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포스팅을 보고 바로 생각난 것은 핀란드 듀오 Armi & Janny의 I Want to Love you Tender
뮤직비디오라는 매체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초창기에 만들어진 비디오입니다. 감독이 무대를 찍을지 영화를 찍을지 감을 못 잡은 것이 눈에 보일 정도(...) 뭐 그 분야의 선구자인 마이클 잭슨 전에는 다들 좀 모호했죠.
그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함 때문에 2000년대 초 much more music 채널에서 역대 최악의 뮤직비디오 1위를 차지했는데, 사실 노래 자체는 좀 옛스럽고 은근 정겨운 멜로디에, 마치 에어로빅같은 안무와 분신술같은 연출이 너무나 강렬하여 수많은 패러디와 안무 따라하기 유행을 양산했습니다.
히라이 켄의 바이 마이 멜로디. 역시 노래는 평범하게 좋은데....ㅋㅋㅋㅋㅋㅋㅋ 사실 보기에 따라서는 웃기다기보다는 무서울 수 있는 비디오...ㅎㅎㅎ 참 센스가 좋은 가수입니다...
사실 얀코빅의 비디오들이 전반적으로 웃기기는 한데, 이것부터 기억난 이유는 원곡은 전형적인 폭력과 돈, 섹스로 얼룩진 갱스터 인생을 후회하는척 하며 찬양하는 힙합노래인데, 여기서는 종교적 교리에 따라 지극히 금욕적이고 중세적인 삶을 사는 애미쉬 교도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어서 대비가 극과 극이라 패러디로써도, 유머로써도 매우 출중하기 때문입니다. 가사도 매우 재미있습니다...ㅎㅎㅎ
R 켈리의 드라마풍 뮤비 Trapped in a Closet 시리즈...뮤비에 스토리 넣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놓고 (막장) 드라마를 진행하고 해설하기 위해 노래 멜로디도 단순하게 정해져 있고, 모든 캐릭터의 대사도 가수 본인이 다 노래하고 스토리는 막장의 막장을 달립니다. 시작은 클럽에서 만난 여자 집에서 깨어난 주인공 (유부남)이 여자 남편(목사)와 실랭이를 벌이다가 분노한 여자 남편도 충격 커밍아웃(게이였음)하고 집에 온 주인공은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는데...!? (헉헉...) 우리나라 막장드라마와의 차이점이라면 고부갈등이 안 나오고 대신 툭하면 다들 총을 휘두른다 랄까요....너무나 응용도가 높은 데다가 별 시시껄렁한 대사까지 (아침 뭐 먹을래? 시리얼?) 다 가사가 되어 노래부르는 괴랄함 때문에 역시나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미국에서는 문화현상이 되기도 했죠.
켈트풍의 발라드(물론 신승훈 발라드가 아니라 민요라는 의미의) The Bonny Swans입니다.
캐나다의 저명한 켈틱+월드뮤직 싱어송라이터 로리나 맥케닛의 앨범 The mask and the mirror에 수록.
본가나 집구석 어딘가에 시디가 있긴 할텐데 마침 유투브에 있으니 이쪽으로 올립니다.
어쨌든 포스팅에서 말하고 싶은 건 가사의 내용에 대해서인데...웹에 마음에 드는 번역이 없어서 적당히 끄적끄적.
The Bonny Swans
A farmer there lived in the north country
a hey ho bonny o
And he had daughters one, two, three
The swans swim so bonny o
These daughters they walked by the river's brim
a hey ho bonny o
The eldest pushed the youngest in
The swans swim so bonny o
Oh sister, oh sister, pray lend me your hand
with a hey ho a bonny o
And I will give you house and land
the swans swim so bonny o
I'll give you neither hand nor glove
with a hey ho a bonny o
Unless you give me your own true love
the swans swim so bonny o
Sometimes she sank, sometimes she swam
with a hey ho and a bonny o
Until she came to a miller's dam
the swans swim so bonny o
The miller's daughter, dressed in red
with a hey ho and a bonny o
She went for some water to make some bread
the swans swim so bonny o
Oh father, oh daddy, here swims a swan
with a hey ho and a bonny o
It's very like a gentle woman
the swans swim so bonny o
They placed her on the bank to dry
with a hey ho and a bonny o
There came a harper passing by
the swans swim so bonny o
He made harp pins of her fingers fair
with a hey ho and a bonny o
He made harp strings of her golden hair
the swans swim so bonny o
He made a harp of her breast bone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straight it began to play alone
the swans swim so bonny o
He brought it to her father's hall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there was the court, assembled all
the swans swim so bonny o
He laid the harp upon a stone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straight it began to play lone
the swans swim so bonny o
And there does sit my father the King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yonder sits my mother the Queen
