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이 멸종 직전인 국내정식판 데즈카 만화와는 달리, 유일하게 한양문고 지하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붓다].
(요즘은 안가봐서 아직껏 남아있는지는 불명.)
단지 드문 데즈카 한글판 만화라는 이유만으로 구매해서 책장 한 줄을 차지하도록 꽂아둔 뒤, 왠지 읽어버리면 하루가 다 소진될 것 같아서 미루고...미루고...미루길 어언 XX개월.
학과 논문발표회 및 버스시간이 아슬아슬했던 회식에서 금요일 밤 돌아와, 그 동안의 밀린 잠을 채우려던 것처럼 폭면해 깨어난 것은 토요일 대낮. 사실 냉장고 청소, 장 보기 및 학교 업무로 떠맡은 문서작업을 해야 했지만 긴장도 풀려 컴퓨터를 멍하니 쳐다보다 문득...책장 맨 아래의 [붓다]에 눈이 간 것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이것이 오늘 하루 예정 스케줄의 파탄이자 종말임을 예감하면서도, 숙명적으로 1권을 뽑아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토요일은 쫑(...) 났습니다. 원래 장편 데즈카 만화는 무척 대미지가 큽니다(...)
하지만 그 댓가로 얻어내는 감동의 폭풍우와 깨달음의 섬광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책자 맨 앞 장에 각종 불교예술 사진이 실려있는 등 전체적으로 일반적 불교 독자를 위해 학산이 포장한 듯한 이 책은, 제목인 [붓다] 그대로 석가모니의 인생을 그린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대중들에게 익숙한 왕자 시절의 이야기도 있지만 성경과는 달리 단일된 하나의 절대적 경전이 없는 불교의 특성상 아마 불교도가 아닌 독자에게는 생소하고 신선한 이야기도 많고, 또한 작가 본인이 작품의 재미나 통일성, 자신만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타타)
만화의 시작은 주인공인 붓다의 등장에 앞서, 두가지의 '프롤로그'가 펼쳐집니다. 하나는 한 성자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모닥불에 뛰어든 토끼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고, 또 하나는 붓다가 태어나고 살아간 시대적 배경인 고대의 인도 사회의 특징과 갖가지 모순-주로 극심한 신분 제도인 카스트 제도와 험난한 대자연 양쪽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최하급 카스트인 파리야의 소년, 타타의 관점에서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타타는 그 순수한 성품으로 인해 동물과 뜻이 통해 몸을 바꿀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우연히 한 노예계급 모자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모험활극과 판타지, 드라마가 어우러진 굉장히 활기 넘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거대한 숙명...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둔 세계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속이거나 사랑하는 이를 배신하며 비참하게 죽어가고 이것을 목격한 타타는 복수를 맹세합니다. 누구에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원인은 신분제도, 전쟁, 정치 등 현실 그 자체라는 복합적인 원인이지만, 어린 소년에게는 그런 것이 모두 혼란스러울 따름이고, 단지 사랑하는 이들을 직접 앗아간 존재인 코살라국(싯다르타의 조국 카발라바스투의 종주국이기도 함)을 복수와 증오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를 평생 옥죄는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토끼의 이야기가 자기 희생, 그것도 종을 초월해 자신의 목숨마저 바친 궁극의 희생의 이야기였다면, 타타의 이야기는 인간의 이야기로,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증오, 모순이 판을 치며 인간의 선함이 좌절당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서로 이어질까요?
아직 주인공 싯다르타-붓다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지만, 이 '프롤로그'는 당시의 시대상과 비록 고대 인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인간 차별과 정치와 욕망과 고통을 묘사하고, 타타라는 한 인간을 예시로 인간의 '집착'의 근원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특유의 정념은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지고 떨쳐내기 힘든지, 동시에 후에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가르침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는지 납득시키는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동물과 만물은 인간과 동등한 생명이라는 점과 인간세상의 현실적 고통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이에는 단순한 윤회사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을 넘어선 어떤 초월적인 진리가 무아와 자비의 형태로 작품 전체를 균일되게 통일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대가 없다면 뭔가가 이상해질 것이다. 그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카발라바스투의 왕자로 태어나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란 싯다르타는 부모의 애정어린 과보호에도 불구하고-어쩌면 그 과보호 때문에-음침한 어둡고 허약한 아이입니다. 설사기가 있고 몸이 약해서 늘 죽음을 두려워하는 싯다르타의 근원적인 공포는 또래 아이와 아이가 사냥해 죽인 토끼의 죽음을 보며 구체화되고, 죽은 뒤의 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결국 타타의 손에 이끌려 나간 성 밖의 더욱더 덧없는 생명과 만연하는 죽음의 모습에 싯다르타는 큰 충격을 받고, 성으로 돌아갑니다. 겉으로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결혼도 하고 왕궁에 살지만 그 세월 동안 하나의 결심을 키우고, 결국 나라와 처자를 버리고 출가합니다.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극심한 고행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보며, 그러한 경험의 배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아니,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그는 평생 배우고 고통받고 베풉니다.
기적을 일으키고 대체로 무심하게 시크한 달관한 성자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붓다가 지극히 인간적이고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런 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처럼 결코 짧게 살다가 강렬하게 죽은 인생은 아닌, 허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오래 지속된 붓다의 삶이었으나, 동시에 그만큼 수많은 인간사의 고통에 노출되게 됩니다. 나라는 멸망하고 친우와 소중한 제자들은 고통 받고 죽어가고, 붓다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궁극의 목적이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삶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가르침과 배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최후의 가르침이 그러하듯이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작가 본인도 아니어서, 정확한 불교의 교리와는 다르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이자, 진정한 인간애인 것입니다.
