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매파 정책, 역사수정주의, 그리고 국내외 언론을 조정하려는 시도는 일본 국내는 물론 이웃 국가들의 비판자들로부터 격렬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 분노의 일부는 미국의 슈퍼 외교관 조지 F. 케넌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전후 미국 점령기 초기, 이상주의적인 뉴딜 개혁주의자들과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휘하의 우파 지사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의 경제와 사회를 자유화하려는 급진적인 시도를 했다. 그런 변화 중에는 전쟁범죄자 기소, 기업집단 해체, 토지개혁과 노동운동 양성도 있었다.
주로 미국 변호사와 공무원들이 초안을 쓴 새로운 헌법은 시민권을 극적으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일본 여성들에게는 역사가 존 다우어가 “현대 헌법 중에 가장 강력한 평등권 조항”이라고 칭할만한 시민권이 주어졌다. (다우어의 퓰리처상 수상작 [패배를 껴안고]는 이 시기를 매우 훌륭하게 다루었다.) 또한 헌법 9조는 맥아더 특유의 호언장담대로 일본을 “태평양의 스위스”로 만들고자 하는 희망 아래 일본을 공식적인 평화주의 국가로 규정했다.
하지만 케넌은 맥아더의 개혁을 전략적 재난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그는 내전으로 갈라진 중국, 황폐해진 채 분열된 유럽, 냉전이 시동하는 시기에 일본이 “태평양 안보 시스템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1947~48년을 시작으로 케넌과 워싱턴에 있는 그의 우군들은 미국의 대일정책을 180도 바꿔놓았다. 전범 재판은 갑작스럽게 끝나버렸고, 공무원들은 파업할 권리를 잃었으며, 미국은 일본의 기업과 수출 산업체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전쟁 전의 보수적인 정치가와 관료들이 복직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위 “빨갱이 사냥”을 통해 2만명이 넘는 좌파 노조원들과 기타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케넌의 “역코스”에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인물 중 하나는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였다. 기시는 1941년 대미 선전포고문에 공동서명한 인물 중 하나였으며 군수성 차관으로써 수백, 수천명의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의 강제징용을 감독했다. 다우어는 기시를 “우수하면서 부도덕하다”고 평했고, 또 다른 미국 점령기 역사가인 마이클 샬러는 기시에게 “미국이 가장 총애하는 전범”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기시는 도쿄 스가모 교도소에서 A급 전쟁범죄 용의로 조사를 받으며 3년간 복역하다가 1948년에 다른 전범 용의자 18명과 함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왔다.
1957년, 기시는 미국이 원조한 자금에 힘입어 총리가 되었다. 샬러에 의하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CIA가 기시와 당시 신생당이었던 자민당의 특정 당원들에게 비밀리에 선거 자금을 지원하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그 대가로 기시는 일본 국민들에게 호응이 좋지 않은 조항은 일부 폐기하면서 미국이 일본내 미군기지를 계속 주둔시킬 권한은 확보하게끔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유도했다. 동시에 기밀 협약으로 미국이 일본을 “경유해” 핵무기를 이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이 조약에 항의한 안보투쟁이 결국 기시의 사임을 이끌었다.)
전후 미국의 가장 큰 전략적 성과가 나토와 최근에 기시의 손자 아베가 개정된 지침을 통해 더욱 강화된 미일 안보관계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초래한 반대 측면에 대해서는 좀처럼 논해지지 않는다. (국가간 무역 긴장 상태를 대할 때 공리를 위해 경제보다 안보를 우선시하는 미국 노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입는 피해는 물론이고) 미국은 케넌의 행동으로 인해 일본을 지금보다 훨씬 활기 있고 격동적인 사회로 만들 수 있었던 경제적, 정치적 개혁을 저해시키고 말았다.
만약 일본의 노조들이 번창할 기회가 있었다면 높은 임금을 지지하여 디플레이션 문제 타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 있다. 미국 대일정책 역코스 시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강력한 권력이 주어졌던 일본 관료체계는 일본 국민의 생활 전반에 대해 현재만큼 강력한 통제권을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여성을 위한 동등기회 보호는 단순한 지면상의 활자를 넘어 실질적으로 기능하여, 아베가 요란하게 허풍 떠는 “우머노믹스” 추진을 할 필요조차 없앴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일본인들은 미국적 기질에 대해 지금보다 더 호의적인 관점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민당은 아마도 이 정도로 장기집권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자민당을 지키기 위해 1990년대 중반까지 CIA의 자금 지원에 관한 문서의 기밀상태 해제를 거부했다. 국무부가 댄 이유는 “다수의 현직 자민당 지도자가 문제의 시기에서부터 활동했다”는 것이었다. 자민당을 지탱하던 견고한 경제적 이해관계는 현재 아베가 절실하다고 주장하는 구조적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자민당, 특히 아베 정권에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 역사를 새로 써야한다고 믿는 당원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베의 내각 관료 중 다수는 전몰자뿐만 아니라 전범마저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옹호하는 집단에 속해 있고, 또한 난징대학살과 일본군에 의해 매춘을 강제당한 여성들의 전시 기술을 부정하려는 일본회의라는 단체와 교류를 하고 있다. 그런 수정주의와 그것을 부정하지 않으려는 아베의 태도는 중국과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강화된 미일 군사 협동관계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만약 국가적 동화보다 권력정치를 믿었던 현실주의자 케넌이 이 상태를 안다면 실망할 것이다. 케넌은 일본에서의 활동을 마샬 플랜과 함께 “정부 소속으로 행했던 가장 의미 있는 기여”라고 여겼다. 케넌의 “태평양 안보 시스템”이 더욱 가까워진 이 때, 아베의 역사적 망상이 그 비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필자와 동의하는지 여부는 넘어가더라도, 적어도 왜 대다수의 오리지널 삼부작 팬들이 프리퀄에 격렬히 반응했는지 자비 없이 잘 정리가 되어있는 글이라서 꽤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왜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가?]
왜냐면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은 오리지널 삼부작만큼 좋은 영화들이 아니었고, 그에 비해 기대치는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워즈 프리퀄은 그 자체만으로 매우 형편없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흔히들 프리퀄이 오리지널 삼부작을 망쳤다고 말하지만, 애초에 오리지널 삼부작이 마련해준 지지층이 없었더라면 프리퀄이 흥행조차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만약 [보이지 않는 위험]이 최초의 스타워즈 영화였다면 스타워즈는 지금쯤 극소수의 팬들이나 기억하는 잊혀진 영화 시리즈가 되었을 것이다.
오리지널 삼부작의 장점 중 하나는 단순한 선악 대결구도다. 다스베이더와 황제는 사악했고, 루크와 그 일행은 악하지 않았으며, 나쁜 놈들은 착한 놈들을 없애려고 전쟁을 일으켰고, 결과는 좋은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프리퀄은 무역분쟁에 대한 내용이었다. 무역분쟁에 관한 좋은 영화가 있다면 하나 대봐라. 인물들이 서성대며 대화하거나 상원회에서 투표하는 장면이 많았고 라이트세이버로 재밌는 일을 하는 장면은 적었다. 한마디로 지루한데다가 더 나쁜 점은 각본이 나쁜데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왕 무역분쟁에 관한 대화를 본다면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톡 쏘는 대사를 주고 받는 장면을 보고 싶다. 처참한 대사를 들으면서 “왜 저 사악한 자본자들은 아시아 억양으로 말하는 거지? 대체 왜 그렇게 설정한 거지?”같은 딴 생각이나 하고 싶지는 않다.
오리지널 삼부작은 영화사에 남을만한 악역을 낳았고 카리스마적인 영웅 캐릭터들과 대립시켰다. 2003년 미국 영화연구소는 역대 가장 위대한 영웅 캐릭터와 악역 캐릭터 순위를 매겼다. 다스베이더는 악역 3위에 올랐고, 한 솔로는 선역 14위, 오비완 케노비는 37위에 올랐다. (원작 삼부작에서 알렉 기네스가 연기한 버전의 오비완) 프리퀄 캐릭터는 당연히 한명도 없었다. 그나마 프리퀄에서 가장 흥미로운 악역이라고 칠 수 있는 다스마울의 출연분량은 15분 남짓이고, 유일하게 흥미로운 선역은 오비완이지만 그마저도 맥그레거가 알렉 기네스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삼부작은 훌륭한 스토리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결말을 주었다. [제다이의 귀환] 후반부에 주인공들은 적의 덫에 걸리고 만다. 한과 레이아는 엔도르에서 붙잡혔고, 함대는 데스스타에 의해 폭발당하기 직전이었으며, 루크는 다크사이드로 넘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주인공들은 지고 있었고, 쉽사리 타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프리퀄의 결말에서는 네 명의 주역들 사이에 매우 길고 지리한 라이트세이버 결투가 있었다. (요다 VS 팰퍼틴, 오비완 VS 아나킨) 그리고 누가 살아남을지는 뻔했다. 긴장감도 박진감도 없고, 프리퀄이 다 끝났다는 안도감만이 있었다.
