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부터 29일까지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유로 영화제가 개최되었죠. 그 중에 3편의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어쩌다보니 다 소위 예술적이라는 국제 영화제에서 상 탄 작품들인데 영화제 영화는 재미없고 지루하다!--라는 편견을 확 깨주는 재미있는 영화 뿐이었습니다. 동시에 주제의식도 있고, 작품성도 있으니 금상첨화!!
그럼 유로영화제 감상문으로 GO GO GO~~ (번거로워서 숨기기는 한동안 방치..)
스포일러는 최소한으로 갑니다~
<더 퀸 (The Queen)>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2006 베니스 영화제 각본상 및 여우주연상 수상작.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605F9384F090F9F0F)
다이아나 전 황태자비의 사망 직후의 영국 왕실을 다룬 영화입니다.
대중에게는 아이돌이자 스타였던 다이아나비였지만, 왕실에서 보면 배은망덕한 천덕꾸러기(...)였죠.
그러나 갑작스럽고 비극적인 사고로 그녀가 죽고 난 후 순식간에 일종의 순교자이자 성녀로 미화되고
이에 당혹스러움과 불쾌함을 느끼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그녀의 일족.
[전통적이고 영국적인] 방식대로 공식 발언 없이 조용히 장례식을 치루려는 여왕이었지만,
대대적인 슬픔에 빠진 대중과 미디어가 그 복잡한 감정을 왕실을 향한 화살로 돌리게 되고
새로 당선된 수상, 토니 블레어는 여론의 안정을 위해 여왕을 설득하기에 나섭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615083A4F090F9F14)
정말 저것뿐인 내용인데도 각본을 워낙 감칠나게 잘 써서 재미있는 영화.
도중도중 실제 뉴스 화면을 써서 리얼리티를 높입니다.
영국 정치와 왕실과의 교차점을 제도적, 실무적인 차원에서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여왕은 투표권이 없다던가, 새로 당선된 총리는 형식적이지만 국왕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던가)
여왕 역으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탄 헬렌 미렌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
왕족으로써의 기품을 유지하고 감정을 억누르는 선 내에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아슬아슬한 밸런스를
여왕 특유의 말투, 제스처, 고개의 각도, 눈빛 등 배우의 철저한 연구와 안목으로 절묘하게 잡아냈습니다.
마치 카쿄인의 레로레로마저 잡아낸 가짜 카쿄인이 생각나는
왕실 가족끼리니까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동시에 가족 간에도 존재하는
견제와 긴장감과 거리감을 시나리오적으로 묘사하고 연기한 것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639CF424F090F9F0D)
마틴 쉰이 연기한 또 하나의 주인공, 토니 블레어. 너무 닮아서 첫 등장시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당시 인기 절정의 노동당 당수였죠. 왕실 반대파인 그 부인이 여왕에게 인사하는 장면은 필견(...)
그 밖에 곳곳에 산재한 유머가 일품입니다. (과연 영화제 관객이라 적절한 데서 웃어주는 것이 감동...)
사실 진정한 숨겨진 조역은 여왕과 총리 사이에 낀 왕실 시종 장관(Lord Chamberlain)입니다만...
정치, 미디어, 대중에 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전부 인간의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에 뛰어난 영화.
결국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다이아나의 국장을 허가하는 여왕의 선택이
사실상 죽은 다이아나의 승리가 아닌 산 여왕의 역전승임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동시에 대중은 바보(....) 및 스타가 최고야...라고 실감하게 되는(...) 하지만 결론은 정치적 생존인 겁니다.
마지막에 잠시 동안이지만 대중에게 심하게 뒤통수를 맞은 여왕에게 [힘드셨죠]라고 위로하는 블레어에게
[언젠가 당신도 당할 겁니다]라고 대꾸해주는 말이...확실히 요즘의 블레어의 지지도를 보면 진리입니다.
왕족이나 다이아나에 대해서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고 객관적으로 잘 뽑아낸 정치 인간사 영화.
