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중국어권에서는 斷背山 혹은 斷臂山. 전자 쪽은 이해가 가는데 후자 쪽은 왜 등짝이 아니라 팔뚝인지 모르겠음. 설마 등이 부러지면 재수가 없다는 중국 미신? 내지는 주인공들 팔뚝이 굵어서?? 아니면 그냥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들어오는 것이나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은어???;---라 하기엔 둘 다 중화권의 언론매체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만주어/광동어나 지역 차이일지도.)
또한 어쩌다보니 반복 관람해버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첫번째는 혼자서 보러갔다가 그만 울어버린 바람에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성격이라고 오해하지 말 건. 단지 감독의 새디스틱함에 고문당한 것 뿐...) 영화평을 객관적으로 쓰기 어려울 것 같아서+어머니 반응이 궁금해서 두번째는 어머니랑 보고 (결론은 나보다 더 펑펑 우셨다. 게다가 친지분들에게 마구 추천하고 다닌다...;), 세번째는 원작과 대본을 다 읽은 후엔 어떨지 궁금해서+K모 언니가 아직 안 보셨다길래+씨네큐브에서 보고 싶어서 보고......
이것으로 저도 명실상부 단배산폐인이군요....(←그런 용어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번달에 또 영화관에 갈 일이 있으면 음~브로크백이나 또 볼까?---라 생각하고 있으니(....어차피 여유가 안되겠지만;;) 뭔가 단단히 걸린 것 같긴 합니다. 단지 [좋다]를 떠나서, 볼 때마다 매번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 있는 영화랄까요.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아무튼 미국에서는 미국 나름의 이유대로, 한국에서는 한국만의 이유대로 좀 취향을 타는 영화니 제가 반복관람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보러 갔다가 [저주하겠다 시바우치!!!]....라 외치며 부두교로 개종하는 일은 아무쪼록 없기를 바랍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약간 불편한 점이 있어도 참고 끝까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고 여깁니다만...사실 그런 거 솔직히 못 참을 것도 아니고 중얼중얼....그래도 각자의 취향은 존중해야 하는 법이니...) 그래서 리뷰를 잘 보고 판단하시라고 이렇게 올리는 것이죠.
일단 앞서 말씀드리는 점은.
이것은 흔히 알려진대로 [게이 카우보이들의 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으면서.
[게이 카우보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차차 밝히겠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63년 미국 와이오밍 주. 아직 스무살이 채 안된 시골 청년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은 브로크백 산의 양 방목 일꾼으로써 만납니다.
양은 정말 많았다...영화를 보면서 난 절대로 양치기 일 못해!--라고 깨달음;
사람이라고는 자신들 뿐인 산과 숲 속에서, 과묵하고 숫기 없는 에니스와 활달하고 소년같은 장난기가 남아있는 잭은 같이 생활하고,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으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단순한 동료애나 우정이라고 믿었던 두 사람은 어느 추운 (그리고 만취한....) 날 밤 충동적으로 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행동에 혼란스러워 하지만...
일단은 고민함. 이 때의 대사가 짤막하면서도 여러가지 의미로 정곡을 찌름(...)
....어차피 인가 하나 없는 (그것도 방대한) 첩첩산중...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는 격리된 장소...에덴동산...만다라케...등등의 은유법이 가능한 지리적, 공간적 이점에다가 눈까지 딱 맞아버린 피끓는 총각 둘 뿐이니 그 다음의 진행은 영화의 광고문구 말대로 Love is a Force of Nature (사랑은 자연의 포오스힘)이죠. 하지만 순수한 열정이 살아있던 청춘의 나날은 한 시절. 방목철이 예상 외로 빨리 끝나고 잭과 에니스는 산을 내려와 아쉬움을 숨기며 제각각 갈 길을 떠납니다.
