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트레일러랑,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라는 국내판 전용 부제만 보고, 나니아나 해리 포터와도 같은
좀 어두운 척은 해도, 근본적으로 밝고 동화적이며 화사한 판타지 가족영화를 기대하고 있었다면...
너는 이미죽어낚여 있다.
물론 본인은 칸느에서의 평을 사전에 듣고 있었기 때문에 속지 않았지만...
그리고, 마치 위의 판타지 영화들과 비슷한 계열인 것처럼 홍보한 국내 마케팅 전략도 문제 있지만...
(뭐 그 외에 딱히 다르게 홍보해서는 대중성 확보하기가 어려운 영화기는 하지만...;)
어린 자녀들이나 학생들을 데리고 이 영화 보여주려 하려는 분들에게 당부의 한 마디.
저기요....포스터 보면....
칸느 영화제 출품작이고, 무려 기립박수까지 받았다는 영화거든요?
그 프랑스의 칸느 영화제 말입니다.
화씨 911과, 엘리펀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같은 영화에 최우수상을 주는 영화제라니까요.
따라서 제대로 된 전연령 가족영화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말을 쓰는 이유는...보러 갔을 때 바로 뒷자리에 초딩 단체관람이 있었기 때문-_-;
아니...그보다 15세 이상 관람가인데 어떻게 들어온거야?
하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도 15세 이상인데 초딩 데려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쪽은 판타지 요소도 없는데, 애가 무슨 재미로 봤을지는 의문이지만...잔인하고...)
그나마 같은 15세 이상이었던 브로크백 마운틴 때는 초딩이 없어서 다행이랄까요...<--있으면 안되지!
제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합시다.
뭐...뒷 자리의 초딩들은 꽤 괴로워하는 것 같았지만....(인솔교사는 바늘방석이었겠지....-_-)
저는 좋았습니다.
왜냐면 전래동화는 원래 잔혹한 것이란 말입니다! 알고보면 무서운이니 뭐니 하며 쓸데없이 꾸미지 않아도요.
그 옛날, 텔레비전도 게임도 영화관도 없었던 시절, 인간의 얼마 안되는 인터테인먼트는 구전 동화 뿐이었으니, 한 이야기에 교훈과 판타지와 호러와 고어와 섹스가 뒤섞인 만능 종합 인터테인먼트, 그 이름 전래 동화!
시로 전승되어 축제나 연회장에서 불리어진 그리스 신화도 스케일만 더 크지 같은 맥락이지요.
복잡하고 불공평하고 험난한 현실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혹은 그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판타지'지만, 그렇게 뿌리가 현실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공상, 상상의 세계지요. 옛날 이야기에서 진수성찬이 유독 많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현실이 굶주리고 배고프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이 착한 행동으로 상을 받는 것은, 현실에서는 착하기만 하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반면 본격적인 살의로 가족을 죽이려는 의붓어머니, 형제가 나오는 이야기는, 현실 속에 덮어두고 참고 사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과장법으로 극대화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역설이나 과장을 통해 '환상'은 현실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근대 이전의 세계는 또 얼마나 부족하고, 살벌하고, 가혹했습니까. 그러한 시대에 만들어진 동화가 '잔혹'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잔혹'이란 말은 군더더기일 뿐이지요.
왜 환상과 현실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 하냐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와도 밀접히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소녀 오필리아의 현실은 분명 근대 이후인 1940년대 중반의 스페인이지만, 스페인 내전이라는 살벌하고, 가혹하고, 불안한 현실입니다. 반면 오필리아는-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런 현실 때문에-요정이 나오는 동화책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어머니 카르멘을 위하는 소녀입니다. 영화는 군인 비달 대위과 재혼해 임신중인 카르멘이, [아들은 아버지가 있는 곳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대위의 막무가내로 만삭의 몸을 이끌고 딸 오필리아와 함께 남편의 근무지인 산중의 격전지로 향하면서 시작합니다. 격심한 산통 때문에 쇄약해진 어머니에, 낯설고 무서운 군복 차림의 새아버지, 새아버지가 이끄는 정규군이 산속의 게릴라와 대치중인, 당연하지만 같이 어울릴 또래 친구도 없는-애당초 아이가 있을만한 장소가 아닌-전투지역이라는 불안한 환경. 그러나 동시에 도시에서 자란 소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숲과 미로와도 같은 유적은 오필리아에게 일종의 해방구를 제시합니다. 미로의 끝에서 그녀는 '판'이라는 기이한 생물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사실 지하세계 공주의 환생이며, 다시 공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대위가 지휘하는 정규군과 반군 게릴라들 간의 참혹한 전투, 그리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요정세계에서의 오필리아의 모험이 교차되면서, 오로지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요정세계와 점점 치열해져가는 현실이 겹치는 순간, 영화와 오필리아의 여정은 대단원을 맞게 됩니다.
