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용산 CGV에서 진행되는 시카프2006 영화제에서 두 작품을 관람했습니다. 주말의 시간 사정상 두 가지 정도밖에 볼 수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둘 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더군요. 어차피 일본 애니메이션은 많이 보지 않냐고 딴지를 걸 수도 있지만, 제가 모르는 일본과, 제가 모르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광범위하고, 직접 보고 난 뒤에도 그 점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이하 카와모토 키하치로 감독의 [사자의 서]와 니시자와 아키오 감독의 [니타보]의 리뷰입니다.
[사자의 서]는 인형극 애니메이션, 특히 NHK [삼국지]로 유명한 카와모토 키하치로 감독의 작품입니다....만 사실은 그 유명하다는 NHK 삼국지를 비롯해 감독의 다른 작품들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애써 무식함을 숨기지 않는 것은 사전에 태클을 방지하기 위함이죠(...) 아무튼 그래도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소식을 통해 감독에 대한 것은 많이 듣고 있었고, 셀/디지털이 아닌 다른 방식의 애니메이션이 너무 고파서 보게 되었습니다. 저와 시간이 맞는 유일한 것이 골드클래스라 골랐는데 알고 보니 감독이 직접 와서 진행하는 상영 후의 작품해설 및 질응답 시간과 사인회가 있어서 골드클래스더군요. (...전혀 몰랐...; 뭐 나름대로 행운으로 치죠...덕분에 모님과의 약속시간에는 예정 이상으로 늦어버렸습니다만T_T) 그 준비과정 때문인지 입장시간도 다소 늦어져서, 헥헥거리며 추하게 땀 흘리고 올라온 보람이 없잖아!--하고 잠시 기염을 토하기는 했습니다. 어쨌는 본편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죠.
원작은 소설이라지만 마찬가지로 저는 전혀 사전정보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때는 나라 시대, 후지와라 가문(중 하나)의 이라츠메 공주는 절세의 미모로 소문이 나 있고 그녀에게 사모의 편지를 띄우는 남자들이 줄을 섰지만, 정작 본인은
매우 정적이고 진지한 분위기와 내용으로, (빗금 그은 것은 신경 끄시길. 그야 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퍽!) 그에 맞는 전통음악과 연출과 함께 인형의 모양세와 휘날리는 머리카락, 옷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세심함이 돋보입니다. (덧붙여 윗 사진은 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수염이 아까운 귀족 아저씨...아 하긴 내용상으론 아무 일 안 해도, 이라츠메의 주위 평판을 보여주는 기능상의 역할은 있군요.) 특히 감독님이 제작과정을 보여줄 때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이 그렇기는 하지만, 여긴 더 섬세한 인형들이므로 눈동자 하나하나, 옷자락 하나하나, 머리카락 하나하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머리카락은 텅스텐을 연결했다는군요. 특히 비바람에 이라츠메의 올린 머리가 풀려져 바람에 마구 휘날리는 장면이 있는데 한마디로 공포의 노가다 전설...) 조금씩 바꿔놓고, 찍고, 다시 돌아가서 또 조~금 바꿔놓고, 찍고, 또 다시 돌아가서....(이하 생략.) 아무튼 차라리 손으로 그리는 게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엔딩이 갑작스럽게 다가온 편이라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다시 음미해보니 이라츠메에게 황자가 부처님으로 보인 것도, 그렇기 때문에 황자가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었던 것도, 그녀가 행하려던 구원의 방식과 함께 곱씹어보면 나름대로 이치에 맞는다고 봅니다. (자세한 건 말 안할 테니 직접 보세요. 기술적인 면으로도 직접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상영 후 카와모토 감독님이 말씀하신 [신과 인형의 관계]에 대한 설도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인간이 스스로의 모습을 본 따 인형을 만들었으니 신이 된 기분이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일본의 한 지방에서 신을 부르는 의식에서 인형을 사용한 이유가 [세속에 더렵혀진 인간이 신을 부를 순 없으므로, 정화된 인형을 통해 신을 부른다]라던가, 체코에서 중세의 크리스마스 연극을 인형극으로 한 이유가 [인간이 감히 신의 아들과 천사를 연기하면 안되므로] 그 대역이자 가장 이상적인 천사, 성인, 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형태였다던가, 는 흥미로우면서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어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CG가 발달해도, 인형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씀에는 동의해요. CG도 말하자면 픽셀로 만들어진 인형을 움직이는 것이긴 하지만, 진짜 인형의 질감...을 떠난 오오라는 동일하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아무리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발달해도, 장인정신으로 충만한 손맛 애니메이션의 풍미는 100% 흉내낼 수 없는 것처럼요. 물론 신기술 애니메이션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되려 좋아하는 편이죠. 단지, 좀더 다양한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존재하고, 그 다양성과 차이점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좀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일 뿐입니다.
