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2008. 6. 10. 01:10
6월 8일 일요일 아키하바라 교차점에 대낮에 벌어진 무차별 살인사건.
당일 저는 여성 오타쿠의 성지인 이케부쿠로에 있어서 조금 복잡한 심정입니다.
어쨌든 일본 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들도 다투어 보도할 정도로 흉악하기도 하지만 미국의 무차별 총기사건과 비슷한, 즉 선진국에 보기에는 평화롭고 안정된 나라에서 벌어진 이해 불가능한 대량살상 범죄라는 점이 아무래도 남 일같지 않았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총기였다면 피해자가 더 늘었겠지만...)

사건의 요지는 여기 와이드쇼에서 엄청나게 집중보도 해대긴 하지만...
용의자 카토 토모히로(25세)는 일요일 아키하바라의 붐빈 길 한거리에 오후 12시 30분에 트럭을 운전해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던 3명을 치어 죽이고 차에서 내려, 다시 사거리로 돌아와 서바이벌 나이프를 마구 휘둘러 4명을 죽이고 10명을 부상시킨 후, 골목으로 도주하다 경찰관에게 제압, 체포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약 5분 안에 발생.
체포 직후에는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고 경찰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카토 용의자는 시즈오카현 자동차 회사의 파견사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사건을 위해 굳이 렌터카 사무소에서 트럭을 빌려 고속도로를 타고 시부야를 통해 아키하바라까지 향했고, [아키하바라에는 사람이 많아서 (범행 장소로) 선택했다]는 증언을 통해 계획성이 강한 범죄였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여성 한명과 남성 여섯명으로 예술대학의 여대생부터 막 정년퇴직해 노후를 즐기려던 전직 치과의사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장에는 피해자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유족이나 행인들이 꽃이나 음료수를 놓고 가며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범죄 자체의 충격성도 있지만 핸드폰 게시판 사이트에 사고 예고부터 사건 직전까지의 상황을 실황중계한 점이 아닐까 합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살인사건 범인이 방송국에 비디오를 보내 어쨌든 원하는대로 방송을 탔던 것처럼 미디어를 이용한 폐쇄적이면서도 공적인 자기표현이라고 할지요. 사실 용의자는 이전부터 핸드폰 게시판에 일상생활의 사건이나 단상같은 단편적인 문구를 종종 올려서 구체적인 살인동기의 단서를 이곳에서 찾으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문구들이 공적인 게시판에 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내지는 공적인 게시판이라는 점 때문인지-사실상 [일기]나 [혼잣말]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회사에서 잘릴 것 같다] [모두 나만 나쁘다고 한다] 등 잘못하면 찌질하다고 욕 먹거나 중2병이라고 악플이 주르륵 달릴 수 있는 글, 특히 사건 당일에는 아키하바라에 가는 도중의 날씨나 도로 사정 등 세세한 것까지 올리고 있습니다. 혼잣말을 하면서, 누군가는 들어줬으면 하는, 언뜻 보기에 모순된 상태이지만 현대인의 고독하고 불안정한 심리상태와 그 일시적인 해소를 위해-해결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지만-미디어를 사용하는 사용법을 엳볼 수 있는 한 예라고 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일본 사회의 (그리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어떤 심각한 문제점과 불균형을 드러내기도 하구요.

