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피습사건이라면, 너무 유명하니 무슨 사건인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사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전 그 자체나 그 배후보다도 선거 지지도의 변동 쪽입니다.
물론 피습당한 사람을 불쌍하다고, 안됐다고 연민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꼬투리 잡을 것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피해를 당한 다른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피해자가 누구든 간에, 그 누구도 다치고 살해당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대체 왜.....
피해자가 생겼다고, 해당 당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야 하는 겁니까??
정말...이성적으로 납득하기 힘듭니다...-_-
아무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게 말하면 정이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감상주의에 쉬 젖는다지만,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써 가장 중대한 임무이자 권리 중 하나인 선거를 앞두고, 과연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력이라고 볼 수 있는 방향입니까?
물론 아직 선거는 일주일....도 채 안 남았고, 결과는 아직 도출되지 않았으며, 솔직히 여당도 절대로 그렇게 잘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고, 외국의 정치활동에서도 감상주의는 잘 이용되기는 하지만, 저렇게까지 감상주의와 동정표적 요인으로 지지도가 팍 쏠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만약 미국에도 비슷한 효과를 보였다면 부쉬와 캐리의 대선 대결에서 캐리 측 부통령 후보인 에드워즈의 부인이 암 투병 중이라는 것을 마구 팔아 민주당이 이겼겠지요...-_-(덧붙여 그녀는 대선 결과가 난 날 세상을 떳습니다.)
사람이 가엾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사람의 신념이나 목적에 동조하는 것은 별개의 사항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전 이라크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의 현재 상태, 특히 잡혔을 때의 비참한 몰골을 보고 비웃기다기보단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심정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담 후세인이 행한 행위에 대해서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요. 정치가의 경우 더더욱 떨어뜨려놓고 봐야 합니다. 공인이고, 정치가이고, 그 사람 본인 혹은 배후의 정치적 계산과 목적이 상황에 따라 충분히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간단히 말해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라고 냉정하게 구분지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냉정]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아마도 冷情(매정하고 쌀쌀맞다)과 冷靜(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차분함)을 혼동한 데서 온 것 같습니다만 (이래서 한자 교육이 필요한지도...?), [냉정한 판단력]이라고 할 때의 냉정함은 그렇게 중시하는 '정'을 부정하는 비정한 판단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차분하고 사리에 맞는 판단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이 동하신 분들 중 한 분이 친척의 지인 분 되시는데, 이유인즉 피습한 배후는 분명 대립하는 당의 과격파 세력일 거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아무리 바보라도 결과를 뻔히 아는데 (특히 선거기간에) 저지를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테고 하니, 한마디로 '미친 과격파'면 가능하다는 논리지요. 뭐 어쨌든 요는 범인을 뻔한 쪽으로 몰고 가겠다는 지나치게 편한 사고법이기는 합니다만...
한편 저는 그 말씀에 우리나라에 한자교육 뿐만 아니라 추리소설 역시 좀더 넓게 퍼져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A와 B라는 대립 관계의 가게가 두 개 있습니다.
툭하면 서로 부딪치고, 실제로 사업상으로도 라이벌 관계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동네방네 악명이 높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A가게의 사장인 X씨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당연히 평소에 사이가 나쁘던 B가게의 사장 Y씨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비단 과거 관계 뿐만 아니라 X씨의 사망이 주위에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는 점 역시 수사 과정에서 주목되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X씨의 사망은 Y씨에게 이득이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가게 평판만 악화되어서 매상이 급격히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물론 감정에 의한 범죄였을 수도 있지만 이성적인 범죄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성적인 범죄일 경우, X씨의 사망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취한 사람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X씨의 사망 이후, A가게와 X씨의 막대한 보험금을 전부 물려받은 것은 X씨의 친족 Z씨였습니다.
따라서 Y씨와 함께 Z씨 역시 용의자 대상으로 포함되어야 합니다.
(물론 X씨를 살해한 누군가가 피를 보는 걸 즐기는 변태 살인마라서...라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습니다만.)
....위와 같이 추리소설에서 극히 기본적인, 저런 레벨의 가능성도 생각하기 귀찮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걱정스럽군요.
물론 제가 현실적으로 배후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경찰의 수사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극히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일반인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상태이지 않습니까.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당과 그것에 쉽게 휩쓸려 스스로-저런 식의 가능성을 반 농담이라도 고랴하지 못하고-폭주하는 대중과 사태를 냉정하게 비춰주기는 커녕 감정을 부채질 해서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특정 주류언론들입니다. 왜 이렇게 스스로 휩쓸리기 쉽고, 다른 말로 독재하기 쉬운 방향으로 눈가리개를 하고 치닫는 것입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거의 향방이 아니라, 그만큼 쉽게 휩쓸리고 위험할 수 있는 전체주의적 노선으로 흐르는 경향과, 그런 위험함을 일깨워주기는 못할 망정 본 사명을 망각하고 같은 물결을 타고 동참하거나 바람까지 불어넣는 언론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미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그토록 비난받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분위기와 뭐가 다른지 궁금합니다. 물론 한 은사님의 말씀대로, 대한민국은 아직까지는 민족주의, 전체주의로 인한 아우슈비츠나 난징 대학살만큼의 거대 스케일 범죄경력은 없고 그런 전체주의도 비교적 방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공격성이 칼날이 쉽게 내부의 약자, 소수집단으로 향할 뿐이지 언제 그것이 더욱 더 날카로워지고 범위가 넓어질 지는 알 수 없는 법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는 민주사회에서야말로, 그런 전체주의를 늘 경계해야 마땅한 것이지요. '민주사회'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민주사회'는 미국이 이라크에게 선사해 주었다는 민주사회가 아니라 이상적인 형태의 민주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_-)
이렇게 보면, 현대에 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많이 차가워졌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더욱 더 차가워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니라, 머리 쪽이 말입니다. 함부로 휩쓸리지 않고, 조종당하지 않고, 이용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현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요는, 냉정하게 잘 판단 하시고나서, 투표 꼭 하시라는 뜻입니다. 투표권은 참정권이에요. 다른 말로 힘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사정상 투표 못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결과가 어찌 되든 간에, 타고난 '힘'을 사용하지 않고 썩혀두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까? (스탠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 스탠드 술사를 상상해 봅시다...-_-) 차후 정권을 옹호하든 불만을 토로하든, 어떻게든 결과에 참여했으니 말할 당위성이 있겠죠? 그러니까 5월 31일에는, 꼭 그 힘을 백분 발휘하시는 겁니다!
시사2006. 5. 2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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