영국 왕실 팬들은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왠지 영국에 가서 석가면을 쓰고 WRYYYY 하고 싶어지더군요^^
<르네상스 (Renaissance)>
프랑스, 영국, 룩셈부르크
감독: 크리스티안 볼크만
2006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 수상작.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90B963A4F090F9E19)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부활!--이라며 말이 많았다고 하는 작품.
암울한 미래도시 파리 배경의 SF 느와르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정통 할리우드식 느와르입니다. 우정이 지나쳐 게이물이 되는 조폭 느와르는 아님
사실 [느와르]란 장르도 프랑스 평론가들이 붙여준 이름이니까, 어떤 의미로 프랑스 장르라고 해도 되겠죠.
규정을 무시하는 난폭한 행각으로 악명 높지만 동시에 작전 성공률도 높은 카라스 경감은
도시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거대 기업 아발론의 우수한 연구원, 일로나의 행방을 찾도록 명명받습니다.
대기업의 음모가 밝혀지고 수수께끼의 위험성 높은 연구가 밝혀지고...뭐 내용 자체는 평이합니다.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솔직히 좀 더 꼬거나 과학적 설명을 덧붙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
캐릭터들도 형사에 팜므파탈 계에...전형이지만 애니메이션 스타일이 워낙 파격적이니 의도적일지도?
해외 시장을 노렸는지 대사가 전부 영어라서 모처럼 불어 들을 기회를 놓졌습니다^^;
뭐 그래도 애니메이션 자체가 엄청나게 볼만했으니 상관없지만...왜 볼만했냐 하면.....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017403A4F090F9E11)
흑백 애니메이션인데, 회색 톤 없이 (물이나 유리 등의 질감에만 가끔 나오는 정도) 전부 흑과 백 뿐입니다.
중간 회색톤 없이 흑과 백만으로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있다면 알 수 있습니다. 저게 얼마나 어려운지...
색깔이 두개밖에 없는데 애니메이션이니까 입체감과 유동성을 보여주어야 하고 면적은 수시로 이동합니다.
모션캡처를 하고 만들어진 3D라지만, [음영]에 대한 작화가들의 고충이 느껴지는 비주얼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뿐이 아닌 흑백 일러스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특히 반드시 봐야 할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61C30344F090F9E19)
물론 단순히 음영 뿐이 아닌 카메라 워크와 각도, 연출도 독특하면서 효과적입니다.
그러니까...분명 스타일리쉬하고 할리우드 액션영화틱하기는 한데, 슈웅~정지~360도 회전~슬로우모션~
계열의 매트릭스풍 스타일리쉬 연출 남발은 또 아닌 것이죠.
미래의 파리가 세세한 묘사와 흑백으로 묘하게 클래식하고 예술적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내용적으로는 평이하지만 분명히 안정적이고 완성된 이야기고, 연출이나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를 뛰어넘는
오락 영화이면서 느와르 팬과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이라면 꼭 봐야 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풀 3D 위주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다양성이 보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대상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
감독: 켄 로치
2006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00D7A384F090F9F08)
영화제 시작하기 전에는 예매가 완료되어서 정식 개봉일 이후인 11월에 다른 극장에 예매해 두었지만
(동숭아트센터의 하이퍼텍 나다에서 단관 개봉입니다. 꼭 보시길!!!)
역시...정작 영화제가 시작하니까 자리가 남아서 앞자리지만 예매했고
또한 상영 당일날은 숭숭 뚤린 중간 빈 자리로 이동해 쾌적하게 관람.
하지만 이런 영화는 두 번 봐도 상관 없으니까 오는 주말에 또 보는 예정엔 변함 없습니다.
....제대로 된 리뷰도 그 때로 미루고 싶습니다. 아니, 분명 좋은 영화인데, 마음의 정리가 필요한 종류라서요.
칸느 영화제에서 주목받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1920년 아일랜드 독립 투쟁에 얽힌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본 영화가 영국 왕실에 대한 것이었으니 상당히 아이러니할지도...)