the swans swim so bonny o
And there does sit my brother Hugh
with a hey ho and a bonny o
And by him William, sweet and true
the swans swim so bonny o
And there does sit my false sister, Anne
with a hey ho and a bonny o
Who drowned me for the sake of a man
the swans swim so bonny o
어여쁜 백조들
북쪽 나라에 한 농부가 살았다네
아 헤이 호 보니 오
농부에겐 딸이 하나, 둘, 셋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딸들이 강가를 거니는데
아 헤이 호 보니 오
큰딸이 막내를 밀어 넣었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언니, 언니, 부디 손을 잡아 주세요
위 헤이 호 보니 오
그러면 집과 땅을 드리겠어요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네게는 손도 장갑도 내주지 않을 테야
위 헤이 호 보니 오
너의 진실된 사랑을 주지 않으면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잠기고 떠오르다 흘러 흘러가
위 헤이 호 보니 오
어느 방앗간 둑에 다다랐지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빨간 치마 입은 방앗간집 딸
위 헤이 호 보니 오
빵 반죽할 물 길으러 왔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아버지, 아버지 백조가 헤엄쳐 오네요
위 헤이 호 보니 오
마치 우아한 여인과도 같아요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그녀를 강둑에 끌어올려 햇볕에 말렸지
위 헤이 호 보니 오
마침 지나가던 하프 악사가 보았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고운 손가락은 하프 핀으로 꽂고
위 헤이 호 보니 오
금빛 머리카락으로 하프줄을 엮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그리고 가슴뼈로 하프를 만드니
위 헤이 호 보니 오
하프가 스스로 노래를 하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악사는 농부의 집으로 하프를 가져갔지
위 헤이 호 보니 오
모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돌 위에 하프를 세워 놓으니
위 헤이 호 보니 오
하프가 스스로 노래를 하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저쪽에 앉아계시는 왕은 내 아버지
아 헤이 호 보니 오
곁에 계신 왕비님은 나의 어머니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저쪽에 앉은 이는 내 오라버니 휴
위 헤이 호 보니 오
그 옆에 윌리엄, 나의 진실된 사랑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그리고 저쪽에 앉은 부정한 언니 앤
위 헤이 호 보니 오
남자 때문에 나를 죽인 누이라네
백조는 곱게도 헤엄치네
사실 원전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살인극+초자연적 진상규명 및 복수(의 암시) 계열의 익숙한 민화 장르죠. 우리나라의 예를 들자면 콩쥐 팥쥐, 장화홍련전, 아랑의 전설이 유사한 사례가 되겠군요. (그런데 해외의 경우도 그렇지만 살해 피해자가 젊은 여성인 경우가 압도적이군요.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일수도 있지만 역시 성적으로 자극적인 선정성 요소 역시 간과할 수 없군요. 아마도 당시 기준으론 에로구로였겠지요^^) 이런 민화를 민요로 만든 종류를 또한 살인극 발라드murder ballad라고 분류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근친살해 요소와, 피해자의 사체(의 일부)가 진상규명의 단서 혹은 스스로 살인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된다는 점에서 그림동화의 [노래하는 뼈]와도 비슷한 초자연적 진상규명 요소가 더해집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여쁜 백조들The Bonny Swans]의 모티브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국 민요 [두 자매The Twa Sisters]이고, 그 민요의 바리에이션 중에서도 1802년에 작곡된 [몹쓸 언니The Cruel Sister]에 가장 가까운 편입니다. 거기에 로리나 맥케닛이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나 다른 버전의 참고 혹은 자신만의 각색을 더해 작곡한 것이 방금 들으신 [어여쁜 백조들The Bonny Swans]입니다.
[어여쁜 백조들The Bonny Swans]은 일단 스토리 구조는 매우 단순하지만 알고 보면 언급된 등장인물의 수도 많고 디테일도 상세하다보니 조금만 생각해도 태클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닌, 수수께끼 투성이의 서사입니다.
하나하나 따져가 볼까요. (덧붙여 길어지니 차후로 반말체...)
1. 왜 방앗간집 딸은 막내딸의 시체를 백조로 착각했을까?
그만큼 익사체답지 않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익사체였다는 시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처음에는 백조라고 하다가, 다음에는 우아한 여인같다고 (하지만 정말로 여인이라고는 확정하지 않는다...) 하는 것을 보아 멀리서는 백조처럼 보였다가 가까이서 다가오니 여성의 익사체임을 확인했다고도 추정 가능. 내지는 처음에는 좀 리얼한 치정살인극이 후반에 가면 판타지가 되는, 즉 어차피 판타지한 동화의 세계니까 죽은 막내딸이 백조로 부활 내지는 백조의 시체로 변화했을 가능성도 있고 실제로 묘사상 그런 은유법이 많이 채용되기는 하...지만 곧바로 이어서 등장한 악사의 사체훼손 전위예술행위(...)로 이 가능성은 완전히 묵살되고 만다. 손가락뼈, 금발 머리카락, 가슴뼈 등 명백히 인간 신체의 부위로 하프를 만들었다지 않았나.
