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 13. 20:25

9월 13일은 웨일즈 작가 (노르웨이 출신. 생몰년 1916-1990) 로알드 달의 생일입니다. 그래서 구글도 이런 모습.
마틸다,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찰리와 초콜렛 공장이군요. 매우매우 바람직합니다^^

어렸을 때 로알드 달 책들을 참 열심히 읽었습니다. 마법과 환상에 가득 찬 상상력이 넘치는 면, 예를 들어 모든 어린이...뿐만 아니라 단 거 매니아들의 판타지의 초결집체인 초콜렛 공장같은 것도 좋았지만 어딘가 기묘하게 추하고 일그러진, 그러면서 눈을 뗄 수 없는 느낌으로 더 인상이 강합니다. BFG의 식인 거인들의 더럽고 끔찍하면서 이상하게 익살스러운 묘사라던가, 어린이의 타인에 대한 공포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Witches의 마녀들이나, 좀더 일상적인 차원에서는 빛나는 재능을 가진 천재소녀 마틸다와 그녀와 대조적으로 딸의 가능성을 보려고도, 인정하려고도 안 하는 무식하고 무책임한 부모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라고 들 수 있겠지요.

그런 다소 과격하고 시니컬한 점 때문인지 로알드 달이 쓴 동화들은 영화화되면서 대중 취향을 위해 많이 "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동화 쪽도 충분히 어린이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고 같은 어린이들을 상대로 만드는 영화인데 굳이 착해질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영화는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개입하니 어쩔 수 없겠지요.
(그래도 어렸을 때 마틸다 영화판을 보고 실망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음...)

로알드 달의 동화책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역시 영국의 만화가 퀸틴 블레이크의 삽화겠지요.
익살스럽고 가볍고 장난스러운 그림체가 로알드 달의 블랙유머를 잘 살려주면서 한편으로는 적절하게 순화시키는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로알드 달 책=퀸틴 블레이크 그림이 너무 인상이 강해서, 가끔 (주로 현실세계 배경의 비교적 리얼한-예를 들어 Danny the Champion of the World)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가 맡을 경우는 위화감이 들거나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읽으면 현실적인 책들도 매력적입니다만.

생전의 로알드 달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맹비난하는 글을 쓰는 바람에 유태인/이스라엘 혐오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고 일설에는 그런 오명 때문에 기사작위를 못 받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뭐...나이 든 유럽인이니 어느 정도 유태인에 대한 차별심리가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아무튼 작가는 글 조심, 이라는 것이죠.
...그래도 뭐 전쟁한 게 잘못한 짓이긴 한데, 문제는 이스라엘 정책 비난자=유태인 비난자=나치와 동류라는 논리가 서구에서는 종종 이스라엘 정책 옹호가들의 철벽방어책으로 사용된다는 점이죠.

로알드 달의 매력은, 시니컬하고 삐둘어졌으면서도 일종의 궁극적인 선을 믿는 이상주의적인 면이 아닐까 합니다. 2차 대전 참전 용사였다는 점도 있고, 인간이 가장 추해질 수 있는 참혹한 현실을 보면서도 그만큼 꿈과 유머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의 동화는 신랄한 냉소주의와 소박한 낭만주의가 뻔뻔스러울만큼 천진한 유머와 상상력으로 인해 하나로 조화되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로알드 달을 재조명하다 보니 책을 다시 보고 싶군요. 본가에서 들고 올 걸 그랬나, 조금 후회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리 수: 불멸의 주인공  (15) 2007.12.13
나츠메 & 도이  (10) 2007.10.29
천사의 속삭임  (0) 2007.05.01
바다의 가야금  (0) 2007.04.26
유리망치  (4) 2007.04.25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