동생 역(왼쪽)이 킬리언 머피. 영국에 직장을 얻어둔 의학도지만, 어떤 계기로 형과 같이 투쟁에 참가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777CD3C4F090FA009)
여자나 아이들마저 IRA 투쟁에 참가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가혹한 식민지 현실이 가차없이 펼쳐집니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나 단순 객기로 영국군에게 두들겨 맞고 죽기까지 하는 청년들은 미화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진심 어린 울분이 단지 어리석고 찌질하다고 치부되지도 않습니다.
자기네들 말인 게일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운동경기조차 [불법 집회]로 간주되어 억압받는 모습은
한국인에게는 일제시대를, 이 영화에 상을 준 서구인에게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모 미국인 평론가 보면 서구인도 체험, 내공, 지식 나름이지만...
또한 식민지, 전쟁, 분단, 게릴라 등 정치적 갈등상황에 대한 감수성과 이해가 부족한 듯한 (사상 이전에 개념이 모자른 것은 태클을 걸 의미가 없...)이런저런 국내외 크리에이터들에겐 꼭 참고자료로 추천하고 싶긴 하지만..
적어도 지루하다는 표현은 영화를 제대로 봤는지 의심스럽더군요.
지루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프니까요.
영화가 진행될수록 객석에서 흐느끼던 관객의 수를 생각해 보면, 비단 저만 느낀 아픔은 아닌 것 같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01D41404F090FA007)
이것이 단순히 절대악 영국군을 퇴치하는 자유의 투사들 영화였다면 덜 아팠을 겁니다.
문제는, 무자비한 영국군의 탄압에 대해 IRA는 더 무자비하게 대항하고,
[집단] 혹은 [국가]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밀고자인 소꿉친구를 처형해야 하고,
같은 IRA 내에서도 각자가 지향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점 때문에 빚어지는 갈등이
여과 없이 담담하게 펼쳐지기에 (내용은 어렵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아픈 영화인 것입니다.
특히 영국이 아일랜드에 대한 부분적 독립을 인정해주자, 현실에 대한 타협과 완전 독립으로 나눠지는
시점에서 폭력의 사슬의 비극성은 절정에 다다릅니다.
[더 퀸]과 같이, 정치적인 상황을 다루지만 인간을 잊지 않기에 훌륭한 영화.
아프지만, 그렇기에 꼭 봐야 하는 영화.
아일랜드의 과거의 정치적 상황을 다루었지만 동시에 범인류적인 감수성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점은,
크리에이터나 크리에이터 지망생들로써도 필견과 공부의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보니 다 소위 예술적이라는 국제 영화제에서 상 탄 작품들인데 영화제 영화는 재미없고 지루하다!--라는 편견을 확 깨주는 재미있는 영화 뿐이었습니다. 동시에 주제의식도 있고, 작품성도 있으니 금상첨화!!
그럼 유로영화제 감상문으로 GO GO GO~~ (번거로워서 숨기기는 한동안 방치..)
스포일러는 최소한으로 갑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2006 베니스 영화제 각본상 및 여우주연상 수상작.
다이아나 전 황태자비의 사망 직후의 영국 왕실을 다룬 영화입니다.
대중에게는 아이돌이자 스타였던 다이아나비였지만, 왕실에서 보면 배은망덕한 천덕꾸러기(...)였죠.
그러나 갑작스럽고 비극적인 사고로 그녀가 죽고 난 후 순식간에 일종의 순교자이자 성녀로 미화되고
이에 당혹스러움과 불쾌함을 느끼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그녀의 일족.
[전통적이고 영국적인] 방식대로 공식 발언 없이 조용히 장례식을 치루려는 여왕이었지만,
대대적인 슬픔에 빠진 대중과 미디어가 그 복잡한 감정을 왕실을 향한 화살로 돌리게 되고
새로 당선된 수상, 토니 블레어는 여론의 안정을 위해 여왕을 설득하기에 나섭니다.
정말 저것뿐인 내용인데도 각본을 워낙 감칠나게 잘 써서 재미있는 영화.
도중도중 실제 뉴스 화면을 써서 리얼리티를 높입니다.