...즉 어찌되었든 방앗간집 부녀는 인간의 익사체를 끌어내서 널려 말리고 있었다는 결론이 된다.
2. 하프 악사는 어떻게 막내딸의 익사체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였는가?
분명히 막내딸의 익사체를 발견, 획득(...언제까지나 임의의 표현이다)한 것은 방앗간집 부녀였으나, 어째서 지나가던 웬 하프연주가가 그걸 해집어서 하프 따위나 만드는 엄연한 사체훼손 행위를 범할 수가 있는가? 한마디로 어느 시점에서 사체의 소유권이 악사에게로 넘어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일단 가난한 떠돌이 예술가가 돈을 주고 (←특정 직업 무시발언) 샀을 리는 만무하니까 남은 답은 꽤나 뻔하다. 아무리 우아하다지만 엄연한 호모 사피엔스의 익사체를 백조로 착각하고, 보통 시체를 발견하면 신고부터 할 것 같지만 대신에 그냥 양지바른 곳에 말려놓기나 하는 순진무식한 시골사람들이다. 여기서 닳고 닳은 떠돌이가 너희가 죽인 거냐고 겁을 주고, 협박하면 당장 벌벌 떨며 아닌뎁쇼 부디 관가에만은...이러고 저자세로 나오기 쉽다. 그렇게 입막음 댓가로 하프 악사는 신원을 알 수 없는 금발미녀의 사체를 획득했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산산히 해체하여 손가락뼈, 머리카락, 가슴뼈로 하프를 만드는 무척 반인륜적이고 파렴치한 사체훼손 및 사체를 이용한 창작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솔직히 그 정도의 변태면 남은 사체 부위로는 무슨 짓을 했을지 상상하기조차 싫다...
결국 그의 변태행위 덕분에 진상이 밝혀지긴 했지만, 어쩌면 농부는 큰딸보다 이놈부터 족칠지도 모른다.
실제로 가장 오래된 기록된 버전인 [두 자매]의 경우 떠돌이 악사는 아니고 사체를 건진 방앗간 주인이 그 파츠로 하프는 아니고 바이올린을 만드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작 여기서는 마지막 구절이 언니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고발하기는 하지만) 방앗간 주인이 사형에 처해졌다는 내용이므로...사체훼손은 정말 몹쓸 범죄임을 알 수 있다.
3. 농부의 가족이 왕족으로 비유된 이유는?
마지막 구절은 하프의 노래, 즉 살해당한 막내딸의 영혼이 직접 가족들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실 그 전의 구절에도 딸들의 아버지의 집을 저택으로, 모인 가족들(혹은 마을사람들)을 궁중사람들이라는 은유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원전 중에 자매를 왕이나 귀족의 딸로 묘사한 부분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원전을 모르더라도 가사 속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일단 막내딸이 살해당하고 나서 그리운 가족들을 만났으니 부모님을 향해 왕과 왕비라고 일부러 미화하여 높여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점이 추측 가능하나, 그보다 아버지가 농부라고 해도 (농부 무시하지 말자) 상당히 부유한 농가였다는 점도 암시되어 있다. 막내딸이 물에 빠지자 언니에게 집과 땅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상속권을 의미한다. 나중에 보면 아들도 있었다고 나오는데 일반적인 가난한 농가면 장남에게 다 물려주지 딸들 따위는 지참금이나 거덜내는 덤 취급이다. 하지만 이 집안은 가장 어린 막내딸에게마저 고유의 땅과 재산의 분배가 약속되어 있을 정도니 거의 지주 급일지도 모른다.
물론 전형적인 막내딸 편애 아빠라 막내딸에게만 재산을 몰아서 주었고, 그래서 큰언니가 자기를 강물에 빠뜨리니까 재산 때문이라고 즉각 반응한 것일 수도 있지만...
4. 남자형제 휴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이 노래에서 가장 늦게 그리고 생뚱맞게 등장하는 인물, 바로 휴라는 이름의 남자 형제다. (번역은 그냥 오라버니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남동생일 수도 있다.) 분명히 첫 구절에는 딸 셋이라고만 했는데 왜 느닫없이 아들이 등장하는 것인가! 반면 둘째딸은 전혀 언급이 되지 않는 것도 신경이 쓰이나 그것은 5번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고...가장 쉬운 추측은 운율상 하나, 둘, 셋 하고 딸이 셋 있는 것이 편하고, 원래 동화는 삼형제 혹은 삼자매가 기본이라는 불멸의 법칙이 있어서 별 역할은 없지만 어쨌든 둘째딸을 끼워넣었고, 마지막에 내용의 자연스러운 흐름상 둘째딸 옆에 애인이 있다고 하면 더욱 오해의 여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남자형제를 끼워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농부 자식이 딸이 셋만 있다는 말은 없었으니 언급만 안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지는 행방불명된 둘째딸과 연관되어 해결가능한 최선의 방법: 둘째딸과 오빠는 동일인물이었다! (두둥)
실은 둘째딸은 성동일성장애로...여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삶은 한번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어서 본격적으로 성전환을 (옛날이니까 수술은 무리라도 남장, 남자 정체성 취함 등의 사회적 성전환으로) 한 것이다!
