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그 소식을 들었을 때가 하필이면 국내 개봉일 이틀 전....게다가 국내 소스도 아닌 해외 정보에, 평소에 잘 뒤지지 않는 뉴스사이트를 통해 정말 지나치게 타이밍 좋게 들어온 정보였죠...;;
결국 이것을 하늘의 계시라고 받아들이고 순전히 션 빈씨를 보기 위해(...) 영화를 본 겁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마지막에는 끝까지 션 빈씨가 살아있는 데다가(!!!) 따지고보면 영화에서 가장 착한 남자!!! 게다가 감독이 팬인지 괜한 클로즈업 남발! 옵빠는 싸구려 옷 입어도 멋있어! 너무 지적이라 마을에서 붕 떠! 캬아~!!--등등 팬으로써 건질 게 많아서 흡족했다는...(퍽퍽...)
1989년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주인공 역에 셔를리즈 테론(늘 생각하지만 정말 이쁩니다~)입니다. 폭력남편으로부터 아이 둘을 데리고 뛰쳐나와 고향으로 돌아온 여주인공 조시는, 생계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리차드 젠킨스. [식스 핏 언더]의 아버지 역으로 낯익음...)와 같은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 친구 글로리(프랜시스 맥도맨드. [파고]에서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도.)의 권유로, 광부로 취직합니다. 여성 광부를 고용한지는 몇십년은 된 곳이지만 성별 비율은 30 대 1. 여성 직원들은 취업 전 신체검사에서부터 시작해, 악의든 단순한 장난기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여성에게는 위협적이고 모욕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남성 직원들의 지극히 일상화된 성희롱적 발언과 성추행, 그리고 이를 무시하며 심지어 당연시 하기까지 하는 상사와 회사를 매일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버텨내야 합니다.
솔직히 일하는데 이러면 민폐일 뿐이다.
조시도 처음에는 동료들처럼 참고 견디려고 하지만, 직속 상사의 도를 넘은 괴롭힘에 마침내 항의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되려 [여자가 꼬드겼다]는 식으로 마을에서 몰고가 아들마저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곧이어 감독이나 회사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점점 에스컬레이트하는 직장내 폭력에 이러한 것을 방치, 용인하는 회사를 고소하기에 이르고, 변호사에게 [바록 아직까지는 여자 혼자서 회사를 고소해 이긴 적은 없지만, 집단소송이라면 승산이 있다]는 조언에 동료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조시와 동료들. 영화의 리얼한 점은,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지배적인 직장 환경에서는 어떤 여성이든지 외모나 나이에 상관없이 쉽게 성적 폭력의 타겟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여성영화의 기준에 들어가는 영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이 사실은 남성들도 봐야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더더욱 봐야하는...) 이러니까 성폭력적 언행이, 비록 악의는 없다고 해도 여성에게는 지극히 불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놓고 불만을 말하기 힘든 이유는 이러한 것이다-라고 꽤나 구체적이면서 꼼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성학 강좌나 성폭력 방지 프로그램에서 교육용으로 보여줘도 될 정도...) 이러한 종류의 범죄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려는 [창녀 전략]도 마을에서는 물론 법정에서까지 반복되어서 리얼리티를 더하구요. 직장내 성폭력은, 아마 여성관객-특히 사회경험이 있다면 [맞아 그래!]하고 무릎을 탁 칠만한 상황이 많습니다. 직장이든, 집안이든, 학교든, 개인적인 혹은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 등등을 떠올리며 데자뷰를 느끼지 않는 여성은 아마 거의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예를 들어 모 광고에서 아버지가 딸의 브래치어 찬 등을 어루만지는 장면에서 불쾌감을 느낀 여성들이 상당했던 것처럼, 어딘가 연상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만약 없다면 당신은 무개념이거나 진짜로 행운녀...) 그렇다고 드라마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아이들까지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고, 법정에서 회사측 변호사는 아픈 과거를 들춰내기까지 합니다. 기가 드세고 활발한 노조회원이던 주인공의 친구는 희귀병으로 서서히 몸의 자유를 잃어가고, 곁에는 그녀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남편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과 같은 직장에 다니는 딸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주인공의 아버지도 회사 동료들 앞에서 [배신자]라고 욕 먹으며 공개적으로 말 한마디도 못하게 묵살당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그녀가 당하는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주인공 영웅화]가 없어서 인상적이었다고 할까요. (흔한 예로 에린 브로코비치.) 