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2007. 12. 28. 15:08
어제 태안 개목항에서 돌을 닦고 왔습니다.

학우 교회에서 가는 길에 편승해서 가서 교통비와 식비는 굳혔지요.

기름이 굳어서 잘 닦아지지 않아서 칫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가리비라던가 작은 게가 가끔 살아있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검게 쪼그라들었거나 얼마 안가 죽더군요.

마스크를 썼지만 냄새가 독해서 몇번이고 현기증이 나덥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환경복구에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좀 다른 의미로 중요한 경험을 하여 성과물을 얻었습니다.

가보니 서울경기지역 교회들은 다 모였는가? 할 정도로 잔뜩 몰렸지요.

한국 집단주의의 특성인지 유난히 어제의 운영회만의 문제인지는 몰라도,

중학교를 가던 고등학교를 가던 군대를 가던

상대방이 어린이든 청소년이든 부하든 자원봉사자든 21세기든

기본적으로 통솔 대상을 뭔가 모자라고 믿을 수 없고 마구 다뤄도 되는 한 단계 아래의 존재로 취급하는

풍습이랄지 패턴이랄지 전통은 어떤 단체활동이라도 여전하더군요.

밥을 빨리빨리 먹고 빨리빨리 내려가라고 계속해서 재촉한다던가,

뒷정리를 그렇게까지는 필요없는 다수의 인원을 강제동원한다던가, (그렇다고 빨리 끝나지도 않음)

작업 하나하나 시킬 때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지나치게 상대를 무시하고 비난하는 듯한 명령조에,

악취나는 간이 화장실 간 학우 기다리다가 근접거리로 다가오며 확성기로 [어느 교회에서 왔어요?]하고

비난조의 질문을 받은 것은 생애 최초...
(적잖이 부실한 식사는 그래도 공짜니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 질문을 받을 일이 있으면.

1. 라엘리언입니다.
2. 바티칸에서 왔소. 우리 교황님께 조짐당하고 싶으삼?
3. 모르몬교 믿으세요.
4. 오움 진리교에서 왔습니다.
5. 우주신령 킹왕짱! 홍천녀 참배하라!

중 1택으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크흐흐.

자원봉사자를 무슨 왕 취급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까놓고 막대해도되는공짜노동력/게으름뱅이/불량학생 취급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좋게 봐준다면 이런 집단주의, 전체주의의 일환으로 집결력만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애국주의든 국가주이든 반공주의든지 말입니다.)

실제로 학우를 비롯해 지인 중에 교회 다니는 젊은이의 대부분이 순진하고 정말 착하고 남들은 잘 안 나서서 하는 궂은 일을 손수 나서서 하는 등, 요즘 젊은이에 대한 편견과는 달리 착실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실상은 결국 제일 어리고 만만한 사람(만)의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과 직책에 따라 위계질서가 조금 바뀌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어제의 경우 전반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는 확성기를 든 스텝들이었지만 좀더 구체적인 노동이 요구될 경우 그 권력의 타겟을 신생교회의 그 중에서도 어린 청년집단으로 좁히지요.) 중요한 것은 그런 식의 철저한 위계적 권력체계가 번복되고 유지되며 정당화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체계에 안락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고 그것이 실제로 편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일상으로부터의 민주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해악이 바로 국가든 군대든 교회든 질서든 [~~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절대적인 '권위'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인은 오랜 군사정권과 권위적 정권의 영향으로 그것을 싫어하면서도 편안함을 느끼는 어쩔 수 없는 모순점을 안고 있구요. 이런 권위주의의 결과 중 하나가 타인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손윗사람은 손윗사람이니까 겉으로는 공경해야 한다는 법칙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역으로 오로지 그 법칙 때문에 공경하는 척을 할 뿐인 경우가 많고, 하물며 어린이나 여성이나 외국인 등의 사회적 약자는 그런 허울만의 존중도 받지 못해 그것의 최소점을 법적으로나마 보상받기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존중'이 존재하기 어려운 사회 내에서 그것을 대신하는 것은 강제적이며 위압적인 관습과 그것에 힘을 싣기 위한 언어적, 제도적, 혹은 실제적 '폭력'입니다.

이런 권위주의의 문제점 중 하나가 권력을 휘두르는 위쪽의 소수가 머리가 좀 모자라면 엄청난 비효율성으로 치닫는다는 점인데 어제의 엄청난 인원동원에도 불구, 하던 작업을 반복시키며 엄청나게 비효율적으로 1시간 30분만에야 종료된 뒷정리에서 재확인한 바입니다. 인원수는 많이 들여 투입 청년들에게 자신들이 가장 시다바리라는 겸허함(???)을 심어주고 다수가 투입되어 그림이 좋다는(???) 점을 빼면 하등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의 삼성 유조선 석유 유출 사태 자체가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요. 제가 이러한 국가적 비상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궐기하는 한국 국민들의 엄청난 결집력과 헌신성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한국의 대단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나 기업이나 진정한 책임을 져야할 곳에서 그것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솔직히 삼성에서 예산 제대로 내서 환경회복 관련 국내외 전문가들과 전문인력을 도입해 자원봉사자들에게 협조하는 것이 별 상세한 지시도 없이 천으로 돌을 닦으세요 라는 말에 따르며 엎치락 뒷차락 하는 1500(어제 총 인원수)명보다 훨씬 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사실 일본에서 자국 학생들에게 히로시마 원폭 중심의 반전교육은 시키지만 그것이 왜 투하되었는가, 즉 일본의 책임에 대한 부분은 축소하거나 씹고 넘어가는 점을 가지고 '일본은 책임의식이 없다'고 비난하지만 그 동안 대한민국에서 기업 봐준 것을 생각하면 남 욕할 처지가 못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오랜만에 충실하게 체험한 집단주의와 (솔직히 고등학교 이후로 그러한 대규모 육체노동 출장에는 참가한 게 없으니) 삼성유조선과 대선 결과는 역시 같은 피가 흐르고 있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기독교인의 대부분은 정말 착하고 성실하고 협동심이 강하여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눈을 흐리게 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떠넘기거나 그 열정을 악용하는, 현대 한국에서 극도로 신성시되는 몇가지 불가침 영역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제발, 눈 좀 뜨고 살자구요. 그런 허상이 없어도 인간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