즉 여자일 때의 이름은 아마 휴에트...
5. 둘재딸의 행방
바야흐로 이 노래 최고의 미스테리.
초반에, 농부의 딸은 분명 세명이라고 되어 있다. (뮤비를 봐도 세명, 둘째딸은 좀 듣보잡으로 처리됐지만...) 그리고 그 딸들이 강가를 거닐다가 사건(!!!)은 벌어진 것이다. 그냥 복수형의 딸들이니 당사자들 즉 가해자인 큰딸과 피해자인 막내딸만 산보하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맥락의 흐름을 보면 '딸 셋이 있었는데 그 딸들(these daughters)이 강가를 거닐다가...'로 되어 있으니 살인현장에는 사실 둘째딸이라는 제 3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어째서! 둘째딸은 범행을 말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익사해가는 동생을 구하려고 하지도 않은 것인가. 무엇보다 둘째딸은 이후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하프가 된 막내딸이 가족과 연인을 하나하나 지칭하는 장면에서도 왠지 생략(무시?)된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아, 둘째딸의 행방과 소실에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추측해볼 수 있다.
① 둘째딸이 살인에 협조 혹은 방조했을 경우: 이 경우 동기는 둘째딸도 막내딸을 어떤 이유로 미워하고 있었다던가, 내지는 큰딸에게 협박을 당해서라고 추측할 수 있다. 협박의 배경은 큰딸은 사실 상당한 괴력의 소유자라 둘째딸에게 함부로 지껄이면 네년의 목을 분질러 버리겠다고 힘으로 입막음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상속 면을 고려해도 경쟁자가 하나 없어지는 셈이니 살인방조의 동기는 충분하다. 단지 그런 것 치고는 마지막에 하프가 둘째언니도 같이 고발하지 않은 점이 걸린다. 내지는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괘씸죄라는 것인가?! 그 편이 더 불쌍...
② 둘재딸이 살인 자체에 대해 무지했을 경우: 즉 현장 근처에 있었으나 현장 자체에는 없었던 것이다. 즉 큰딸은 둘째딸이 어떤 이유로 자리를 비울 때를 노려(혹은 자리를 비우게 해서) 살인을 범한 것이다. 사실 이쪽이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이 둘재딸은 애초부터 철저한 부외자였을 경우 살인을 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고발당하지도 않은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밖에 마지막에 언급당하지 않은 것도 또 마침 그 자리에 없었다는 왠지 묘하게 중요한 사건은 비껴나가는 천상 단역성질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것도 왠지 안습이지만 다음 가능성에 비하면...
③ 둘째딸도 살해당했을 경우(!): 그렇다. 증거인멸을 위해 목격자인 둘째딸도 함께 살해당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등장하지 않은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 그런데 왜 둘재딸의 사체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서 악기가 되어 진상규명을 하지 않았냐고? 불행히도 (사실은 당연하게도) 둘째딸의 사체는 절대 우아한 백조처럼 착각될 여지도 없이 리얼하게 흉하고 생전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익사체였을 것이다. 후에 누군가에게 발견되었어도 어딘가 적당히 묻히고 말았지 (내지는 또 흘려 보내지거나...) 해체해서 악기로 만들고 싶었을 정도의 욕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 죽고 나서 진상규명을 하고 싶어도 이쁜 것들이 더 유리하다는 동화적 판타지이기에 더욱더 강화된 잔인한 현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④ 둘째딸의 완전범죄: 범행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용의자 명단에 올려놓아야 하는 이들은 그 범행으로 인해 이익을 많이 보게 될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막내딸은 죽고 큰딸은 아마도 살인죄로 잡혀들어가 단죄될 것이니, 재산 그리고 어쩌면 남자를 차지할 딸은 오로지 둘째딸 하나 뿐인 것이다. 하지만 분명 막내딸의 초자연적 힘과 노래의 서사를 보면 어쨌든 가해자이자 살인자는 큰딸인 것임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둘째딸은 더 거대한 음모를...즉 모든 것, 즉 큰딸의 질투, 그로 인한 치정살인, 진범 규명, 큰딸에 대한 의절과 처벌...어쩌면 기실 모든 것의 원흉인 막내딸의 연인, 윌리엄의 존재마저 재산을 독차지하려는 둘째딸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애당초 윌리엄과 한통속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원전 민요의 버전 중 몇가지를 보면 큰딸의 질투를 유발한 원인이 남자의 태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큰딸에게 선물을 바치며 구혼하였으나, 그의 사랑은 막내딸에게 향해 있었다'라니 어디 이런 베라처먹을 남정네가 다 있나! 하지만 애초에 둘째딸과 공모한 공범이었다는 설정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함께 같은 집안에서 자매로 자랐으니 큰딸이 질투심이 강하다던가 막내딸에게 콤플렉스가 있는 것 등 성격도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며, 어쩌면 은근히 살인을 부추키거나 일부러 살인이 벌어지기 쉬운 현장을 조성해 주었을수도 있다. 결국 이렇게 둘째딸은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완전범죄를 일으켰다. 물론 아마도 막내딸이 설마 악기가 되서 스스로 진상규명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아마 때를 봐서 자신이 살인을 목격했다고, 지금까지 큰언니에게 협박당해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라고 증언을 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프가 된 막내딸마저 이 사실을 몰랐으니 그야말로 귀신도 모르게 이루어낸 완전범죄가 아닐 수 없다. 무서운 아이...