사실 어떤 추가적 짜증 요소가 없었더라면 끔찍하게 형편없는 대사와, 의미 없는 플롯과, 캐릭터성의 부재 정도는 잊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자자 빙크스는 모든 의미에서 큰 실수였다. 전혀 웃기지도 않았고, 거의 모든 장면에 삽입되는 바람에 더 큰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자자는 다른 인물들이 대화하는 장면 배경에서 덜렁댔고, 똥을 밟고, 방귀를 맞고, 한마디로 최저급의 싸구려 개그 캐릭터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자자에겐 만회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서, 끝까지 용기나 지혜를 드러내는 장면도 없이 그냥 영화 내내 망한 캐릭터였다. 원작 삼부작에는 순수한 개그캐릭터는 필요 없었다. 전개 과정에 직관적인 개그씬을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자는 두 명의 엄청나게 짜증나는 아나킨들과 함께 프리퀄 삼부작 내내 짜증덩어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증오를 일으키기엔 부족하다. 프리퀄은 지루하고 짜증나고 영혼이 없지만, 그런 영화는 수없이 많다. 프리퀄이 미움받아야 하는 이유는 원작 삼부작을 깎아내리기 때문이다. 프리퀄이 나오기 전까지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포스의 다크사이드로 끌려온 선량한 파일럿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아나킨이 징징대고 짜증나는 아이였고 연기 못하는 낭만적인 바보에다가 하필이면 C3PO와 R2D2의 절친을 디자인한 놈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다스베이더는 속죄의 순간이 주어진 악인 중의 악인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폭소가 터질만큼 끔찍한 “안돼애애애ㅐㅐㅐㅐ”라고 외친 가망 없는 루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프리퀄은 그냥 나쁜 영화들이다. 게다가 좋은 영화들을 악화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니 당연히 미움받는 것이다.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 그랜트 더프 경이 카를 마르크스와의 만남에 대해 영국 제 1 왕녀 빅토리아에게 올린 개인 편지
당시 영국 군주(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이자 프로이센 왕세자(독일제국 선포 이후 독일제국 황태자, 즉위 후 독일 황제 프레드릭 3세가 되는)의 아내인 빅토리아 아델라이드 메리 루이사는 영국 정치가 더프에게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을 표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비키"라고 불리던 빅토리아 왕녀는 어릴 때부터 영특하고 지적이었으며 시집 간 독일에서 여자아이들을 위한 고등교육기관과 간호사 학교를 설립하고 예술과 교육을 후원하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있어 아들 빌헬름 2세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빅토리아 왕녀는 당시 여론을 들끓게 했던 마르크스에도 흥미를 가졌던 듯 합니다.
이에 따라 더프는 1879년 1월 31일 데본셔 클럽에서 마르크스와 만나 바로 다음날 왕녀에게 편지로 보고를 올렸습니다. 더프는 회고록에 수신자에 대한 내용은 전부 삭제한 이 편지의 일부를 삽입했습니다. (1873-1881년 일기의 기록들)
이 편지의 전문은 1949년 7월 15일자 타임즈지 문예부록에 A. 로스슈타인의 "카를 마르크스와의 만남"에서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편지 전문:
1879년 2월 1일
마담,
제가 근래에 황태자비 전하를 뵐 영광을 누렸을 때 전하께서는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호기심을 비치시며 그를 아느냐고 여쭈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마르크스와 교제할 기회를 가지고자 하였으나, 그 기회는 어제 오찬 때에 그를 만나 세 시간을 함께 보내기 전까지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는 단신에 다소 작은 몸집이고, 회색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아직 검은 콧수염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었으며, 얼굴은 둥근 편이고 이마는 잘 생겼습니다. 눈빛은 다소 엄혹하나 전체적인 인상은 호감이 가는 편으로, 경찰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람 속의 아기를 잡아먹을만한 신사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매우 박식한, 아니 조예가 깊은 인물로, 고대 슬라브어를 비롯한 변두리 학문을 향한 관심의 계기였던 비교문법에 더 흥미가 많았습니다. 화제는 기발한 방향으로 틀기도 하고 종종 드러나는 메마른 유머감각이 다채로움을 더했는데, 가령 헤제키엘의 비스마르크 공에 대한 책을 언급할 때에는 부슈 박사의 책과 비교하면 마치 구약성서인 것처럼 말할 때 그러하였습니다. [G. 헤제키엘의 1869년 저서 <Das Buch vom Grafen Bismarck>를 의미]
전체적으로 별다른 열정은 드러나지 않는, 매우 현실적이고 다소 냉소적이면서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마르크스가 과거나 현재에 관해서 말할 때에는 매우 정확한 고찰을 보이지만, 미래에 관해서는 막연하고 불충분한 내용을 말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타당한 근거를 이유로 러시아에서 멀지 않은 기간 내에 큰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위에서부터의 개혁이 원인으로, 오래되고 부패한 체제가 견디지 못해 전체적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체제를 대신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생각이 없었고, 단지 러시아는 오랫동안 유럽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다음에는 그 운동이 독일에도 퍼져 현 군사제도에 대한 반란의 형태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하지만 어떻게 군대가 사령부에게 반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마르크스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군대와 국가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잊으셨군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회주의자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훈련된 병사입니다. 군대라고 했을 때 상비군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군(Landwehr)도 고려해야 합니다. 상비군 내에도 많은 불만이 쌓여있고요. 가혹한 규율로 인한 자살율이 이렇게나높았던 군대는 없었습니다. 자신을 쏘는 지점에서 상관을 쏘는 단계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으며, 한 번 그런 선례가 생기면 같은 일이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유럽의 지도자들이 다 함께 군비감축에 협의하여 국민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면, 당신이 어느 날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혁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르크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하지만 지도자들은 그렇게 못합니다. 온갖 두려움과 질투 때문에 불가능하지요. 인민의 부담은 점점 심해질 것이며, 과학의 발전이 전쟁기술을 촉진하고 발달시킴에 따라 매년 더 많은 이들이 전쟁이라는 값비싼 엔진에 동원될 것입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입니다." 저는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진정 막대하게 비참한 상황이 아닌 한 본격적인 민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마르크스는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난 5년 동안 독일이 얼마나 큰 위기를 겪고 있는지 전혀 모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혁명이 일어나서 원하는대로 공화정 정부를 설립했다고 칩시다. 그래도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이 말하는 특유의 사상이 실현되기에는 요원하지 않습니까?" 마르크스는 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움직임은 느립니다. 영국의 1688년 혁명처럼 더 나은 시대를 위한 발판에 불과합니다. 먼 길의 중간단계일 뿐이죠."
이상의 내용으로 전하께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유럽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알려드릴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지당히 위험한 광적인 군비지출 상황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면, 마르크스의 생각은 위험이 되기에는 너무나 몽상적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다음 10년 안에 유럽의 지도자들이 이 악순환을 해결해 문제의 혁명을 막지 못한다면, 저는 적어도 이 대륙의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는 절망할 것입니다.
카를 마르크스는대화 도중에 몇 번이고 황태자비 전하와 황태자 전하에 대해 경의와 예의를 갖추고 말했습니다. 특정 저명인사들에 대해 경의를 갖추지 않고 말할 때에도 날카롭고 톡 쏘는 비판은 풍부할지언정 마라(역주: 프랑스 혁명의 장-폴 마라) 식의 격하고 야만적인 느낌은 없었습니다.
인터네셔널 운동과 관련된 끔찍한 사건들에 관해서는 여느 점잖은 사람과 같은 견해를 보였습니다.
또한 혁명과 연관된 망명자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시사해주는 일화도 언급했습니다. 그 몹쓸 노빌링(역주: 빌헬름 1세를 암살할 의도로 습격한 카를 노빌링)이 영국에 있었을 때 마르크스를 만나고자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저를 만나러 왔다면 기꺼이 맞아주었을 겁니다. 노빌링은 드레스덴 통계국 직원이라는 명함을 내밀었을 것이고 제 관심분야도 통계니 매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테지요. 만났더라면 참으로 즐거운 입장이었을텐데!"
마르크스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말씀드리자면 비록 저와 견해는 정반대지만 전혀 불쾌감을 주지 않았으며, 다음에도 기꺼이 다시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을 거꾸로 뒤집을 위인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각지에서 수많은 상을 받고 평단의 극찬을 받은 <액트 오브 킬링>은 학살자가 학살을 재연하는 다큐멘터리의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인터뷰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1965~1966년 인도네시아 학살의 가해자 중 한명인 안와르 콩고는 다큐멘터리 제작자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요청에 따라 친지들을 모아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연극적으로 재연합니다. 학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현재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2회 상영했고 마지막으로 7월 26일 상영한다고 합니다.
[번역] 조슈아 오펜하이머: “학살을 미화하는 이유는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보고 싶지 않기 때문”
조슈아 오펜하이머: “학살을 미화하는 이유는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1960년대 학살의 생존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그런데 결국은 학살자들을 촬영하며 그들과 친해지기까지 했다. 그 결과물은 올해 최고의 영화로 각광받는 <액트 오브 킬링>이다.
안와르 콩고는 자신이 사람을 어떻게 죽였는지 보여준다. 다음에는 차차차 춤을 춘다. 처음에는 구타해서 죽였지만, 피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비린내가 말이 아니었죠.”) 그래서 친구에게 앉아보라고 하고, 전선 한쪽 끝을 기둥에 묶고, 반대편을 친구의 목에 감고 당기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 하는 거죠!”
안와르는 아직도 자신이 한 짓에 대한 악몽을 꾼다. 술, 마리화나, 엑스타시를 하며 잊으려고 한다. 그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안와르의 친구는 미소 지으며 말한다. “참 유쾌한 분이에요.”