사회적인 배경을 거론하기에 앞서 딱히 사회적인 성장배경적인 이유로 이런 흉악범죄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자는 얼토당토 안되는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밝혀두고 싶습니다.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다 살인마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앞날이 창창한 무고한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거운 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니까 마땅히 그 사회에서 정해진 법의 심판을 받음으로써 책임을 져야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책임 및 원인을 닥치고 오롯 개인에게만, 그 놈이 못나서, 원래 미친놈이라, 원래 비정상이라 그렇다는 것 역시 너무나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고, 비슷한 범죄의 발생가능성을 다시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와이드쇼에서 용의자의 초등학교 동창까지 찾아가서 "원래 '울컥' 하는 녀석이었어요"라는 [정답]을 받아내려고 하는 태도가 그런 '단순명쾌해 보이면서 사실은 위험한 정답'입니다.) 용의자의 성장과정과 주변 사람들이 전한 언행과 환경을 살펴보면, 현대 일본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얄팍하게 말하면, 왜 2채널에 혐한 혐중 찌질이들이 많은가에 대한 해답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카토 용의자는 아오모리현 출신으로 중학교 때까지는 우등생이었고, 그 모친은 이웃들에게 [극성 교육 엄마]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프라이드가 강하고 누가 조금이라도 자기를 무시하는 말을 하면 욱하는 일면이 있는 우등생이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 문집에는 자기소개에 왠지 테일즈오브데스티니의 리온이 서투르게 그려져있고, 과거가 어둡다는 식의 중2병스러운 말이 적혀 있지만 어쨌든 그 시기부터 만화와 게임에 푹 빠졌다고 추정. 고등학교는 현내 제일의 명문 진학교로 입학했는데 문제는 중학교 때 전교 1등이 전교 1등만 모인 고등학교에 다니니 성적은 떨어지고 좌절감을 맛보고 성적은 떨어지고...의 반복이었으나 어쨌든 당시에는 교사들이 보기에는 별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활기찬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졸업시 대다수의 동급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반면 카토 용의자는 2년제 자동차 기술전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전문학교 교사에게 [4년제로 편입해 중학교 교사를 하고싶다]는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07년 지금의 자동차 회사에 파견사원으로 입사했고 휴식 한번 없는 성실한 사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사가 대량의 구조조정을 행하는 마당에 고용상태에 불안을 느꼈고, 5일에는 락커의 작업복이 사라졌다며 소동을 피우고 다음날 무단결근했습니다. 소동 당일날 게시판에 남긴 글은 [작업복이 없어졌다. 그만두라는건가.] 그리고 8일,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도 상당히 비슷-오히려 일본보다 더 심할 수 있지만-양극화, 과다경쟁사회, 그리고 그 경쟁력의 일부가 되어버린 학력중심사회와, 그 시스템의 낙오자를 인정하지 않고 어떤 사회적 안전망이나 구제, 재기조원 시스템이 거의 부재한 사회라는 것이죠. 열성엄마에 휘둘려 중학교 때까지는 우등생이었다가, 고등학교 들어오며 등수는 떨어지고 동급생들은 다 대학 가는데 자신은 전문학교 가고...이 상태에서 그 부모와 어떤 교류 혹은 교류의 단절이 이루어졌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껏 취직했더니 경제는 불안하지 회사에선 대량 구조조정 중이지 [파견사원]이라는 언제라도 잘리기 쉬운 애매한 직책이지 거기다가 작업복까지 없어지니 이것은 어깨 두드리기(肩叩き: 자를 사원에게 부드럽게 어깨를 두드리며 사표 쓰기를 권유하는 태도)인가! 하고 한때의 우등생의 뭉개진 프라이드는 채워지지 않아 안그래도 더 많이 눌려진 욱하는 성질이 폭발. 흥미로운 것은, 무기 구하기에 앞서 직장동료에게 [나 원래 자위대인데 이 근처에 자위대용 용품 어디서 파냐]고 했다는 점. 좌절감과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절망감 속에 위로해주던 것은 게임이나 애니, 그 중에서도 내셔널리즘적 이미지를 통해 어떤 [강한 일본]을 형상화한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 판타지는 필연적으로 폭력성을 동반하는 법이고 (게다가 자위대라던가 일본의 군대라는 역사적으로 예민한 부분까지 건드리면 당연히 주변국가에선 들고 일어서게 되는) 대부분의 오타쿠들은 2채널에서 찌질찌질대며 해소하는 것을 카토 용의자는 직접 칼을 들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해소했습니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는 것은, 바로 그런 폭력성의 근본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혐한, 혐중의 대상인 [타국]은 사실 정확히는 [누구라도 상관없는 타인]인 것이죠. 계속 이런 [패배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은채 이들을 구제할 사회적 안전망과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러한 무차별 폭력사건 및 표면적으로는 국가나 종교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과격운동은 나라에 상관없이 더욱 빈번히 발생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고유가 시대에 각국 정부도 힘들겠지만(저도...아파서 물 별로 쓰지도 못했는데 수도세가 팍 올라서 흑흑;) 그럴수록 더욱더 사회적 안정을 추구해야하는 법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안정은,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들을 보호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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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