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원작의 [판이 있었다]를 옮긴 최근의 72화에서는 안락사 의사 닥터 키리코의 캐릭터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경악스러운 진행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원작에서 그 에피소드의 포인트는, [자신의 아버지마저 안락사의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 키리코의 안락사를 향한 강력한 의지와 결의,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식으로써의 절망감]이었습니다. 애니판에서도 일단 독을 주사하기는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 다시 살리려고 발악을 합니다(...) 이래서야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의 [이...독한 놈! (부들부들)] 하던 전율이, 안락사가 키리코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함이, 그만큼 강렬하게 다가왔던 키리코와 블랙잭 사이에 깊게 파인 괴리감이, 그러면서도 납득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안락사 의사로써, 그리고 자식으로써의 키리코의 [최선의 선택]이 절절히 가슴에 와닿는 느낌...같은 것은 이미 저 세상으로 날아갔군요. 어차피 다시 살리려고 발악할 거면 키리코라는 캐릭터를 지탱하는 안락사가, 안락사를 향한 의지 자체가 의미를 상실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캐릭터 망가뜨리기를 떠나, 캐릭터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맛의 달인]의 우미하라가 맛이 가서, 일본음식이 후지다느니, 패스트푸드가 최고라느니 하고 예찬하는 꼴이지요. 감정을 떠나서 창작적 입장에서 냉정히 생각해보면, 만드는 사람이 미쳤거나 안티가 아니면 저 원작에서 저런 번안은 안 나오는 게 정상일 겁니다.
물론 그 여동생 유리도 무슨 Get out of my property!(←미국 중부 혹은 남부 사투리로) 하는 농부도 아니고 엽총이나 휘두르며 오빠 죽인답시고 설치니.....[각자 다른 방법으로 아버지를 구하려던 자식들]이라는 개념이나, 오빠의 방법에는 찬성할 수 없으면서도 오빠를 사랑하기에, 블랙잭에게 도움을 구한 유리의 의지와 입지라던가, (게다가 그만큼 부곽되는 블랙잭의 중요성은? 이거 순 주인공도 말아먹는 거 아냐? 아니 이미 말아먹었지...-_-) 제대로 된 의사 표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병마에 고통받지만 그래도 살려고 발버둥치던 키리코 아버지라던가...등등 키리코의 가족 역시 블랙홀에 쳐박혔습니다. 엽총 따위 들지 않아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원작의 유리와, 애달픈 남매애가 그립군요. (이건...여동생 페치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함....)
이상.......종합해 보면 블랙잭21은 아무래도..........
블랙잭 안티 애니메이션입니다........-_-
처음에는 어린이용이다, 비주얼만 내세운 무뇌다(...)라고 봐줄려고 했지만 점점 내용과, 메세지와, 캐릭터성마저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니...이건 아무리 봐도 안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군요.
게다가 무려 TV애니메이션에, 공중파까지 타며 스스로의 '오피셜'함을 만천하에 어필하는, 한마디로 지능형을 넘어선 공적 자본형 안티인 것입니다. 무섭군요.
그렇다면 과연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팬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물론 이런 방법도 있겠지만 살인은 아니되지요.
(짤방은 [에로이카로부터 사랑을 담아서]에서 출저. KGB에서 고용한 13명의 암살자들(....)입니다.
참고로 에로이카 에피소드 중에 블랙잭이 등장하는 형식으로 [블랙잭 얼라이브에] 참가한 작가. 되게 웃겼음.
과연...마코땅과 블랙잭21의 제작진은, 블랙잭 팬이라면 원작에 감화되어 비폭력주의, 생명존중적 노선을 타서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없는 것을 인지한 위에, 재생산의 길이 거의 끊긴 오래된 작품의 팬이므로 [주인공이 움직인다]는 매력 때문에, 내용이 블랙홀로 가든 버뮤다 삼각지로 가든, 썩어도 준치라고 주인공이 풀컬러로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울며 겨자 먹기로 볼 수밖에 없는 약점까지 이용해서, 안전한 안티질과 동시에 보장된 시청률과 수익을 만족시키는 비열하면서도 무시무시하게 사악하고 지능적인
어쨌든 법치 민주 자본주의 사회적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대처법이란.......
냉정히 말하자면, 한국에 사는 팬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단 공식적으로 수입되서 국내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다른 말로 법적으로 엄격하게 따지자면 봐서는 안되는 물건이죠. 그러니, 그것을 가지고 제작사에서 대놓고 항의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없는 것입니다. 혹시 블랙잭 TV판이 국내에 수입되서 방영중이라면 얘기는 다르겠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는 번역, 더빙작업 때문에 일본 내의 방영분과는 까마득히 차이가 나서 실시간 항의가 불가능할 겁니다.