영웅화가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리고 여성 및 소수자 인권 문제를 다루는 영화의 경우 영웅화로 이야기를 몰고 가면 주제의 무거움이 지나치게 단순화, 약화되고 때에 따라서는 거의 무의미해지기까지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서 이 영화에서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주인공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잘리기 두려워서, 남성 동료들에게 [배신자]로 몰리기 싫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참고 억누르는 여성 동료들의 입장도 중요합니다. 샤를레즈 테론은 매 맞고 사는 주부였다가, 비로소 사회에 발을 들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게 되면서, 차별에 부딪치며 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여성의 나약함과 강함을 훌륭히 연기해 냈습니다. 어쩌면 감독 자신도 여성이라서 그러한 여성들의 내면과, 심정과 복잡한 입장을 잘 잡아낸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또한, 주인공이 영웅이 아니듯이 가해자인 남성들 역시 악인은 아닙니다. ㅎ모님 말마따나 [초딩스러울] 뿐(...) 대부분의 장난이나 음담패설을 악의가 없고, 장난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단지 어른의 체력과 성적인 폭력과 상대방의 의사에 대한 무시가 아무 인식 없이 뒤섞여서 문제인 거죠. 진짜 무서운 것은, 바로 저러한 [개념 없는 폭력]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아파하는지도 모르고, [아파!]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입지가 약한 줄도 모르고 무심하게 [장난]이나 [친근함]이라고 한 행동이, 오히려 더한 상처를 입힐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성 광부들 중에서도 그러한 폭력을 내심 못마땅해하고,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고 심해질 경우 말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그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라, 그리고 동료들간의 [의리]라는 명목 하에 [방조]라는 또다른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버리는 것일 뿐이죠.
아이러니한 것은, 마을의 남자들 중에서 가장 어른스럽고, 어떤 의미로 '남자다운' 인물은 허리가 다쳐서 광부 일도 그만두고, 집안에서 시계나 만지작 거리며 게다가 생식능력도 없는 카일(션 빈. 다른 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착한 남자^_^;;)이라는 사실입니다. 여성을 쉽게 성적인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마을의 남성문화에 반발하고, 부인인 글로리와 함께 조시에 대한 어떤 소문이 나돌아도 그녀를 신뢰하며, 병으로 허약해져가는 부인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에서, 오히려 진정한 '강함'을 느꼈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어머니에 대한 나쁜 소문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아들을 잘 타이르며 어머니의 사랑을 믿으라는 부분에서, 영화에서 가장 성숙하고, 남자답다고 느꼈습니다. (오죽하면 ㅎ모님과 함께 '이 감독 션빈 빠순이 아니에요???'--하고 숙덕거렸겠습니까;;) 영웅은 아니지만 나약하기에 강함이 더욱 돋보이는 주인공처럼, '진정한 강함'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보여주는 인물이었다고 할까요.
영화는 아쉽게도(??) 피터지는 법정싸움으로는 가지 않습니다만, (...뭐 캐치프레이즈에도 최초로 승소한 직장내 성폭력 사건!--이라니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가...) 영화의 요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의 존재여부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제도 치고는, 상당히 진실을 말하기 힘든, 심지어 진실을 말하는 것이 죄악시 되기도 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라크 침공 전에, 미국 미디어에서는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금기였습니다. 작년에는 일본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2차 대전시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가르쳐줬다는 이유로, [진실이 아닌 것을 가르쳤다]라고 비난받으며 교단에서 퇴출당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이 미군에게 학살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반역감이었습니다. 그리고 보고되지 않은 성폭력이 실제로 기록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의 변호사가 역설하듯이, 약자로써, 사회적으로 입지가 불리한 자로써 유일하게 행사할 수 있는 힘은, [진실을 말하는 용기]입니다. 그 용기는 참으로 내기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용기의 촛불이 하나하나 늘어나면, 비로소 어둠을 밝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조시와 그녀와 함께 일어선 미네소타 광산의 여성과 남성 광부들은 미국을 바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