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2007. 4. 10. 23:33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한번 나가 가르치는 공부방에서 만화창작 동아리 고문...비슷한 걸 맡게 되었습니다.

여자애 셋, 남자애 한명이고 고등학생 한명, 중학생 3명인 구조인데,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 좋아하는 만화, 어떤 만화/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만화를 그려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음...일단 좋아하는 만화 타이틀에서 새삼 제가 늙었음을 느꼈고...나루토? 디그레이맨? 블리치? 등등 많았지만 죄다 볼 생각도 안 들거나 재미 없어서 초반에 집어던진 만화들이 아닌가(...) 훗, 이것이 젊음이란 말인가...

사실 젊은 감수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봐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긴 들었지만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어떻게 보면 그런 만화들은 사실 제가 어린 시절 읽던 드래곤볼이나, 북두의 권이나 슬램덩크 등 소년만화의 틀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고, 단지 요즘 애들 취향에 맞는 그림체라는 것 정도의 차이일테니...대체 뭣하러 봐야 하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만화로 뭘 그리고 싶냐는 질문에는(사실 일러스트도 섞여있음.)...으음 고스로리? 판타지? 전쟁 안나오는 판타지? 라 해서 뭐냐 그건? 이라고 물었더니 디그레이맨같은 거라고...어...그래 그것도 판타지였구나(...)
....하지만 나도 고스로리같은 건 못 그리는데(...)

그 다음에 만화로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코믹월드에 나가서 팬시로 수익성 창출]이 압도적. 오 대단해 대단해. 내가 중학생 때는, 아마 [수익성]같은 단어는 몰랐을텐데 역시 요즘 애들은 다르구나.

...음, 물론 지금 시점에서 팬시로 돈이라니 역시 요즘 애들은...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분들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사실 아마추어에 풋풋한 애들이 수익성같은 소릴 하길래 좀 당혹스러웠으니까요. 경박하고 쉽게 팬시나 만들어서 돈이나 벌 생각을 한다고, 코믹에 만연하는 찌질이 애들...이런 식으로 싸잡아 매도해버릴 수 있는 경향이라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동시에 제 3의 요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즉 사회환경적 배경이죠.

우선 [나는 저 나이 때 어땠는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입니다. 물론 제가 중학교 때는 아직 아카가 크게 활성화되었을 때였고, 팬시는 소수고 회지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동인계 분들은 전부 회지를 그리시는 분들이었고, 또한 아마 제가 스스로 자신의 그림은 팬시감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일찍이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지를 그리는 쪽으로 흐르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돈에 대해서는 판 만큼이나 벌어서 어머니께 인쇄비나 갚을 수 있으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책을 냈다는 기쁨과 그것을 누군가가 보고 얼굴색이 변해서 덮어버리고 가거나(...) 웃어준다는 만족감이 사실 돈보다 더 큰 대가였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주위에서 보면, 요즘 아이들은 그런 아마추어 정신, 창작의 정신과 기쁨을 모른다, 속물이 되었다고 동인계의 현주소에 대해 한탄하는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그게 그 애들 탓인가? 탓해서 될 일인가?

일단 코믹에 만연해 있는 열쇠고리, 가방, 신발 등 각종 팬시는 이 나이의 저도 황량맞을 정도인데 새로운 것에 민감한 아이들에게는 장식성과 나름대로의 경제성(즉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함)이 더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그런 고급팬시(...)를 찍어낸 서클들은 궁핍한 10대 서클이 아니라 10대를 상대로 장사하는 경력 있는 20대들의 서클이었구요. 그리고 굳이 변명을 해주자면 10대 용돈으로 회지 수집은 벅찹니다. 행사에 왔다는 느낌, 기념품, 만화 문화의 체험을 싸구려...아니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만만한 열쇠고리, 스티커 등의 팬시로 남기기가 더 용이한 것입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관광지에서 특산물을 사 가는 사람과 열쇠고리를 사 가는 사람의 차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회지 교류가 더 활발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현상이 주류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냥 그 나이 때는 그런 것이 끌리고, 용돈 사정상 더 사기 편하겠구나, 하고 이해하고 넘어가야지요. 또한 현실적으로 팬시가 더 많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비슷한 아이였을 때 회지가 주류이고 주위에는 회지 창작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도 그 영향을 받은 것처럼, 지금의 청소년들도 팬시가 주류를 이루는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고, 따라서 창작 에너지를 팬시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돌릴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주객전도식 상황의 원인은 초기에 그런 상품을 찍어낼 바탕이 있었던 성인들에 의한 서클입니다. 크레용 신짱을 보고 흉내내는 어린아이와 일본에서는 성인용 만화였던 것을 아동용으로 찍어낸 국내 출판사 중 어느 쪽이 더 책임이 있습니까?

물론 카피본을 보고 비웃는다던가, 회지를 가볍게 여기는 청소년이든 성인이든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소수의 무식함과 무례함을 일일히 확대 재생산해 신경 써야겠습니까? 사실 저만 해도 청소년 시절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고개를 못 들만한 행동의 연속이었는데, 무지해서 하는 소리를 교화, 계몽한다면 모를까 마치 이성적인 발언인 것처럼 진지하게 따지고 드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런 현상은 동인계에도 타자화, 연령서열의 고질적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타자화의 가장 잘 알려질 법한 예를 들자면, 된장녀가 있겠군요. 막연히 젊고 좀 세련된 20대 여성을 싸잢아 하나의 카테고리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과 위험함이 극명히 들어나는 사례입니다. [회지를 그리는 착한 10대도 있어] 식의 그 중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라는 단순한 결론을 통한 정당화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이런 식의 [착한 일본인/미국인/남자/여자/대기업/노조도 있어]로 결론짓기, 감싸주기식의 방법은 정말 유치한 레벨이라 개인끼리의 담론이라면 모를까 공적인 이슈를 논할 때는 극히 피해야 할 종류입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대부분의 10대는 팬시를 소비하고 제작하는 것을 즐긴다]는 점은 인정하고 (사실 이점도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 과학적 통계로 조사하면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둬야겠지만), 단지 [왜] 그런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겁니다. 그들 입장에서 [왜]를 따지다 보면 나름대로의 이유와 논리가 있고, 그 취향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그 취향에 대한 개인적 호오를 떠나서) 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회지가 주류가 되는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고 싶다면 스스로 열심히 회지를 만들면서 말이지요.

...그래도 저는 일단 선생이라는 입장인 만큼, 가능한 다양하고 진짜로 재미있는 만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데즈카 오사무 만화를 읽히고 있습니다.

취향 강요라고 해도 교육적 목적을 위해서니까 괜찮습니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산초어님 10만 히트 기념~  (2) 2007.05.04
뭐시여(...)  (0) 2007.04.11
자다가 일어났더니...  (2) 2007.04.09
여러분이라면...  (4) 2007.04.08
담배 첫경험  (3) 2007.04.07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