어릴 때 왠지 몰라도 집안에는 각종 뮤지컬 사운드트랙 CD가 굴러다니곤 했습니다. (아울러 퀸이나 시카고나 각종 클래식 음반도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원인은 어머니의 취미.)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캣츠] [에비타] 등 유명한 작품 중심이었는데
문제는 CD 형태로 처음 접하다 보니 무대극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장황한 드라마 CD로 잘못 받아들였고(...)
그리고 원래 아동용 극이 아니다보니 내용에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납득할 수 없었던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령 [오페라의 유령]만 해도 여주인공의 가증스러움과 짜증스러움에 치를 떨었는데 뭐 무대극을 그대로 만들었다는, 떡대 팬텀이 얼굴의 4분의 1만 가리고 나오는 영화판을 보니 원래 의도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응?)
아마 [레미제라블]이 가장 좋았던 것은 원래 원작이 친숙하기도 했고, 선과 악과 구원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 주인공과 메인 악역이 아저씨라서가 아니라...뭐 그것도 있겠지만...
하지만 가장 이해가 안 갔던 것은 (그리고 더더욱 분하게도 노래는 좋아서 계속 들을 수밖에 없던!) [마담 버터플라이]의 베트남 전쟁판인 [미스 사이공]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전쟁고아인 베트남 처녀 킴과 미군 크리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서양 남성과 타자로 설정된 동양 여성 커플이니 디플트로 오리엔탈리즘을 깔고 있고, 이 둘 사이에 아이(왠지 아들!)가 태어나는 점, 남주인공이 모국에 돌아가 다른 여성과 결혼해 삼각구도가 성립된다는 점, 그리고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살하는 결말이 동일하죠.
여성(그것도 동양인 여성)이 희생되는 구도라던가 뭐 답답하기 짝이 없으니 당연히 초딩의 뇌구조로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왠지 요즘 뮤지컬이 땡겨서 다시 들어보니 감회가 새롭더랍니다.
그리고 어느덧 초딩에서 극중의 주인공들보다 나이가 먹어버린 저는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니까 애들은 연애를 하면 안돼...........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교훈
보아하니 킴은 17살 정도밖에 안되고 크리스는 아마 20대 초반 언저리일 거고...즉 애들이지요.
이런 뭣도 모르는 꼬꼬마들이 전쟁통에 사랑한다고 설쳐봐......끝이 좋을 리가 없잖아?
마치 순진한 여고생이 오빠만 믿고 맹목적으로 언제 데리러 오겠지 만나겠지 이러고 있는 셈이고, 반면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으로 흔들리고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한 남자는 새 출발을 원할 수밖에 없지.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이고 여성차별이고를 넘어 비극의 연인들이라는 영원불멸의 주제를 너무나 잘 관통시켰기에 이 뮤지컬이 지닌 오랜 생명력이 납득이 갑니다.