사실 일반적인 판타지 영화라면 주인공이 초반에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면 대개 영화 내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오필리아는 요정세계와 현실세계를 빈번히 오갑니다. 게다가 혹독한 현실과는 달리 오필리아가 주역인 요정-판타지 세계조차 아름답고, 무난하고, 평화롭지만은 않습니다. 추하면서도 아름다운, 기괴한 매력을 발산하는 괴물과 요정들, 위험하기도 매혹적이기도 한 풍경과 임무. 르 귄의 소설 중에서 [꿈은 꿈을 꾸는 사람의 한계에 지배당한다]는 소재가 있는데, 위험하고 불안정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오필리아이기에, 환상 세계도 그런 점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인간세계와는 다른 점은, 요정세계의 괴물은 적어도 규칙을 지키면 죽이지 않는다는 점. 반군인지 확실히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의 민간인을 때려죽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양아버지가 군림하는 현실보다는, 식인괴물이 있는 요정의 세계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아보이는 공간이라는 점은 내전의 혼란스러움과 무서움을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스포일러: 판을 의심하던 오필리아가 어머니를 잃고, 새아버지에게 얻어맞고 방에 갇힌 뒤, 판이 나타나자 그 품속에 뛰어드는 장면에서는 그렇게밖에 안주할 수 없는 오필리아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최고조에 다릅니다.
또한, 오필리아의 길잡이 역할인 판과 요정들의 모습이 절대로 첫눈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닌, 명백히 다른 세상의 생물, 그러므로 이질적이고 위협적일 수도 있는 존재로 보인다는 점이 은근히 [판타지]로써의 리얼리티와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무엇보다 판은 악마와 신의 속성을 동시에 갖춘 신화적 존재라는 특성과, [트릭스터 (장난꾸러기, 속이는 자)]적 속성이 비주얼부터 부곽되어 그 '다름'에서 오는 긴장감과 불편함이 '이계=판타지'로써의 설득력을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존재할 수 있는 것 같을 정도로 세밀하게 디자인되었는데, 동시에 그런 판타지 디자인에 전형적이지 않은 이질감이 섞여 있어서, 오히려 더 직접 (꿈속에서라도) 마주칠 것 같다는 적당한 [찝찝함]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미묘한 현실감과 이질감의 경계가 작품 전체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독창적인 판타지 묘사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분위기를 최고로 북돋아주는 때로는 박진감 넘치며 긴장감을 일으키는, 때로는 처연하면서 구슬픈 음악도 최고입니다.
작중 최고의 악역인 새아버지 비달 대위는, 보통 동화에서는 계모가 악역인 데 반해 계부 캐릭터라는 점이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편집증적이고 신경질적이고 좋든 싫은 전사한 군인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는 대위는, 단순히 군인으로써의 의무감 이상의 잔혹함을 드러내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뭔가 결여된 인간입니다. 사실 자신의 피를 이은 아들 외에는 카르멘에게도, 오필리아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아들도 단순히 자기가 아버지의 뒤를 따랐던 것처럼 대를 잇기 위해 필요한 분신 정도의 개념으로 집착할 뿐, 그에게 있어선 그 아이를 낳아주는 아내는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파시즘, 어찌보면 극단적인 가부장제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아버지에서 아들로 내려오는 피의 계보랄까요. 또한 어떻게 보면 (스포일러) 개념 없게 임산부를 이런 산속의 위험지대에 끌고 온 것이나, 의사에게 최악의 경우엔 아들만 살리라고 말하는 점이나, 오필리아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 숨겨둔 만드라고라를 버리게 만든 점,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유일하게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죽여버려서 결국 출산은 의무병이 집도하게 (개인적으론 저런 촌구석에 아마 하나뿐일 의사를 죽이면 어떡해 이 무개념아! 아내는 누가 치료하냐!--랑 의무병이 애 받는 거에 대해 뭘 알어!--라고 굳건히 생각중...) 만든다는 점에서 오필리아 엄마의 죽음에도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있으니, 아버지의 법칙(=어거지)로 어머니를 죽게 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비극적인 악순환의 결과물이지만, 이미 동정의 여지를 넘어설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다치면 피는 나지만...단지 여기선 상징적인 의미로.) 악역 캐릭터도 요즘 보기 드물군요. 자기 정당화형 초딩 악당 보스가 설치고 판치는 요즘 세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사실 [전쟁 등의 참혹한 현실 속에 어린아이가 판타지로 도피(?) 내지는 일탈구를 만드는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도 있고, 나니아도 엄밀히 말하면 전쟁 피난 목적으로 이주한 거니까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전장이나 새아버지의 고문 행위를 오필리아가 직접 목격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어린이의 순수성을 유지해야 요정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예민하고, 분위기를 잘 감지하는 면도 있습니다. 불안정한 상황일수록 특히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심한 산통과 그것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사태에 대한 공포와, 집 뒤뜰에서 사람을 죽이고 나서 태연하게 식사를 하는 새아버지에게서 풍기는 죽음의 냄새, 집안 내에서 흐르는 반군 스파이들의 긴장감, 이 모든 것들이 맞을 잔혹한 결과를 예감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새아버지의 잔혹성은 대단원으로 치닿을수록 어째서 오필리아가 그토록 그를 두려워 했는지 증명합니다. 동화책을 읽지 않았으면, 숲과 미로를 탐험하지 않았으면, 요정들과 만나지 않았으면 오필리아는 잔인한 현실을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세개의 임무는 분명 위험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오히려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소녀의 모습과 그런 식으로밖에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가, 현실이 아플 정도로 절절히 다가오는...단지 판타지라고 하기엔 부족한, 한편의 진정한 동화이자, 우화였습니다.
마케팅 무시하고, [판타지 영화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감상하면,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가 다가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