물론 만약 블랙잭21이 한국 드라마였다면, 진작에 분노한 팬들의 미칠듯한 게시판 테러질로 제작사가 싫어도 노선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전반적으로는 그런 식의, 시청자에게 과도하게 휘둘리는 현상은 좋게 보지 않습니다만, 때로는 항의할 데서조차 좀처럼 목소리를 안 내는 일본 시청자들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점잖은 항의글이 홈페이지에 올라와도, 바로 삭제된다는군요. 이럴 때는 같은 글을 잔뜩 올린다던가, [새로고침] 버튼의 반복질을 통한 온라인 테러질이 있습니다만, 이건 제작사가 피해자 시늉을 하면 공적인 영역에서는 팬들이 맛이 간 온라인 테러리스트 취급이나 받고, 역으로 제작사에게는 더더욱 막나갈 면죄부를 주는 것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뒤집힐지 몰라도 분쟁 자체를 안좋게 보는 일본에선 안 그럴 겁니다.) 그리고 게시판 즘이야 얼마든지 닫아버리면 되고, 온라인 항의가 빗발친다고 내용 자체를 수정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 대신 가장 단순하고 뻔하지만, 동시에 사회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어마어마하게 효과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단, 그 해결의 열쇠는 일본 시청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공식적인 [향유층]이자 [소비자]이니까요.
영화든, 게임이든, 모피코트든 기타등등의 상품이나 단체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면, 그 반대 의사를 어떻게 표현할까요?
바로 [사지 않는 것]입니다.
이익이 최고인 사본주의 시스템에서, [사지 않는 것], 다른 말로 [팔리지 않는 것]만큼 치명적인 결정타는 없습니다.
과자 회사도 안 팔리니까 문제시 되는 첨가물을 빼고 난리를 친 것이지요. 꼴보기 싫은 영화를 극장에서 최대한 빨리 내리는 방법은 당연히 안 보러 가는 것이구요. 어떤 게임 제작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빨리 망(...)해버리기까진 안해도 반성시키고 싶으면, 게임소프트를 안 사주면 되는 것입니다.
TV 프로그램같은 경우는, 시청률이 수익성과 인기의 척도입니다.
간단히 말해 일본 시청자들이 안 봐주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팬이기에 볼 수 없다는 심리와, 팬이기에 볼 수밖에 없다는 심리, 양쪽 다 충분히 남득이 가고, 이해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어느 쪽이 더 많이 작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랑의 방법이 조금 다른 것 뿐이지, 보거나 보지 않는다고 사랑이 모자라거나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욕하려고 보게 되는 작품]이 있다는 것도 숙지하고 있고, 내용이야 어쨌든 원작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생동적인 매체로써 되살아나 시각적, 청각적 매력을 제공한다는 매력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으며, 또한 팬으로써 작품 자체의 인기를 유지시키기 위해 본다는 슬픈 충섬심에 대해서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상업 문화는 기본적으로 [인터테인먼트]입니다. 재미든, 지식욕이든, 감동이든 어쨌든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향유자는 그 [즐거움]을 추구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취향이 아니라면 스플레터 호러물을 안 보면 되는 겁니다. 러브 코메디가 싫다면 안 보면 되는 겁니다. 원작을 파괴하고 짓밟고 블랙홀로 보내버리는 번안물이 있다면, 안 보면 되는 것입니다. 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괴로워해야 합니까? 왜 자신을 괴롭히는 애니메이션을 봐야 합니까? 무슨 보기엔 괴롭지만 중대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좌파적 성향의 고발성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말입니다. 시청자는 즐겁게 애니메이션을 볼 권리가 있습니다. 선택의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지 않는 것을 선택하면 되지 않습니까?
즉, 시청 거부 운동이 필요합니다.
나 하나 안 본다고 그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시청 여부와는 상관없다구요? 물론 개개인 몇몇이 안 본다고 그 변화는 크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차차 저런 움직임이 넓게 퍼진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시청률이 눈에 띄게 떨어지면 제작사는 당연히 좀더 시청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에 따라 노선을 크게 수정하거나, 심하면 방송국 측에서 시간대를 옮기거나 아예 조기종영을 시켜버려서 영영 흑역사에 묻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팬으로써는 더 이상 블랙잭 관련 프로젝트가 계속되지 않을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후자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시청률을 유지시키려고 억지로 봐주는 것은 납득할 수 있습니다만, 솔직히 언제까지 감싸주고, 참아줘야 하는 겁니까? 제작사에도 따끔한 일침을 가해야, 정신을 차리지 않겠습니까? 앞으로의 새로운 프로젝트에도 좀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구요? 무엇보다 시청 거부가 중요한 것이, 시청률이 떨어져야 항의와 비판도 먹힙니다. 아무리 불평해봤자 시청률과 DVD 판매율은 안정세라면, 제작사 측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겠습니까? 눈에 두드러지는,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있어야,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와 반성이 있겠지요. 그리고 사람은 웬만큼 배부르고 여유 있으면 잔소리 따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좀 힘들어봐야 남의 충고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지요.
요는, 만약 진정 블랙잭21이든 어떤 TV프로그램에 불만을 품고 있다면, 우선 본격적인 시청 거부 운동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그 위에 항의와, 서명과, DVD 불매운동 등의 활동이 바야흐로 빛을 보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조용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입니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은, 일본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주어야 의미가 있다는 데에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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