1965년 인도네시아 쿠데타로부터 1년 뒤,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 (실제로는 군에게 적대적인 인물 전반 및 화교, 지식인, 노동조합원 등)”로써 살해당했다. 안와르는 개구리 부대라는 학살자 집단의 두목이었는데, 몸소 1000여명을 살해했다. 안와르는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과거의 범죄를 극적으로 각색할 무대를, 즉 학살의 주인공 역할을 자랑할 기회를 마련해준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의 주인공이다.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10년 전에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며 이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존자 한 명의 권유로 카메라를 가해자들에게 돌리게 되자, 가해자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들 입장에서 역사를 말하려는 것을 알았다. 학살자들은 수십년간 서로에게 반복해온 이야기, 즉 자신들이 지배계급이므로 그 행위는 영웅적이라는 버전의 이야기를 채용했다.
안와르같은 폭력배에게 있어서 오펜하이머는 “아름다운 가족영화”를 만들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성공담을 기념하는 영화를 말이다.
“그들은 과거에 저지른 행위의 현실로부터 절박하게 도망치려고 합니다.” 현재 코펜하겐에 거주중인 38세의 하버드 졸업생 오펜하이머는 말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거울 속의 살인자와 마주보고 싶지 않으니까 학살을 미화합니다. 피해자들이 반론하지 못하도록 계속 억압합니다. 그 정당화 - 기념행위 - 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작 반성의 부재보다 살인자의 양심이 해체되는 순간을 보게 됩니다. ‘반성의 부재’로 보이는 증상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인간성의 상징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오펜하이머의 영화인만큼 안와르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 취향은 서부극에서 갱스터 스릴러와 엘비스 프레슬리 뮤지컬에까지 이른다. 쿠데타 전의 사회주의 대통령 수카르노 연정 하에서 보이콧 당하던 미국적인 영화들이다. 재연된 학살극에는 끔찍하게 화려하고 기괴한 캠프함이 있다. 한 장면에서는 안와르의 피해자의 딸이 자기 아버지의 간을 안와르에게 강제로 먹인다. 안와르는 자기 자신을, 그의 절친한 친구 헤르만은 피해자의 딸을 연기한다. 헤르만은 통통한 아마추어 배우로, 빨간색과 금색의 반짝이 배꼽티, 짙은 아이라이너, 거대한 머리장식으로 치장했다. (오펜하이머에 의하면 “분장 아티스트 겸 의상 디자이너가 가수 디바인을 참 좋아해서”라고 한다) 헤르만은 키득거리고 비명을 지르며 안와르의 입에 고기를 밀어 넣는다. 오펜하이머는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폭력배들이 필요한 것들을 전부 제공한다. 이 보기 거북한 재연극의 몽타쥬와 고백적이고 정치적인 폭로극은 다큐멘터리의 대부이자 본 작품의 총책임 프로듀서를 담당한 베르너 헤어조크와 에롤 모리스의 관심은 물론, 전세계 평론가들을 압도하며 사로잡았다.
안와르가 과거의 악몽을 꾸듯이, 오펜하이머도 악몽을 꾸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가 점차 사랑하는 사람이 고문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변해갔다.”) 오펜하이머는 너무나 오랜 시간을 안와르와 보낸 나머지 안와르의 세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수 천명의 사람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괴물은 달달한 차를 내주고, 클리프 리처드 레코드를 틀고, 손주들에게 다친 동물을 보살피는 법을 가르치는 말쑥한 신사이기도 하다.
이 불협화음은 영화는 불편하게 만든다. 관객으로 하여금 학살자를 이해하도록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는 말한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내서 사전에 방지하려면, 어딘가에 괴물이 있으니 경계하고 그것을 가두거나 죽이거나 수용소에 넣으면 해결된다는 식의 판타지를 버려야 합니다.”
“누군가를 악당이라고 부르면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위안하게 됩니다. 자신을 미화하는 거죠. 나는 이것을 ‘스타워즈 윤리관’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런 윤리관은 많은 이야기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여전히 안와르와 연락을 한다. 두 사람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스카이프로 대화를 나눈다.
오펜하이머는 말한다. “나는 안와르에게 마음을 씁니다. 우리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나는 심판받지 않은 정권을 생존자들을 위해 폭로하려고 했습니다. 한편 안와르는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자기 트라우마를 보호할 영상적이고 정신적인 상처조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나는 그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같은 인간을 향한 애정은 느낍니다.”
2월 22일은 일본에서 고양이의 날입니다. 일본에서는 숫자 2를 “니”라고 읽는데, “니 니 니”하면 고양이의 울음소리인 “냐- 냐- 냐-”와 비슷하다고 그렇게 붙었습니다. 참고로 한국 고양이의 날은 9월 9일이고, 미국은 10월 29일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고양이의 날 중 하나를 맞아서 고양이에 대한 옛 아일랜드어 시를 하나 올려봅니다. 아일랜드어를 몰라서 영어로 번역한 것을 번역한 중역이라 본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될 수 있음을 유의하고 읽어주세요.
판구르 반
판구르야, 하얀 판구르야,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학자와 고양이 단 둘이서 함께
매일매일 주어진 일이 있으니
너는 사냥을 하고, 나는 공부를 하네
너의 빛나는 눈은 벽을 지켜보고
나의 허약한 눈은 책에 묶여 있네.
네가 기뻐할 때는 그 발톱이 쥐를 옭아맬 때
내가 기뻐할 때는 생각 끝에 문제를 풀어낼 때
각자 자기 일 즐기며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니
우리 이렇게 지루함도 시기도 없이 살아가네
이 <판구르 반 (Pangur Bán)>이라는 시는 라이헤나우 수도원에서 발견된 문서 Reichenau Primer 중에 발견된, 필사하던 수도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쓴 것입니다. “반”은 아일랜드어로 하얗다는 뜻이고 판구르는 당시에 고양이에게 자주 붙였던 이름이라고 하네요. (우리식으로 “나비” 정도?) 그래서 저자의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로 추정됩니다.
판구르 반은 사실 문서 귀퉁이의 낙서에 불과한 위치에 있어서, 오랜 기간 묻혀 있다가 1903년 켈트어 학자 위틀리 스톡스 Whitley Stokes 와 존 스트라챈 John Strachan이 공저한 아일랜드 고문서 모음집 <Thesaurus Palaeohibernicus>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시인 로빈 플라워와 W. H. 오번 등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사실 로빈 플라워의 번역이 더 유명한 것 같지만 오번 쪽이 더 짧아서 편리해서 그 쪽을 번역...한 것만은 아니고, 짧은만큼 번역자의 해석과 개입이 적은 편일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일랜드어를 모르니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구글신에게 정확한 번역이 어느 쪽인지에 대해 물어봤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저기 왼쪽 하단이라는데 무식해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흑흑;
아무튼 그 옛날에도 고양이가 인간의 일을 방해했다는 이런 증거나 이런 증거가 남아있긴 해도, 이 시를 쓴 수도사의 경우처럼 결국은 귀여움을 받았으니까 곁에 둔 것이겠지요. 특히 가족 없이 속세에서 떨어져 엄격한 수도원 생활 속에서 필사에 매진하던 수도사에게는 큰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쥐를 퇴치하기 위한 실용적 기능도 충실했고, 실제로 많은 수도원과 수녀원에서 그 목적으로 고양이를 기르기도 했죠.
쥐잡이(...)
결론은 <판구르 반>은 인터넷에 넘치는 팔불출 고양이 주인의 오글거리는 고양이 숭배질이 인터넷 이전에도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 주인들의 팔불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군요.
폰카가 없어서 타페스트리로 짜냄.jpg
출처: Pangur Ban 위키피디아 페이지 http://en.wikipedia.org/wiki/Pangur_B%C3%A1n
Pangur Ban MSS Still in Existence? http://suburbanbanshee.wordpress.com/2009/05/17/pangur-ban-mss-still-in-existence/
Reichenauer Schulheft - Reichenau Primer http://hildegard.tristram.de/schulheft/
댓츠 게이That's Gay는 미국 방송사 Current에서 방영하는 3분짜리 프로입니다.
미국내의 동성애 이슈 및 미디어의 동성애자를 묘사한 방법에 대해서 풍자적으로 다루는 프로이며, 제작과 진행을 맡은 브라이언 사피 특유의 비꼬면서도 유쾌한 진행방식이 재밌습니다. 한국에서 번역된 건 죠니 위어(를 비웃는 피겨스케이팅계를 풍자하는) 편 정도밖에 없는 것 같던데, 한국 MC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비꼬는 어법을 써서 정말로 죠니 위어와 피겨스케이팅을 디스한다고 잘 못 받아들인 분들이 있는데...그게 유머 포인트입니다^^;
미드와 리얼리티 프로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미드 팬들도 재밌게 볼 것 같고, 미국 대중문화가 동성애자를 어떤 식으로 소비하는지 궁금하신 분에게도 참고가 될 듯 하여 번역해 봅니다.
일단은 남자 동성애자를 소비하는 예로 [게이 절친]에 대한 것,
또한 여자 동성애자를 소비하는 예인 [여자끼리 키스하기]부터 올립니다.
사실 미국 대중문화에서는 내내 후자 쪽이 압도적이었죠^^; 일본이나 간혹 한국 방송에서 여성향적인 동성애 요소를 넣는 것과 비슷하게...아니 그보다 더 노골적이고 성적인 방식으로 레즈비언을 소비해 왔습니다. 포르노에도 많이 활용되는 소재고, 사실 그런 이미지가 주류문화로 흘러나와서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것이죠.
