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2010. 5. 2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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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아이큐점프 10호(3월 9일 발행)에 실린 글입니다. 자료 조사 중 발견했음.(...할 짓은 안하고!)
당시 아이큐점프에는 사회 각계의 인사들로부터 만화에 대한 사담형 글을 연재하는 "나의 만화"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1988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투고한 적이 있더군요.

띄어쓰기 및 맞춤법은 원문 그대로 옮겼습니다.


[나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 준 만화]

내가 어렸을 적엔 만화라는 것이 거의 없었고, 있다고 했자 볼품이 없었다. 나이들어 만화를 본대봤자 무료를 달래기 위해 아들 녀석이 보는 것을 심심풀이로 보았을 뿐이다.

나는 그러던 어느날, 나의 생활에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하면서 신문 사회면의 4컷 만화와 만평을 즐겨 보기 시작했다. 내 형편이 서서히 나아져 평안해질 무렵이었다.

나 혼자 편히 잘 먹고 잘 먹고 잘 지내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할 그 무렵, 박제된 순수예술을 거부하고 '두렁'이란 민중 미술단체가 등장했고, 판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만화 시리즈가 성시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러한 필연적 사회 현상에 의해 나도 만화를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토요일이면 이 희재씨, 이 현세씨 등의 작품을 재미삼아 아들과 신나게 보면서 차츰 만화가 글로 전달할 수 없는 엄청난 것도 호소력 있게 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더불어 인류사에 있어서 민주주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도 국민 의식을 풍자로 깨우쳐 준 만화와 판화의 역할이 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는 자신도 모르게 '만화가 순박한 정의감을 키우고 삶을 풍족하게 하고 시대를 앞질러 가는 것이구나'하는 만화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러하기에 나는 선거 때 부랴부랴 만화로 된 나의 홍보책자를 만화가 이 희재씨에게 부탁하였다.

너무나 촉박하게 서둘러 부탁하였음으로 걱정이 되었으나 부산과 서울을 오고 가며 우리가 품고 있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진심되게 실어 담았다.

그렇게 만화를 만드는 도중, 문제가 발생했다. 아내와 선거 자원봉사자들 간의 의견 대립이었다.
 
선거 자원봉사자들은 만화 내용중에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실어 유권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불어 넣으려 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 점에 대해 완강히 반대하였다. 어른들 선거판에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만화로만 된 홍보 자를 고집한 것이다.

결국 아내의 '순수한 애정론'에 기초한 고집은 승리하였고, 우리 역시 이런 뚝심의 애정을 밀고 나가 삼청교육대로 유명한 5공화국 세력의 상대 후보 인물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불의와 싸워 사랑을 실천하는 만화의 정신이 이해타산에 매여, 깊이 없는 철학에 근거한 이론만 앞세우는 기존의 허위들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 것이다.
 
그후 국회 청문회가 열리자 나는 또 한번 만화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번에는 만화의 소재가 된 것이다.

부당한 정치인을 요리하는 사냥꾼 '보통 고릴라'로서 말이다.

이래 저래 만화 예찬론자인 나는 만화로부터 복을 받는구나 싶다.


*서거 1주기를 맞아 문득 기억난 자료라서 올려 봅니다.

**참고로 이희재 선생님의 회고에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선거 홍보만화를 그려주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92년 이후지만, 이 글에 의하면 사실은 88년 선거운동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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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