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2010. 12. 25. 23:32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개봉 소식이 요원하지만,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핀란드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Rare Exports-직역하면 희귀한 수출품 정도인데, 컨셉이 매우 독창적입니다. 러시아와 핀란드의 국경지역에서 산타클로스의 고분을 찾는 발굴작업으로 얼음 속에 갇혀있던 산타가 풀려나오고, 마을 사람들은 산타를 다국적 대기업에 팔아 넘기려다가 피바람에 휘말린다는 호러영화입니다.

트레일러

현대에 알려진 일반적인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참 뜬금 없는 내용이지만, 사실 원래의 산타클로스 전설을 생각하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심지어 현대 자본주의에 맞게 희석되고 다크한 부분은 상당히 거세된 산타의 이미지에마저 그런 무서운 부분이 약간 남아있는데, 가령 국내에 <울면 안돼>로 알려진 유명한 크리스마스 노래의 가사…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모든 것을 알고 언제라도 지켜보고 있는 빅브라더스러운 면모가 드러납니다. 사실 산타의 근본적인 존재 의의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버릇을 들이기 위해 “말 안 들으면 산타가 선물 안 준다!”는 전형적인 상벌 시스템의 상징입니다. 지금이야 코카콜라와 자본주의와 아동 인권의식의 상승 등의 효과로 ‘상 (선물)’ 쪽만 강조되는 편이라 다른 의미로 부모들을 옥죄기는 하지만, 원래는 ‘벌’도 수행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런 산타의 다크사이드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산타클로스의 역사는 유럽으로, 그리고 성 니콜라우스-세인트 니콜라스로 거슬러 올라가기에, 우선 그 카톨릭 성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 니콜라우스는 4세기 터키에서 살았던 미라의 주교였으며 선원, 해운업, 어린이, 상인, 도둑, 학생, 오스트리아, 벨기에,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네델란드, 스위스의 수호성인입니다. 출처  (참고로 도둑의 수호성인이라는 것은 도둑질을 도와준다는 것이 아니라 착한 길로 개심시켜준다는 의미임.) 생전에 자선을 베풀어 빈자를 구제하고 기근으로부터 미라의 사람들을 구하여 사후에도 매우 인기 높은 성인으로 남아 수많은 전설이 덧붙여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실화에 가깝다고 추정되는 것이, 어느 가난한 아버지가 딸 셋을 시집 보낼 돈이 없어 사창가에 팔아버리려고 하자 니콜라우스가 밤중에 집안으로 몰래 돈주머니를 던져 넣어 세 명을 다 무사히 출가시킨 이야기입니다. (결국 세 번째에는 아버지에게 들켰지만. 아무튼 도둑놈처럼 몰래 돈을 두고 간 이유는 그 아버지의 자존심을 배려해서, 그리고 니콜라우스가 겸손한 인품을 지녀서라고 설명됨.) 한밤 중에 몰래 들어와서 선물을 놓고 가고, 소녀=아이들을 보호하는 점이 산타클로스와 비슷하지요?



마사치오가 그린 돈주머니를 던져주는 니콜라우스...인데 집이 참 좁군요.

그 밖에 억울한 누명을 쓴 사형수들을 구하거나, 배를 풍랑에서 구했다던가 (생전에 구했다는 이야기와 사후에 천국으로 승천 중 선원들의 비명을 듣고 유턴해서 구해주었다는 이야기 두 종류나 있음), 잔인한 강도살인마에게 사지가 토막 나 양념에 절여진 소년들을 부활시키는 등등 관련된 기적 이야기가 다양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근대 이전 성인 이야기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보다는 성인의 삶과 가르침을 전달하는 목적…그리고 기독교 전 유럽의 이도교 이야기와 합쳐진 오락적 성향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 니콜라우스의 키워드는 어린이, 자선, 바다라고 할 수 있지요.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사형수들을 구하는 성 니콜라우스.
색감이나 묘사 등이 멋진 그림이기도 하지만 뭣보다 왼쪽 죄수의 반투명 패션이 신경쓰임.