물론 게이 절친도 딱히 덜 성적이라고 더 바람직하진 않지만요(...) 사실 아동, 외국인, 장애인, 빈곤층, 동물 등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대단히 편리한" 설정과 동성애자에 대한 자리매김도 비슷한 곳이 많아서 좀 불편하죠.
엄청 포스팅 안했다가 이제야 하는 게 이런 거(...)지만 쌓아놓고 비공개한 글들 차근차근 올릴 생각입니다^^:
켈트풍의 발라드(물론 신승훈 발라드가 아니라 민요라는 의미의) The Bonny Swans입니다.
캐나다의 저명한 켈틱+월드뮤직 싱어송라이터 로리나 맥케닛의 앨범 The mask and the mirror에 수록.
본가나 집구석 어딘가에 시디가 있긴 할텐데 마침 유투브에 있으니 이쪽으로 올립니다.
어쨌든 포스팅에서 말하고 싶은 건 가사의 내용에 대해서인데...웹에 마음에 드는 번역이 없어서 적당히 끄적끄적.
The Bonny Swans
A farmer there lived in the north country
a hey ho bonny o
And he had daughters one, two, three
The swans swim so bonny o
These daughters they walked by the river's brim
a hey ho bonny o
The eldest pushed the youngest in
The swans swim so bonny o
Oh sister, oh sister, pray lend me your hand
with a hey ho a bonny o
And I will give you house and land
the swans swim so bonny o
I'll give you neither hand nor glove
with a hey ho a bonny o
Unless you give me your own true love
the swans swim so bonny o
Sometimes she sank, sometimes she swam
with a hey ho and a bonny o
Until she came to a miller's dam
the swans swim so bonny o
The miller's daughter, dressed in red
with a hey ho and a bonny o
She went for some water to make some bread
the swans swim so bonny o
Oh father, oh daddy, here swims a swan
with a hey ho and a bonny o
It's very like a gentle woman
the swans swim so bonny o
They placed her on the bank to dry
with a hey ho and a bonny o
There came a harper passing by
the swans swim so bonny o
He made harp pins of her fingers fair
with a hey ho and a bonny o
He made harp strings of her golden hair
the swans swim so bonny o
He made a harp of her breast bone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straight it began to play alone
the swans swim so bonny o
He brought it to her father's hall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there was the court, assembled all
the swans swim so bonny o
He laid the harp upon a stone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straight it began to play lone
the swans swim so bonny o
And there does sit my father the King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yonder sits my mother the Queen
the swans swim so bonny o
And there does sit my brother Hugh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by him William, sweet and true
the swans swim so bonny o
And there does sit my false sister, Anne
with a hey ho and a bonny o
Who drowned me for the sake of a man
the swans swim so bonny o
어여쁜 백조들
북쪽 나라에 한 농부가 살았다네
아 헤이 호 보니 오
농부에겐 딸이 하나, 둘, 셋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딸들이 강가를 거니는데
아 헤이 호 보니 오
큰딸이 막내를 밀어 넣었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언니, 언니, 부디 손을 잡아 주세요
위 헤이 호 보니 오
그러면 집과 땅을 드리겠어요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네게는 손도 장갑도 내주지 않을 테야
위 헤이 호 보니 오
너의 진실된 사랑을 주지 않으면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잠기고 떠오르다 흘러 흘러가
위 헤이 호 보니 오
어느 방앗간 둑에 다다랐지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빨간 치마 입은 방앗간집 딸
위 헤이 호 보니 오
빵 반죽할 물 길으러 왔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아버지, 아버지 백조가 헤엄쳐 오네요
위 헤이 호 보니 오
마치 우아한 여인과도 같아요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그녀를 강둑에 끌어올려 햇볕에 말렸지
위 헤이 호 보니 오
마침 지나가던 하프 악사가 보았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고운 손가락은 하프 핀으로 꽂고
위 헤이 호 보니 오
금빛 머리카락으로 하프줄을 엮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그리고 가슴뼈로 하프를 만드니
위 헤이 호 보니 오
하프가 스스로 노래를 하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악사는 농부의 집으로 하프를 가져갔지
위 헤이 호 보니 오
모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돌 위에 하프를 세워 놓으니
위 헤이 호 보니 오
하프가 스스로 노래를 하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저쪽에 앉아계시는 왕은 내 아버지
아 헤이 호 보니 오
곁에 계신 왕비님은 나의 어머니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저쪽에 앉은 이는 내 오라버니 휴
위 헤이 호 보니 오
그 옆에 윌리엄, 나의 진실된 사랑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그리고 저쪽에 앉은 부정한 언니 앤
위 헤이 호 보니 오
남자 때문에 나를 죽인 누이라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사실 원전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살인극+초자연적 진상규명 및 복수(의 암시) 계열의 익숙한 민화 장르죠. 우리나라의 예를 들자면 콩쥐 팥쥐, 장화홍련전, 아랑의 전설이 유사한 사례가 되겠군요. (그런데 해외의 경우도 그렇지만 살해 피해자가 젊은 여성인 경우가 압도적이군요.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일수도 있지만 역시 성적으로 자극적인 선정성 요소 역시 간과할 수 없군요. 아마도 당시 기준으론 에로구로였겠지요^^) 이런 민화를 민요로 만든 종류를 또한 살인극 발라드murder ballad라고 분류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근친살해 요소와, 피해자의 사체(의 일부)가 진상규명의 단서 혹은 스스로 살인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된다는 점에서 그림동화의 [노래하는 뼈]와도 비슷한 초자연적 진상규명 요소가 더해집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여쁜 백조들The Bonny Swans]의 모티브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국 민요 [두 자매The Twa Sisters]이고, 그 민요의 바리에이션 중에서도 1802년에 작곡된 [몹쓸 언니The Cruel Sister]에 가장 가까운 편입니다. 거기에 로리나 맥케닛이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나 다른 버전의 참고 혹은 자신만의 각색을 더해 작곡한 것이 방금 들으신 [어여쁜 백조들The Bonny Swans]입니다.
[어여쁜 백조들The Bonny Swans]은 일단 스토리 구조는 매우 단순하지만 알고 보면 언급된 등장인물의 수도 많고 디테일도 상세하다보니 조금만 생각해도 태클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닌, 수수께끼 투성이의 서사입니다.
하나하나 따져가 볼까요. (덧붙여 길어지니 차후로 반말체...)
1. 왜 방앗간집 딸은 막내딸의 시체를 백조로 착각했을까?
그만큼 익사체답지 않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익사체였다는 시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처음에는 백조라고 하다가, 다음에는 우아한 여인같다고 (하지만 정말로 여인이라고는 확정하지 않는다...) 하는 것을 보아 멀리서는 백조처럼 보였다가 가까이서 다가오니 여성의 익사체임을 확인했다고도 추정 가능. 내지는 처음에는 좀 리얼한 치정살인극이 후반에 가면 판타지가 되는, 즉 어차피 판타지한 동화의 세계니까 죽은 막내딸이 백조로 부활 내지는 백조의 시체로 변화했을 가능성도 있고 실제로 묘사상 그런 은유법이 많이 채용되기는 하...지만 곧바로 이어서 등장한 악사의 사체훼손 전위예술행위(...)로 이 가능성은 완전히 묵살되고 만다. 손가락뼈, 금발 머리카락, 가슴뼈 등 명백히 인간 신체의 부위로 하프를 만들었다지 않았나.
...즉 어찌되었든 방앗간집 부녀는 인간의 익사체를 끌어내서 널려 말리고 있었다는 결론이 된다.
2. 하프 악사는 어떻게 막내딸의 익사체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였는가?
분명히 막내딸의 익사체를 발견, 획득(...언제까지나 임의의 표현이다)한 것은 방앗간집 부녀였으나, 어째서 지나가던 웬 하프연주가가 그걸 해집어서 하프 따위나 만드는 엄연한 사체훼손 행위를 범할 수가 있는가? 한마디로 어느 시점에서 사체의 소유권이 악사에게로 넘어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일단 가난한 떠돌이 예술가가 돈을 주고 (←특정 직업 무시발언) 샀을 리는 만무하니까 남은 답은 꽤나 뻔하다. 아무리 우아하다지만 엄연한 호모 사피엔스의 익사체를 백조로 착각하고, 보통 시체를 발견하면 신고부터 할 것 같지만 대신에 그냥 양지바른 곳에 말려놓기나 하는 순진무식한 시골사람들이다. 여기서 닳고 닳은 떠돌이가 너희가 죽인 거냐고 겁을 주고, 협박하면 당장 벌벌 떨며 아닌뎁쇼 부디 관가에만은...이러고 저자세로 나오기 쉽다. 그렇게 입막음 댓가로 하프 악사는 신원을 알 수 없는 금발미녀의 사체를 획득했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산산히 해체하여 손가락뼈, 머리카락, 가슴뼈로 하프를 만드는 무척 반인륜적이고 파렴치한 사체훼손 및 사체를 이용한 창작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솔직히 그 정도의 변태면 남은 사체 부위로는 무슨 짓을 했을지 상상하기조차 싫다...
결국 그의 변태행위 덕분에 진상이 밝혀지긴 했지만, 어쩌면 농부는 큰딸보다 이놈부터 족칠지도 모른다.