잘 보니 [마담 버터플라이]와의 차이점은 그쪽에서는 남자와 새 부인이 아이를 데려가려 하고 그런 입장에 처한 나비부인이 자살하는 것은 긍지 때문인데, 좀 현대적 시대의 [미스 사이공]에서는 솔직히 새 부인에게 남편의 다른 전처에게서 난 듣도보도 못한 애를 키우라는 희생은 너무하니 그런 의미에서 거부하고, 그리고 아이를 친모에게서 앗아갈 수는 없다는 사고방식으로 거부해서 어떻게든 아이를 맡게 하기 위해(=미국에서 혜택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 자살하는 식으로 미묘하게 틀립니다. 사실 전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무리 크리스 부부의 원래 의도대로 경제적 원조를 해 준다고 해도) 아이가 자라길 원하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반면 베트남과 미국을 오가며 혼혈아들의 수색과 입양을 관리하는 일을 해서 현지 상황에 밝은 크리스의 친구 죤은 킴이 그 정도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던 거죠. 여기서 킴의 절박감에 대한 각자의 이해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덧붙여 [마담 버터플라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스 사이공]의 엔딩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훨씬 잔인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전자 쪽에서는 적어도 아이만은 아버지가 데려다가 키울 것이 확실한데, 후자에서는 확정이고 뭐고 전혀 없거든요. 그래서 연출가에 따라서는 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크리스의 미국인 부인이 킴의 아이를 껴안는 연출을 끼워넣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몇년 동안 끈질기게 킴을 스토킹해서 결혼하려는 정혼자이자 사촌오빠인 투이는...킴이 왜 싫어하는지 알겠더라는; 호치민 정권의 공산당 장교라고 하니 좀 유능할지도 모르지만 여자 대하는 데에서는 완전히 찌질남이잖아! 사실 지금의 입장이면 아무 여자와도 결혼할 수 있을 텐데도 굳이 킴을 찾아다닌 것을 보면 가부장적 책임감은 강한 것 같지만 그것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여자에게는, 특히 모성에게는 위협적인 존재.
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감상이 있다면 바로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엔지니어라는 점. 짝퉁 롤렉스 시계를 팔기도 하는 포주인데 감초 역이자 전체적으로 암울한 극의 중대한 개그캐릭터입니다. 치사하고 다소 야비한 협잡꾼이자 사기꾼 기질의 인물인데, 기가 세지는 못해서 금방 설설 기고, 전적으로 자기 이득을 위해서긴 하지만 킴과 킴의 아이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궁창같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향상심 강한 몽상가 기질도 있습니다. 전체 극 중에서는 그나마 '밝은' 인물이라고 할까요. 역시 결말을 생각하면 좀 암울할 수도 있지만...
동양풍 멜로디를 적절히 섞은 음악이 좋습니다. 리아 살롱가의 순수한 연심과 강렬한 호소력을 동시에 지닌 목소리는 어린 처녀이지만 강인한 어머니이기도 한 비극의 여주인공에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인지 에포닌도 함...) 뻔뻔스러운 듯 속물스러우면서 탄탄한 베테랑의 매력이 느껴지는 죠나단 프라이스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다시 들어도 기분이 행복해지고 가벼워지는 종류의 뮤지컬은 결코 아니지만 역시 음악이 좋아서 몇번이고 듣게 되네요. 분하다!
원고중에 듣는 사운드트랙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구한 음원 중에 일본어판 [레 미제라블]이 있는데
여기서 [One More Day] 말입니다만, 도입부의 장발장의 파트에서
these men who seem to know my crime will surely come a second time
(내 죄를 아는 그 남자들이 다시 여길 찾아 오겠지)
라는 가사가 있지요. 강도 테나르디에 일당을 자베르의 추격대로 착각해서 위기감을 느끼는 내용입니다.
근데 이게 일본어판에서는...
男たちはまた 俺を追いかける
(남자들은 다시 나를 쫓아 오겠지)
...라는...전혀 아무런 맥락 없이 그냥 남자들이 왠지 쫓아 온다는 식으로만...
괜시리 이런 게 연상되잖아....
그러니까...장발장은 19년 동안 감방 생활을 했구요...
힘이 장사라서 [기중기 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하구요...
18세기 감방에는 샤워실과 비누는 없었겠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등짝이 없었을 리는 없구요...
즉 오랜 감방생활 동안 처음에는 험한 일을 겪다가 경험치가 쌓이면서 본의 하니게 짱(...) 먹어버린 장발장...
별로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나 타고 난 기운 덕분에 절륜대왕 기중기 장이라는 전설이 되어버리고
출소 후에도 그의 절륜함을 못 잊어서 쫓아오는 전과자들이 사실 자베르 경감보다 더 난감했던 것이다...!
아악~ 일판 레 미제라블은 썩었어!!!!!! 절대로 뭐시기한 원고를 하느라 내가 민감해진 건 아님
...다른 얘기지만 장발장 하면 늘 생각나는 게 어릴 때 읽은 조선일보 칼럼에서 마광수 교수가 레 미제라블을 평하면서 장발장이라는 인물은 너무 비현실적으로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다, 그 증거로 왜 코제트를 안 건드렸냐, 마리우스에게 주기 싫으면 자기가 먹으면 되잖아~라는 키잡설을 토대로 한 비판을 했는데
씁 키잡만이 남자의 로망은 아니잖소 완전소중 나의 마돈나라는 것도 있는데...라고 대꾸해주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19년 감옥에 있던 덩치남의 처지를 마교수님이 너무 간과한 게 아니신가 싶습니다 흑(...)