영국 정치와 왕실과의 교차점을 제도적, 실무적인 차원에서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여왕은 투표권이 없다던가, 새로 당선된 총리는 형식적이지만 국왕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던가)
여왕 역으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탄 헬렌 미렌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
왕족으로써의 기품을 유지하고 감정을 억누르는 선 내에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아슬아슬한 밸런스를
여왕 특유의 말투, 제스처, 고개의 각도, 눈빛 등 배우의 철저한 연구와 안목으로 절묘하게 잡아냈습니다.
왕실 가족끼리니까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동시에 가족 간에도 존재하는
견제와 긴장감과 거리감을 시나리오적으로 묘사하고 연기한 것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마틴 쉰이 연기한 또 하나의 주인공, 토니 블레어. 너무 닮아서 첫 등장시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당시 인기 절정의 노동당 당수였죠. 왕실 반대파인 그 부인이 여왕에게 인사하는 장면은 필견(...)
그 밖에 곳곳에 산재한 유머가 일품입니다. (과연 영화제 관객이라 적절한 데서 웃어주는 것이 감동...)
사실 진정한 숨겨진 조역은 여왕과 총리 사이에 낀 왕실 시종 장관(Lord Chamberlain)입니다만...
정치, 미디어, 대중에 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전부 인간의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에 뛰어난 영화.
결국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다이아나의 국장을 허가하는 여왕의 선택이
사실상 죽은 다이아나의 승리가 아닌 산 여왕의 역전승임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동시에 대중은 바보(....) 및 스타가 최고야...라고 실감하게 되는(...) 하지만 결론은 정치적 생존인 겁니다.
마지막에 잠시 동안이지만 대중에게 심하게 뒤통수를 맞은 여왕에게 [힘드셨죠]라고 위로하는 블레어에게
[언젠가 당신도 당할 겁니다]라고 대꾸해주는 말이...확실히 요즘의 블레어의 지지도를 보면 진리입니다.
왕족이나 다이아나에 대해서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고 객관적으로 잘 뽑아낸 정치 인간사 영화.
영국 왕실 팬들은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왠지 영국에 가
<르네상스 (Renaissance)>
프랑스, 영국, 룩셈부르크
감독: 크리스티안 볼크만
2006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 수상작.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부활!--이라며 말이 많았다고 하는 작품.
암울한 미래도시 파리 배경의 SF 느와르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규정을 무시하는 난폭한 행각으로 악명 높지만 동시에 작전 성공률도 높은 카라스 경감은
도시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거대 기업 아발론의 우수한 연구원, 일로나의 행방을 찾도록 명명받습니다.
대기업의 음모가 밝혀지고 수수께끼의 위험성 높은 연구가 밝혀지고...뭐 내용 자체는 평이합니다.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솔직히 좀 더 꼬거나 과학적 설명을 덧붙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
캐릭터들도 형사에 팜므파탈 계에...전형이지만 애니메이션 스타일이 워낙 파격적이니 의도적일지도?
해외 시장을 노렸는지 대사가 전부 영어라서 모처럼 불어 들을 기회를 놓졌습니다^^;
뭐 그래도 애니메이션 자체가 엄청나게 볼만했으니 상관없지만...왜 볼만했냐 하면.....
흑백 애니메이션인데, 회색 톤 없이 (물이나 유리 등의 질감에만 가끔 나오는 정도) 전부 흑과 백 뿐입니다.
중간 회색톤 없이 흑과 백만으로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있다면 알 수 있습니다. 저게 얼마나 어려운지...
색깔이 두개밖에 없는데 애니메이션이니까 입체감과 유동성을 보여주어야 하고 면적은 수시로 이동합니다.
모션캡처를 하고 만들어진 3D라지만, [음영]에 대한 작화가들의 고충이 느껴지는 비주얼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뿐이 아닌 흑백 일러스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특히 반드시 봐야 할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음영 뿐이 아닌 카메라 워크와 각도, 연출도 독특하면서 효과적입니다.