실제로 가장 오래된 기록된 버전인 [두 자매]의 경우 떠돌이 악사는 아니고 사체를 건진 방앗간 주인이 그 파츠로 하프는 아니고 바이올린을 만드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작 여기서는 마지막 구절이 언니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고발하기는 하지만) 방앗간 주인이 사형에 처해졌다는 내용이므로...사체훼손은 정말 몹쓸 범죄임을 알 수 있다.
3. 농부의 가족이 왕족으로 비유된 이유는?
마지막 구절은 하프의 노래, 즉 살해당한 막내딸의 영혼이 직접 가족들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실 그 전의 구절에도 딸들의 아버지의 집을 저택으로, 모인 가족들(혹은 마을사람들)을 궁중사람들이라는 은유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원전 중에 자매를 왕이나 귀족의 딸로 묘사한 부분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원전을 모르더라도 가사 속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일단 막내딸이 살해당하고 나서 그리운 가족들을 만났으니 부모님을 향해 왕과 왕비라고 일부러 미화하여 높여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점이 추측 가능하나, 그보다 아버지가 농부라고 해도 (농부 무시하지 말자) 상당히 부유한 농가였다는 점도 암시되어 있다. 막내딸이 물에 빠지자 언니에게 집과 땅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상속권을 의미한다. 나중에 보면 아들도 있었다고 나오는데 일반적인 가난한 농가면 장남에게 다 물려주지 딸들 따위는 지참금이나 거덜내는 덤 취급이다. 하지만 이 집안은 가장 어린 막내딸에게마저 고유의 땅과 재산의 분배가 약속되어 있을 정도니 거의 지주 급일지도 모른다.
물론 전형적인 막내딸 편애 아빠라 막내딸에게만 재산을 몰아서 주었고, 그래서 큰언니가 자기를 강물에 빠뜨리니까 재산 때문이라고 즉각 반응한 것일 수도 있지만...
4. 남자형제 휴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이 노래에서 가장 늦게 그리고 생뚱맞게 등장하는 인물, 바로 휴라는 이름의 남자 형제다. (번역은 그냥 오라버니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남동생일 수도 있다.) 분명히 첫 구절에는 딸 셋이라고만 했는데 왜 느닫없이 아들이 등장하는 것인가! 반면 둘째딸은 전혀 언급이 되지 않는 것도 신경이 쓰이나 그것은 5번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고...가장 쉬운 추측은 운율상 하나, 둘, 셋 하고 딸이 셋 있는 것이 편하고, 원래 동화는 삼형제 혹은 삼자매가 기본이라는 불멸의 법칙이 있어서 별 역할은 없지만 어쨌든 둘째딸을 끼워넣었고, 마지막에 내용의 자연스러운 흐름상 둘째딸 옆에 애인이 있다고 하면 더욱 오해의 여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남자형제를 끼워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농부 자식이 딸이 셋만 있다는 말은 없었으니 언급만 안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지는 행방불명된 둘째딸과 연관되어 해결가능한 최선의 방법: 둘째딸과 오빠는 동일인물이었다! (두둥)
실은 둘째딸은 성동일성장애로...여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삶은 한번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어서 본격적으로 성전환을 (옛날이니까 수술은 무리라도 남장, 남자 정체성 취함 등의 사회적 성전환으로) 한 것이다!
즉 여자일 때의 이름은 아마 휴에트...
5. 둘재딸의 행방
바야흐로 이 노래 최고의 미스테리.
초반에, 농부의 딸은 분명 세명이라고 되어 있다. (뮤비를 봐도 세명, 둘째딸은 좀 듣보잡으로 처리됐지만...) 그리고 그 딸들이 강가를 거닐다가 사건(!!!)은 벌어진 것이다. 그냥 복수형의 딸들이니 당사자들 즉 가해자인 큰딸과 피해자인 막내딸만 산보하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맥락의 흐름을 보면 '딸 셋이 있었는데 그 딸들(these daughters)이 강가를 거닐다가...'로 되어 있으니 살인현장에는 사실 둘째딸이라는 제 3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어째서! 둘째딸은 범행을 말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익사해가는 동생을 구하려고 하지도 않은 것인가. 무엇보다 둘째딸은 이후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하프가 된 막내딸이 가족과 연인을 하나하나 지칭하는 장면에서도 왠지 생략(무시?)된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아, 둘째딸의 행방과 소실에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추측해볼 수 있다.
① 둘째딸이 살인에 협조 혹은 방조했을 경우: 이 경우 동기는 둘째딸도 막내딸을 어떤 이유로 미워하고 있었다던가, 내지는 큰딸에게 협박을 당해서라고 추측할 수 있다. 협박의 배경은 큰딸은 사실 상당한 괴력의 소유자라 둘째딸에게 함부로 지껄이면 네년의 목을 분질러 버리겠다고 힘으로 입막음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상속 면을 고려해도 경쟁자가 하나 없어지는 셈이니 살인방조의 동기는 충분하다. 단지 그런 것 치고는 마지막에 하프가 둘째언니도 같이 고발하지 않은 점이 걸린다. 내지는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괘씸죄라는 것인가?! 그 편이 더 불쌍...
② 둘재딸이 살인 자체에 대해 무지했을 경우: 즉 현장 근처에 있었으나 현장 자체에는 없었던 것이다. 즉 큰딸은 둘째딸이 어떤 이유로 자리를 비울 때를 노려(혹은 자리를 비우게 해서) 살인을 범한 것이다. 사실 이쪽이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이 둘재딸은 애초부터 철저한 부외자였을 경우 살인을 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고발당하지도 않은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밖에 마지막에 언급당하지 않은 것도 또 마침 그 자리에 없었다는 왠지 묘하게 중요한 사건은 비껴나가는 천상 단역성질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것도 왠지 안습이지만 다음 가능성에 비하면...
③ 둘째딸도 살해당했을 경우(!): 그렇다. 증거인멸을 위해 목격자인 둘째딸도 함께 살해당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등장하지 않은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 그런데 왜 둘재딸의 사체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서 악기가 되어 진상규명을 하지 않았냐고? 불행히도 (사실은 당연하게도) 둘째딸의 사체는 절대 우아한 백조처럼 착각될 여지도 없이 리얼하게 흉하고 생전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익사체였을 것이다. 후에 누군가에게 발견되었어도 어딘가 적당히 묻히고 말았지 (내지는 또 흘려 보내지거나...) 해체해서 악기로 만들고 싶었을 정도의 욕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 죽고 나서 진상규명을 하고 싶어도 이쁜 것들이 더 유리하다는 동화적 판타지이기에 더욱더 강화된 잔인한 현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④ 둘째딸의 완전범죄: 범행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용의자 명단에 올려놓아야 하는 이들은 그 범행으로 인해 이익을 많이 보게 될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막내딸은 죽고 큰딸은 아마도 살인죄로 잡혀들어가 단죄될 것이니, 재산 그리고 어쩌면 남자를 차지할 딸은 오로지 둘째딸 하나 뿐인 것이다. 하지만 분명 막내딸의 초자연적 힘과 노래의 서사를 보면 어쨌든 가해자이자 살인자는 큰딸인 것임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둘째딸은 더 거대한 음모를...즉 모든 것, 즉 큰딸의 질투, 그로 인한 치정살인, 진범 규명, 큰딸에 대한 의절과 처벌...어쩌면 기실 모든 것의 원흉인 막내딸의 연인, 윌리엄의 존재마저 재산을 독차지하려는 둘째딸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애당초 윌리엄과 한통속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원전 민요의 버전 중 몇가지를 보면 큰딸의 질투를 유발한 원인이 남자의 태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큰딸에게 선물을 바치며 구혼하였으나, 그의 사랑은 막내딸에게 향해 있었다'라니 어디 이런 베라처먹을 남정네가 다 있나! 하지만 애초에 둘째딸과 공모한 공범이었다는 설정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함께 같은 집안에서 자매로 자랐으니 큰딸이 질투심이 강하다던가 막내딸에게 콤플렉스가 있는 것 등 성격도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며, 어쩌면 은근히 살인을 부추키거나 일부러 살인이 벌어지기 쉬운 현장을 조성해 주었을수도 있다. 결국 이렇게 둘째딸은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완전범죄를 일으켰다. 물론 아마도 막내딸이 설마 악기가 되서 스스로 진상규명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아마 때를 봐서 자신이 살인을 목격했다고, 지금까지 큰언니에게 협박당해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라고 증언을 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프가 된 막내딸마저 이 사실을 몰랐으니 그야말로 귀신도 모르게 이루어낸 완전범죄가 아닐 수 없다. 무서운 아이...
2008년에 아키타현이 [모에계 미소녀 일러스트]가 패키지에 그려진 쌀을 발매해 화제가 되었다. 이번에는 니이가타현이 [부녀자]나 [역녀(歴女)] 대상의 [훈남 무장 패키지] 쌀을 발매해 화제가 되고 있다.
아키타현 우고마치의 [모에쌀]을 참고
무장 팬이라면 참을 수 없다? 니이가타현 카모시에서 쌀 판매를 다루는 [카모 유기농 쌀]은 2009년 4월 29일, 니이가타현의 전국시대 무장, 나오에 카네츠구를 애니메이션풍으로 그린 일러스트 패키지를 채용한 쌀 [니이가타현 코시히카리 ~나오에 카네츠구 패키지~]를 발매했다. 카네츠구의 트레이드 마크인 [愛]자가 장식된 투구를 든 미남이 한손으로는 주먹밥을 들고 있는 이 패키지는 기존에는 없던 강렬한 임팩트를 지니고 있다.