게다가 그 동안 뭔가 몹쓸병이 걸렸을지도...차라리 장발장 고자설이면 모를까 위선적이라는 건 너무하십니다.
1933년 헝가리 작곡가 레조 세레즈가 쓰고 1936년 미국에 [헝가리 자살곡]으로 소개되 인기를 끈
글루미 선데이-우울한 일요일.
사실 워낙 다양한 버전의 가사가 있어서, 앞서 연주곡부터 들어봅시다.
곡 자체보다는 아마도 관련 전설들이 더 유명한 곡인데요.
실연당한 작곡가가 연인을 되찾기 위해 이 노래를 작곡하고, 이에 감명받은 연인은 다시 그에게 돌아왔지만, 얼마 안가 자살하고 만다...[글루미 선데이]라는 말만 쓰여진 유서를 남긴 채...이 소식을 들은 작곡가 역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혹은 작곡가는 이 노래로 백만장자가 되었으나 그보다 훌륭한 곡을 쓸 수 없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린 끝에 자살한다. 그 후 유럽과 미국에서 이 곡을 듣고 자살한 사람들이 수두룩해 라디오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된다. 그래서 이 곡은 헝가리 자살곡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밖에 30년대 어떤 프랑스 교향악단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데, 시작부터 드러머를 비롯해 단원들이 차례차례 무대 위에서 목숨을 끊고, 마지막까지 남은 바이올린 주자도 목을 메어 자살했다는...아무리 봐도 뻥인 게 너무 티가 나는 야설도 네이버 지식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솔직히 너무 말이 안되서 웃기기까지 하잖아...-_-)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요? 듣는 이를 자살로 이끄는 곡이라니 딱 납량특집이나 호러영화의 소재로 적합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곡과 자살유발의 상관관계에 대한 정확한 통계적, 자료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입증된다면 학계와 의료계에 크나큰 공헌이...) 작곡가 레조 세레즈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1968년의 일이구요. 작곡 계기와 실연이 상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레즈 본인의 실연이 아니라 친구였던 시인 라즐로 야보르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에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는 이게 뭐 삼각관계 (나중엔 독일인까지 더해 사각...-_-) 로맨스로 표현되던데 순전히 픽션화된 것이구요.
뭐 어찌되었든 그만큼 곡이 우울하면서 아름답기 때문일텐데요. 또한 유난히 가사 개작을 많이 거쳤기도 합니다.
가을, 낙엽이 떨어진다
지상의 모든 사랑이 죽었다
바람은 구슬프게 울고
이 마음 다시는 새로운 봄을 바라지 않으리라
나의 눈물과 슬픔은 전부 헛되었다
사람들은 무정하고 탐욕스럽고 악하다...
사랑은 죽었다!
세상은 끝이 났다, 희망은 의미를 잃었다
도시는 파괴된다, 포탄의 음악이 들린다
들판은 피로 붉게 물들고
거리에는 시체가 널려있다
나 여기서 조용히 기도한다:
주여, 인간은 죄인입니다. 실수를 합니다...
세상은 끝났다!
굉장히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톤이 강합니다. 실연이고 자시고 하는 레벨이 아니지요. 정말로 세기말적 절망이 느껴지는 강력하면서 직설적인 가사입니다. 그래서인지 가장 덜 알려진 버전이기도(...)
덧붙여 이 버전을 헝가리어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링크는 이곳.
그런데 이 노래의 의뢰자이자 친구인 라즐로 야보르는 그래도 명색이 시인인지라...이 가사가 시적 로망이라던가 대중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개작을 했습니다.
하얀 꽃 수백 송이 흐드러진 우울한 일요일
내 사랑, 기도하며 그대를 기다렸네
꿈을 쫓던 어느 일요일 아침
그대 없는 슬픔의 마차만 돌아왔네
그 날부터 일요일은 영원한 슬픔의 요일
마시는 건 눈물이요 먹는 것은 슬픔뿐이니
우울한 일요일
마지막 일요일, 사랑이여 부디 와주오
신부와 관, 영구차와 수의가 기다리니
그대에게는 꽃다발을, 꽃다발과 관을
울창한 나무 아래 마지막 여정을 떠나니
최후까지 그대 볼 수 있게 두 눈 크게 뜨고 가겠소
내 눈을 두려워 말아요, 죽음에서조차 그대를 축복하는 것이니..
마지막 일요일
....이건 개작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것이 전혀 다른 내용이 되버려서(...)
인류 자체로써의 절망이 여기서는 개인 레벨, 그것도 실연한 연인의 레벨로 포커스 되었습니다.
