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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04 평택 대추리 6
시사2006. 5. 4. 23:47


출저는 한겨레 만평.

만화가 참 절묘하긴 한데 (대통령더러 부르게 하고 싶다-_-;) 기분은 착잡합니다...

사실 블로그에 정치 얘기를 피하는 편이라 쓰지 않았을 뿐이지, 평택 문제는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오늘부턴 그냥 배째라 모드로 나가기로 결정. 어차피 내 블로그인데 뭐...별로 오는 사람도 없고...)

미국과의 갈등, 미군기지 문제, '땅'에 대한 이해관계의 대립, 전략적, '국익적' 목적을 위해 강요된 희생....등등 복잡한 사안들이 얽히고 섥힌 문제였죠.

어쩌면 평택 주민들이 받게 되는 최소 수억원 정도의 보상금을 예로 들며, 그런 돈을 준다는데도 땅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주민들의 행동이 기이해 보일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짠물에 시금치 씻어 먹으며 죽 끓여 먹으며' 일구고 지켜온 땅에 대한 애착...이라는 단어로 말하기에는 차마 부족한 그분들의 심정의 토로를 읽으며, 순간 가슴에 따끔히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네, 머리로도 이해했지만 더 강하게 느낀 것은 가슴 쪽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캐나다 원주민(First Nations People. 소위 인디언이라고 부르기도 함.)의 실태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90년대에 제가 살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을 두고 벌어진 공권력과 원주민들의 대립전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한 대기업이 숲을 밀어내고 그곳에 골프장을 지으려고 하고, 이에 원주민들이 시위하며 격렬히 반대하자, 국가에게 청해 공권력을 투입하게끔 한 것입니다. (사실 한 예일 뿐이지 이런 충돌은 캐나다 어디서나 계속되고 있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회 없다, 이거죠.) 여기서 원주민들이 반대한 이유는 물론 숲이 조상들의 무덤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땅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데, 어떻게 그런 어머니를 갈아엎을 수가 있냐]는 다분히 환경보호주의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무슨 해괴한 뉴에이지같은 소리를 하냐고 물으시겠지만, '땅'에 대한 숭배화, 신성화, 일체화는 그들의 철학과 삶에 있어 정말로 소중하고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쌀과 김치를 먹어야 하고, 이슬람 교도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 만큼 그들에게 있어서 땅은 정말로 생명이자 사람을 포함한 만물, 그 자체입니다. (실제로 원주민 출신 지인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땅이 죽으면 곧 사람도 죽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입니다. 물론 평택의 주민들이 캐나다 원주민들의 신앙을 알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땅을 목숨과도 같이 여긴다는 점, 땅을 떠나서의 삶은 생각치도 못한다는 점은 공통되어 있고, 여기서 저는 가슴을 관통하는 데자뷰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평택과 캐나다의 숲을 건 의지에 비하면 매우, 매우 작고 형편없이 쪼잔한 예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만...

예를 들어, 누가 저에게 10억원을 주고 대신에 평생 그림을 그리지 말고 글도 쓰지 말라고 한다면.

전 그런 10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가족 중 한 사람이 중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서 수술비가 꼭 필요하다느니 하는 극단적인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이것은 언제까지나 평소 상태를 기준으로 함...)

[10억 줄테니 죽을래] 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물론 인간은 밥만으로도 살 수는 있지만...삶의 의지-정열-원동력-생명줄-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 합니다. 그것이 소중한 사람이거나, 어떤 신념이나 취미일지라도요. 심지어 동물도 짝이나 새끼가 죽으면 절망에 빠져 살아가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야 그게 없어도 살기는 살죠. 저도 한때는 자살을 굉장히 어리석다고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전공에서 배우던 주요 학자 중에, 유태인으로 2차 대전 동안 독일군으로부터 숨어 지내다가 마침내는 그 공포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다음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지요. 하지만 어쩌면 당시에는 '절망'-내지는, 생명 그 자체의 원천이 되는, 생명이면서 생명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평택 주민들은 그 소중한 것을 짓밟혔습니다. 다름이 아닌 그들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기관으로부터. 그것도 다른 나라의 군사 기지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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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