성 니콜라우스는 12월 6일 사망하여 축일이 12월 6일인데, 성 니콜라우스의 축일과 크리스마스가 같은 12월에 겹치기에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철의 중요한 행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2월에 선물을 나눠주고 잔치를 즐기는 축제 자체는 기독교 전의 동지 축제에 기원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자체도 기존의 이교도 겨울축제를 대체하기 위해 12월 25일로 정해진 것이지, 실제로 예수의 생일은 아니듯이 말이지요. 이렇게 기존의 풍습을 기독교 상징으로 대체하는 과정에 성 니콜라우스와 북구신화의 신 오딘이 섞입니다. 오딘은 긴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의 모습으로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말 슬레이프니르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전사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믿어졌습니다. 북구의 아이들은 밤에 슬레이프니르를 위해 장화에 당근을 넣어 굴뚝이나 집 밖에 매달아 두고, 오딘은 답례로 선물을 넣어주었다는 겨울 풍습이 있습니다. 선한 노인, 하늘을 나는 짐승, 겨울 밤에 선물을 주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섞여 세인트 니콜라스, 신터클라스, 파더 크리스마스, 그리고 신대륙에 건너 가서 산타클로스를 낳은 셈이지요. 



일반적인 이미지로는 차가운 사기꾼...아니 아버지신 오딘.
하지만 내 애마에게 상냥한 아이들에게는 따뜻하겠지...

그런데 이것이 대대적인 동지 축제와 섞이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부분이 강조되면서 원래는 매춘의 위기에 처하거나 토막살해 당하거나 기타등등 가엾은 아이라면 착하든 못됐든 따지지 않고 선행을 베풀던 성 니콜라우스나, 말 먹이를 주는 상냥한 아이에게 답례로 선물을 주던 친절한 오딘이 어른들의 노골적인 아동교육용 수단으로 탈바꿈 합니다. 원래는 ‘자선’이나 ‘답례’였던 선물이 ‘상’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상만 있으면 되나요, 벌도 줘야지요. 그래서 미국의 초기 산타클로스 전승에도 못된 아이에겐 선물이 아예 없거나 석탄이 들어있거나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벌’을 주는 면모-다크사이드 자체를 아예 의인화한 전승도 생겨났습니다. 고귀한 성자의 이미지 유지를 위해서 아예 새로운 징벌 전문 캐릭터를 만들어낸 셈이지요. 일명 산타클로스의 검은 도우미들입니다. 산타클로스 장난감 공방 일을 돕는 엘프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서운 도우미들이지요.



여러모로 문제적이라 20세기 초 미국 부모들의 충격과 공포가 상상 가는 이미지.
하지만 재밌음.

이런 ‘검은 도우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크람퍼스Krampus라는 악마입니다. 그야말로 고전적인 악마의 모습으로, 염소 뿔과 다리에 시커먼 털과 흉악한 얼굴로 못된 아이들을 때리고 자루나 소쿠리에 넣어 지옥으로 끌고 간다고 전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산타클로스의 도우미는 유럽판 망태기 할아버지였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죽이거나 채가는 범인류적 아동교육(협박을 통한)용 캐릭터의 전형입니다.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현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성 니콜라스 역의 배우와 함게 크람퍼스로 분장한 청년들이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크람퍼스들은 긴 나뭇가지를 회초리처럼 들고 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때리기도 하고, 아이들을 안아 들고 납치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며, 젊고 예쁜 여자들을 희롱하기도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남의 집에 들어가 술을 달라며 때쟁이를 부리기도 합니다. 사탕을 달라고 때쟁이를 부린다면 완벽한 할로윈이지요.



현대의 크람퍼스 분장. 데스메탈이 어울리는 이미지.

그래도 인기는 많았는지 (아마도 어른들에게) 20세기 초에 크람퍼스가 그려진 독일 카드가 다량 유통되어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에도 들어왔는데,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산타가 악마와 동행하거나 때로는 악마만 나와서 못된 아이들을 괴롭히는 카드들이 영 껄끄럽고 당시의 유머감각에 맞지 않아서 결국 크람퍼스라는 독은 빠진 산타클로스가 자리잡게 된 듯 합니다.