'꽃'이라는 표현의 남발 등 죽음을 미화하는 낭만적이고 시적인 톤과, 자살에 대한 더 노골적인 암시가 (그것도 눈 뜨고 죽겠다는...) 개인적 차원의 절망감을 멜랑꼴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사실 덕분에 이 곡이 대중화되기도 하고, 영국, 미국에 영작되어 소개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헝가리 자살곡]은 미국 로컬라이징 마케팅 과정에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미국인 가수이자 작사가인 샘 루이스가 야보르의 가사를 바탕으로 개작한 것이 후에 폴 롭슨도 부르고, 빌리 할리데이도 부르고, 사라 맥라한도 부르고, 헤더 노바도 부르고, 자우림의 김윤아와 MC Sniper도 부르거나 조금씩 인용한 [글루미 선데이]의 가장 대중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요일은 우울하네, 잠 못 이루는 시간들
사랑이여, 나는 수많은 그림자와 살아가네
작고 하얀 꽃들조차 그대를 깨우지 못하네
슬픔의 검은 마차가 데려갔으니
그대 돌려주지 않는 천사들은
내가 그대와 함께한다면 분노할까
우울한 일요일
일요일은 우울하네, 그림자와 보내는 나날들
이 마음과 나는 모든 것을 끝내려 하네
그리고 촛불과 슬픈 기도가 이어지겠지
그들이 슬퍼하지 않기를, 나는 기쁘게 그대를 뒤따르니
죽음은 꿈이 아니라네, 죽으면 그대를 어루만질 수 있으니
마지막 한 숨까지 그대를 축복하리
우울한 일요일
꿈이었네, 나 꿈을 보았네
깨어나 마음 속 깊이 잠든 그대를 발견하네
사랑이여, 내 꿈 두려워 말기를
이 마음 그토록 그대를 갈망했을 뿐이니
우울한 일요일
뒤의 [꿈이었네] 부분은 개작에도 불구하고 곡이 여전히 자살, 혹은 죽은 연인과 함께하고 싶다는 절망감을 담고 있기에 레코드사의 압력으로 추가했다는 일설이 있습니다. 실화인지는 불명이지만 분명한 것은 곡의 절망감을 어느 정도 순화, 완화시키기 위한 장치로써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뒤로 갈수록 순화되고 낭만적으로 변해온, 덕분에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각종 전설을 탄생시켰던 [글루미 선데이]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헝가리 근현대사를 보면 작곡가가 자살한 게 별로 저주같은 부자연스러운 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저 곡이 쓰여졌던 30년대 헝가리는 대공황의 타격을 크게 받고 있었고 나치 독일에 경제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었으며 파시즘이 판치고 반유태인 법이 몇개나 개정되는 등 매우 뒤숭숭한 정국이었습니다. 따라서 독일의 전쟁에도 우방국으로써 참가해야 했고 불가침조약을 맺은 사이였던 유고슬라비아 침공에도 참전할 수밖에 없어, 이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 헝가리 수상 텔레키가 자살을 합니다. 게다가 독일과 소련 사이 길목에 놓인 바람에 히틀러의 개뻘짓 스탈린그라드 침공에도 가세하여 헝가리 군력의 대부분을 소진하고 역전한 소련군에게 침공당해 2차 대전 후에도 소련 치하에 헝가리인들은 처참하게 고통받게 됩니다. 뭐 헝가리에서 끔찍한 차별을 당하고 유태인 대학살 사망자의 3분의 2에 달한 헝가리 유태인들이 봤을 때는 정당한 응징일 수도 있겠지만요. 이처럼 2차 대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써의 국가적 입장이 가장 극명하게 공존했던 나라인 셈입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면서 동시에 프랑크톤 대학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입장이랄까요. 이런 환경에서 작곡가가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그런 절망적인 가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괴담이나 불가사의 사건을 재미있어하는 종족 중에 하나이지만, 대개 이 곡을 논할 때 이런 역사적 배경을 제거한 채 그냥 [자살유발곡]이라고만 하니 아쉽기도 하고 좋은 역사교육(!)의 기회가 묻히는 것 같아 몇 자 적어봤습니다. 괴담이나 전설의 근원을 찾아가면 시시하다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더 흥미롭거나 혹은 이야기보다도 더 처참하고 무서운 현실이 배경이 될 때가 많지요. 이야기, 픽션, 예술이란 것은 사실 현실도피라기보다는 현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필수적 생존수단이라는 생각이 가끔 드는 요즘입니다.
...뭐 어찌됐든 헝가리는 이 곡을 적절히 관광산업에 활용하고 있긴 합니다만...
부다페스트의 Kispipa Vendéglő라는 유서깊은 레스토랑은 이 노래를 연주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불렀습니다만 대체로 멀쩡히 살았던 걸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