人과 그 밖에 걸인, 빈민 등을 수용한 주거지)에 들어가 그곳에서 여러 자루의 명검을 만들었다.

카가 번주 마에다 츠네노리(前田綱紀)가 1670년에 세운 빈민수용소에 일시적으로 살았기에 “걸식 키요미츠(乞食清光)”라고 불렸다. 1687년 서거. 신도기(新刀期: 1596년 이후로 만들어진 일본도를 신도新刀라고 함)의 도공. 

그의 검을 사용한 유명인으로는 신선조의 오키타 소우지나 도죠 히데키 등이 있다.

신도新刀 카슈 키요미츠는 여러 대(代)가 있으며 카슈 외에도 동명이인의 도공이 있기에, 칼자루에 키요미츠(清光)가 새겨져 있다고 비인 키요미츠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6대 키요미츠에 이어 7대 키요미츠도 비인소옥에 들어갔으나, 8대 이후부터는 코다츠노(小立野) 토취장(현재의 카나자와 대학 의학부 근처)에 살며 칼을 만들었다. 

9대 키요미츠는 후지에세이지로(藤江清次郎). 막부 말에는 그 지역의 대표적인 도공이었으나 1876년 불우하게 생을 마친 인물이다.

1967년 4월 7일, 카나자와시 카사마이마치의 제 4 토지구획 정리조합이 비인소옥이 있던 장소 부근에 “비인 키요미츠의 비”를 세웠다. 1.5미터 높이의 원통형 화강암 위에 곧날 모양으로 만든 청동 조각상이 올려져 있다. 제작자는 카나자와 미술공예대학교수를 지낸 이타사카 타츠지(板坂辰治).  


“...검을 사용한 유명인으로는 신선조의 오키타 소우지나 도죠 히데키 등이 있다.” 부분만 발췌되어서 논란의 근거가 제공되고 있지만, 항목 전체를 보면 특정한 한 자루의 칼이 아니라 카슈 키요미츠라는 도공들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장인이나 전통예술 전수자들은 대대로 이름을 물려받고 사적으로는 다른 이름이 있어도, 공적으로는 대대로 내려오는 이름을 걸고 몇 대째 000라며 작품을 발표하거나 공연을 합니다. 특히 도검의 경우 제작자의 이름이 자동적으로 붙는데, 이 이름을 명銘이라고 합니다. 즉 여러 명의 도공 카슈 키요미츠 중에서 가장 ‘네임드’인 6대 키요미츠가 만든 여러 자루의 칼 카슈 키요미츠 중에서 오키타 소우지가 사용한 것도 있고, 도죠 히데키가 사용한 것도 있는 것입니다. 

일본 도검의 이름에 대해 더 추가 설명을 하자면, 제작자가 명확한 경우(혹은 명확하다고 주장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붙는 명銘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옵션 이름 호号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명銘은 그 칼을 제작한 도공의 이름이며, 제작자를 분명히 하기 위해 칼자루에 이름을 새기던 관습에서 비롯됩니다. 사실 도공의 이름만으로 부르는 것도 극히 간략화된 형태로, 도명의 풀네임은 도공의 이름 외에도 출신지, 제작년도, 때로는 의뢰인이 들어간 매우 긴 이름(예: 九州日向住国広作 天正十八年庚刁弐月吉日平顕長)으로 기록에서 해당 칼을 구체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합니다. 반면 호号는 도공이나 칼의 소유주 등이 붙인 고유명입니다. 사실 일본만의 독특한 작명법도 아닌 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 악기도 기본적으로는 전부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불리고, 그 중에 몇 개는 sobriquet라는 고유명이 붙기도 합니다. 가령 같은 [도검난무] 캐릭터 중에는 쿠니히로라는 이름이 들어간 캐릭터가 세 명 있는데, 타도 야만바기리 쿠니히로山姥切国広, 태도(太刀) 야마부시 쿠니히로山伏国広, 그리고 신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가 애용했다는 와키자시(脇差) 호리카와 쿠니히로입니다. 



세 자루 다 저명한 도공 호리카와 쿠니히로堀川国広가 만든 칼로 알려져 있지만 유독 한 자루만 “호리카와 쿠니히로”라고 표기되는 이유는 야만바기리와 야마부시는 각자 고유명이 붙여졌지만, 히지카타의 와키자시에게는 따로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진품 쿠니히로가 아니라는 의혹도 있어서 캐릭터 대사에도 이 점이 반영됩니다. 다른 신선조 검들인 (그리고 짝퉁 의혹이 가장 강한) 나가소네 코테츠長曽祢虎徹,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和泉守兼定,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大和守安定 역시 호가 없어서 명으로만 표기된 도검들이고, 사카모토 료마의 호신검 무츠노카미 요시유키陸奥守吉行, 어전시합의 투구 깨기 일화로 알려진 도타누키 마사쿠니同田貫正国도 마찬가지로 호가 없고 특정한 유명인이 사용한 메이커 도검, 아니면 유명한 일화에 연관된 검이라는 식으로 캐릭터를 잡은 경우입니다. 

