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2009. 3. 24. 19:31

이런 포즈로 돈 걱정을 너무 많이 하면 소세키에게 씌일지도 모름(...)

2006년도 드라마. 매 화 25분에 총 40화 완결.
지난 주부터 몰아봤습니다. (논문이 안 써지니 별별 딴 짓을...;)

기본적으로 낮 방영 홈드라마인데 주부에게 나츠메 소세키의 혼이 빙의된다는 과감한 컨셉이 특이합니다.



주인공 야나 미도리는 대학의 뮤지컬 서클에서 만난 남편,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을 둔 37세의 주부.
아내, 어머니, 주부로써의 책임감이 강한 여성으로 가족들을 명랑하고 사려 깊게 보살피지만
그만큼 어깨도 무겁고 걱정도 많고, 약간 망상벽(좋게 말하면 풍부한 상상력?)도 있습니다.



헌책방을 운영하는 시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습니다. (시어머니가 좀 특이한 캐릭터인 것도 있지만)



그리고 시어머니가 열렬히 사모하는 한류 스타 배양근. 통칭 얀사마. 실은 감독이 연기함(...)
(처음에는 무슨 배양균인 줄 알았...;)

이렇게 단란하고 부족한 것 없이 살던 미도리의 일상에 위기가 닥쳐옵니다.
 남편 타카시가 선배의 말에 혹해 젊은 시절의 꿈인 뮤지컬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만 것이죠.
갑자기 수익이 끊기니 맨션을 팔려고 내놓고, 이사를 하는 등 고생스러운 와중에 돈 걱정을 너무 한 미도리는
부적으로 간직하던 구 천엔 화폐의 나츠메 소세키에게 빙의되고 맙니다.

사실...하필이면 나츠메 소세키가 빙의한 이유도 소세키의 작품을 생각하면 꽤 그럴 듯 합니다.
워낙 돈돈돈 얘기가 많이 나와서 말이죠. 심지어 불륜/로맨스가 나와도 돈 얘기 때문에 궁색해 보일 정도니;




특이한 점은 미도리와 나이가 같은 37세 무렵의 나츠메 소세키라는 점.
그런데 아직 데뷔작을 연재중인 시점인데도 난 천재다! 문호라구!--이러고 떵떵거리는 엄청난 자뻑남;;
도도하고 성질 까다롭고 읽을거리와 맛있는 걸 밝히는, 사실은 오지랖 넓은 메이지 인텔리 아저씨라 참 귀여움.
(여기서도 오지콘 레이더 발동~)

미도리 역인 사이토 유키의 기막힌 혼신의 연기와 나츠메 소세키의 독백 및 나레이션을 담당하는 혼다 히로타로의 목소리가 더해져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고 매력적인 '주부 몸에 강림한 소세키'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것 때문이라도 (말하자면 사이토 유키의 남자 연기...) 볼 가치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후 아내, 어머니, 며느리의 급변에 당황하면서도 이내 받아들이게 되는 가족들과, 새로운 시대 뿐만 아니라 주부로써의 역할에 적응해가며 고찰하는 나츠메 소세키, 그리고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헌책방이라는 배경도 작가 주인공에게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화책도 제법 나오는데요.




[북두의 권] 전권을 단번에 읽어내리고 이 작가 천재야!--라고 감탄하고



[아빠는 요리사]의 주부를 위한 편의성에 탄복하고



그리고 실존하지는 않는 책이지만 [방귀뿡뿡 스즈노스케]라는 만화를 빼놓을 수 없는데
(내용은 대략 스즈노스케라는 소년검사가 독한 방귀로 나쁜놈들을 무찌르는 것...;)
나츠메 소세키는 이 만화를 '그림은 애들 낙서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고 구성도 내용도 엉망이지만 이상하게 재미있다'고 평하며, 구성도 기교도 완벽하지만 왠지 재미는 없는 어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과 대비시킵니다.

그런데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이 누구냐면...




만화계의 거장 미야지 이사무...사진이나 이름이나 아무리 봐도 '그 분'을 패러디한 것이 명백...

[방귀뿡뿡 스즈노스케]는 미야지 오사무가 무명이었던 시절 오게레츠 고로(....;)라는 필명으로 낸 만화인데
그 중에서도 너무 재미가 없고 작가 본인에게도 잊고 싶은 흑역사라 그 유지에 따라 유족들이 돌아다니는 판본들을 전부 회수한 나머지, 지금 와서는 초회판이 300만엔을 호가하는 엄청난 레어서적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책이나 문학 소재도 종종 다루어져서 책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욱 잔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래-정확히는 뮤지컬은 양념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꿈'을 상징하는 중요한 매게체이기도 합니다.
미도리와 타카시가 뮤지컬 연구회 서클에서 만났고, 타카시의 꿈은 뮤지컬을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부부를 연기한 배우들이 가수 출신이라 노래를 잘하고 (오프닝부터 부르고 있으니)
대학시절부터 다닌 단골 카페 장발장에서는 가끔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즉석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죠.
'물고기는 눈을 뜨고 잔다'와  '몬나시느(몬나시=무일푼)'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노래들은
어떤 때라도 꿈을 쫓자는 것과 돈에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선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돈에 집착하면 안된다는
꿈(이상)과 현실의 미묘한 경계와 균형이라는 중심테마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돌봄노동으로써의 주부의 생태에 주목한 점도 흥미롭습니다.
미도리가 단순히 돈 걱정만 해서 변해버린 것이 아니라 아내나 어머니로써의 역할-구체적으로는 돌봄노동-의 중압감 때문에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것이 아닐까라고 가족들은 차차 깨닫게 됩니다. 물론 미도리의 몸에 빙의해버린 오만한 성격의 남자 문필가 나츠메 소세키 역시 (처음에는 소설의 소재를 위해서였지만) 주부의 역할을 익히면서 그 중대함을 뼈져리게 실감하게 됩니다. 또한 여자 몸의 남자라는 점은 본인과 타인들에게 여러가지 마찰과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동시에 여자와 남자의 입장 양쪽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과 통찰력을 지니게도 합니다.

사실 특이한 소재 때문에 선택한 드라마인데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잔잔한 감동은 무척 마음에 와닿네요.
나츠메 소세키의 인생과 성향, 작품을 연구해서 홈드라마에 적절히 반영한 것도 좋았구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아무래도 패러디가 생각나는 것이...

돈 걱정을 너무 한 나머지 만원짜리의 세종대왕에게 빙의되어버린 주부!
"짐은 왕이닷! 고기를 내놔라!" 이러고 난동을 피우다가 스테이크를 먹고 감동하고,
 한글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자 "최만리 영감탱이 꼴 좋다 크크" 이러고 좋아하다가
현대의 한글이 창제 때와 많이 형태가 변한 것을 보고 "주시경을 능지처참에 처하라!"며 펄펄 뛰고
국어 교과서를 죄다 뜯어고쳐서 교육부에 수정하라고 보내는 등등...

화폐에는 없지만 현대에 데즈카 선생님이 강림해서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데뷔작'을 들고 출판사에 갔다가
그림도 구식이고 (요즘 기준의) 모에캐릭터도 없고 내용도 팔리지 않아, 재능 없어 그만 둬~...이런 평을 듣고
울화가 복받쳐서 기자 멱살을 잡고 "난 만화의 신이다!"--이럴 성격은 아니니까 아마 폭식으로 해소.

등등 응용버전이 무궁무진하군요 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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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