"그대들이 누군가를 구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도 그대들을 구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산 것은 서로 한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한 젊은 왕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저 역시 가슴을 강타하는 감회를 느꼈습니다만, 역시 그만큼 결정적인 운명이 쌓여지고, 설득력 있게 묘사되는 과정이 있었기에 감동과 깨달음도 배인 것이겠죠. 그리고 가공의 인물들이 더해진 것도 있지만, 상당히 모험활극의 부분이 많이 들어있어서 말하자면 종교에 대한 만화인데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과하게 무게잡지도 않고, 유유히 흘러가는 이 자연스러움. [붓다]가 서양 출판사에서 히트작인 이유도 ([불새]가 대체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동양권과 차이라면 차이랄까요) 서구인들이 관심은 있지만 성경같은 경전이 없다는 이유로 잘 알아보지는 않는 석가모니의 일생과 불교의 사상을 재미있으면서 깊이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자 붓다와 인간 붓다 어느 쪽에 지나치게 기울지 않고,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해 묘사한 것은 성인이나 성인급의 추앙을 받는 다루기 힘든 인물의 묘사로써 보기 드물게 탁월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요는...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려고 굳이 여자랑 결혼시키지 않아도 된다 이 말...) 혹시 저처럼 이 책을 어리석게 썩혀두고 있는 분이 있다면 황급히 꺼내서 읽으실 것을 강력히 권장하는 바입니다.
...........진지한 감상은 이것으로 끝.
이제부터 폭주.
요는 [붓다]는 어떤 만화냐면......
부처님 모에물.
.........
정말입니다.
뻥 아닙니다. 직접 만화 보세요....
오죽했으면 데즈카 선생님이 신약성서를 만화로 안 그려서 아쉬울 정도입니까...
만약 그리셨다면 마...마 장난 아니었을 듯....오우 맨.....
일단은 부처님 모에물이라 캬~~악!>o< 엄청 다양한 버전의 부처님이 나와! 쇼타 청년 중년 노년 버전! 머리스타일도 제각각! 무심하고 시크한 카리스마에 이나라 왕 저나라 왕 다 넘어가네! 죄많은 당신!
.....이라는 부처님 빠돌빠순용 만화였던 겁니다...과연 그래서 불전과 꼭 정확하진 않아도 불교만화로 홍보된 이유가 당연한...부처님 모에물이니 당근 불교 신자들에게...쿨럭쿨럭...-_-;
여담이지만 이게 잘만 팔렸으면 불교신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지도...
그리고 불전에 나온 인물들도 모에.....
모든 것은 모에로 만드는 무서운 데즈카 파워!
사실 불전대로라면 아난다가 제일 미형이어야 하는데, 왠지 데바닷타가 미형...그것도 꽃미남계로...
밀교 만든 것도 부처님 꼬실려다가 실패해서 열받아서로밖에 안 보임-_-
그나저나 뭘 어떻게 하면 그 부모들에서 이런 미형이 나옵니까? 격세유전도 정도껏.... 그리고 실연당했다고 해도 데바닷타 아빠같은 짓은 하지 맙시다 남성여러분...아니...여자분들도...제발...
아니, 물론 아난다도 괜찮지만...붓다 제자 되고 나서 뭔가 더 레벨 업이지요. 노예 소녀 상대로 츤데레질 하다가 좋아하는 건 정석이요, 갈수록 망가져서 귀여워지는 섹시 여자 악마에게 스토킹 당하질 않나, 아난다를 붓다에게 빼앗긴 것을 질투해 되찾으려고 활활 타오르는 아힌사까지...아 하긴...불전대로 인기 많구나(...단지 여자에게만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것과 남자가 섞여 있다는 게......)
그리고 강력한 충격고백. "내게는 붓다가 제일 소중해!" 쿨럭...;
그리고 루리왕자! 처음엔 그냥 재수없는 애였는데 왠지 갈수록 모, 모에...이 츤데레가!!! (쿨럭;)
특히 붓다와 몇일 밤낮을 뭘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마침내 마음속을 사로잡던 복수심을 떨쳐낸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니 진지하게 라니까요...?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사실 왕 꼬시기 첫 희생자는 빔비사라-세냐 왕이었죠. (라고 쓰고 록크라고 읽음...미묘한 중간단계가 생략되어서 중년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 록크의 늙은 버전이라기보단 그냥 젊은 시절을 록크가 했음...정도긴 하지만...그래도 아저씨 버전도 나이스!) 이 경우는 완전...러브러브였고...우어ㄹ(.....) 아들이 질투할만도 해.....
물론 삼눈이나 레드공이나 히게오야지나, 본인이 아닌 환각(?) 정도로 지나가지만 우리의 블랙잭 선생님 등, 스타시스템 카메오도 당연히 볼거리구요...보통 버섯은 그냥 그렇지만 표주박 버섯 맛은 궁금한(...)
타타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의 캐릭터인데 후반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랄까 사실 초반엔 마누라가 더 빨리 죽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질기더라는(...) 어쨌든 모든 인간에게 깨달음이나 구원이 닿지는 않고, 그만큼 인간의 집착이란 것이 족쇄가 된다는 의미의 최후였지만 동시에 붓다의 가르침에 번뇌도 하며 꼭 자신의 의지가 아닌 습관이나 신분적 상황 때문에 수라의 길을 가게 되는 타타의 인생은 공감이 가는 만큼 슬펐습니다. 원래 동물과 마음이 통해 몸을 바꿀 수 있던 타타가 나이가 들고 마음이 황폐해진 나머지, 그 능력을 잃고 코끼리에 밟혀 죽다니, 정말 잔인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선택한 길이기도 했으니, 그의 삶을 인간사의 한 형태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심경입니다.