[훈남쌀]을 기획한 이시즈키 타쿠마씨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나오에 카네츠구가 주인공인 대하드라마 [천지인]이 한창 뜨고 있으니까, 저희 회사도 뭔가 해볼까 생각하다가 작년 화제가 되었던 아키타현 우고마치의 애니메이션풍 패키지의 성공사례를 떠올려 참고했습니다.]
일러스트는 [전국 바사라] 시리즈의 인기작가
원화 일러스트는 니이가타현 출신의 만화가, 쿠오리 치마키씨가 그렸다. 쿠오리씨는 일본의 역사 여성팬, 속칭 [역녀]를 대량으로 낳은 계기를 제공한 게임 [전국 바사라] 시리즈의 오피셜 코믹스 등을 그린 인기작가.
[쿠오리씨는 니이가타현에서 개최된 동인지 즉매회 [가타켓]에 출품했던 지인으로부터 올해 2월에 소개받았습니다. 마침 고향도 저희 회사 근처이시고, 일러스트를 부탁드리니 쾌히 승락해 주셨습니다.] (이시즈키씨)
실제로 목표하는 고객도 [부녀자]나 [역녀]라는 젊은 여성이라고 한다.
[저를 포함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쌀을 잘 안먹죠. 그런 분들에게 이런 특이한 패키지가 쌀을 먹을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라고 이시즈키씨는 [훈남무장쌀]에 기대를 걸고 있다.
가격은 10kg 패키지가 5500엔, 5kg 패키지가 3200엔으로 부록으로 클리어파일이 딸려온다. 덧붙여 목표 매출은 월간 4톤. 5kg 패키지 800개라는 계산이다. 주문은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에치고 농원] 및 [yahoo 쇼핑], [au 쇼핑몰] 등 쇼핑사이트에서 가능하다.
---카를로스 사쿠라이---
....그냥 모에쌀을 어설프게 고대로 여성향으로 전환하지는 않고 역덕후 노리기 카드 추가. 제법...
솔직히 지금까지 나온 부녀자 대상 집사 뭐시기 미소년 뭐시기 캐릭터보다는 훨씬 퀄리티가 높은 느낌. (물론 바탕이 이미 성립된 인물이라서도 있지만;;)
역사적 실존인물-위인을 저래도 되냐고 할 수도 있는데 원래 일본은 각트가 우에스기 겐신을 연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지방에서 우에스기 겐신 축제를 할 때 각트를 포스터로 쓰고 초청하기까지 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니이가타 특산미에 니이가타 출신 무장에 니이가타 출신 만화가라니 그야말로 완벽한 니이가타 특산물(...)
...사실 동인녀들은 역학관계란 걸 중시하기 때문에 좀더 완벽하게 하려면 다른 무장도 내놓아야 하지만....
뭐 아키타 코마치도 그랬지만 코시히카리도 쌀 자체부터가 워낙 유명해서 잘 먹힐듯도 함.
그나저나 포스팅꺼리 물어다준 동생이, 문득 [근데 서울 마스코트는 뭐야?]라고 해서 저도 생각해보니 잘 몰라서 검색해 봤더니 이런 것이......존재했던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서울 시민인데도;;
The Comics Journal 269호에 기재된 하기오 모토(萩尾 望都) 인터뷰입니다. 요즘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가 정식으로 출시되면서 하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는 대세를 타는 것...도 있지만 컴퓨터 앞에 내내 붙어있다 보니 괴로워서 조금은 현실도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출저는 일본 교토 세이카 대학교 만화학과에서 강의하는 미국인 인류학자 매트 손(Matt Thorn)의 홈페이지로 인터뷰도 매트 손이 담당했습니다. 사실 이분과도 지인 사이라 웬만하면 허가를 받고 올리고 싶었지만 작년부터 연락이 통 안되고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삭제합니다.
원래 지면에는 인터뷰에 앞서 하기오 모토에 대한 굉장히 상세한 소개가 곁들여져 있는데 너무 길어서 우리나라에는 지식즐이라는 것이 있고 또한 미국과는 달리 하선생님 작품이 최소한 하나 정도는 정판으로 소개되고 있으니 생략합니다. 또한 주석도 일본 만화 및 문화에 익숙하지 않을 미국 독자를 위해 엄청나게 많이 붙어있고 상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국내 실정을 고려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주석의 경우는 대상 독자가 다르니 번역보다는 제가 직접 쓰는 게 효율적일 듯해 그렇게 씁니다. 이미지도 제가 독자가 지겨워서 돌아가시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멋대로 도중도중 끼워 넣은 것으로 원문에는 없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하기오 모토에 대해서 소개를 하자면 1949년 5월 12일생으로 황소자리 O형입니다. 모토라는 독특한 이름은 의외로 본명(!)으로 클래식을 좋아하던 부친이 모차르트의 ‘모’와 ‘트(일본어로는 ‘토’)’를 따서 지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소녀만화에 SF, 판타지, 코메디, 호러, 스릴러, 소년애 등 다양한 장르 및 소재를 접목시켜 치밀한 심리묘사와 탁월한 연출로 일본 소녀만화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입니다. 대표작은 [토마의 심장], [포의 일족], [11인이 있다!], [이구아나 소녀],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외 다수 있습니다. 쇼가쿠칸 (소학관) 만화상,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일본 SF 대상 등의 수상경력이 있습니다.
인터뷰는 2004년 12월 6일, 도쿄 외곽 한노시(市)의 하기오의 (상당히 넓은) 자택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동거인이자 매니져인 죠 아키코도 당시 같이 있어 가끔 발언하기도 합니다. 인터뷰어인 매트 손과 하기오가 같은 세이카 대학에서 강의해 서로 친분이 있는 만큼 상당히 스스름없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매트 손: 그럼 가장 처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하기오 모토: 좋아요.
손: 1949년 5월 12일에 태어나셨으니까, 저와 생일이 같으시네요?
하기오: 맞아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도 5월 12일생이었죠.
손: 후쿠오카현 오오무타 시 출신이시구요.
하기오: 그렇죠.
손: 어린 시절 얘기를 해주질 수 있을까요?
하기오: 네. 어린 시절이라...
손: 아버님께선 광산회사에서 일하셨죠?
하기오: 예. 오오무타는 탄광도시고 화학회사도 몇 개 있죠. 아버지는 석탄과 목재를 수송하던 항구에서 일하셨고, 초등학교 아이들도 전부 동네 점포나 광부의 자식이었어요.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라 한 반에 보통 50명은 되었죠. 한 학년에는 반이 대여섯 개나 있었죠.
손: 상당히 큰 학교였군요.
하기오: 그렇죠. 원래는 2층짜리 목재 건물이었지만 우리 세대를 수용하기 위해 몇 번이고 재건축했어요.
손: 4남매의 둘째셨죠?
하기오: 네. 언니, 저, 여동생, 남동생 이렇게 해서 4남매죠.
손: 형제 분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하기오 웃음]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하기오: 물론이죠. 저희는 좀 모계랄까, 그런 느낌의 가족이었어요. 거의 여자애들만 태어났거든요. 언니는 결혼해서 남매 쌍둥이를 낳았어요. 형부는 후쿠오카현 야나가와 출신이고 지금 언니 부부가 거기서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죠. 여동생도 결혼해서...어디더라? 사이타마 현 끄트머리에 살고 있어요. 딸은 셋이고, 막내는 결혼했지만 첫째와 둘째는 아직 독신이고 직장에 다녀요. 남동생은 컴퓨터 회사에서 일했지만 우울증에 시달려서 2~3년 전에 그만두고 현재는 새의 사진을 찍거나 온천에 가면서 여유 있게 보내요.
손: 그렇군요.
하기오: 그리고 저는 결혼도 안하고 만화만 그리고 있네요. (전원 웃음)
손: 만화와 결혼하신 셈이군요.
하기오: 맞아요. 아, 고양이도 몇 마리 있죠. (전원 웃음)
손: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죠?
하기오: 네, 그림 그리는 게 정말 좋았어요. 종이조각이 있으면 그렸어요. 광고지 뒷면, 포장지, 집안에 늘려 있던 얇은 B4 크기 종이에다 그렸어요. 두 장에 1엔짜리 종이였는데, 어머니에게 달라고 하면 주셨거든요. (웃음) 그러면서 그림 이야기를 그리고 놀았어요.
손: 당시에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두셨죠?
하기오: 일단 모든 아이들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죠. 하지만 저는 좀더 열정적이었어요. 그림이 눈 앞에서 모양을 갖추어가는 과정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선으로 그려진 그림, 만화의 세계요. 만화를 읽기 시작하면서 등장인물들을 좋아하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고, 직접 그려보기도 하고, 제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어요. 놀이긴 했지만 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죠.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만화 전용 공책을 사서 별별 이야기를 다 그려 넣었죠.
하기오: 당시 (일본만화의) 상황을 이해하셔야 해요. 여자애들 만화를 보면 어머니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어머니가 아니고 (웃음), 친어머니는 다른 데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죠. 설정은 다양하게 있었어요. 예를 들면 가난한 아이는 사실 부잣집 아이거나, 부잣집 아이가 사실은 가난한 집에서 입양된 거라든가 말이에요. 그리고 가장 자주 사용된 장치는 기억상실증이었죠. (웃음) 똑같은 장치를 사용하는 한국드라마가 있더군요. 너무 자주 나와서 어쩌면 전쟁과 힘든 사회환경 때문에 사람들이 모든 걸 잊고 싶었던 무의식적인 바램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튼 여주인공은 친어머니를 찾아 떠나지만, 도중에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온갖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되지요.