[나는 내년에 돌아올거야. 징병만 안되면.]*
작별인사를 하는 잭의 표정이 무척 애잔했다. (같은 부분이지만 장면은 틀림)
에니스는 고향에 기다리고 있던 약혼녀 알마(미셸 윌리엄즈. 실제 히스 레저의 여자친구.)와 가정을 꾸리고, 잭은 이전에 말한대로 에니스와 처음 만났던 직업소개소에 다시 돌아왔다가 그를 만나지 못하고 텍사스에서 로데오를 하던 중, 운 좋게 부자집 딸 로린(앤 해서웨이)에게 낚여(←틀린 표현 아님;;;) 역시 결혼하게 됩니다.
에니스의 부인, 알마. 전형적인 60~70년대 미국 농촌의 주부.
개인적으로는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귀여운 외모가 매력적이라고 생각.
잭의 부인, 로린. 부유한 농기구상의 딸이며 카우걸 복장이 귀여운 여성 로데오 선수이기도 함.
이 역 때문에 [앤 해서웨이는 연기도 못하는 바보 아이돌~!]이라는 말을 취소해야 했음;
가난하든 부유하든, 언뜻 보기엔 평탄한 미국 남서부 가장의 삶을 사는 것 같은 에니스와 잭이지만, 4년만의 재회로 뒤늦게야 브로크백을 내려와 헤어질 때의 아쉬움의 무게를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쌓였을까!--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재회 장면.(의 일부. 진국은 본편에...)
제이크 질렌홀은 코가 부러질뻔 했다는데도 장면 내내 스턴트 없이...(퍽퍽)
하지만 각자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몸이고, 70년대, 특히나 미국의 서부의 농촌사회에서 이들의 관계가 용인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평범한 가장처럼 살아야지, 그래도 만나고 싶어 견딜 수는 없지, 그래서 1년에 몇 번 간간히 산 속에서 만남을 가집니다. 이렇게 20년간 계속되는 불안정한 관계는 에니스와 잭 본인들은 물론, 부인들의 삶과 마음에도 고통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상이 영화의 대체적인 내용입니다. 사실 내용 자체가 잔잔하고 이미 컨셉 자체가 내용이다 보니(=팸플랫에 전부 나온 사실), 스포일러고 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있다면 마지막 부분 정도랄까....) 커다란 반전이나 자극적인 진행을 원하는 관객에겐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마치 흐르는 강과도 같이 잔잔한, 그러면서 곳곳에 거친 소용돌이와 강물에 꿈쩍도 않는 바위가 있는 강, 그러한 템포가 [브로크백 마운틴]의 전체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장르적으로 이 영화는 멜로영화에 가깝습니다. 사실 바로 그러한 멜로영화의, 무난하고 편안한 화법 (그리고 서부라는 낯익은 배경) 때문에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성애적인 정치성을 부곽시키지 않고 스스로를 "러브 스토리"라 마케팅하며 실제로 평소의 (대부분의 동성애가 주 소재인 영화가 해당되는) 인디영화 수요층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일반 관객들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영화는 주역인 두 남자들에게만 주목하지 않고 그들의 부인과 가족, 그리고 각자가 처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의 차이점 역시 심도깊게 다룹니다. 원작과 영화에서 환경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주변'의 비중은 현실감을 더해 이야기가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줍니다. (사실...연애 영화나 스토리에 짜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로 짜증의 원인이 [세상엔 우리 둘 뿐]으로 흐르는 전개 때문이라고 말하긴 하죠...) 세상이 이들의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주인공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이들의 사랑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잭과 에니스의 경우도 자라난 가정환경과, 후반에는 경제적 요인이 성격적 차이와 갈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각박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기에, 되려 사랑 이야기는 설득력을 가집니다. 특히 순진한 농촌 주부였던 알마가 남편의 비밀을 알면서 고통받다가 살아가기 위해 점점 억세지고 굳어져가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공감이 갑니다. 오히려 여성관객들로썬 알마에게 더 감정이입이 잘 될 정도로 캐릭터가 탄탄하고, 위치상으로도 중요하고 또한 미셸 윌리엄즈도 대단히 호연이었지요. (동시에 [모든 위대한 로맨스는 주위에 민폐다]라는 진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기도....) 미셸보다는 등장이 적지만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분노, 질투와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전화 대화 장면을 살떨리게 연기해낸 로린 역의 앤 해서웨이도 훌륭했습니다. 그 몇 분이 캐릭터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느꼈습니다.