....그나저나 타타 부부, 아무리 봐도 블랙잭에서 아들을 위해 최신형 전투기 타고 망명한 장교 부부 같은데?
제 1타는 제 정신과 마음을 무참히 난도질한 나머지 악평을 쓸 기운도 상실시킨 게드전기...
제 2타는 최대한 관용심을 발휘했어도 아쉬운 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천년여우 여우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3번째는 구원투수였으니....
바로 어제 용산CGV에서 본 [시간을 달리는 소녀]...
성적도 외모도 성격도 그럭저럭 무난평범한, 단지 살짝(?) 왈가닥인 활달한 여고생 콘노 마코토.
방과 후에 단짝 친구인 코스케와 치아키와 함께 캐치볼을 하는 것이 일상인, 평탄한 매일매일.
그러던 어느 날, 마코토는 우연히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 리프 능력을 얻게 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딩스러운 정의 의식을 가진 모범생이나 여자의 손에 흥분을 느끼는 싸이코패스 회사원이 아닌, 그냥 넉살좋고 단순한 성격의 고교생이었던 마코토는 이 능력을 자신의 일상을 조금 더 편리하고 재미있게 만드는 데에 쓰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늦잠을 자고서도 시간을 돌려 지각을 면한다던가, 동생이 뺏어먹은 간식을 과거로 돌아가서 미리 먹어 버린다던가...등의 극히 시시하면서도 소소하고 유쾌한 [일상의 개선책]으로 말입니다.
문제는,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Time waits for no one]는 진실은 시간을 뛰어넘는 마코토는 물론 그녀의 친구들에게도 성장통과 마찬가지로 예외없이 찾아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코스케와도 치아키와도, 이성으로써가 아닌 현재의 친구 관계가 편하고-정확히는 다른 관계로 변하는 것, 좀더 구체적으로는 '성장'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마코토는 몇번이나 시간을 되돌려 [성장]과 [변화]를 피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이 진실을 덮어버리거나, 사람의 진심을 묻어버린다는 점, 시간을 되돌려 자신이 이익을 볼 수록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긴다는 진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진심에 점차 눈뜨게 되며, 마코토는 서서히 성장하게 됩니다.
즉 시간 도약이라는 SF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작품의 중점은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코토와 친구들. 느긋하고 껄렁하지만 깊이 있는 치아키와, 의사 집안의 어른스러운 우등생 코스케.
그만큼 주인공을 비롯한 현대 고등학생들의 묘사와, 학교의 묘사, 도쿄 변두리라는 설정의 배경인 소도시의 묘사가 굉장히 정밀하면서도 사실적이고, 그것을 넘어 무척 생생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마코토의 [연기]는 아주 뛰어납니다. 물론 성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몸짓이나 눈빛,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이렇게 완성된 [연기]를 보여주는 캐릭터는 대부분 도식화된 연출에 의한 [연기]에 머무르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그것을 뛰어넘어, 어느 틈에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주인공의 감정과 기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이끄는 수준으로, 정말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빼어납니다.
아울러 관객의 이입을 성공적으로 유도하는 주인공 캐릭터의 연기는, 성장통의 애잔한 아픔과 그와 함께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애잔함을 느끼게끔 하여, 특히 성장드라마로써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설명하자면 어렵지만, 명백히 가볍고 유쾌한 느낌으로 진행되고, 유머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동시에 기묘한 아픔이 저려오는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회한인지,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 공감한 것 때문인지, 어떤 종류의 통증이 느껴오는 작품이었고, 그렇다고 불쾌한 종류가 아니라 달콤쌉싸름한 느낌이랄까요. 쓴 맛이 있기에 달콤하고, 그것이 양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성장의, 인생의 맛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감성주의를 표방한 작품에는 쉽게 이입하지 않는 편인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오히려 그 적절한 담백함 때문에 어느 틈엔가 그 감성의 흐름에 이입해 감상할 수 있었던 드문 경우였다고 느껴집니다.
영화 속의 극히 일상적이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일본 소도시의 풍경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이 소중한 시간처럼,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진정한 가치는 [게드전기]처럼 과하게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단지 꾸밈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솔직함, 그렇기에 비범한 진솔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애니메이션 뿐이 아닌 극장 영화로써 간만에 진정으로 감동적인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용산, 상암, 강변CGV에서 상영중이니, 꼭 놓지지 말고 극장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새롭게 출간된 원작 소설을 읽은 상태에서 봤습니다만 사실 별로 안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단지 소설을 읽은 사람만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라벤더의 의미라던가...
하긴 영화가 소설을 직접 옮긴 것이 아니니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단지 소소한 재미가 늘어난다는 점, 소설과 영화 주인공의 차이점에서 오는 재미가 있으니 소설 쪽을 먼저 보고 가는 것도 괜찮겠군요. 참고로 처음부터 마코토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자 상담 상대인 이모가 소설 쪽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시간여행물의 패러독스 중 하나인, 한 공간에 같은 사람이 둘 존재하게 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시간여행자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을 했을 때 A지점의 여행자는 갑자기 사라진다는 식으로 처리됩니다. 이 점은 영화와 소설이 동일. 즉, 주인공은 내내 같은 존재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하는 스포일러적 잡담.
