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 [300]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해 토론토 대학교 고대 그리스 역사학과 조교수, 에프라임 라이틀Ephraim Lytle이 쓴 글입니다. 캐나다 일간지 [토론토 스타]에 3월 11일 실렸습니다.
뭐 오락영화 가지고 무슨 왈가왈부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중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서는 유난히 포용적이고 관용적이면서 무의식 중에 일종의 권위를 쥐어주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트로이]만 봤고 [일리아드]를 모른다면, 정말로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의 성벽을 기어 올라갔다고 평생을 착각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이 실제 역사...라고 홍보되고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위험하죠. 물론 저렇게 착각하고 살아도 무식하다는 말은 들을지언정 일상생활에는 별로 지장이 없긴 하지만 전공자나 진상을 아는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신경쓰일 수밖에 없는 법. 게다가 안그래도 세계정세가 흉흉한데 아무리 근근육 판타지라지만 서구인의 무의식이 극 단순화된 형태로 표출된만큼 기분 더러워할 사람이 많은 것도 현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글은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블로그에서 보기 힘든 모처럼 교육적이고 교양적인 내용이라 옮깁니다.
Sparta? No. This is madness
이것이 스파르타? 아니다. 미친 짓이지.
스파르타 전사들을 다룬 거대 스케일 고어 영화 300은 화려한 비주얼과 높은 오락성에도 불구, 절대 비위 약한 관객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육식주의자, 남성육체 숭배자, 폭력애호가들을 위한 완전 몰입성 전쟁 시뮬레이션인 것이다. 한 전문가가 이 잔혹한 서사시를 평한다.
3월 11일, 2007 04:30 AM
테르모필레의 전투는 사실이었지만, 300은 과연 얼마나 사실적일까? 토론토 대학교 고대 그리스 역사학과 조교수 에프라임 라이틀이 영화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밝힌다.
어느 시대에나 역사는 왜곡되고, 변질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리고 왜라는 질문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 흉갑과 점잖게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튜닉이 없는 것을 두고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다. 조각같은 복근과 가죽 팬티만 걸치고 꿈틀대는 300대의 스파르타 근육체의 시각적 필요성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300 속에서 선택적으로 이상화된 스파르타 사회의 모습은 심히 우려스럽다.
레오니다스 왕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인물을 위해 가공의 배경 설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실제로 스파르타의 어린이들은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아고게'라는 전투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체벌과 구타를 통해 강화되었고 먼 시골에 방치되었으며 겨울에 맨발로 걸어야 했고 아무것도 덮지 않은 채 맨 땅에서 자야 했다. 하지만 왕위계승자는 그 훈련과정에서 제외되었다.
설사 레오니다스가 아고게를 거쳤다 하더라도, 성년식은 늑대가 아니라 맨손의 헬로트를 살해하는 크립테이아라는 의식을 통해 치뤘을 것이다. 헬로트는 라코니아와 메세니아의 원주민들로, 스파르타식 '자유'를 누리는 극소수의 집단에 의해 노예화된 그리스인들을 뜻한다. 헬로트들이 농지에서 일했기 때문에 스파르타인들은 전업 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가혹한 인종분리적 과두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에포로이들은 헬로트를 상대로 정기적인 전쟁을 치루게 했다.
참고자료: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계급별 인구 분포표. 출저는 네이버 백과사전.
매년 선거로 선출된 5명의 에포로이들은 스파르타의 최고 관리들로, 2명의 국왕들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역주: 스파르타는 2개의 왕가가 병존하고 있었음.) 영화 속의 레오니다스는 자칭 '숭고한 목적'을 위해 불법적인 전쟁을 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에포로이들이 왕을 반대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남아있지 않다. 만화책에서 에인 랜드(*역주: 2차 대전 이후의 미국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자 소설가. 객관주의의 창시자. 대표작 소설 [아틀라스 (원제: Atlas Shrugged)]가 국내에 번역되어 있음.)로 간신히 졸업 중인-혹은 그 반대이기도 한-청소년들에게 역사적인 레오니다스는 충분하지 않았고, 그 자리를 초인 레오니다스가 대신한 것이다. 그리고 노골적인 선과 악의 대조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300의 에포로이들은 음탕하고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노쇄한 나병환자이기까지 하다.
그리스를 배신하는 에피알테스는 사지 멀쩡한 말리아인에서, 스파르타에서 추방된 기형적인 난쟁이가 되었다. 관습대로는 아기 때 버려져 죽을 운명인 것이다. 레오니다스는 곱사등 때문에 방패진을 유지할만큼 방패를 높게 들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거부한다. 이것은 스파르타식 우생학에 대한 속보이는 변명으로, 불길해 보이는 점을 지니고 태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죽임당할 수 있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300의 페르시아인들은 역사성을 무시한 괴물과 기형적인 변태들이다. 크레르크레스는 8피트나 되는 신장에 온갖 피어싱이 옷을 대신하고 진한 화장을 했지만, 기형은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작중에 크세르크세르스가 동성애자임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고, 적어도 300의 윤리관에 의하면, 동성애는 특별한 변태성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년에 대한 남색이 스파르타의 의무교육이었다는 사실을 두고 보면 역설적이다. 스파르타 남색은 종종 아테네 희극의 표적이 되었으며, '스파르타질하다'는 표현이 '비역질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될 정도였다. 300에 의하면, 그리스의 남색은 아테네만의 것이다.
여기서 300의 가장 심각한 역사왜곡이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괴물이 되고, 비(非)스파르타인 그리스인들은 지나치게 나약한 인간들이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레오나디스는 7000여명의 그리스인들을 이끌었다. 그들은 체계적인 장갑보병 전술로 차례를 돌아가며 방패진의 최전선에 서서 테르모필레 협곡을 2일간 지켜냈다. 기록에 의하면, 4000여명의 그리스인들이 그곳에서 죽어갔다. 300의 전투는 장갑보병식도 아니고, 스파르타인들만 활약하며, 어쩌다가 소수의 훈련되지 않은 그리스인들에게 기회를 주니까 엉망진창으로 싸운다. 그리고 그들은 포위된 사실을 알자마자 뿔뿔이 흩어진다. 헤로도토스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 지점에 대한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700명의 테스피아인 장갑보병들이 스파르타군과 남아, 마지막 한명까지 장렬히 죽어갔다는 사실이다. (*역주: 그래도 만화책에는 나오는데OTL)
또한 300 속에서는 동시간에 테르모필레 근처의 해협에서 수적으로 열세인 아테네 해군이 페르시아군을 막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나, 곧이어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테네가 승리를 거두며 그리스를 구한 사실에 대해선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역주: 마찬가지로 만화에는 나옴..OTL...감독 ㄱㅅ 그러게 왕비 출연시간 줄이랬지...) 왜냐면 그리스적 이상이 오로지 스파르타만을 통해 상징되는 영화의 세계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관은 현대 역사가들은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기이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그리스인이 아테네의 집을 스파르타의 오두막집으로 바꿀 확률은 내가 토론토의 아파트를 평양의 콘도로 바꿀 확률과 비슷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