다음은 [니타보] 리뷰입니다.
사실 관람할 시간 여건이 되는 것 중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저 [사자의 서] 하나 정도 뿐이었습니다만, 우연히 시카프 영화제 소개 기사에서 [니타보]라는 작품의 사진을 보고
그리고 제작 형식 뿐만이 아니라 정체 역시 [열혈청춘
그 증거로.....
조실부모하지만 역경을 딛고
졸지에 홀아비가 되어도 남자 혼자서 아들을 키워낸 자상하고 터프하고 사랑이 넘치는 아빠가 있고....
...덧붙여 등장 때부터 알 수 없는 호감과 두근거림을 느끼게 한 캐릭터였는데 점점 듣다보니 목소리가
오오츠카 아키오!!! 전혀 모르고 샤미센만 보고 간 작품인데, 정말 의외의 수확이었습니다!!!>▽<
역시,
(한마디로...블○잭21 따위 안 봐도 오오츠카 보급량은 충분해!!! 파판12도 있단 말이다!!! 마◆토 즐!)
어쨌든 실제 작품 속에선 이 캐릭터 소개 그림보다 더 나이스한 얼굴과 몸집의 캐릭터...인데 유감스럽게도 스샷이 없어서, 그냥 있는 걸로 올립니다.
당근 사부님...아니 스승님도 나오며....
덤으로, 샤미센 연주는 보통 여성, 특히 고제라는 떠돌이 여성 악사들이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답니다. ([충사]에도 나왔었죠) 왠지 우크라이나에 오랜 전통으로 남아 있는 맹인 악사들이 떠오르더군요.
당연히 맹렬 스토커 소꿉친구도 있고....
(물론 얘도 위의 주인공 아빠처럼 본편이 더 잘생김....그나저나 새 샤미센 견학하러 간다는 주인공과 도련님에게 굳이 들러붙는 건 아무래도 좀 수상했...지만 그냥 놀러가고 싶어서~라고 건전하게 해석하기로 함.)
주인공 연주에 홀딱 반해 열혈 빠돌이가 되어서, 나중에는 초 특전 프리미엄 맞춤형 샤미센까지 사 주는 후원자로 나오는 부자집 도련님도 있고....(사실 모 의사선생이 연상되는 리본 타이 양장차림으로 더 많이 나오지만 아쉽게도 사진이 이것밖에...)
고위층 대상 샤미센 연주를 하는 맹인 승려들의 모임인 토도자(当道座)라는, 주인공의 인기를 곱게 여기지 않는 권위적인 세력도 나오고...
그 세력에서 내세운 천재
....왜 스님인데 (<--복장 참고) 머릴 저렇게 기른 거냐!!! 쀍!!!
아무리 일본 불교라도 [스포츠 머리형]까지나 허용되지, 저건 좀 많이 어거지다....
...................
아니 물론 보기엔 좋지만...(<--설마 그게 포인트?!;)주인공이랑 구별도 되고...
