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2007. 11. 21. 23:52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다가 실망했던 김성모의 [혐일류].

2005년 나온 이래 폭발적인 베스트셀러로 현재 3권까지 나온 야마노 샤린의 [혐한류]에 대한 김성모식 해답.
그만큼 기대했던 사람들도 많았고, 정작 출간되자 실망하는 사람도 많아 그다지 화제는 되지 못했다.
개념을 초월한 작가에게 진지한 교양만화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고, 단지 [혐한류] 못지않은 졸렬함과 조악함과 치사함을과 무개념성을 보여주며 비슷한 유치한 레벨의 대등한 싸움을 원했것만, 이거 웬걸 김성모는 철저하고 방대한 자료수집, 출저 표기와 함께 나름대로 진지한 교양만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작가 자신의 일본, 일본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하지 못해 타문화를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는 [혐한류]와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그나마 일본 문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궤변은 안 한다. 전여옥이 이미 해서?)
그나마 업적이라면, [혐한류]의 신유샤에 의해 일본어판이 나와, 그것을 읽은 일본인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인 독자들이 [혐한류]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종류의 불쾌감을 제공하는 역지사지적 기능 정도...?
본인을 비롯해 김성모를 알고 있던 많은 독자들은 최소한 노무현과 고이즈미의 스텝밟기 맞짱뜨기 정도는 기대했을 것이고, 그만큼 작가의 답잖은 소심함에 대한 유감과 비난을 퍼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은 그를 변호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혐한류]와 [혐일류]의 가장 크면서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작가에 있다. [혐한류]는 정체가 일체 불명인, 야마노 샤린이라는 가명의 만화가이다. 반면 김성모는 B급 센스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실제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만화가이고 자신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내걸면서 [혐일류]를 그려냈다. 웬만큼 알려진 작가가 본명을 내건 상태에서 그만큼 다루는 주제에 대한 무거움도 배로 느껴졌을 것이다. 야마노 샤린이라는 가명과 출판사의 보호 뒤에서 전쟁 배상문제, 재일 조선/한국인 문제 등의 진지하고 무거운 문제에 대해 무책임하리만큼 경박하고 가볍게 다루는 (그것이 인기 요인이기도 하지만) [혐한류]의 작가와는 근본적으로 출발점부터 틀린 것이다. 그 부작용으로 김성모는 자신의 이름이라는 무거움에 묻혀 작품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지만, 최소한 각 만화 간의 무게의 차이점이란 요소에 대해서는 눈을 뜨게 한다. 위험한 주제를 다루는 모든 작가가 반드시 본명을 내걸어야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고 일본 문화계의 일련의 '우경화 현상'이라는 것의 정체가 얼마나 정치성이 거세된 얄팍하고 자위적인 문화현상인지 입증한다.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진짜 파시스트와 같은 연장선 상에 올려두지는 말아야 한다. 그건 파시스트에 대한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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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