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2010. 10. 26. 17:47

1부-‘동인’이라는 용어의 모호함

인터넷이나 대중문화 등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단어들은 그 정의와 사용법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음에 따라 본래 뜻과는 다른 색다른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 용어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혼란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동인’도 그런 용어 중에 하나입니다. 요 전의 홍대 BL 도서관 (지금은 북카페로 전환했다지만)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 제공도 ‘동인’이란 용어에 대한 쌍방간의 혼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국내 BL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용어이니만큼, 그 배경과 다채로운 의미를 명확히 알아두면 위와 같은 유혈사태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A. 사전적 정의의 동인
同人. 같은 뜻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일반인이라면 교과서에 나오는 일제시대 문학 동인을 떠올릴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에도 문인 모임을 ‘XX대학 문학동인회’처럼 여전히 동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사전적 정의에 기반해서 제가 잠시 <동인녀 비망록>을 연재했을 때 “동인녀가 아니라 야오녀라고 해야지요”라는 지적이 가끔 들어왔는데 같은 사전적 정의에 기반해서 “남남상열지사라는 같은 뜻/취미를 공유하는 여성들이니 동인녀라고 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야오녀보다 어감이 좋습니다.”라는 무성의한 답변을 한 적도 있지만…실제로 BL문화와 ‘동인’이란 단어가 결부된 배경은 좀 더 다른 데에 있습니다.


B. 아마추어 창작자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창작자 및 그 창작물, 창작계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입니다. 전통적으로 아마추어 만화가 및 만화가 지망생에 대해 많이 쓰였는데 최근에는 게임 제작자도 동인 게임 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음악계나 영화계에서 인디라고 부르는 영역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90년대만 해도 만화 서클이라는 말보다는 동호회, 동아리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그런 모임에서 나온 책을 만화 동인지라고 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활동하는 사람도 만화 동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그 배경으로 여겨집니다.  


C. 패러디 (2차 창작) 창작자, 혹은 창작물
B의 아마추어 창작자들이 ACA나 코믹월드 같은 동인지 및 동인 굿즈 판매행사에 활동하며 창작 외에도 기존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패러디를 책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점차 창작보다는 이러한 패러디 책이 만화행사에서 압도적 주류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동인이라는 단어가 곧 2차 창작-패러디라는 의미도 포괄하게 됩니다. 딱히 만화에 국한되지 않고 2차 창작 일러스트, 소설, 게임 등도 포함합니다.


D. 보이즈러브(BL) 향유자
이것은 두 가지의 각자 다른 배경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일단 첫 번째는 90년대의 B에서 파생된 것으로, 창작 BL (1차 BL) 소설계를 가리킵니다. 나쁘게 말하면 폐쇄적이고 좋게 말하면 아늑한 한정된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설 판매행사를 통해 교류하는 곳입니다. 
두 번째는 C에서 파생된 것으로, 아마추어 만화행사에 여성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여성향 패러디 문화의 중요한 트렌드인 BL 코드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게 되어 2차 창작과 BL 향유자 전반을 동인, 동인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동인’이라는 단어는 그 역사에 따라 다양한 용도와 의미를 가지며, 각자의 정의와 상호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내부에서는 같은 1차 창작 동인이라도, ‘창작 동인 (아마추어의 1차 창작물 전반으로 BL을 포함할 수도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과 ‘창작 BL 동인(아마추어의 1차 창작물 중에서 BL만을 가리킴)’처럼 명확한 영역 구별 짓기를 하여 혼란을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BL 도서관 블로그가 실수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동인지를 배치한다고 했을 때 어떤 동인지였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용어 이해의 혼동이 어떻게 극심한 논란이 여지가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한국에서의 BL의 역사와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이 점은 2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2부-대한민국에서의 보이즈러브 매체와 보급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