그러니까...분명 스타일리쉬하고 할리우드 액션영화틱하기는 한데, 슈웅~정지~360도 회전~슬로우모션~
계열의 매트릭스풍 스타일리쉬 연출 남발은 또 아닌 것이죠.
미래의 파리가 세세한 묘사와 흑백으로 묘하게 클래식하고 예술적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내용적으로는 평이하지만 분명히 안정적이고 완성된 이야기고, 연출이나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를 뛰어넘는
오락 영화이면서 느와르 팬과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이라면 꼭 봐야 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풀 3D 위주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다양성이 보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대상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
감독: 켄 로치
2006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화제 시작하기 전에는 예매가 완료되어서 정식 개봉일 이후인 11월에 다른 극장에 예매해 두었지만
(동숭아트센터의 하이퍼텍 나다에서 단관 개봉입니다. 꼭 보시길!!!)
역시...정작 영화제가 시작하니까 자리가 남아서 앞자리지만 예매했고
또한 상영 당일날은 숭숭 뚤린 중간 빈 자리로 이동해 쾌적하게 관람.
하지만 이런 영화는 두 번 봐도 상관 없으니까 오는 주말에 또 보는 예정엔 변함 없습니다.
....제대로 된 리뷰도 그 때로 미루고 싶습니다. 아니, 분명 좋은 영화인데, 마음의 정리가 필요한 종류라서요.
칸느 영화제에서 주목받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1920년 아일랜드 독립 투쟁에 얽힌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본 영화가 영국 왕실에 대한 것이었으니 상당히 아이러니할지도...)
동생 역(왼쪽)이 킬리언 머피. 영국에 직장을 얻어둔 의학도지만, 어떤 계기로 형과 같이 투쟁에 참가합니다.
여자나 아이들마저 IRA 투쟁에 참가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가혹한 식민지 현실이 가차없이 펼쳐집니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나 단순 객기로 영국군에게 두들겨 맞고 죽기까지 하는 청년들은 미화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진심 어린 울분이 단지 어리석고 찌질하다고 치부되지도 않습니다.
자기네들 말인 게일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운동경기조차 [불법 집회]로 간주되어 억압받는 모습은
한국인에게는 일제시대를, 이 영화에 상을 준 서구인에게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모 미국인 평론가 보면 서구인도 체험, 내공, 지식 나름이지만...
또한 식민지, 전쟁, 분단, 게릴라 등 정치적 갈등상황에 대한 감수성과 이해가 부족한 듯한 (사상 이전에 개념이 모자른 것은 태클을 걸 의미가 없...)이런저런 국내외 크리에이터들에겐 꼭 참고자료로 추천하고 싶긴 하지만..
적어도 지루하다는 표현은 영화를 제대로 봤는지 의심스럽더군요.
지루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프니까요.
영화가 진행될수록 객석에서 흐느끼던 관객의 수를 생각해 보면, 비단 저만 느낀 아픔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절대악 영국군을 퇴치하는 자유의 투사들 영화였다면 덜 아팠을 겁니다.
문제는, 무자비한 영국군의 탄압에 대해 IRA는 더 무자비하게 대항하고,
[집단] 혹은 [국가]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밀고자인 소꿉친구를 처형해야 하고,
같은 IRA 내에서도 각자가 지향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점 때문에 빚어지는 갈등이
여과 없이 담담하게 펼쳐지기에 (내용은 어렵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아픈 영화인 것입니다.
특히 영국이 아일랜드에 대한 부분적 독립을 인정해주자, 현실에 대한 타협과 완전 독립으로 나눠지는
시점에서 폭력의 사슬의 비극성은 절정에 다다릅니다.
[더 퀸]과 같이, 정치적인 상황을 다루지만 인간을 잊지 않기에 훌륭한 영화.
아프지만, 그렇기에 꼭 봐야 하는 영화.
아일랜드의 과거의 정치적 상황을 다루었지만 동시에 범인류적인 감수성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점은,
크리에이터나 크리에이터 지망생들로써도 필견과 공부의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