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타는 제 정신과 마음을 무참히 난도질한 나머지 악평을 쓸 기운도 상실시킨 게드전기...
제 2타는 최대한 관용심을 발휘했어도 아쉬운 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천년여우 여우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3번째는 구원투수였으니....
바로 어제 용산CGV에서 본 [시간을 달리는 소녀]...
성적도 외모도 성격도 그럭저럭 무난평범한, 단지 살짝(?) 왈가닥인 활달한 여고생 콘노 마코토.
방과 후에 단짝 친구인 코스케와 치아키와 함께 캐치볼을 하는 것이 일상인, 평탄한 매일매일.
그러던 어느 날, 마코토는 우연히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 리프 능력을 얻게 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딩스러운 정의 의식을 가진 모범생이나 여자의 손에 흥분을 느끼는 싸이코패스 회사원이 아닌, 그냥 넉살좋고 단순한 성격의 고교생이었던 마코토는 이 능력을 자신의 일상을 조금 더 편리하고 재미있게 만드는 데에 쓰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늦잠을 자고서도 시간을 돌려 지각을 면한다던가, 동생이 뺏어먹은 간식을 과거로 돌아가서 미리 먹어 버린다던가...등의 극히 시시하면서도 소소하고 유쾌한 [일상의 개선책]으로 말입니다.
문제는,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Time waits for no one]는 진실은 시간을 뛰어넘는 마코토는 물론 그녀의 친구들에게도 성장통과 마찬가지로 예외없이 찾아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코스케와도 치아키와도, 이성으로써가 아닌 현재의 친구 관계가 편하고-정확히는 다른 관계로 변하는 것, 좀더 구체적으로는 '성장'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마코토는 몇번이나 시간을 되돌려 [성장]과 [변화]를 피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이 진실을 덮어버리거나, 사람의 진심을 묻어버린다는 점, 시간을 되돌려 자신이 이익을 볼 수록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긴다는 진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진심에 점차 눈뜨게 되며, 마코토는 서서히 성장하게 됩니다.
즉 시간 도약이라는 SF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작품의 중점은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코토와 친구들. 느긋하고 껄렁하지만 깊이 있는 치아키와, 의사 집안의 어른스러운 우등생 코스케.
그만큼 주인공을 비롯한 현대 고등학생들의 묘사와, 학교의 묘사, 도쿄 변두리라는 설정의 배경인 소도시의 묘사가 굉장히 정밀하면서도 사실적이고, 그것을 넘어 무척 생생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마코토의 [연기]는 아주 뛰어납니다. 물론 성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몸짓이나 눈빛,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이렇게 완성된 [연기]를 보여주는 캐릭터는 대부분 도식화된 연출에 의한 [연기]에 머무르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그것을 뛰어넘어, 어느 틈에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주인공의 감정과 기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이끄는 수준으로, 정말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빼어납니다.
아울러 관객의 이입을 성공적으로 유도하는 주인공 캐릭터의 연기는, 성장통의 애잔한 아픔과 그와 함께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애잔함을 느끼게끔 하여, 특히 성장드라마로써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설명하자면 어렵지만, 명백히 가볍고 유쾌한 느낌으로 진행되고, 유머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동시에 기묘한 아픔이 저려오는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회한인지,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 공감한 것 때문인지, 어떤 종류의 통증이 느껴오는 작품이었고, 그렇다고 불쾌한 종류가 아니라 달콤쌉싸름한 느낌이랄까요. 쓴 맛이 있기에 달콤하고, 그것이 양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성장의, 인생의 맛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감성주의를 표방한 작품에는 쉽게 이입하지 않는 편인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오히려 그 적절한 담백함 때문에 어느 틈엔가 그 감성의 흐름에 이입해 감상할 수 있었던 드문 경우였다고 느껴집니다.
영화 속의 극히 일상적이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일본 소도시의 풍경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이 소중한 시간처럼,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진정한 가치는 [게드전기]처럼 과하게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단지 꾸밈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솔직함, 그렇기에 비범한 진솔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애니메이션 뿐이 아닌 극장 영화로써 간만에 진정으로 감동적인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용산, 상암, 강변CGV에서 상영중이니, 꼭 놓지지 말고 극장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새롭게 출간된 원작 소설을 읽은 상태에서 봤습니다만 사실 별로 안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단지 소설을 읽은 사람만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라벤더의 의미라던가...
하긴 영화가 소설을 직접 옮긴 것이 아니니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단지 소소한 재미가 늘어난다는 점, 소설과 영화 주인공의 차이점에서 오는 재미가 있으니 소설 쪽을 먼저 보고 가는 것도 괜찮겠군요. 참고로 처음부터 마코토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자 상담 상대인 이모가 소설 쪽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시간여행물의 패러독스 중 하나인, 한 공간에 같은 사람이 둘 존재하게 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시간여행자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을 했을 때 A지점의 여행자는 갑자기 사라진다는 식으로 처리됩니다. 이 점은 영화와 소설이 동일. 즉, 주인공은 내내 같은 존재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하는 스포일러적 잡담.