이 쯤 되면 [도검난무]의 캐릭터 작성 패턴이 대략 뻔히 보이는 게, 대다수는 호가 있는 도검들이 나오고(그 이름 뒤의 사연이나 이름 자체만으로도 캐릭터 만들기가 쉬우니까), 다음엔 고유명은 없어도 유명인이 사용했거나 유명 일화가 얽힌 도검을 등장시켜 주인의 인기에 편승(!)시키는 전략입니다. 여하튼 [도검난무]의 카슈 키요미츠는 “6대 키요미츠가 만든 오키타 소우지의 검”이고, 오키타 소우지와는 달리 여자 오타쿠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도죠 히데키와의 관련성은 전혀 묘사되지 않습니다. 군복스러운 복장이 도죠에 대한 오마쥬라는 의혹도 있지만 아직 공식에서 밝힌 바는 없고, 그보다는 같은 오키타 검으로 전형적인 신선조의 푸른 하오리 차림인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와 구분하는 한편, 디자인적으로는 상당히 19세기적 비실용성이 풍겨 나오는 구식이라(긴 상의, 쓸데없이 많은 단추 등) 도죠가 군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 군복보다는 무진전쟁 때 신선조 및 막부군과 신정부군이 입은 과도기의 서양식 군복이 모티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사진으로 남아 있는 히지카타 토시조의 군복)


개인적으로는 힐이 더 충격적.


물론 그럼에도 여러 자루의 카슈 키요미츠 중에 오키타가 사용한 것을 나중에 도죠 히데키가 물려받았을 수도 있지 않느냐! 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요. 오키타의 카슈 키요미츠도, 도죠 히데키의 카슈 키요미츠도 현재 행방이 불분명하고 도죠가 카슈 키요미츠를 얻은 경위(가보로 내려온 칼이라는 설도 있는데 불명확하고, 그나마 확실한 것은 패전 후 도죠 히데키의 과부가 팔려고 긴자의 고미술품 가게에 내놓았지만 반년 동안 팔리지 않고 진열된 채 먼지만 쌓였다는 회고)도 불확실합니다. 카슈 키요미츠 관련 2차 창작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케다야 사건 이후 카슈 키요미츠가 만신창이가 되어 수리하려고 내보냈으나 고칠 수가 없었다는 설”도 역사가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기록에서 나와서 근거가 모호합니다. 반면 두 자루가  동일 검이라는, 즉 오키타의 검을 나중에 도죠 히데키가 얻었다는 명확한 증거 역시 딱히 없습니다. 그리고 도공 카슈 키요미츠가 만든 칼은 한 두 자루가 아니며, 따라서 서로 다른 칼이라고 보는 것이 동일 칼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근거가 명확합니다. 오키타 소우지의 사망년도가 1868년, 도죠 히데키의 부친 도죠 히데노리는 1855년에 태어났으니까 굳이 동인지를 쓰겠다면 쓸 수도 있겠지만 둘을 잇는 사료적 접점은 없습니다. 물론 우연의 일치라도 하필 전범과 같은 메이커의 물건이라는 데에 혐오감을 가지거나, 일단 무기의 의인화라는 점 자체가(특히나 실전 사용률=살상률이 매우 높았던 신선조의 칼이니) 싫을 수는 있습니다만, 일본도의 작명법에 대한 오해나 의도적 곡해로 잘못된 지식이 퍼지며 소모적인 키배, 진실공방의 근거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차후 논쟁에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도검난무]가 까여야 할 포인트는 콜렉팅과 노가다 외에는 즐길 거리가 별로 없다던가 아마도 그걸 개선하려고 새로운 보스 시스템을 추가했으나 신규 서버가 열린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그것도 강제적으로 모든 맵에 나오게 만들었다던가 고치라고 욕을 먹어도 절대 보스 전용맵이나 사라지는 장치를 안 넣은 아무래도 폭주 기미의 시바무라 유리로 추정되는 고집이라던가 스토리적으로도 아귀가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던가 전체적으로 등신같은 운영이라던가 등등 굉장히 많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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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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