이 이모 말인데, 도중에 치아키의 고백을 받아 혼란스러워 하는 마코토에게, 시험 삼아 치아키와 코스케 둘 다 사귀어본 다음에, 마음에 안 들면 사귀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방법도 있다고 귀뜸해 주지요(...) 생각해보면 꽤 연애시뮬레이션 게임같은 상황이고 마코토가 조금 더 어른이었다면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며 완강하게 거부하는 순수함 역시 그녀의 매력이겠지요. 하지만 저라면 해봤을...
마코토가 어째서 마지막 타임리프 기회를 치아키에게 고백을 받을 때가 아닌, 능력을 최초로 얻을 때로 돌려 치아키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했지만...(좋으면 남아 있으라고 해서 사귀면 될 거 아닌가?!--라고)...미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스케와 후배 여학생을 살리기 위해-정확히는 마코토를 위해서지만-시간을 돌아온 치아키가 마지막 타임리프 기회를 써버렸고 그래서 사라지는 것은 미래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방황하는 상태인, 불안정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미래가 치아키의 원래 시대이고 언젠가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므로...라고 이해했습니다. 물론 치아키와의 두번의 이별장면이야 애잔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스케가 더 좋았으므로(...의사집안! 장래의 의대생! 믿음직해! 성격 좋아! 운동도 잘해! 키도 커! 잘생기기까지!...쿨럭;) 어차피 아득한 미래인인 치아키야 그림 보존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면 되니 현재의 좋은 남자를 무는 것이 마코토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서 이쪽 커플 지지. 후배 여학생이야 같이 야구는 하게 되었지만 마코토의 타임리프 능력도 바닥났으니 저대로는 학창시절 내내 볼보이...아니 볼걸이나 할 신세같고. 코스케도 [마코토를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처음에 후배의 고백을 거절했으니까, 치아키와는 좀 다르지만 나름 마음이 있는 것 같고. 마코토도 치아키와 유리의 경우에서 남 주면 아까운 게 좋은 남자란 걸 깨달았겠지(...) 잘해봐~ 휘- 휘-
덧붙여 소설의 미래인 설정에 근거하면, 치아키는 사실 마코토, 코스케보다 연하...라는 결론이 됩니다. 미래에는 애들 성장, 발육이 좋고 또 유아기부터 뇌에 지식 주입을 해서 지능도 높다는 설정이라, 소설 주인공인 카즈코가 만난 미래인 소년 카즈오도 보기에는 그녀보다 훨씬 크지만, 나이는 11살이었고. 그리고 소설에서는 라벤더가 주 재료가 되는 약품이 타임리프의 능력을 주었는데, 영화에서는 횟수 제한이 있는 호두 모양의 장치로,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개선된(?) 타임리프 장치입니다. 이대로는 본인이 연구자가 아니라도 장치만 있으면 시간도약이 가능하죠. 카즈오의 시간도약 연구가 진보한 증거일까요? 그럼 왜 카즈코는 데리러 오지 않는 거야... 또한 소설 속의 미래인 소년은 언젠가 만나자고 한 반면, 치아키는 미래에서 기다릴게-라고 함으로써, 마코토가 비로소 자신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했지만 동시에 직접 만나는 가능성은 뭔가 불식시킨 뉘앙스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치아키는 더 이상 시간도약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잘 모르겠지만 치아키가 살던 미래에서는 시간도약 장치의 사용이 원활해진 대신, 1인 평생당 제한횟수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론은 현재의 남자가 최고...
그럼, 그림이 치아키의 시대에 남도록 [어떻게든 하겠다]는 마코토는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을 품은 것일까요? 물론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마코토의 이모와 같은 그림 수복 기술자이지만 한 번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안 나오는데다가 엄청난 덜렁이인 마코토로써는 상당히 힘든 길이 될 것 같군요. 어쩌면, 스케일 크게 생각해서 그림의 영구보존을 확실히 결정할 수 있는 박물관 관장 자리라던가, 나아가 좀더 확실한 문화부 장관이라던가, 일본 수상이 되어 타임캡슐 보존을 강행하거나, 만약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 때문에 그림이 없어진 것이라면 지하비밀기지와 히어로 전대를 만들어 세계평화도 지키고 그림도 지키는 것이 아닐까!--는 생각이 이것저것 듭니다. 마코토라면 코스케와 사귀는 것보다 이쪽이 가능성이 높을지도....
또한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약품의 냄새만 맡았을 뿐이라 제한된 시간 안에서 도약이 가능한 것으로 나오지만, 마코토는 그런 제약이 없는 것 같은데(치아키가 같은 장치를 사용해 과거까지 온 것이니), 그렇다면 중세나 고대에도 갈 수 있잖아! 개인적으로는 삼국시대의 한반도 복식이 심히 궁금하니 가 보고, 데즈카 오사무 선생님 사인도 받고, 주유가 그렇게 미남이었는지 확인도 해 보고, 등등 해보고 싶은 것이 잔뜩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랬다간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 수도 있고...치아키가 우려하던 [약용]이 본의 아니게 되어버릴 수도 있으려나요...; 요는 마코토가 바보라서 다행?
NDS용 리듬게임 [오쓰! 싸워라! 응원단]의 북미판...치고는 새로운 게임, Elite Beat Agents. 통칭 EBA.
응원단과 동일한 시스템 (참고: 링크1, 링크2)이지만 북미시장에 맞춰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
일본식 검은 교복 응원단 대신 검은 양복, 검은 선글라스의 비밀요원들이 육해공을 넘나들며 사람들을 응원!
...하지만 일단 게임을 하면서 가장 강렬히 느낀 개인적인 생각은...
[용과 같이]의 야구 배팅 미니게임 때의 회상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제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였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홈런(만) 들어있는 게임기...
