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2009. 6. 15. 13:47

K모님과 한국 사극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늘 하는 소리가 몇가지 법칙들이 종중 반복된다는 점인데

1. 주인공은 늘 출생의 비밀이 있다.
2. 주인공은 어릴 때 천한 환경에서 힘들게 산다.
3. 주인공은 별별 잡다한 스킬을 익힌다. (절대 한 분야만 파지 않고 요리, 의술, 철제술 등 잡다하게 멀티플레이)
4. 주인공은 발명을 한다.
5. 주인공은 장사를 한다.
6. 주인공은 착하고 순진해서 절대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으며 더러운(...) 정치질도 하지 않는다.
7. 주변 인물들의 90%가 주인공을 무작정 좋아한다. (싫어하면 악역)

최근의 [선덕여왕]도 태어나자마자 스카이넷미실에게 죽을 뻔하고 왠지 중국에서 살고 있고 로마어까지 배우고 있고 나중에는 남장해서 화랑들과 훈련한다 그러고 여튼 정상적으로 왕실에서 교육받으면 안되는 모양입니다.

그 외에 조선보다 고대가 옷감과 갑옷이 더 화려해서 역사를 역행하고 있다던가 (유교적 검소함보다 기술적 문제)
갑옷은 플레이트 메일인데 아직 철검이 발명되지 않고 있는 부조리함이라던가 등등이 있었지만
좋게(...?) 말하자면 한국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령 1번과 2번은 고귀한 출신이지만 서민과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영웅을 원하는 바램이고
...물론 결국은 고귀한 혈통이고 진정 밑바닥에서 기어오르는 개천에서 난 용은 거의 없지만 뭐 넘어가고...
3번은 온라인 게임의 스킬 획득을 즐기는 젊은 세대와 다양한 수능과목을 정복해야 하는 현실의 반영이며
4번은 번거로운 과정보다는 결과에 조명을 맞추어 
5번은 CEO 대통령을 당선시키며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국가적 종교 기업교(바꿔 말해 기업 한두개 망한다면 나라도 같이 망하겠지만 원래 종교란 게 좀 모순적임)의 교리를 표현하고 있고
6번은 우리의 CEO 대통령처럼 대화와 교섭과 타협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행위를 증오하는 순수한 정치혐오적 마인드를 나타내며 (참고로 수많은 국개론주의자들도 예외가 아님)
7번은 닥치고 다수결식 극단순화된 민주적 논리와 보편적 메리 수적 충족감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특징들이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만화에도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0.2초 정도 경악함.

바로 이와아키 히토시의 [히스토리에].

1번: 에우메네스는 부유한 그리스 시민 집안에서 자랐지만 사실은 스키타이족이었다.
2번: 키워준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못된 새엄마 헤카타이오스에게 시달리고 노예로 팔려서 XXX 당할 뻔 하며 배가 난파 당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난한 마을에서 성장한다.
3번: 책을 두루 읽어서 지식이 많고 검술도 상당하며 기계장치에 대한 이해도 뛰어나다.
4번: 4권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신병기를 만들고 5권에서는 분수 수리도 하고 장난감도 제작한다.
7번: 칼데아의 가족과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좋아한 것 같다. 필립포스 왕도 좋아한다.

...이제 에우메네스는 장사만 하면 되겠군요.

그런데 지금까지 [히스토리에]는 욕도 안하고 재밌게 보고 있었음.

1번과 2번이 나오기는 하는데 오히려 신분하강의 원인이 되고, 5권의 신분상승의 계기도 출신이 아니라 (되려 이민족이라는 불리함이 있었음) 능력 때문이라 설득력이 있기도 했고

사실 무엇보다 6번이 없다는 게 결정적인 것 같습니다. 뭐 주인공 총수 메리 수 로망은 채워질지도 모르겠지만 사극인데. 특히 실존인물일 경우 위인=출세를 어느 정도 한 인물인데 정치가 안 얽힐 수가 없는 법이고.

...역시 같은 소재라도 그리는(만드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천지 차이라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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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