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06. 3. 25. 01:48
-원작자인 퓰리처 수상자 애니 프루는 현재 와이오밍 주에서 살고 있고 와이오밍에 대한 소설을 주로 쓰지만, 사실은 캐나다 출신. 영화 속의 [브로크백]도 사실 촬영지는 캐나다의 알버타주였고, 아무튼 여러모로 캐나다가 관련된 작품. 하긴 브로크백의 풍경을 보며 묘한 향수(?)가......라기보단 사실 그레이하운드 버스정류장에서 더 느꼈지만요^^;

애니 프루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와이오밍의 한 술집에서 본 중년의 농장 일꾼으로 보이는 어떤 남성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 남성은 혼자서 술을 마시며 당구대 주위에서 당구를 치면서 노는 젊은이들을 줄곧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그 젊은이들 중에 조카나 아들 등 아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뭔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물론 [사실 그 남성은 왕년의 전설적인 당구 챔피언이었는데 부상을 당해서 한창 때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농장을 전진하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가다가 우연히 술집 당구대에서 당구를 하는 청년들을 보고 잠시 옛 시절에 대한 추억에 잠기다가, 그 중에서 천재적인 잠재성을 지닌 젊은이를 발견하고 달려들어 어깨를 붙들며 "너는 나의 내일이다! 널 최강의 풀 샤크(당구의 달인)로 키워내겠어!"하고 맹렬특훈을 시킬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평범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그건 언제까지나 범인(凡人)의 사고지요.

애니 프루는, 그 눈빛에 어떤 종류의 애틋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고장에서 저 남성의 젊은 시절에 동성애 성향을 가진 남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물론 관찰의 대상이던 그 남성이 딱히 동성애자라는 것은 아니라 단지 영감을 제공해준 것 뿐이라고 작가는 명시해두었지요. (그래도 홧김에 안주(...)가 되어버린 그 아저씨가 괜시리 불쌍해짐...) 그나저나 실생활에서 저런 망상상상을 해서 소설을 쓰다니...마치 길 가다가 사이좋아 보이는 남자 한 쌍을 보고 숙덕거리며 즉석 동인지를 쓰는 여고생....같은 것 보다 훨씬 급수가 높군요; 오로지 눈빛 하나와 특정 지역에 대한 배경지식만으로 저런 영감(...)이....과연 대작가는 달라도 뭔가 다릅니다!!!

-애니 프루는 60번이 넘도록 퇴고를 거듭해 [브로크백 마운틴]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소설의 리얼리티를 위해 당시에 목장주인을 하던 사람들에게 60년대 양치기들은 주로 칠레인들이었는데(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백인 남자애들이 하기도 했는지 (실업률이 높아서 신빙성이 있다고 함), 정말 보통 두명을 올려보냈는지 등등을 캐물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실제로 그런 외딴 공간에서는 혈기왕성한 남자 둘이라도....아니 오히려 혈기왕성한 남자 둘이니까....종종 해프닝(...)이 있을 수 있었고 고용주들도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뭐~둘이 심심할 것 같아서 일부러 두 명 올려보냈는걸~....하고 대개 눈감아주는 분위기였다고 하죠. (이...이런 것까지 조사해서 확인하냐! 무서워 이 사람!-△-;;) 그래서 일부러 첫 씬(...)도 급박하고 [분출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긴 거친 시골총각들이 뭘 처음부터 러브러브하게 하겠냐만은.....영화는 소설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보면 됨. 개인적으로는 너무 빨리 지나가서 유감 덕분에 리얼리티가 올라갔다고 생각함.) 아무튼 현실과 소설의 다른 점이라면, 그것이 평생의 사랑이 되어버렸다는 점이겠지요.

-원작 [브로크백 마운틴]은 불과 30페이지 가량밖에 안 되는 단편소설이고, 그 때문인지 교보문고같은 데서는 매진이 된 것 같기도 하지만....절대로 짧다고 쉽고 가볍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내용을 떠나서 사투리가 너무 강해요. 단어만 다르게 쓰는 게 아니라 어순이나 문법 자체가 전혀 다릅니다. (그나마 영화에선 배우들이 읊어야 하는 대사고 의미를 파악해야 하니까 다소 표준어화된 편) 게다가 원래 작가 스타일이 그렇지만 문장이 무지 깁니다. 단어도 이따금 좀 어려운 단어가 나오구요. (그리고 문체를 떠나서 감수성이 섬세한 분이라면 다소 대미지를 입을 수도 있는 격정이 있습니다...) 마치 등장인물들처럼 소박하고 투박하면서 건실한 느낌의 문체인데 물론 특유의 매력과 완성도, 개성은 상당하지만, 부드럽게 읽히는 종류의 글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영어만으로 살아나는 특유의 템포와 리듬감도 있어 묘하게 부드럽기도 합니다. 또한 30페이지밖에 안되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내공이 응축되어 있는 소설입니다. (괜히 60번 퇴고한 게 아니지요...)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하고 거칠면서 안타까운 느낌이 있습니다. (좋은 의미로…) 사실 영화 쪽은 소설보다 더 소녀틱♡....아니 멜로틱한 편이지요. 오오, 이 묘사가 이렇게 영화에~!!--하는 기분으로 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를 들면 초반에 브로크백에서 내려온 에니스가 잭과 헤어져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Within a mile Ennis felt like someone was pulling his guts out hand over hand a yard at a time. He stopped at the side of the road and, in the whirling new snow, tried to puke but nothing came out. He felt as bad as he ever had and it took a long time for the feeling to wear off.

1마일도 채 못 가서, 에니스는 누가 창자를 한뼘 한뼘 뽑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발이 휘날리는 길가에 멈춰서 토하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더할 수 없이 기분 나쁜 그 느낌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라는 묘사로 설명되죠.
대부분의 주요 대사들도 소설에서 따온 것이고, 저런 장면같은 경우 대본에서는 배우에게 구체적인 지시 없이 소설의 묘사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감독과 배우들도 원작을 분명히 읽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저런 직접적인 묘사/대사의 채용도 있지만 소설의 템포와 느낌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원작을 존중했다는 생각이 들죠. (라는 의미에서 좀 본받아라 마코토 게다가 니 애비잖아←설마 사실은 아버지를 미워해서...) 영화를 보셨든 안 보셨든, 반드시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브로크백 포스팅 연속이라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저는 단배산폐인(斷背山廢人)인걸요.....!!!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