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3. 7. 23. 12:51

각지에서 수많은 상을 받고 평단의 극찬을 받은 <액트 오브 킬링>은 학살자가 학살을 재연하는 다큐멘터리의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인터뷰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1965~1966년 인도네시아 학살의 가해자 중 한명인 안와르 콩고는 다큐멘터리 제작자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요청에 따라 친지들을 모아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연극적으로 재연합니다. 학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현재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2회 상영했고 마지막으로 7월 26일 상영한다고 합니다.



[번역] 조슈아 오펜하이머: “학살을 미화하는 이유는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보고 싶지 않기 때문”

원문 링크.


조슈아 오펜하이머: “학살을 미화하는 이유는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1960년대 학살의 생존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그런데 결국은 학살자들을 촬영하며 그들과 친해지기까지 했다. 그 결과물은 올해 최고의 영화로 각광받는 <액트 오브 킬링>이다.

안와르 콩고는 자신이 사람을 어떻게 죽였는지 보여준다. 다음에는 차차차 춤을 춘다. 처음에는 구타해서 죽였지만, 피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비린내가 말이 아니었죠.”) 그래서 친구에게 앉아보라고 하고, 전선 한쪽 끝을 기둥에 묶고, 반대편을 친구의 목에 감고 당기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 하는 거죠!”

안와르는 아직도 자신이 한 짓에 대한 악몽을 꾼다. 술, 마리화나, 엑스타시를 하며 잊으려고 한다. 그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안와르의 친구는 미소 지으며 말한다. “참 유쾌한 분이에요.”

1965년 인도네시아 쿠데타로부터 1년 뒤,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 (실제로는 군에게 적대적인 인물 전반 및 화교, 지식인, 노동조합원 등)”로써 살해당했다. 안와르는 개구리 부대라는 학살자 집단의 두목이었는데, 몸소 1000여명을 살해했다. 안와르는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과거의 범죄를 극적으로 각색할 무대를, 즉 학살의 주인공 역할을 자랑할 기회를 마련해준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의 주인공이다.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10년 전에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며 이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존자 한 명의 권유로 카메라를 가해자들에게 돌리게 되자, 가해자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들 입장에서 역사를 말하려는 것을 알았다. 학살자들은 수십년간 서로에게 반복해온 이야기, 즉 자신들이 지배계급이므로 그 행위는 영웅적이라는 버전의 이야기를 채용했다.

안와르같은 폭력배에게 있어서 오펜하이머는 “아름다운 가족영화”를 만들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성공담을 기념하는 영화를 말이다.

“그들은 과거에 저지른 행위의 현실로부터 절박하게 도망치려고 합니다.” 현재 코펜하겐에 거주중인 38세의 하버드 졸업생 오펜하이머는 말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거울 속의 살인자와 마주보고 싶지 않으니까 학살을 미화합니다. 피해자들이 반론하지 못하도록 계속 억압합니다. 그 정당화 - 기념행위 - 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작 반성의 부재보다 살인자의 양심이 해체되는 순간을 보게 됩니다. ‘반성의 부재’로 보이는 증상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인간성의 상징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오펜하이머의 영화인만큼 안와르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 취향은 서부극에서 갱스터 스릴러와 엘비스 프레슬리 뮤지컬에까지 이른다. 쿠데타 전의 사회주의 대통령 수카르노 연정 하에서 보이콧 당하던 미국적인 영화들이다. 재연된 학살극에는 끔찍하게 화려하고 기괴한 캠프함이 있다. 한 장면에서는 안와르의 피해자의 딸이 자기 아버지의 간을 안와르에게 강제로 먹인다. 안와르는 자기 자신을, 그의 절친한 친구 헤르만은 피해자의 딸을 연기한다. 헤르만은 통통한 아마추어 배우로, 빨간색과 금색의 반짝이 배꼽티, 짙은 아이라이너, 거대한 머리장식으로 치장했다. (오펜하이머에 의하면 “분장 아티스트 겸 의상 디자이너가 가수 디바인을 참 좋아해서”라고 한다) 헤르만은 키득거리고 비명을 지르며 안와르의 입에 고기를 밀어 넣는다. 오펜하이머는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폭력배들이 필요한 것들을 전부 제공한다. 이 보기 거북한 재연극의 몽타쥬와 고백적이고 정치적인 폭로극은 다큐멘터리의 대부이자 본 작품의 총책임 프로듀서를 담당한 베르너 헤어조크와 에롤 모리스의 관심은 물론, 전세계 평론가들을 압도하며 사로잡았다. 

안와르가 과거의 악몽을 꾸듯이, 오펜하이머도 악몽을 꾸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가 점차 사랑하는 사람이 고문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변해갔다.”) 오펜하이머는 너무나 오랜 시간을 안와르와 보낸 나머지 안와르의 세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수 천명의 사람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괴물은 달달한 차를 내주고, 클리프 리처드 레코드를 틀고, 손주들에게 다친 동물을 보살피는 법을 가르치는 말쑥한 신사이기도 하다. 

이 불협화음은 영화는 불편하게 만든다. 관객으로 하여금 학살자를 이해하도록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는 말한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내서 사전에 방지하려면, 어딘가에 괴물이 있으니 경계하고 그것을 가두거나 죽이거나 수용소에 넣으면 해결된다는 식의 판타지를 버려야 합니다.” 

“누군가를 악당이라고 부르면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위안하게 됩니다. 자신을 미화하는 거죠. 나는 이것을 ‘스타워즈 윤리관’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런 윤리관은 많은 이야기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여전히 안와르와 연락을 한다. 두 사람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스카이프로 대화를 나눈다. 

오펜하이머는 말한다. “나는 안와르에게 마음을 씁니다. 우리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나는 심판받지 않은 정권을 생존자들을 위해 폭로하려고 했습니다. 한편 안와르는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자기 트라우마를 보호할 영상적이고 정신적인 상처조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나는 그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같은 인간을 향한 애정은 느낍니다.”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