죽어라 배팅만 해서 [용과 같이]에서도 무난히 홈런~홈런~ 이벤트 클리어~
...라는 인생에 하나도 도움이 안되고 게임에만 도움이 되는 학습의 추억이 있었죠.
이것을 EBA에서도 재확인한 게... 대부분 아는 노래. 어머니가 퀸, 시카고 등 각종 고전 팝그룹 콜렉터인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캐나다 살던 시절...
TV에 너무 볼 게 없어서 그나마 가장 볼만한 음악채널 틀어놓고 멍하니~ 특히 80년대 뮤비 특집을 즐겨보았고...
덕분에 EBA에 나오는 노래들의 태반은 귀에 엄청나게 익은 곡들....
YMCA와 셉템버의 세세한 비트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크윽....
아, 물론 응원단에 비해 난이도가 떨어진 것도 있지만....
그리고 영어노래라 가사와 비트 캐취가 상대적으로 더 쉬운 것도 있어요. 곡 선정도 유명한 것 위주고...
퀸, 데이빗 보위, 마돈나, 자미로콰이, 빌래지 피플, 애브릴 라빈 등 다 유명가수들 곡이죠~
응원단이 피땀 나는 열혈이었다면 EBA는 경쾌하고 발랄하게 나가는 느낌. 비밀요원들이라 돈도 많고....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 낀 남자 셋이서 마구 발랄한 춤을 추니까 되게 우스워요>_<
춤 배리에이션도 좀 다양한 편이고 무엇보다 YMCA에서는 정말로 YMCA 춤을 춰요!! 이미 여기서 격침(...) 어쨌든 J의 노멀모드는 다 깨고 현재 치프턴의 하드모드 플레이중.
응원단 오마쥬도 살짜쿵 보여서 재밌는데,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
쥬니어, 자네 할리우드(...)에서 뭐하는 거지...?
OL양은 어디 두고? 내지는 아버지의 강요로 그 동안 차기사장 수업을 받았지만, 사랑에 눈뜨면서 동시에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꿈을 생각해내고 둘이서 같이 미국행?? 궁금해! 신경쓰여!
스토리들이 골때리는 건 여전하구요. 특히 그 기우제...랄지...정 반대지만....뒤집어짐...
어쨌든, 그 밖의 응원단과의 차이점은:
1. 스테이지마다 엔딩이 세개. 판정은 중간 단계를 전부 성공시켰는지의 여부에 따라.
2. 비트 누를 때 음향효과가 다름. 정말로 롤러 굴러가는 것 같은 소리.
3. 랭크가 올라가면 보너스 스테이지 추가.
4. 플레이 영상 세이브 가능. 단, 한 스테이지당 하나씩.
5. 일정 수의 스테이지 클리어 시 나오는 에이전트 컷씬 갤러리에서 감상 가능.
6. 전주 스킵 가능. (아자!)
7. 콤보를 늘려가도 배경에 불꽃이 타오르지 않음.
8. 마지막 스테이지 반전(?). 나름 감동.
이 정도로 보입니다.
유저 편의성을 배려한 부분이 많고, 난이도도 떨어져서 더 유저 친화적인 게임이 되었습니다. 특히 전주 스킵 기능은 기나긴 마지막 스테이지에서는 꼭 필수적이어서 그것을 할 수 없었던 응원단 플레이어들 와중에 라르크 안티들이 속출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인데 다행히 EBA에서는 스킵 가능합니다. 또한 플레이 데이터를 저장해 재생할 수 있어서, S랭킹 받은 데이터를 역사의 뒤편으로 지워야했던 플레이어들의 눈물을 치유해 줍니다. 늘 재미를 선사해 주는 스테이지 도중도중의 에이전트들의 컷씬을 따로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지요.
로컬라이제이션 담당이 한사람 뿐이라 그런지 도중도중 영어가 어색한 데가 좀 있지만, (매 스테이지 나오는 칸 사령관의 Agents are...Go!라는 애매한 문장도 그렇고) 뭐...왜곡이거나 게임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니....
무엇보다 남부 사투리는 아주 정확히 구사되어서 플러스 점수......우하하하하;;
미국 치고는 금발이 과하게 많은 감이 있지만, 이것도 뭐...
요는 EBA도 EBA만의 재미가 있으니 해보세요~라는 결...론?
타가메 겐고로 단편집 [천수에 사는 귀신/군지 (天守に棲む鬼/軍次)]. 정말 물건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만화 스캔해서 번역해서 올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단순한 18금 야오이 레벨도 아닌 더 리얼한 수위의 이런 물건을 올렸다가는 세상의 편견으로 인해, 저는 변태 중의 초초초 쌍변태로 낙인 찍히고, 지금까지 쌓아둔 건전하고 우아한 이미지도 무너지고 말겠죠.
뭐 사실 그 이전에 귀찮고, 스캔하면 책이 손상되니 아까워서라도 못하겠고...
(사실 몇 페이지 직찍으로 보여주고도 싶지만 야하지 않은 장면 찾기 힘들어서...)
그 대신 염장...아니 감상 포스팅이라도 올려야 겠습니다.
제목의 이유는, 표제작인 [천수에 사는 귀신]과 [근육남]에서 연재한 연속작 [군지]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표제작 [천수에 사는 귀신]은 시대극. 신하의 반역으로 3년간 옥에 유폐된 영주를 동생이 구하는데 이미......
넵...? 이미 뭐 냐구요? 그 정돈 알아서 상상할 수 있어야 이런 책을 보죠...
사실 다수의 입장을 생각하면 해피엔딩일지도....(라고 하면 너무 가혹한가...미안해유 영주...)
