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2007. 3. 30. 18:09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T.S. 엘리엇

다시는 되돌아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바라지 못하리니
되돌아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이 사람의 재주와 저 사람의 그릇을 탐내면서
이제는 그런 데 아등바등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으리니
(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펴야 한단 말인가?)
몸에 밴 권세가 힘을 잃었다고
서러워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다시는 알게 되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긍정하던 날의 불안한 환희를
생각하지 않으리니
덧없는 단 하나의 참다운 힘을
알지 못하리란 걸 알게 되리니
이제는 아무것도 없으니
나무에서 꽃이 피고 샘물이 흐르는 곳에서 마시지 못하리니

시간은 늘 시간이고
자리는 늘 자리일 뿐
있는 것은 오직 한 순간
한 자리에만 있다는 걸 알게 되리니
나는 있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좋고
거룩한 얼굴에 연연하지 않으리
다시 되돌아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그래서 즐겁다, 즐거워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니까

기도하라 신이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나도 기도하련다 잊게 해 달라고
너무 많은 토론과 너무 많은 설명으로 나를 애먹이는
그 문제들을
다시는 되돌아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이 말을 답으로 삼으라
다시 일어날 일도 아닌데, 일어난 일에 대한
심판이 우리를 너무 짓눌러서는 안 되리라

이 날개는 더 이상 날 수 있는 날개 아니라
이제는 너무도 왜소하고 메마른 공기
의지보다도 더 왜소하고 메마른 공기에서
퍼덕이는 한낱 부채 같은 것이니
신경 쓰되 신경 쓰지 않는 법을 가르치소서
가만히 앉아 있도록 가르치소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지금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기도하라
지금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기도하라


좋은 시라서 올립니다. 점점 교양블로그가 되어가는군요.
시의 전문 번역은 못 찾겠고 1부만 번역되어 있더군요.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 [마음의 진보] 머릿말에 있습니다.
시 번역 참 어려운데...번역자분 정말 잘 하셨네요.
[바라지 못하리니]로 번역한 것이 아주 좋군요.
씁쓸하고 체념적인 느낌이 들지만, 동시에 희미한 희망과 다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엘리엇의 시는 (사실 대부분의 경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정말 좋습니다.
하긴...원래 시라는 게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라기보단 마음으로 느끼는 거죠.

특히

다시 일어날 일도 아닌데, 일어난 일에 대한
심판이 우리를 너무 짓눌러서는 안 되리라

이 부분을...만약 과거의 일로 후회하고 괴로워하시는 분이 있다면, 꼭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있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좋고
거룩한 얼굴에연연하지 않으리
다시 되돌아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그래서 즐겁다, 즐거워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앞을 보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원문:

Because I do not hope to turn again
Because I do not hope
Because I do not hope to turn
Desiring this man's gift and that man's scope
I no longer strive to strive towards such things
(Why should the aged eagle stretch its wings?)
Why should I mourn
The vanished power of the usual reign?

Because I do not hope to know again
The infirm glory of the positive hour
Because I do not think
Because I know I shall not know
The one veritable transitory power
Because I cannot drink
There, where trees flower, and springs flow, for there is nothing again

Because I know that time is always time
And place is always and only place
And what is actual is actual only for one time
And only for one place
I rejoice that things are as they are and
I renounce the blessed face
And renounce the voice
Because I cannot hope to turn again
Consequently I rejoice, having to construct something
Upon which to rejoice

And pray to God to have mercy upon us
And pray that I may forget
These matters that with myself I too much discuss
Too much explain
Because I do not hope to turn again
Let these words answer
For what is done, not to be done again
May the judgement not be too heavy upon us

Because these wings are no longer wings to fly
But merely vans to beat the air
The air which is now thoroughly small and dry
Smaller and dryer than the will
Teach us to care and not to care
Teach us to sit still.

Pray for us sinners now and at the hour of our death
Pray for us now and at the hour of our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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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