잔잔하면서 섬세하고도 강력한 연출 및 심리묘사로 잘 알려진 이안 감독은 멜로적 장르에서도 실력을 거침없이 발휘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대자연(사실 촬영지는 캐나다의 알버타주)과 미국 서부 사회의 풍경, 그리고 마치 진짜 서부 토박이같은 등장인물들의 소박하고 거칠면서도 정감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서부극, 내지는 적어도 미국 서부의 이미지는 은근한 (미국인이나 미국 역사, 문화, 사회에 익숙한 사람으로써는 상당한-그리고 설사 잘 모른다고 해도, 현대라는 시대적 특성상) 일종의 낭만(혹은 노스탈지아)과 함께 미묘한 현실감을 더하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 점은 (물론 다른 이유도 많이 있지만) 사극이라는 특성상 현실과 상당한 공간적 거리감이 있어서, 극중의 동성애에 대해서도 딱히 관객이 큰 거부감을 느끼거나 강하게 의식할 필요가 없었던 [왕의 남자]와 명백히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동시에 사람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해 (보기도 전에 컨셉만으로도)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우선 극중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인 [미국의 서부]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이 영화를 잘 이해하거나, 인물들에게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일단 미국 개척정신의 상징이자 옛날도 현재도 [가장 순수하게 미국적]이라는 평가/인식이 강한 서부는, 동시에 지극히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며, 카우보이의 신화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가치관과 원론주의적 기독교 사상을 뿌리삼아 건설된 사회입니다. 물론 독특한 전통과 문화와 유서가 깊고 서부에도 개방적이고 포용성이 있는 지역과 사람들은 분명 존재합니다만, 원작자 애니 프루의 말을 빌리자면 [브로크백 마운틴의 배경이 되는 와이오밍 주는 현재 와이오밍 대학교가 있는 서부에서 가장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주이며, 동시에 브로크백이 출판된 지 바로 다음해인 1998년, 젊은 게이 대학생이 처참하게 린치당해 살해당한 주]이기도 합니다. (피해자의 이름은 매튜 셰퍼드로, 호모포비아의 예시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사건임) 당연하지만 전반적으로 소수자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사회는 아닙니다. 비단 동성애자 뿐만이 아니라, 백인이 아닌 인종, 백인이라도 다른 종파나 이방인 역시 [소수자]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환경은 극중에서 등장인물들의 사고방식과 자신들의 관계의 향방을 정하는 결정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도저히 영화와 떨어뜨려놓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특히 배경인 60년대는 더욱더 폐쇄적이었을 터이고, 그러한 사회의 개인으로써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자신의 알고 있는 삶의 종류도 극히 제한되어 있었을 뿐더러 그것을 벗어난 선택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낭만적이고 모험적인 성향의, 꿈이 있는(실현여부는 어쨌든간에) 잭과는 달리, 에니스의 경우 저런 사고방식 자체에 대한 무의식적인 제한과 함께 그것이 직접적인 트라우마의 형태로 각인된 경험 때문에 [(현실을)바꿀 수 없으면 참아내야 한다]며 꿈조차 꾸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서부사회의 거부감과 극단적인 혐오감 뿐만 아니라, 그 사회가 주인공들의 의식과 사고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며 진정한 의미로 시대와 환경이 부른 비극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비단 서부의 폐쇄성과 타자에 대한 차별은, 그 감수성과 형태에는 다소 차이가 날지언정 비슷한 환경적, 문화적 기타 조건이 만족된 사회라면 동서고금 불문하고 존재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도시화가 진행되어도 저런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그런 유사성을 발견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동양인 감독이 서부의 낭만과 부조리를 동시에 잡아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환경/경험과 분명한 연결고리를 발견해서라고 여겨집니다. [억누르는 것]에 대한 실감이 아무래도 더 강한 것도 있겠죠.)
