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2008. 4. 8. 21:21

그 동안 통 포스팅을 못하다 보니 썰렁한 블로그....뭐 간혹 피땀을 주입한 포스팅을 해도 찬바람 불 때가 더러 있으니 그다지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만 그만큼 방문객들이 하이클래스하고 쿨하고 쉬크하시다는 의미지요☆
그래도 포스팅하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라는 옛 말이 있듯이 근황이 아닌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사실 얼마 전에 구입했으니 어떻게 보면 근황이지만...
아무튼 요전에 동네 북오프에서 산 하기오 모토의 [마지널], 문고판으로 전 3권입니다.

이 만화는 해적판을 본 친구가 귀뜸해준 기억은 있는데 [남자밖에 안 태어나는 나라에서 남자 두명이 수수께끼의 미소년을 만나 사막을 여행하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만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맞다고는 하기 좀(...)

어쨌든 남자밖에 태어나지 않는 세계관이 배경이기는 합니다. (단 동물은 암수가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단 한명의 '마더'라는 존재가 출산을 전담하여 숭배의 대상이고 나이가 찬 남자는 '도시'를 찾아가 '마더'에게 아이를 받아 키우며 사회가 유지됩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아이의 수가 급감하고 세계에는 망조가 보이며 사회는 혼란에 휩싸입니다. 이러던 와중 멸망해가는 부족의 남자 그린쟈는 사막에서 기억을 잃은 금발의 소년을 발견합니다.

사실 줄거리를 여기까지만 설명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만화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린쟈의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린쟈가 주운 소년인 키라, 키라를 구입한 성질머리 급한 청년 아시진, '도시' 시장의 어린 아들, 하늘에서 떨어진 여행자, '마더'를 관리하는 메디컬 센터의 장관 등 다양한 입장에 처한 인물들의 눈을 통해 이 세계와 키라의 '진실'에 근접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대한 스케일과 적절한 균형감각은 데즈카 오사무 계통의 초기 스토리만화가 연상되는 형태로 다양한 사건과 모험이 벌어져 박진감이 넘치지만 동시에 적절한 페이스로 쉬어가면서 캐릭터들의 내면을 비춰내고, 또 그것이 내용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녀만화적 감성과 섬세함도 갖추고 있기에 누구에게나 적절하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하선생 작품이라도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는....18금이고...어른이 봐도 대미지를 입을 수 있음.)

특이한 점은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도 근본적으로는 여성, 여성성에 대한 탐구라는 점. 다음이 궁금한 SF모험물이라는 장르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젠더에 대한 상당히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이거랑 우테나면 완전 젠더학, 여성향 개론 참고교본으로 써도 되겠다 정도. (오오...근데 그런 강좌 만들면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인기 없는 젠더학이라도 나름 히트칠지도. [만화, 애니로 배우는 젠더학 개론]. 문제는 제가 그 쪽을 잘 모른다는...) 그리고 전체적으로도 작가의 균형감각이 상당히(!) 뛰어나서, 비단 앞서 말한 다중 시점의 밸런스 뿐만 아니라 세계관에 대한 감각 면에서도...예를 들면 이 세계의 인간들은 과학이 뒤쳐져있고 미신을 믿는 등 메디컬 센터의 (사실은 다른 우수한 과학력의 문명에서 온) 직원 및 그들 세계의 인간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한심하고 미개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직관과 행동력이 때로는 이성과 계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센터 인간들보다 더 적절한 판단을 내리게도 하며 멸망해가는 상태를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합니다. 센터의 인간들도 사실 이런 식의 이분법적 인류가 존재하는 내용의 경우 과학맹신,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대체로 인정사정 없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묘사될 가능성이 많은데 [마지널]에서는 과학력이 뛰어난만큼 당연히(!) 문명적으로도 발전한 사회라서 매우 합리적이고 조금 미묘한 듯 하지만 인권의식도 상당히 발달해 있습니다. 그 편이 사실적이기도 하구요.

아무튼 순식간에 읽어내리면서 읽은 후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만화였습니다. 마무리도 정말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어서 좋더군요. 원서 읽으실 수 있는 분이면 서울역 북오프에 들어오는 걸 구하는 것도 괜찮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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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