그리고 이 단행본의 백미 중 하나는 만화 감상도 있지만 텍스트로 된 작가 후기.
어떤 생각이나 의도로 그렸는지 설명하는데 만화 자체가 퀄리티가 높거나 어두울수록 뒤집어지는 데가...
예를 들어, 개별 단편 중에 개인적으로 좋았던, 무척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오오에야마 기담]의 후기.
"나름 소녀만화적 요소를 넣어봤습니다."에는 풉!-하면서도 그래그래, 왠지 납득...
게다가 데즈카 오사무의 [오니마루 대장]이 원안이었다는 고백까지.
..........물론 그렇다고 데즈카 오사무 오프모임에 들고 갈 생각은 없지만(그전에 들고 가면 안돼지 인마!!)......
또한 책 중의 유일한 연속작인 [군지]. 직찍은 서비스다 위부인
작가가 나름 보이즈러브랍시고 그린 최초의 근육남 연재물 [군지]. 어디가 보이즈러브냐!--같은 태클은 작가에게.
아무튼 야하지 않은 페이지 찾느라 혼났음. 그나마 나은 건 [군지]는 야한 장면 아니면 때리는 장면이라...
한편 작가는 연재작으로 할 생각이 없어서 나중에 설정 맞추어 내느라 혼났다고 함.
아무튼 흑백 원고도 정말 깔끔하면서 연출도 잘 해서 부럽습니다.
원래 [근육남]에서 최초로 접한 작품이자 타가메 겐고로를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딱히 편마다 일정히 정해진 제목이 없고 매번 바뀌니 주인공 이름이 군지라는 이유만으로 동생들이 [군지 시리즈]라고 함부로 불러대서 작가가 정한 시리즈 타이틀도 안 나왔는데 멋대로 부르지 말라고 다그쳤지만 나중에 보니 작가 본인도 [군지 시리즈]라고 부르고 있어서 할 말이 없었다는 그 시리즈이기도 하죠.
어쨌든 내용은 한 고급 요정의 후계자인 불량 도련님 시게토과 요리장 군지의 십수년에 걸친 애증 SM극입니다.
양쪽에게 매우 파멸적이고 고통스러운 관계가 적나라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려지는 수작이지요.
궁금하면 (성인이신 분들에 한해) 알아서 구해 보시고...그 진가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하여간 이 [군지]의 후기 말입니다만.
작가 왈, [근육남에서 연재 제의를 받았을 때는, 나는 그 잡지를 완전히 보이즈러브 계열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정말?! 내가 끼어도 괜찮은 거에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군지]는 나름대로 보이즈러브입니다.]
이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거기 여자분, 웃지 말아주세요.] (정말로 이렇게 쓰여 있음!)
뭐...앞서 모 작품의 [소녀만화적 요소]도 처음엔 푸합...했지만 곧바로 뒤이어 납득이 간 것처럼, 순간적으로 웃어버렸으나 결국은 납득이 간 경우지만...어쨌든 작가 나름의 보이즈러브관(觀)에 의해, 애정 내지는 유사 연애감정이 들어가 있고, 두 캐릭터 중심이고, 한 쪽은 머리가 하얗고 다른 쪽은 머리가 검도록 신경 썼댑니다.
........!
그....그랬구나!!!!!!!!!
두 놈 중 하나는 머리가 검고 딴 놈은 희다는!!!!
그것이 BL의 기본 조건이었단 말인가!!!
앞으로 생존을 위해 BL을 그릴 일이 생기면 참고해야
뭐 어쨌든...작가는 저 점만 지키면 충분히 BL이라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좋을대로 멋대로 그렸다고 합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잡지의 색채를 배려하면서도 자기 색을 유지한 셈이니 본받을 데가 있기도....
단 하나, 엔딩을 BL식으로 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합니다. 뭐 그게 작가 색채이니 더 어울리긴 하지만...
또한 연재 당시, 작가의 ○○털 그리는 경향 때문에, 잡지 아가씨들 사이에서 [가슴털도 팔털도 좋다! 하지만 ○○털은 좀....]하고 ○○털 논쟁이 일어나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고 합니다. 참고로 18금 BL정도엔 흔히 나오는 △△털이 아니라 ○○털을 말하는 것이니 [BL은 △△털도 안나오냐!]하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나저나 고급요정의 요리장과 후계자인 방탕한 도련님...하니 딱 [맛의 달인]에 나올 법하지 않습니까...
고급요정 [미기와]의 맛이 변했다는 것을 아쉬워한 동서신문사 회장. 지로와 유우코에게 맛이 변한 원인을 알아내라고 한다. 조사해본 결과 2년 전 요리장이 갑자기 뛰쳐 나갔고 새로운 사장이 운영중. 아마 젊은 사장과 요리나 재료 거래처에 대한 충돌로 갈라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는 지로와 유우코였으나 진상이 [12년 동안의 조교질]이었음을 알고 [당연히 관두지..]라고 납득해버리고 [미기와 요리장 복구] 건은 오리무중으로.
물론 [블랙잭]도 가능...
어느 날 블랙잭의 진료소에 듬직한 체구의 한 사내가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몸에 있는 흉터를 없애 달라고 요청하는데 그것은 가히 [결혼을 못할 몸]의 등급이라 보통은 성형을 선호하지 않는 블랙잭도 납득할 수밖에 없어 결국 수술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수술을 하려는 찰나, 흉터를 낸 장본인이 진료소에 난입하는데...이 두 남자는 대관절 어떤 관계란 말인가? 과연 블랙잭 펀치는 방해꾼 시게토를 쓰러뜨리고 수술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전혀 어색한 데가 없군요. 음음....