그 밖에 인기 있던 소재는 발레였어요. 한동안 소녀만화에서 발레가 붐이었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소녀는 발레에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재능 없는 부잣집 딸에게 주역을 빼앗기곤 했지요. (전원 웃음) 뻔한 이야기에서는 못된 여자애와 착한 여주인공이 뻔한 선과 악의 대결을 벌였죠. (전원 웃음)
아주 단순한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마키 미야코나 와타나베 마사코 같은 뛰어난 작가들은 그런 뻔한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그려냈죠. 당시에 소녀만화를 그리던 여성 작가는 7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물론 남자 작가들은 많이 있었지만요. 특히 치바 테츠야의 소녀만화가 매우 좋았어요.
손: 치바의 첫 번째 연재작인 [엄마의 바이올린]도 그런 이야기였죠. 여주인공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어머니를 찾아 다니는 내용이었죠.
하기오: 네, 그리고 어머니는 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기억을 되찾구요.
손: 물론 여주인공은 온갖 고생을 다 하고서야 겨우 어머니와 만나죠.
하기오: 맞아요. 요코야마 미츠테루도 [말괄량이 천사]라는 소녀만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여주인공이 말괄량이였어요. 저는 그렇게 활발한 여주인공이 나오는 스토리가 좋았어요.
손: 하지만 전반적으로 당시 소녀만화 주인공들은 수동적이고 무력하고, 귀엽고 착하기만 했죠.
하기오: 네, 대부분은 그랬죠. 어쨌든 그림을 그리면서 “만화 친구”를 하나 사귀었고, 어느 날 친구가 제대로 된 만화책을 만들어보자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직 중1 학생들이라 정보도 없었고 하는 방법도 몰랐죠. 만화책을 보면 양면인쇄가 되어 있지만, 우리는 종이 양면에 그리면 안된다고 들었거든요. (전원 웃음) 게다가 다 그리고 나서야 칸을 칠 때 자를 대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전원 웃음) 우린 자 안 대고 그냥 그었거든요.
손: 당시에는 만화 작법에 대한 책이 많이 없었나요?
하기오: 네, 거의 없었죠.
손: 데즈카 오사무의 아카혼 판본인 [만화대학 (1950년 혹은 1968년 판본)] 정도였나요?
아카혼(赤本): 조악한 용지에 인쇄된 만화 단행본으로 주로 대여의 형태로 유통됨. 아카혼 출판사들의 대부분은 관서지방의 영세 출판사로 데즈카 오사무도 아카혼 만화를 그렸다. 60년대 만화 판매시장이 대두하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하기오: 네, 그리고 독자작품을 모집하는 아카혼에서 기초를 많이 배웠죠. 먹과 불투명 화이트, 까마귀 깃털펜을 사용할 것, 연필 작품은 보내면 안됨 뭐 이런 거요.
손: 그렇게 해서 배우셨군요.
하기오: 예. 그리고 저희는 원고 원본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된 원고는 어떤 모양일지 궁금했죠. (전원 웃음)
손: 아카혼 만화책을 많이 읽으셨군요?
하기오: 당시에는 서점 외에도 책을 빌려주는 대본소가 많이 있었어요. 5엔이면 한 권을 빌릴 수 있었죠. 그래서 집안 일을 도와주고 용돈으로 5엔 받아서 책을 빌려보곤 했어요. 가장 무서운 책들은 우메즈 카즈오 거였죠. (전원 웃음) 정말로요. 누구한테 우메즈 만화가 좋다고 들어서 빌려봤는데 진짜로 무서웠어요. 그 책은 다른 작가들의 시리즈도 실려서 그 후의 전개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무언가 기분 나쁜 것이 다가온다는 공포를 느끼게 했어요.
하기오: 제 언니가...정확히는 3학년 때부터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교실 구석에 학생들이 읽고 난 낡은 책을 두는 책장이 있었는데 그 중에 만화가 좀 있었죠. 언니는 학년지(학년별로 출시되던 쇼가쿠칸의 학습잡지)를 사보곤 했는데 거기도 만화가 있었어요. 먼 친척이었던 여자분이 서점을 운영하셔서, 새로운 책이 발매될 때면 찾아가서 보여달라고 부탁했죠. 만화를 사는 건 1년에 한, 두번 정도였어요.
손: 정말인가요? 많이 사보진 않으셨군요?
하기오: 어머니가 만화를 싫어하셨거든요. 성적이 오르거나, 아무튼 뭔가 특별한 일이 아니면 허락을 안하셨어요.
손: 어머님이 만화를 싫어하셨군요.
하기오: 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만화를 너무 어려서 글을 못 읽는 어린애들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그분들은 지금도 만화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믿으신답니다.
손: 아니, 아직도요?
하기오: 예. 정말 인간은 한번 심어진 생각을 떨쳐내긴 어려운 것 같아요.
손: 그렇다면 어머님은 하기오 선생님이 만화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죠?
하기오: 무슨 미술선생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웃음)
손: 미술선생이요?
하기오: 아이들에게 과외로 그림을 가르치는 일 있죠? 그런 거라고 생각하세요. 마치 다도나 꽃꽂이 선생처럼요.
손: (웃음) 아니 그 수십년 동안에요? 선생님 작품을 보지는 않으셨구요?
하기오: 물론 보긴 보셨죠. 하지만 만화가를 직업으로는 못 보시는 것 같아요. (손 웃음) 저를 따라 편집부에 가기도 하고, 쇼가쿠칸의 연말 파티에도 오셨고, 제 단행본도 보시고, 작업하는 것도 보셨지만...도저히 이해를 못하세요.
손: 놀랍군요. 많이 힘드셨겠네요.
하기오: 네, 제가 서른이 될 때까지 계속 그런 일 그만두라고 하셨죠.
손: 정말입니까? (웃음) 서른이 되기까지요?
하기오: (웃음) 그나마 그만두신 건 저와 대판 싸웠기 때문이에요.
손: 그렇습니까? 30대에도? 쇼가쿠칸 만화상을 받으셨는데도?
하기오: 아,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어요.
손: 상관이 없었어요?
하기오: 전혀요. 아, 상을 탔을 때는 딸이 상을 탔다며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셨죠. 하지만 바로 돌아서서 만화따윈 관두라고 하셨어요. (웃음)
하기오 모토와 쇼가쿠칸 만화상: 1976년 [포의 일족]과 [11인이 있다!]로 제 21회 쇼가쿠칸 만화상 수상함.
손: 만화를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하라는 말씀이셨죠?
하기오: 좀더 지위가 높은 일이요.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하니 아동문학을 해보라던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일은 어떠냐고 말씀하셨어요. 어머니와 아버지 마음 속에는 만화가는 가장 한심하고 저속한 직업이었고, 제가 언젠가는 그만둘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죠.
손: 어머님은 아직 살아 계신가요?
하기오: 건강히 계시죠.
손: 어머님 연세가?
하기오: 예순일곱 되셨어요.
손: 아버님은요?
하기오: 여든셋이요. 아버지는 젊으셨을 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어서 수년 동안 지도를 받았고 회사 오케스트라에서도 연주하고, 나중엔 학생을 지도하기도 하셨어요. 그래서 아버님 마음 속엔 클래식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절정이고 다른 음악은 엔카든 포크송이든 비틀즈든 쓸모 없는 것이었죠. (전원 웃음) 그래서 부모님은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기준이 뚜렷하세요. 만화는 나쁜 것이구요.
손: 그러니까 부모님은 선생님의 직업을 인정하지 않으신 거군요?
하기오: 그렇지요.
손: 그건 정말 힘드시겠군요.
하기오: 예. 하지만 사람마다 좋고 싫은 게 다 다르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최소한 제 일에 대해서는 입 다물어만 주시면 되는 거죠. (웃음) 그래서 요즘은 그 얘기 안해요.
손: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셨을 때는 특히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요.
하기오: 맞아요. 한동안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죠. 학교에서 친구와 그린 만화를 숨기곤 했어요. 아마 눈치는 채셨겠지만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래도 숨겼지만요.
어느 날 아버지가 제 친구와 만났는데 친구가 우리가 만화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말했어요.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는 놀리면서 친구 말이 사실이냐고 묻더군요. 만약 그렇다고 답하면 설교가 이어질 게 뻔하니까 그건 친구 생각이라고 대꾸했죠. 친구를 배신한 거죠. (웃음) 집에 만화 관련 우편물이 오면 난리가 나니까 전부 친구의 집으로 부치게 해서 받았어요. (웃음)
손: 그때부터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기 시작하셨군요?
하기오: 그래요. 왠지 부모님과 만화책을 생각하면 야단맞던 것밖에 안 떠올라서. (웃음)
손: 그러신가요?
하기오: 유일한 예외는 처음으로 상을 타서 잡지에서 원고의 일부가 실리고 상금을 보내줬을 때였어요. 수표를 어머니께 보여줬더니 놀라시면서 네 만화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거니? 이러시는 거에요. 그 전까지는 내내 그 나이에 그런 헛짓거리 하면 안된다고 설교 들었거든요. 그래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면 하고 싶은 것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고, 만화가들은 페이지당 100엔만 받고 그리니까 그러고 못 산다고 하시는 거 있죠. (전원 웃음) 대체 그런 구체적인 수치는 어디서 들으신 건지. 생각해보니 어떤 인터뷰에서 아주 옛날에는 만화 원고료가 장당 100엔이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아마 어머니도 그 시대에 들었나 보죠. (전원 웃음)
손: 그럼 선생님이 처음 일하셨을 때의 원고료는 어땠습니까?
