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용으로 캡쳐한 심장에 해로운 화면. 본문과는 무관합니다(...)

[스트레인저 무황인담] 카테고리 신설 기념으로(HAHAHAHAHA) 시대적 배경에 대해 잠깐.

공식 설정에 의하면 [스트레인저]의 배경은 일본 전국시대입니다.
그런데 전국시대라고 해도 15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에 이르는 상당히 애매하기 긴 시기지요.
이 때 중앙은 통제력을 잃은 채 지방제후들의 크고 작은 전쟁으로 툭하면 나라가 망하거나 생기는 하극상, 말그대로 전쟁만 하던 약육강식의 시대였습니다. 이 사이에 조선은 제도를 정비하고 학문을 장려하고 한글을 만들고 있었으니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만적이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군요. 선조가 씹었던 것도 당연(...)

어쨌든 요는 이 전국시대 중에 언제 즈음이냐는 것인데, 내내 한 동네지방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고 큰 문화적=복식적 발전/변화도 뚜렷하지 않았으니 추측의 여지가 적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상당히 구체적으로 어림잡을 수 있는 근거가 있는데 바로 명나라 정예부대의 존재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단서입니다.

[스트레인저]의 주 적대세력 중의 하나로, 황제의 칙명에 따라 머나먼 섬나라로 건너와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고생하는 이 명나라 소수정예 부대에게 주어진 임무는, 불로장생의 선단(仙丹)의 재료인 소년(정확히는 소년의 피)을 찾는 것입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진시황스러운 시대착오적 발상이냐고 할 수 있지만 (부대장인 라로우도 납득하지 못...하는 걸 떠나 바보같다고 궁시렁대고 있듯이 당시 기준으로도 정상은 아님) 실제 그런 황제는 명조 때도 존재했습니다. 바로 세종 가정제(世宗 嘉靖帝, 즉위기간 1521년~1567년)라는 황제인데 안습황제가 많던 명나라 역사 속에서도 괴퍅한 폭군이었습니다. ('세종'이란 이름이 아까울 정도;)


명나라 11대 황제 가정제

몇년 전 중국 베이징에 갔을 때 가이드 언니로부터 [불로불사의 약을 만들려고 궁녀들을 너무 죽인 나머지, 겁에 질린 궁녀들에게 암살당할 뻔한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제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무슨 야사가 아닌 임인궁변이라는 1542년 경에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가정제는 즉위 직후 자신의 부친을 황제로 옹립하려는 문제로 대신들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고 (전 황제인 정덕제가 후사를 남기지 않아 사촌동생이던 가정제가 즉위하였으므로, 가정제의 부친은 황제가 아니었음) 황후를 셋이나 죽였다던가 지위기간 중에 몽골과 왜구의 피해가 극심해 백성들도 무척 고통을 받았던 점 외에도 플러스로 (마이너스랄지...) 열렬한 도교 신봉자로 불로장생의 단약 제조에 여념이 없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괴퍅한 성격이라 황궁 내에 기거하지 않고 별궁에서 마음에 드는 신하나 비빈, 도사들만 상대했다고 합니다. 불로장생약의 재료는 물론 가장 잘 알려진 수은도 있지만 피가 가지는 원초적 생명력의 이미지 때문인지 어린 소녀의 피, 특히 월경혈이 주된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피의 백작부인이라고 불린 엘리자베스 바토리도 젊음을 유지하려고 젊은 처녀의 피에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이런 피에 대한 경외감은 동서고금 공통이라 할 수 있겠죠~) 그래서 8~12세의 소녀들을 궁녀로 불려들어 강제로 하혈약을 먹게 해 생리혈을 체취했는데 이렇게 한 후 죽였다는 설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막 초경을 시작할 무렵인 소녀들에게 그것도 그런 평균수명 짧던 시대에 인위적으로 하혈시켰다고 생각하면...어느 쪽이든 별로 오래 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소녀들이 [약재료가 되서 죽든 역적으로 죽든 어떻게든 죽는다]는 절박함에 암살 시도를 했던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물론 뭣도 모르고 힘도 약한 어린 소녀들이라 황제를 목졸라 죽이려는 도중 황후에게 발각되 16명 다 처형되고 말지만요. 그 황후도 가정제에게 죽게 되지만 얘기 하다보면 끝도 끝도 없으니 각자 찾아 보시고...

어쨌든 이렇게 어린이의 '피'가 주 재료인 선단이라던가, 불로불사의 약을 찾기 위해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렸다는 점이나, 이 정예부대의 지도자격인 노인 백란(白鸞)이 도사라는 점이나 (황제를 직접 알현한 적도 있는) 도교적 색채의 의례라던가, 여러모로 이 시점의 황제가 가정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해 줍니다. 딱 한번만 등장하지만 상당히 노쇄한 모습이고, 임인궁변 후에 더욱더 불로장생약 찾기에 혈안이 되어 국가재정에 심하게 피해를 끼칠 정도였다고 하니 시기는 1542년~1567년으로 어림잡을 수 있구요. 몇년을 해봐도 여자애들 피로는 안되니까 쇼타의 피까지 손을 뻗었다고 추측할 수 있죠. (...점점 변태 황제가 되어가지만 문제는 그래도 위화감 없다는 점;)

결론적으로 바다 건너 일본의 한 작은 나라에까지 휘몰아친 피바람의 원흉은, 바로 수많은 전설을 뿌린 명나라 황제 세종 가정제였다는 것입니다. (왜구에 대한 나름의 보복...이었을 리는 없겠지만;)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약재료가 어린이의 피라는 언뜻 보기에 서양 흑마술같은 점이라던가 뭘 오래 살려고 저렇게까지 하냐는 점이 그다지 생뚱맞지는 않을지도...? 상당히 유명한 황제니 시나리오 작가가 의식했을 듯도 합니다. 뭣보다 이 사람은 전국시대는 원래 삐~~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니(...) 나름 고증(??)에 충실했을지도.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