사실 18금 장르가 개인 취향을 많이 타니 이 책도 아무에게나 추천하긴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추천하지 않기에는 아깝기도 하군요. 일단 판형도 크고 사실상 거의 무삭제라 (줄 그은 거...너무 짝아서 순 구색 맞추기...) 야한 게 좋다면 OK. 위험한 내용의 조교물을 어떻게 담담하게 그리는지 궁금하면 OK. 게이물 작가가 나름 보이즈러브를 시도하면 어떤 걸작이 나오는지 궁금해도 OK. 레벨업하고 싶어도 (...뭘?) OK. 작가 팬이라면 필히 구매할 것.
아아, 그리고 물론.
하극상이 좋아!--라던가 듬직한 남자들이 깔리는 게 좋아!!!--인 사람도 필시 구매할 것.
(뭐...생각해보니 예외도 한두개 있지만 대체로는....)
이어서 또 책 포스팅. 간만에 소설을 이것저것 보고 있군요. 단지 전공서적 읽기 싫어서 도피하는 걸지도... 고사카 지로의 [바다의 가야금]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투항한 왜장, 사야가 (후에 선조에게 김충선이라는 이름과 양반 직위를 받음)에 대한 소설로, 이름 발음의 유사성 및 철포부대가 있었다는 기록에 의지해 사야가=사이카 마고이치 설을 주장합니다. 정확히는 마고이치 본인은 역시 나이상 무리가 있었다고 느꼈는지 아들인 코겐타이-마고이치로라고 나오지만 아무튼 사이카슈의 대장인 것이죠.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는 많지만, 자료는 그다지 남아있지 않은 인물이라 (실제로 연구가 잘 안되어 있습니다!;) 진작에 이런 소설이 있다는 것을 듣고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이....이건....
90%가 그냥 일본에서 사이카슈가 전쟁하는 이야기...-_-
조선은 뒷부분에 10% 혹은 그 이하...
경상도에서 한번 만난 과부 된 양반 부인이 별안간 청계천에서 의병대장을 하고 있지를 않나, 곽재우도 나오고, 별안간 그나마 존재하던 역사소설로써의 나름대로의 신빙성이 날아가는...
거의 그냥 후일담 식으로 처리....
물론 작가가 단순히 성의가 없었다기보단 조선측 자료 부족이 뼈져리게 느껴지는 결과이긴 합니다만...-_-
사실 소설작가가 아닌 연구자들의 문제고, 게다가 가뜩이나 잘 모르는 조선 얘기인데 자료도 없으니 막막해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물론 일본/조선의 분량 배분이 너무 언밸런스한 나머지, [단순히 사이카슈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후일담이 께림찍하니까 그냥 조선에서 정착한 걸로 떼우려는 건가...]는 의혹도 들지만...
아니, 물론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도 전국무장 일화 지식이 쏠쏠이 늘어난다는 데서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아마 한국 독자들은 그걸 기대하고 보는 건 아니었을 것 같아서......
아무튼 제가 가장 궁금했던 [주인공의 투항/일본 배신 원인].....
사실 이 원인은 아무도 뚜렷이 모릅니다. 참고로 특정 연령대의 분들이 도덕책에서 읽었을, 조선민중의 덕심에 감동해서 어쩌고...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개뿔이니 제외합니다. 물론 투항 편지에는 비슷한 말이 쓰여 있지만, 이것은 상대방을 치켜 세워줌으로써 자신에 대한 신용을 최대한 높여 보이려는 화법이고 (사실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적 대장이 별안간 투항하겠다고 편지 보내면 누가 믿겠습니까. 따라서 투항하는 측은 온갖 방법으로 설득해야죠.), 무엇보다 그런 이유만으로 자기 나라를 버리고 투항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야가는 본명이나 고향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았기에 일제시대 때는 일본 사학자들이 조선이 날조한 가공의 인물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생각해보면 가문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알기 쉽습니다. 예시: 건너 마을 박씨네 아홉째 아들이 세상에 월북해서 공산당에 들어갔대요!-뭐? 박씨네 아홉째 아들이? 그런 배신자 자식! 박씨네는 배신자! 박씨네는 집 빼라!-고향에 있는 가족들은 대략 박씨네와 같은 신세에 처하겠지요. 그리고 투항시 보낸 편지나, 평소에 유교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나 문집을 세권이나 남긴 것을 보면,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듯하니, 다른 말로 그러한 교육을 받을만한 집안의 자제였다는 뜻이겠죠. 사이카가 사야가와 발음이 비슷하긴 하지만, 저런 점에선 캐릭터적으로 어긋난달지...그래서 일본 학자 중에는 규슈 하라다 가문의 하라다 노부타네라는 설을 내세우는 학자도 있습니다. 노부타네는 조선 출병 후 전사 혹은 행방불명으로 기록되었고, 하라다 가문은 히데요시에 대한 반란에 가담했다가 영지를 몰수당해 적대적인 관계였으니 출병 그 자체에 불만이 깊어 투항할 배경도 충분하고, 또한 50명의 철포대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다는 점도 있습니다. 뭐 어느 쪽이든 추측이지만...
어쨌든 사야가=사이카인 소설 [바다의 가야금]에서의 투항 이유는...
애인(13~14세. 크억 로리콘!←그 시대니까)이 히데요시의 측실 스카웃맨에게 걸리는 바람에, 결국 자살해서...