하기오: 데뷔작은 장당 1200엔이었어요.
손: 장당 1200엔이었군요.
하기오: 그 다음 투고작은 장당 1500엔이었구요. 1974년에 [토마의 심장]을 그릴 때는 장당 3000엔에서 6000엔으로 올라갔어요.
손: 어릴 때 그리셨다는 코이노보리 얘기를 좀 해주세요.
코이노보리(鯉のぼり): 5월 5일 남자아이의 날, 혹은 그 날 장대에 매다는 잉어 모양 깃발.
코이노보리. 이미지 출저: 위키피디아
하기오: (전원 웃음) 예, 그게 실은 저도 잘 기억이 안나요. 그때는 언니와 같이 미술과외를 받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그림 그리는 법을 코이노보리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죠. 아이들은 코이노보리를 그릴 때 장대에서 쭉 뻗어 나온 모양으로 그리지만, 실제로는 바람에 휘날려 조금 꺾어져 있다고, 그러니까 요는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는 거였어요. 숲도 그렇다고, 아이들은 나뭇잎은 녹색, 가지는 갈색 이렇게 칠해버리지만 자세히 보면 더 많은 색깔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아아, 보이는 대로 그리면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죠.
손: 당시 몇 살이셨는데요?
하기오: 1학년이거나 유치원생이었을 거에요.
손: 미술 과외를 하셨군요?
하기오: 예. 언니가 일요일에 수업 들으러 가면 따라갔지요. 서예도 했어요. 당시엔 그런 과외가 흔했거든요. 하지만 서예는 거의 기억이 안나네요.
손: 그래서 학교숙제로 코이노보리를 그려 냈더니, 어른이 그려준 거냐고 했다면서요? (전원 웃음)
하기오: 예, 선생님이 부모님께 그런 얘기를 하셨대요.
소녀문학을 넘어서
손: 어린 시절에 문학을 많이 읽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하기오: 네,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죠. 시작은 학급 문고였어요.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는 운동이 있었거든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토마스 에디슨 같은 유명한 사람들의 위인전기도 있었고, 일본 전래동화도 있었어요. 그런 종류는 빨리 읽을 수 있으니까 금방 읽고 다음 책을 읽을 수 있었죠. 그러다가 5학년 때는 드디어 학교에 제대로 된 도서관이 생겼어요. 정말 기뻤죠. 매일 갔어요.
손: 어떤 종류의 책을 읽으셨죠?
하기오: 진 스트래튼-포터, 루이사 메이 올코트, 루시 모드 몽고메리 같은 미국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비밀의 화원, 빨강머리 앤, 서니브룩 농장의 레베카, 작은 아씨들 등등 주인공 여자애가 이런저런 모험을 하는 전형적인 소녀문학이요. 시리즈로 있었고 전부 다 읽었지요. 그리스 로마 신화 책도 있었죠. [세계의 신화들]이라는 시리즈가 있었는데 그 중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제일 좋았어요.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공상과학 코너도 있었죠.
손: 정말입니까?
하기오: 소년소녀를 위한 공상과학 책이 열두권 남짓 있었어요.
손: 당시 초등학교 치고는 특이한 경우가 아니었나요?
하기오: 특이했죠. 일본고전문학 코너도 있기는 했는데, 토카이도츄히자쿠리게 말고는 하나도 안 읽었어요. 별로 끌리는 게 없었던 거죠. (웃음)
토카이도츄히자쿠리게 (東海道中膝栗毛): 에도시대 작가 짓펜샤 잇쿠(十返舎 一九)가 쓴 골계본(滑稽本)으로 야지로베와 키타하치라는 에도 여행자들의 이세 신궁 여정을 희학적으로 묘사함. 코미디 뮤지컬 영화 [한밤중의 야지 키타]의 모티브가 되기도 함.
손: 그건 왜죠?
하기오: 일단 여성이 나오는 이야기가 거의 없었고, 이야기의 상황 자체가 별로 재미없었어요. 예를 들면 미나모토 일족과 타이라 일족의 전쟁이야기 같은 거요. 물론 역사적 배경을 알면 재미있지만 모를 경우엔, 느닷없이 웬 키요모리라는 사람이 튀어나와서 갑옷을 옷 밑에 숨기려는 장면이 나오는 셈이죠. (전원 웃음) 사전 지식이 없어도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선호했거든요.
손: 그래서 주로 서구문학에 끌리신 거군요?
손: 예. 가끔 일본 아동문학을 읽기는 했지만 설교조였다는 것 외에는 기억이 없네요. (웃음) 그때는 그런 교훈적인 책이 많았던 것 같아요.
손: 그렇다면 서구문학에 끌린 이유는 뭡니까?
하기오: 상상력을 사용하게 만드는 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아, 생각해보니 미야자와 겐지는 정말 좋아했어요.
미야자와 겐지(宮澤 賢治): 1896-1933. [은하철도의 밤], [주문이 많은 요리점], [봄과 아수라] 등의 저서로 유명한 일본의 작가.
손: 그렇군요. 환상적인 이야기를 선호한 편이셨군요.
하기오: 예, 그런 것 같아요.
손: 만화책은 데즈카 작품을 좋아하셨다고 하셨죠?
데즈카 오사무(手塚 治虫): 1928-1989. 일본 만화 및 애니메이션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제작자. 주요 작품은 [철완 아톰], [정글대제 (밀림의 왕자 레오)], [리본의 기사 (사파이어 왕자)], [블랙잭], [불새], [붓다] 외 다수.
이시노모리 쇼타로(石ノ森 章太郎): 1938-1998. 원래는 이시모리 쇼타로(石森 章太郎)로 활동했으나 1986년 이시노모리로 개명. 다양한 장르에 걸쳐 다작을 쏟아냈으며 탁월한 창의력과 기획력으로 만화뿐이 아닌 특촬계에도 중요한 인물. 대표작은 [사이보그 009], [가면라이더], [인조인간 키카이더] [HOTEL] 외 다수.
미즈노 히데코(水野 英子): 1939-. 초기 여성 소녀만화가로 소녀만화계의 개척자 중 하나. 대표작은 [별의 하프], [하얀 트로이카], [파이어!], [하니하니의 멋진 모험] 등.
손: 특히나 인상이 깊었던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하기오: 전부 굉장했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는 데즈카 만화에는 무조건 압도됐어요. 어떤 이야기라도 “굉장해! 어떻게 이런 진행이? 등장인물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러며 감탄했지요. 특히 [철완 아톰]같은 근미래 SF가 그랬어요. 너무 상상력이 풍부했지요.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이야기가 워낙 정교하게 이루어진 덕분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거에요. 반면 이시모리씨는 훨씬 감각적이었죠.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스토리는 탄탄하지 않았죠. 느닷없이 이 에피소드에서 다른 얘기로 훌쩍 넘어가버리고 해서 정신 차리고 보면 “그래서 그 캐릭터는 어떻게 된거지?” 이러거나 “아니? 벌써 끝이야?”하게 되죠. (전원 웃음) 스토리가 대부분 그런 식이었어요. 그래도 임팩트는 굉장했죠.
손: 제 인상은 이시모리는 형태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하기오: 기교죠, 기교.
손: 그래요, 기교. 주제는 2차적인 것이고.
하기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장면을 멋있게 연출할 줄 알았고 강력한 전투 장면을 그려냈죠. 독자를 놀라게 하는 것에 능숙한 작가였어요.
미즈노 히데코는 [별의 하프 (1960)], [안녕하세요, 선생님 (1964)] 그리고 [하얀 트로이카 (1964)]를 그렸죠. 전설이나 유명한 역사적 인물을 다루고 외국에서 영감을 구했어요. 드레스 선이 정말로 아름다웠죠. 몇 번이나 그 선을 베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는 거에요. (전원 웃음)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그려지는 거야?
손: 물론 그때도 [사자에상] 작가인 하세가와 마치코나, 우에다 토시코, 미즈노, 와타나베, 마키...등의 여성 작가들은 있었죠?
사자에상(サザエさん): 여성 작가 하세가와 마치코가 1946년부터 신문에 연재 개시한 일본의 초장수 만화. 애니메이션도 초장수. 조금 드센 주부 후구타 사자에와 그녀의 남편 마스오(데릴사위)를 비롯한 가족,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그려진다. 일본에서는 거의 사회적 신드롬으로 사회학, 가족학, 여성학적으로도 진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헉헉헉....이것도 사실 인터뷰의 5분의 1 정돈데 양이 상당하군요...매트씨 힘들었겠다-_-;
동시대 만화가들의 얘기는 앞으로도 종종 나옵니다. 당시 만화계의 면모를 알 수 있어 재미있지요.
덧붙여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는 단연코 이거 안보면 만화인생 헛살았다 레벨의 걸작입니다. 아직까지 안보신 분은 서점으로 고고씽(...) 서울문화사에서 애장판 5권까지 냈습니다. [토마의 심장]은 언제 나오려나.
호응이 좋으면 파트2가 좀 빨리 오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