이 이모 말인데, 도중에 치아키의 고백을 받아 혼란스러워 하는 마코토에게, 시험 삼아 치아키와 코스케 둘 다 사귀어본 다음에, 마음에 안 들면 사귀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방법도 있다고 귀뜸해 주지요(...) 생각해보면 꽤 연애시뮬레이션 게임같은 상황이고 마코토가 조금 더 어른이었다면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며 완강하게 거부하는 순수함 역시 그녀의 매력이겠지요. 하지만 저라면 해봤을...
마코토가 어째서 마지막 타임리프 기회를 치아키에게 고백을 받을 때가 아닌, 능력을 최초로 얻을 때로 돌려 치아키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했지만...(좋으면 남아 있으라고 해서 사귀면 될 거 아닌가?!--라고)...미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스케와 후배 여학생을 살리기 위해-정확히는 마코토를 위해서지만-시간을 돌아온 치아키가 마지막 타임리프 기회를 써버렸고 그래서 사라지는 것은 미래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방황하는 상태인, 불안정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미래가 치아키의 원래 시대이고 언젠가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므로...라고 이해했습니다. 물론 치아키와의 두번의 이별장면이야 애잔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스케가 더 좋았으므로(...의사집안! 장래의 의대생! 믿음직해! 성격 좋아! 운동도 잘해! 키도 커! 잘생기기까지!...쿨럭;) 어차피 아득한 미래인인 치아키야 그림 보존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면 되니 현재의 좋은 남자를 무는 것이 마코토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서 이쪽 커플 지지. 후배 여학생이야 같이 야구는 하게 되었지만 마코토의 타임리프 능력도 바닥났으니 저대로는 학창시절 내내 볼보이...아니 볼걸이나 할 신세같고. 코스케도 [마코토를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처음에 후배의 고백을 거절했으니까, 치아키와는 좀 다르지만 나름 마음이 있는 것 같고. 마코토도 치아키와 유리의 경우에서 남 주면 아까운 게 좋은 남자란 걸 깨달았겠지(...) 잘해봐~ 휘- 휘-
덧붙여 소설의 미래인 설정에 근거하면, 치아키는 사실 마코토, 코스케보다 연하...라는 결론이 됩니다. 미래에는 애들 성장, 발육이 좋고 또 유아기부터 뇌에 지식 주입을 해서 지능도 높다는 설정이라, 소설 주인공인 카즈코가 만난 미래인 소년 카즈오도 보기에는 그녀보다 훨씬 크지만, 나이는 11살이었고. 그리고 소설에서는 라벤더가 주 재료가 되는 약품이 타임리프의 능력을 주었는데, 영화에서는 횟수 제한이 있는 호두 모양의 장치로,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개선된(?) 타임리프 장치입니다. 이대로는 본인이 연구자가 아니라도 장치만 있으면 시간도약이 가능하죠. 카즈오의 시간도약 연구가 진보한 증거일까요? 그럼 왜 카즈코는 데리러 오지 않는 거야... 또한 소설 속의 미래인 소년은 언젠가 만나자고 한 반면, 치아키는 미래에서 기다릴게-라고 함으로써, 마코토가 비로소 자신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했지만 동시에 직접 만나는 가능성은 뭔가 불식시킨 뉘앙스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치아키는 더 이상 시간도약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잘 모르겠지만 치아키가 살던 미래에서는 시간도약 장치의 사용이 원활해진 대신, 1인 평생당 제한횟수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론은 현재의 남자가 최고...
그럼, 그림이 치아키의 시대에 남도록 [어떻게든 하겠다]는 마코토는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을 품은 것일까요? 물론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마코토의 이모와 같은 그림 수복 기술자이지만 한 번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안 나오는데다가 엄청난 덜렁이인 마코토로써는 상당히 힘든 길이 될 것 같군요. 어쩌면, 스케일 크게 생각해서 그림의 영구보존을 확실히 결정할 수 있는 박물관 관장 자리라던가, 나아가 좀더 확실한 문화부 장관이라던가, 일본 수상이 되어 타임캡슐 보존을 강행하거나, 만약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 때문에 그림이 없어진 것이라면 지하비밀기지와 히어로 전대를 만들어 세계평화도 지키고 그림도 지키는 것이 아닐까!--는 생각이 이것저것 듭니다. 마코토라면 코스케와 사귀는 것보다 이쪽이 가능성이 높을지도....
또한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약품의 냄새만 맡았을 뿐이라 제한된 시간 안에서 도약이 가능한 것으로 나오지만, 마코토는 그런 제약이 없는 것 같은데(치아키가 같은 장치를 사용해 과거까지 온 것이니), 그렇다면 중세나 고대에도 갈 수 있잖아! 개인적으로는 삼국시대의 한반도 복식이 심히 궁금하니 가 보고, 데즈카 오사무 선생님 사인도 받고, 주유가 그렇게 미남이었는지 확인도 해 보고, 등등 해보고 싶은 것이 잔뜩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랬다간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 수도 있고...치아키가 우려하던 [약용]이 본의 아니게 되어버릴 수도 있으려나요...; 요는 마코토가 바보라서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