그나마 그런 서부의 사내들이 꿈꾸어도 좋을, 아니 오히려 꿈꿀 것을 권장받았던 대상은 바로 '카우보이'입니다. 단순한 직업을 넘어서 일종의 이상형이자 우상이었죠. 앞서 이 영화는 [게이 카우보이들의 사랑이야기]이면서 그렇지 않다고 했는데, 바로 [카우보이의 신화] 때문입니다. 사실상 진짜 오리지널 원조 카우보이는 19세기 말 미국의 개척시대에 태어나 미국 전대륙에 철로가 깔리면서 시대의 흐름과 함께 사라진, 불과 몇십년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입니다. (사실 에니스와 잭이 하던 양치기 일도 소를 치던 카우보이들은 경멸하던 일이었죠.) 그 [신화]를 부활시키고 전원적인 서부 판타지를 탄생시킨 것이 바로 할리우드입니다. 특히 1949년에는 론 레인저의 TV방영으로 당시 소년들의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혼돈의 서부, 인디언들과 백인들의 사이를 중재하는 정의의 사자 론 레인저.
...와 파트너라기보단 로빈같은 존재였던 인디언 톤토.
죤 웨인으로 대표되는 카우보이의 남성성은 과묵함, 대담함, 용감함, 남자다움, (아버지로써의) 책임감, 냉정침착함, 강인함, 부동성, '필요할 때면' 용인되면 폭력성 등 마쵸함의 극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험란하고 낯선 환경을 지배하기 위한 이상적인 조건들이죠. (라고 하지만 솔직히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실제로 잭은 (여러가지 의미로) 모험심이 강하며 로데오를 동경하고 있고 에니스는 언뜻 보기엔 죤 웨인같은 [강하고 과묵한] 남성으로 보입니다. (사실 그보다는 말주변이 없고 낯을 가리는 쪽이지만...) 잭의 어린 시절의 방에는 말을 탄 카우보이 인형과 BB탄 총이 있고, 원작에서 에니스의 아버지가 가르쳐준 인생 장애물을 뛰어넘는 방법은 [기습해서 죽도록 패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카우보이의 신화]를 바라보도록 길들여진 당시의 전형적인 농촌 청년들입니다. (이러한 마쵸의 신화는 이현세 만화같은 데서도 있으니까 멀리 찾을 것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확히는 [카우보이를 꿈꾸는 남자들의 사랑이야기]인 것이죠.
문제는, 카우보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 존재인 것 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는 마쵸적인 '남성적인 강함'이란 타인에 대해 상당한 거리감을 두어야 유지가 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공격성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흔히 유악함으로 치부되며, 가족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애정표현보다는 책임감이 더 중시되기 때문에, 그러한 마쵸적 페르소나를 유지하려는 사람에게 상당한 정신적, 심적 부담을 가한다는 점입니다. 연인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껴도, 격하고 강한 감정을 품어도 그것을 어찌할 줄 모르는 남성의 유약함과 혼란스러움이 원작 소설은 물론 히스 레저의 뛰어난 연기로 돋보입니다. 에니스와 잭이 20년 동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서로를 애타게 찾는 이유는, 아주 잠시나마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안고 모듬어 줄 수 있는 상대를 갈망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 [브로크백]이 말하고 싶은 사랑이란, 인생의 의미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브로크백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산인 것처럼,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평생의 사랑을 만날 기회도 희박할 뿐더러 제대로 사랑을 전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환상이라고 치부하기엔 [브로크백 마운틴]의 사람들의 삶은 우리의 일상적이고 투박한 현실과 너무나 가까이 맞닿아 있고, 그럴수록 빛이 꺼지지 않는 사랑은 더더욱 찬란해 보이지 않습니까. 마지막 장면에서 에니스의 대사도, 미약하나마 브로크백에서 깨달은 사랑이 현실에서도 계속되기를 맹세하는 것이라고,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이하는 영화 관련 잡담입니다.
