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온라인 생활이 바빠 오프라인 활동이 느려지는...좋은 의미로 바쁘면서도 (드뎌 일시적이나 용돈벌이가 가능T_T) 뉴스 땜에 마음도 싱숭생숭한데다 안 좋은 그런 상태 지속중입니다.
대신이라기엔 뭐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 감상이나 짤막하게....
동생 위부인이 제가 동네에 북오프가 있다고 하니 [고독한 구르메]라는 만화가 복간되었는데 웬 아저씨가 일본 전국을 돌며 맛있는 걸 먹는 그런 내용이라고 일본에서 요즘 히트라고 (대체 일본 만화 블로그를 얼마나 돌아다니면...일본에 있는 나보다 더 잘 아는거냐...) 했습니다. 정작 북오프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아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몇일 전 학교 앞 서점에서 잡지를 구입하다가 카운터 바로 앞에 문고판과 그보다 더 두껍고 판형도 큰 신장판 발견...하고 바로 사지는 않았지만 금요일 밤 수업 끝내고 오면서 빈궁한 유학생이라 비싼 신장판은 어렵고 문고판을 사 전철에서 읽었습니다.
보면서 깨달은 것은 동생의 설명이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일단 주인공 아저씨가 일본 전역(이라해도 주로 도쿄지만...)에서 밥을 사먹는 것이긴 하지만 들리는 이미지처럼 한가하게 전국 식도락여행을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자영업 세일즈맨 이노카시라가 업무 중 어쩌다가 들른 지역에서 마침 배가 고프길래 먹는, 각 화 10페이지로 끝나는 형식의 만화입니다. (10페이지라고 해도 작화가인 다니구치 지로 특유의 꼼꼼하고 세밀하고 사실적인 작화 덕분에 상당한 무게감이 있지만...) 식당이 있기에 그곳에 간다라기보다는 그곳에 마침 식당이 있어서 먹었다는 느낌이 강하지요. 물론 예전 맛집을 기억해서 찾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마침 그 장소에 있어서' 찾아가는 것이지 궁극적인 목적지가 아닙니다. 이 만화에서 식당은 이노카시라의 '여행길'에 잠시 들른, 배를 채우고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한 휴식처라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식당의 이름이나 약도가 구체적으로 소개되지도 않고 꼭 그 정도로 눈돌아가게 맛있는 집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맛집탐방 정보를 기대하고 산 분들에겐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생활 속의 먹거리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렇다고 이노카시라가 먹는 행위나 맛 자체를 소홀히 하고 소화만 되면 다 똑같다는 식으로 넘기는 아저씨...였다면 제목에 [구르메]가 붙었을 리가 없구요^^; 실제 맛있고 양도 좀 되는(!) 음식을 선호하고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모르는 가게에 들어가기 쭈뼛해하고 과자가게에 남자 혼자서 들어가면 좀...이러며 소심하게 눈치 보는, 적잖이 공감이 가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이 바로 이런 이노카시라의 성격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리얼리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오갈 법한, 내용하고는 하등 상관없는(하지만 '분위기'를 묘사하는 기능적 도구로써는 매우 중요한!) 다른 손님들의 시시콜콜한 대화, 먹고 싶어하는 메뉴를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재료가 겹치는 요리를 골라 실패...라고 중얼거리는 세세한 '어긋남'이, 평범한 동네 밥집을 포함해 편의점 야식까지 구르메의 식사로 만드는 리얼리티의 힘입니다. [그곳에 있기에 그것이 맛있었다]는 감각이라고 할까요. 음식의 맛과 양도 중요하지만 리얼리티의 영향으로 그만큼 중시되는 것은 바로 먹는 '공간'입니다. 일본의 유수한 음식만화가 지금까지 크게 간과하고 있던 치명적인 부분이기도 하구요. 물론 가게 분위기가 어쩌니 인테리어가 어쩌니 하는 단편적인 거론은 있지만 그것을 [고독한 구르메] 수준으로 세심하고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살려낸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맛의 달인]같은 순수하게 음식 그 자체를 추구하는 만화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고독한 구르메]는 먹는 행위에 있어 '공간'의 중요성을 최대한으로 증폭해내고 완성해낸 만화라는 점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공간(식당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이 주는 생생함, 공기, 그에 영향받는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이 마치 독자가 그곳에 있는 듯한 현장감마저 느끼게 하고, 그만큼 각 공간을 독특하고 일종의 의미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또한 주인공의 입장상 독자로써도 이입하기 쉬운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로지 맛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먼 동네나 지방까지 여행하고, 항시 인터넷과 잡지 등을 통해 철저히 맛집 체크를 할 정도의 '독한' 매니아급 구르메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그 정도의 식도락가가 아닌 사람이라고, 맛있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아마도 숫적으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맛있는 것이 좋기는 하나 매니아 정도로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유 또는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고, 주변에, 그리고 마침 들른 모르는 동네에 맛있고 포만감을 채워주는 식당을 어쩌다가 만나면, 그것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맛난 밥 한 그릇이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지친 기력을 되살려주고 다시 길을 나설 수 있는 소중한 '인연'임을 각인시키는 만화, [고독한 구르메]입니다.
덧1.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이 점점 국내에 소개되는 중이니 이것도 곧 번역될 듯도 합니다.
덧2. 이노카시라는 [맛있는 건 좋아하지만 술은 못하는] 점이 공감이 느껴지더군요~ 좀 귀여운 아저씨고 가게 분위기 살피고 눈치 보고 엉겹결에 따라서 주문해버리는 소심함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덧3. 오오사카편을 보면 왜 관동 사람들이 관서 사람을 어려워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물론 그래도 오오사카 사람들...참 재미있습니다^^ 카와사키편은 보면서 당혹감과 동시에 부러움(?!)에 몇번이나 [푸핫...이 아저씨 대낮부터 뭐 하는거야!]를 연발했는데 일본웹의 반응을 보면 저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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