그리고 토도자에서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신식 샤미센 타법을 구사하는 천재형 인물이라는 점도 덧붙여, 역시 아무리 봐도 토도자의 아이돌(!!!)이었다는 결론입니다.(...)
어쨌든 보시다시피 캐릭터 디자인이나, 내용이나 연출이나 일본 상업 애니메이션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워낙 건전열혈 스포츠...아니 음악물이다 보니 패턴이야 뭐 뻔하고...무엇보다가 외국인들이 이 애니를 복소, 죽은 영혼과의 채널링 부분이 진짜인 줄 알고 일본에 찾아왔다가 괜한 사기꾼에게 걸려서 된통 혼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군요.(<--아무래도 상관없잖아! 그딴 건!!!-△-;;) 퀄리티도 확실히 샤미센 부분의 손 움직임은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너무 거기다가 공을 들인 건지 나무지 퀄리티는 그냥...무난한 레벨이라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으로 눈이 높아진 관객 눈에 부응하기는 힘들겠군요. 스토리도 그렇지만 도중도중의 사운드트랙도 지나치게 현대적인 감이 가끔 어색하기는 하고...
.....라고는 해도 결국은 재미있게 보긴 했습니다^_^;
쉬엄쉬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거죠. 특히 장애소년의 역경 극복, 새로운 분야 개척, 샤미센이라는 일본 문화, 우정과 노력의 결실 등의 요소 때문인지 일본을 비롯 각국에서는 좋은 청소년 추천용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샤미센이라는 점을 끝까지 망각하지 않고 마지막의 주인공과 라이벌의 샤미센 대결에서 그 점을 끝까지 부곽시켜 줍니다. (네, 나옵니다 샤미센 대결...일본은 요리고 뭐고 무조건 대결 시켜야하나 봅니다...쿨럭...-_-;) 실제 샤미센 연주자의 연주와 움직임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그 때문에 이 작품은 꽤나 뻔한 작화와 연출과 내용에도 불구...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에 힘입어,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역경을 극복하고 시대가 어쨌든 자신의 꿈을 밀고나갈 줄 아는 용기와 희망에 대한 교훈뿐만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일본 문화와 샤미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킬 계기가 될 수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영화제에는 좀 안 어울리지만, 대중용, 교육용으로는 분명히 먹히는데다가 나름대로 독특한 점도 있고, 일본문화 홍보까지 하는 작품이라는 거죠. 실제로 저도 덕분에 샤미센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사운드트랙이 나오면 질러버릴 것 같습니다(...) 물론 현대 연주자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당시에도 파격적이었던, 격렬함이 돋보이나 부드러움과 잘 조화가 된 츠가루 샤미센의 연주법은 놀라울 정도로 세련되고 현대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고전적이고 일본적으로 들립니다. 일본에 샤미센 붐이 일었다는데 연주자 역시 꽤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공식홈의 배경음악으로도 흐릅니다. 물론 작품에선 더 음질이 좋습니다만.) [니타보]는 딱히 골드클래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독님이 상영후에 질응답 시간을 제공해 준다고 했는데, 갈아타는 버스가 끊길 것 같아서 별 수 없이 스텝롤이 다 올라갈 즈음에 나왔습니다. 나중에 보니 감독이 교육자 출신이라는데, 무난하면서 받아들여지기 쉬운 상업 애니메이션의 틀에서 교훈과 적당한 감동과 일본 고유의 문화와 음색을 담아낸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자의 서]나 [니타보]나, 제가 잘 몰랐던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문화, 일본에 대해 아주 조그만 틈새로나마 엿보여준 작품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무지와 경험의 짧음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는 경험과 체험들이, 그때그때 너무 신선하고 무언가 배웠다는 생각에 뿌듯함도 느낍니다. 물론, 제가 잘 모르는 우리나라나,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도 무궁무진 하겠지요.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저 역시 더더욱 정진해 나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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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