*자막과는 다른 대사에 대해: 물론 자막에서는 [군대에 안가면]이었지만...뉘앙스가 미국이 무슨 우리나라처럼 의무 군복무제로 나이 차면 군대 가야하지~같거나 할 일 없으면 군대나 가야지~같은 느낌이 실제적으로 내제된 강제성보다 강한 것 같아서 바꿈. 당시가 1963년이라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군대에 간다는 것은 자주적으로 직업군인에 지원한다기보다는 베트남 전쟁으로 강제징병된다는 의미. 무엇보다 원래 대사가 [If the army don't get me], 직역하면 [군대가 날 안 끌고가면]이므로 어느 정도의 자주성이 보이는 [군대에 간다]보다는 좀더 외부적 강제성이 가해진 [징병]이 어울림. 별 사소한 것 가지고 꼬투리 잡는다고 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농촌총각A도 징병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던 베트남 전쟁이라는 당시 상황과, 떠돌이인 에니스와는 달리 집 주소가 있는 잭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문자 그대로 에니스를 두번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못 쓸쓸해 보이는 잭의 표정의 더 와닿지 않을까 하는 괜한 오지랖에 덧붙임.
-역시 문제의 발차기는 이안 감독 전승 원형 발차기였다!! 아무렴 100% 서부 발차기는 그렇게 멋지구리하지 못하지~
-과연 감독이 같은 중국계라 그런지(무슨 상관이...) [무극]과 공통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참고로 고기를 썰기도 해야한다!!!)
-바람 피울거면 눈치껏 피우라는 크나큰 교훈을 안겨준다....랄까....설마 그 각도에서라면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한거야??!-△-; 이래서 남자는 바보!!!(←편견;) 게다가 확인사살까지 하다니! 그러다가 다시한번 딱 걸리다니!!! 에니스는 절대로 추리소설에 나오면 안돼!!
-이건 스포일러. 잭의 죽음에 대해서 좀 모호하게 처리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국내에서는 린치로 살해당한 쪽이 너무 처참하니 그냥 사고로 치자는 의견이 강한 반면, 서구권에서는 실제 게이에 대한 린칭 사건의 현실감 때문인지 잔혹하긴 해도 에니스의 상상이 옳다고 믿는 편. (원작에서는 잭의 부모님을 찾아간 에니스가 목장감독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으며 린치가 확실하다고 다시 한번 확신함) 로린의 무언가를 억누르는 것 같은, 모호한 태도도 어느 정도 의견을 뒷받힘해 줌.
-사소한 것일수도 있지만 단순한 스트레이트 시점의 멜로영화가 아니라 게이 감수성에도 잘 어필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영화 자체가 게이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얻었고 섹스어필(...)도 했다는 점. AJ...아니 제이크 질렌홀은 여성관객 뿐만 아니라 게이들에게도 크게 인기를 얻어 모 게이사이트에서는 커플링 투표도 함. (사실 본인도 보자마자 수려하다고 생각했음. 게다가 그 OVA블랙잭급 속눈썹이란!!)
-이안 감독은.............
이런 선량한 얼굴을 한 새디스트였다.......
당신 때문에 돈 날아가고 리뷰도 길어졌잖아! 책임져요!!! (버럭버럭~)
......라는 의미로 본전 뽑기 위해(??) 리뷰를 길게 써버린 듯......(그게 왜 본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