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2013.12.09 11:03

몇 달 전부터 트위터에서 합작(주로 일러스트)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특정 테마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의 작품을 한 온라인 공간에 모아 전시하는 식인데, 마침 요즘 진삼국무쌍7을 즐기던 차라 해외의 무쌍 관련 팬아트를 찾아보다가 국내 무쌍 팬아트 합작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제가 무쌍 팬아트를 잔뜩 보고 싶었던 사심입니다^^;) 혹시나 사람이 안 모일까 해서 친분이 있는 지인들과 동생들도 끌어들였는데 다행히 협조적이라 처음에는 이 분들의 이름부터 올리고 모집을 시작했는데....

합작 모집 페이지: http://collabo12.tistory.com/1

물론 꽤 오랫동안 팬층을 보유한 무쌍시리즈라 어느 정도 인원수는 모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순식간에 스무 작품이 넘고...당황해서 다른 합작들에서 이따금 보이듯이 감당할 수 있는 숫자로 제한할까도 했지만 30점이 너어간 시점에서 어차피 무쌍은 머릿수 게임인데 갈 때까지 가 보자는 오기가 들어서 기한까지 모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모집기간 일주일 동안 모인 결과는 50명이 신청해서 71점. 이 중에서 최종적으로 모인 작품은 47명이 그린 64점의 엄청난 규모의 합작이 탄생했습니다. 원작의 명성(=머릿수...)에 지지 않는 대규모라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성의와 애정이 듬뿍 들어간 존잘 연성들로 가득 차서 작품 모집 기간 동안 저만 보기 아까워서, 빨리 공개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릴 정도였습니다.


합작 공개 페이지 링크: http://collabo12.tistory.com/2


백문이 불여일견, 그 장관을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멋진 기획이 가능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참가해서 훌륭한 작품을 제공해주신 분들, SNS로 널리 확산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몇 번이고 감사의 말씀을 올려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압도적인 양에 막바지에 힘이 딸려 동생 위부인의 도움을 받아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사적인 야망 중 하나로는 이 합작이 국내외에 널리 확산되어 코에이가 다시 한글화에 대해서 숙고해줄 자극이 되었으면 합니다만...(ㅎㅎ) 그러지 않더라도 한국 게이머들도 이렇게 무쌍시리즈를 사랑한다는 점(그리고 이렇게나 존잘밭이라는 점!!)이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여담이지만, 모집 도중에 왜 건담무쌍이나 원피스 해적무쌍 등은 포함하지 않았냐는 문의가 가끔 있어서 첨언하자면, <진 삼국무쌍 시리즈>, <전국무쌍 시리즈>, <트로이무쌍>, <무쌍오로치 시리즈>로 제한한 것은 코에이의 오리지널 무쌍 타이틀들이고 외부 작품과의 프랜차이즈는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피스나 건담 캐릭터라면 건담 합작이나 원피스 합작에서 따로 모집해도 충분하니까요^^


저는 주최, 편집 외에도 장비와 가라샤로 참가했습니다. 장비는 원래 그릴 생각이 없었는데 유비와 관우가 신청되어서 장비도 넣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가라샤는 원래 좋아하던 캐릭터였고, 성우 시카노 쥰씨가 올해 안타깝게 고인이 되신 사마의 성우 타키시타 츠요시씨의 부인 되시는 분이고 실제 무쌍오로치2에 두 캐릭터 사이의 특수대화도 있어서, 나름 추모의 의미를 담아 그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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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시사2013.10.18 12:41

  

원문링크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 그랜트 더프 경이 카를 마르크스와의 만남에 대해 영국 제 1 왕녀 빅토리아에게 올린 개인 편지

당시 영국 군주(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이자 프로이센 왕세자(독일제국 선포 이후 독일제국 황태자, 즉위 후 독일 황제 프레드릭 3세가 되는)의 아내인 빅토리아 아델라이드 메리 루이사는 영국 정치가 더프에게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을 표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비키"라고 불리던 빅토리아 왕녀는 어릴 때부터 영특하고 지적이었으며 시집 간 독일에서 여자아이들을 위한 고등교육기관과 간호사 학교를 설립하고 예술과 교육을 후원하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있어 아들 빌헬름 2세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빅토리아 왕녀는 당시 여론을 들끓게 했던 마르크스에도 흥미를 가졌던 듯 합니다. 

이에 따라 더프는 1879년 1월 31일 데본셔 클럽에서 마르크스와 만나 바로 다음날 왕녀에게 편지로 보고를 올렸습니다. 더프는 회고록에 수신자에 대한 내용은 전부 삭제한 이 편지의 일부를 삽입했습니다. (1873-1881년 일기의 기록들)

이 편지의 전문은 1949년 7월 15일자 타임즈지 문예부록에 A. 로스슈타인의 "카를 마르크스와의 만남"에서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편지 전문:

1879년 2월 1일

마담,

제가 근래에 황태자비 전하를 뵐 영광을 누렸을 때 전하께서는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호기심을 비치시며 그를 아느냐고 여쭈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마르크스와 교제할 기회를 가지고자 하였으나, 그 기회는 어제 오찬 때에 그를 만나 세 시간을 함께 보내기 전까지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는 단신에 다소 작은 몸집이고, 회색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아직 검은 콧수염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었으며, 얼굴은 둥근 편이고 이마는 잘 생겼습니다. 눈빛은 다소 엄혹하나 전체적인 인상은 호감이 가는 편으로, 경찰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람 속의 아기를 잡아먹을만한 신사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매우 박식한, 아니 조예가 깊은 인물로, 고대 슬라브어를 비롯한 변두리 학문을 향한 관심의 계기였던 비교문법에 더 흥미가 많았습니다. 화제는 기발한 방향으로 틀기도 하고 종종 드러나는 메마른 유머감각이 다채로움을 더했는데, 가령 헤제키엘의 비스마르크 공에 대한 책을 언급할 때에는 부슈 박사의 책과 비교하면 마치 구약성서인 것처럼 말할 때 그러하였습니다. [G. 헤제키엘의 1869년 저서 <Das Buch vom Grafen Bismarck>를 의미]

전체적으로 별다른 열정은 드러나지 않는, 매우 현실적이고 다소 냉소적이면서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마르크스가 과거나 현재에 관해서 말할 때에는 매우 정확한 고찰을 보이지만, 미래에 관해서는 막연하고 불충분한 내용을 말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타당한 근거를 이유로 러시아에서 멀지 않은 기간 내에 큰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위에서부터의 개혁이 원인으로, 오래되고 부패한 체제가 견디지 못해 전체적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체제를 대신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생각이 없었고, 단지 러시아는 오랫동안 유럽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다음에는 그 운동이 독일에도 퍼져 현 군사제도에 대한 반란의 형태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하지만 어떻게 군대가 사령부에게 반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마르크스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군대와 국가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잊으셨군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회주의자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훈련된 병사입니다. 군대라고 했을 때 상비군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군(Landwehr)도 고려해야 합니다. 상비군 내에도 많은 불만이 쌓여있고요. 가혹한 규율로 인한 자살율이 이렇게나 높았던 군대는 없었습니다. 자신을 쏘는 지점에서 상관을 쏘는 단계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으며, 한 번 그런 선례가 생기면 같은 일이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유럽의 지도자들이 다 함께 군비감축에 협의하여 국민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면, 당신이 어느 날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혁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르크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하지만 지도자들은 그렇게 못합니다. 온갖 두려움과 질투 때문에 불가능하지요. 인민의 부담은 점점 심해질 것이며, 과학의 발전이 전쟁기술을 촉진하고 발달시킴에 따라 매년 더 많은 이들이 전쟁이라는 값비싼 엔진에 동원될 것입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입니다." 저는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진정 막대하게 비참한 상황이 아닌 한 본격적인 민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마르크스는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난 5년 동안 독일이 얼마나 큰 위기를 겪고 있는지 전혀 모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혁명이 일어나서 원하는대로 공화정 정부를 설립했다고 칩시다. 그래도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이 말하는 특유의 사상이 실현되기에는 요원하지 않습니까?" 마르크스는 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움직임은 느립니다. 영국의 1688년 혁명처럼 더 나은 시대를 위한 발판에 불과합니다. 먼 길의 중간단계일 뿐이죠."

이상의 내용으로 전하께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유럽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알려드릴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지당히 위험한 광적인 군비지출 상황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면, 마르크스의 생각은 위험이 되기에는 너무나 몽상적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다음 10년 안에 유럽의 지도자들이 이 악순환을 해결해 문제의 혁명을 막지 못한다면, 저는 적어도 이 대륙의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는 절망할 것입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대화 도중에 몇 번이고 황태자비 전하와 황태자 전하에 대해 경의와 예의를 갖추고 말했습니다. 특정 저명인사들에 대해 경의를 갖추지 않고 말할 때에도 날카롭고 톡 쏘는 비판은 풍부할지언정 마라(역주: 프랑스 혁명의 장-폴 마라) 식의 격하고 야만적인 느낌은 없었습니다.

인터네셔널 운동과 관련된 끔찍한 사건들에 관해서는 여느 점잖은 사람과 같은 견해를 보였습니다. 

또한 혁명과 연관된 망명자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시사해주는 일화도 언급했습니다. 그 몹쓸 노빌링(역주: 빌헬름 1세를 암살할 의도로 습격한 카를 노빌링)이 영국에 있었을 때 마르크스를 만나고자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저를 만나러 왔다면 기꺼이 맞아주었을 겁니다. 노빌링은 드레스덴 통계국 직원이라는 명함을 내밀었을 것이고 제 관심분야도 통계니 매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테지요. 만났더라면 참으로 즐거운 입장이었을텐데!"

마르크스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말씀드리자면 비록 저와 견해는 정반대지만 전혀 불쾌감을 주지 않았으며, 다음에도 기꺼이 다시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을 거꾸로 뒤집을 위인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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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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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2013.10.13 23:34


사실 수년 전부터 답답했는데 다시 탐라에 '할렘물'이 남발하기 시작해+마침 드물게 한가한 주말이라 그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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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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