신터클라스 앤드 그의 노예...아니 Homies(50년대부터 친구라는 설정으로 변경) 검은 피터s

검은 피터Zwarte Pete는 네델란드의 검은 도우미입니다. 네델란드에서는 성 니콜라우스를신터클라스라고 부르는데, 원래 스페인에 살며 11월 말 즈음 배를 타고 네델란드에 건너 와서 회색 말을 타고 행진을 합니다. 그러면서 검은 도우미들도 끌고 오는데, 크람퍼스에 비하면 인간의 형태니 무섭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보이는 점이 거슬리기는 합니다. 아무리 봐도 흑인+하수인…이니까요. (게다가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백인이 흑인분장을 하는 블랙페이스 분장이라, 아마 미국인에게는 3배로 경악감일 듯.) 일각에서는 굴뚝을 타고 내려와서 숯 때문에 얼굴이 검다고 하지만 스페인의 무어족을 희화화했다는 해석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이 검은 피터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유쾌하게 흥을 띄우며 착한 아이들에게 과자와 선물을 나눠주는 등 신터클라스를 도와주는 역할이지만, 동시에 못된 아이들을 혼내주는 역할도 담당합니다. 못된 아이들을 회초리로 때리고 걷어차고 자루에 넣어 스페인으로 데려간다고 하지요. 요즘은 그냥 걷어차는 시늉만 한다고 합니다. 사실 요즘 스페인 하면 휴양지로 나쁘지 않을 것도 같지만, 일단 네델란드에 있어서는 구 식민 지배국이자 구교의 본산지로 머나먼 미개한 적대국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교의 상징이었던 신터클라스는 받아들이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지만요.




이렇게 유사한 징벌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로 독일 지역의 크네크트 루프렉트 Knecht Ruprecht나 벨스니켈Belsnickel, 프랑스 지역의 페레 푸타르 Père Fouettard 등이 있습니다. 크네크트 루프렉트의 경우 성 니콜라우스의 하인으로 따라다니며, 몇 십 년 전만 해도 동네 아이들의 잘못을 일일이 열거하며, 주기도문을 외우지 못하면 자루에 넣는 시늉을 하는 풍습이 남아있는 마을도 있어서, 크리스마스 철에는 지옥에 끌려가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좀 있었다고 합니다. 페레 푸타르의 기원설은 조금 섬뜩한데, 위에서 언급한 성 니콜라우스 전설 중에서 아이들을 토막 낸 살인범이라고 합니다. 아까부터 성 니콜라우스라면서 악마니 살인마니 등등을 부하로 끌고 다니는 걸 보면 수상쩍어 보이지만, 성인 이야기의 패턴을 보면 원래 대부분의 성인들은 악마를 간단하게 굴복시키니까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동양식으로 이해하자면 지체 높은 고승이나 도사가 못된 짓을 하는 요괴를 퇴치한 뒤, 혼이 난 요괴가 굽신거리며 부하로 들어오는 패턴.) 생각해보면 자기 손 더럽히기 귀찮아서 악마나 범죄자를 부려먹는 음험한 성자로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크람퍼스의 습격!!


이렇게 노골적으로 아이들을 겁 주기 위한 도우미들이 미국의 신흥 자본주의나 부르주아 계급의 취향과 맞지 않아 퇴출된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는 산타클로스의 상벌 속성의 중요한 반쪽-징벌 쪽을 상징한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지나치게 희석화된 산타클로스 이미지보다 오히려 더 솔직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이교도 축제의 전통이 강하게 들어나는 크람퍼스의 경우 경건함과 행복함, 가족적 화목함의 지나친 강요에 (우리나라에서는 커플명절이지만 서양에서는 추석이나 설 못지 않게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가족명절이기에) 피곤함을 느끼는 미국인들에게 긍정적인 스트레스 분출구로써 기능하는 점이 있으니 도입이 시급하다는 말도 나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길거리 커플을 깨뜨리고 다닐 것 같기는 하지만, 유투브 동영상에서 크람퍼스의 회초리를 웃으면서 피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런 블랙유머적이고도 유쾌한 크리스마스 풍습도 재미있어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람퍼스 크리스마스 카드 몇 개 추가합니다. 부담 없는 크리스마스 마무리 하시길...



아이들이 진심으로 무서워하는 표정인 게 포인트.


'
SM!!!!!!



못된 아이들은 GO TO THE 망태기!!! GO TO 지옥!!!



이건 묘하게 쿨함.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