게다가 주인공의 충실한 소꿉친구이자 부하는 그걸 알려주려고 무려 한양까지 찾아온다...얼씨구-_-;
(사실 마지막엔 둘다 싱글이 되버리므로 심심하면 주인공이랑 커플링 가능함.)
그래도 히데요시 본인은 인질 신분인 주인공을 대우 잘해줬는데, 부하가 뻘짓했다고 배신하는 주인공이라니...
작가 입으로 두번이나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사나이라고 묘사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천지 차이!
오다 노부나가의 하나뿐인 맹우라고 묘사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어찌 비교할 수 있으리오!
................
뭐....뭐지?
이 알 수 없는....
위화감은....!
뭐어....딱히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맹렬한 우정(.............)을 그린 소설은 아니므로 넘어가도록 하죠....... 사실 작가는 이에야스X노부나가였다던가! 엄청난 마이너!
어쨌든 적어도 작가가 기록한 참고문헌에 대해서는 참고할만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기슈 출신이라 사이카 빠돌이인 듯하니, 사이카슈 좋아하는 사람들도 볼만할지도...
그나저나 완벽했던 유리망치는 별로 쓸 말이 없었지만 꽤나 부실했던 책에 대해서는 말이 많아지다니...
뭘 잘 못 먹었는지 또 장염이; 그래도 포스팅을 게을리 하면 안되니까...
어제 기시 유스케의 [유리 망치]를 완독했습니다.
[검은 집]도 꽤 재미있게 읽었고 추천도 있어 [유리 망치] 구입.
완전밀실 살인사건인데...
사람 죽는 수만 팍팍 늘리거나, 독자를 기만해 놓고서 반전이라 우기는
넘쳐나는 요즘 추리소설에 질린 사람에게는 필히 추천해주고 싶은
간만에 보는 진짜 초 본격파 추리소설...
무엇보다 작가의 치밀한 자료 조사로 완성된 탄탄한 리얼리티 및 특유의 논리정연함이 뒷받힘하고 있으니, 더 신빙성도 있고 스릴 있었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쓰는 데 4년이나 걸리는 것이겠지만...
간병~방범~유리~하고 중얼대며 조사하는 작가가 눈앞에 선합니다-_-;
탐정 역의 캐릭터도 괜찮구요...(그런데 지인이라면 좀...미묘한 녀석;;)
한번에 무섭게 사람을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맛이 있어서, 추리소설을 원래 좋아하시는 분은 물론, 그렇지 않은 분께도 적극 추천하고 싶군요.
류정한씨, 김무열씨 캐스팅의 A캐스팅으로 관람.
몇 주 전부터 K모님의 추천&예매 덕분에 봤습니다.
황량한 생활에 간만의 문화라이프를 주셔서 감사~
1924년의 레오폴드와 로엡 사건 (두명의 만 19세 시카고 법대생들이 니체의 초인 사상에 입각, 완전범죄를 하겠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를 납치, 살해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2인+피아노 반주의 뮤지컬입니다.
사실 미국에선 이유없는 살인, 사형제도, 변호사의 12시간짜리 공포의 명연설 등 전설적인 사건이지만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편이라, 국내 번역판 대사에서는 미국 원판과는 달리 캐릭터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나]와 [그]로만 처리한 것이 특이하면서 동시에 일종의 몰입도와 현장성을 증가시킵니다.
일단 배우 두명+피아노 반주만으로 거의 2시간 남짓 공연이라, 공연자들에게 있어 엄청나게 체력적으로 하드하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두 배우 다 매우 박진감 넘치는 연기를 펼쳐보여서 내내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나]역의 가창력은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작은 무대라 연기자들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어 실제 상황과도 같은 생생함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내용을 보면...
극작가....
틀림없이 게이입니다...
아니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게다가, 뉴욕 공연에서는 무려 지가 주인공 역 해먹기도...바...밥맛 없어!-_-;;
아무튼 실제 사건을 공범 중 가장 동기가 모호했던 네이슨 레오폴드의 입장에서 (실제로 그를 분석하던 심리학자들도 동기-불명이라고 결론), 상당히 그럴 듯하면서도 흥미로운 해석을 이끌어낸...
야오이입니다.
절대 거짓말 아님.
이제 당당하게 야오이를 뮤지컬로 공연하는 시대가 왔구나...
뭐 다양한 것은 좋은 거죠.
덕분에 B캐스팅 쪽도 궁금해지고 말았습니다.
배우들의 열연과 음악, 두 인물들간의 밀고 당기기가 압권이라, 별로 야오이 취향이 아니라도 강추.
곁다리로 실제 사건 쪽 말인데...사실은 변호사인 클레어렌스 대로우도 전설입니다.
위에서 12시간짜리 명연설이라고 썼는데, 아마 한번에 12시간...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원래 노동, 인권변호사로, 자신의 사형폐지론을 실천으로 강화하기 위해 이 사건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물론 워낙 악명높은 범죄자들을 변호해서 욕은 많이 먹었지만...저 사건이 해결난 직후에는, 백인 동네에 살던 흑인가족이 집 빼라며 집안으로 쳐들어오는 백인 폭도들을 향해 총을 발사해 한명이 숨진 사건에서 흑인가족 측을 변호, 오히려 배심원들의 인종차별적 경향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정당방위 무죄로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연극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공범자 둘 다 부유한 유대인 가정 출신의 자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범인이 밝혀지자, 미국 유대인 사회에서는 큰 파란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유대인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이것으로 반유대주의적 움직임이 심해지면 어쩌나...라는...
마치 지금의 버지니아 공대 사건에 대한 한국 교민들의 반응처럼요.
과잉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평소에 그만큼 일상적인 차별을 느끼고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