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저도 [왕
(사실 본 건 토요일인데 일(...) 때문에 리뷰는 이제야 올리는군요;)
저 위에 줄을 그은 것은 오타가 아닙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제목은 [왕의 남자]입에도 불구하고......
사실 진정한 센터, 핵심, 코어, 백미, 중심은......
얘네들.............
.......인 것처럼 나온 건 그냥 홍보전략(;;)이고..........(커플 맞긴 맞지만...)
사실은.................
왕!!!
왕!!!
왕!!!
그렇습니다.........
영화의 포인트는 연산군!!! 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사실 [왕의 남자]라기보단 [왕과 광대 (The King and the Clown)]라는 영문판 제목이 더 적합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왕의 남자]라는 제목이 더 자극적(...)인 것은 사실이니까 홍보성을 위해 어쩔 수 없겠지요. 그 증거로 몰리고 있는 관객 수를 보십시오. 물론 동시에 [왕의 남자]라는 제목이 붙은 영화가 각종 종교단체, 자칭 가족단체 및 자칭 어린이 보호단체같은 거로부터 아무 태클 없이 태연히 상영, 그것도 승승장구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나라는 대관절 어떤 나라인가 하는 의문도 떠오릅니다만.......(전혀 노골적이지 않은 제목의 Brokeback Mountain같은 경우 극장확보와 관객유치를 위해 고생중인데...핫!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게 더 야할지도! 그러니까 대체 뭔 짓을 하다가 broke back 하냐고!! 역시 제목이 너무 에로해서 문제였던 거야!!!).......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않기로 하겠습니다.
아무튼 얘기가 좀 샛지만, 영화는 역사에 상당한 분량의, 그러나 영화적 장르나 내용으로써는 의외로 적절한 허구를 섞어가며 연산군이라는 인물과, 왕과 광대라는 조선시대 사회의 극과 극의 위치에 처한 입장을, 영화 내의 "현실"과 액자적 틀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판과 엮어가며 풀어나갑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이자 흥행의 비결이라면 마치 놀이판과 같이, 어렵고 무거울 수 있는 현실적, 역사적인 소재를 굉장히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 헤쳐놓으며, 서민적으로 알기 쉬운 레벨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서 영화의 화법과 영화 내의 내용에서 사용되는 화법은 거의 일치합니다. 놀이판이라는, 굉장히 즉각적이고 순간적이고 무대(허구)와 관객(현실)의 경계가 평행선인 것처럼, 유동적이고 아슬아슬한 밸런스가 영화를,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놀이판은 유쾌하고 비현실적(천민에 해당되는 광대가 양반, 심지어 왕의 탈까지 쓴다는 탈신분적 요소--물론 남자가 여자 역을 한다는 탈성적脫性的 요소도 포함해서)이언정,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엄연히 현실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는 유희입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해 불안하기에, 스스로를 하나의 배우/광대로 생각하며 연극의 유희로만 다루어질 뿐인,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서 "거짓/가식"으로 덮어두고 가는 "진실"을 왕의 권위와, 스스로의 광기로 인해 무대 밖으로 끌어내 궁정을 피바다로 만드는 연산의 행동으로 현실과 비현실, 진실과 거짓의 줄타리기는 점점 위험수위를 넘게 됩니다. 여기서 최고의 권력을 쥔 만큼 그 선택이 가장 폭넓은 범위에서 영향력이 있고 파괴적일 수 있는, 행동의 주축이 되는 연산(물론 그 행동을 결정하게 되는 과정은 주위 환경에 크게 지배받지만)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만큼 절묘하고 섬세한 연기가 요구됩니다. 개인적으로 정진영씨의 연기와 풍채는 그러한 엄숙하고 냉혹하면서도 (아주 위험한)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가진 연산군을 훌륭하게 표현해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 하면 이준기 군에게 미안하지만, 솔직히 저에게 있어선 연산에 가려 공길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순전히 [트로이]에서 션 빈이 배경에 희끄무리하게 나와도 클로즈업된 브래드 피트보다 눈에 잘 띄었던 것처럼 그냥 주관적인 관점의 차이겠지만....실제적인 "존재감"이나 "카리스마"의 차이도 있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긴 평을 읽어보면, 이 영화는 어떤 캐릭터를 주축으로 보는가에 따라 상당히 인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연산을 주축으로 본다고 광대들의 역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연기하고 연산이 흉내내는 연극과 놀이에는 이 영화의 치명적이면서도 최대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왕의 남자]가 해외에서도 반향이 좋을 것 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냥 흔한 사극이나 무협물이 아닌 현실과 무대의 경계를 뛰어넘는 위험한 구도, 왕궁과 길거리 놀이판의 극적인 접점,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드라마, 그리고 동성애적 요소 등 정통사극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신선하고 이색적이면서, 역사적인 분위기는 강하면서 동시에 방대한 사전지식을 요구할 정도로 역사적이지는 않으며 (물론 연산군에 대한 사전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훨씬 유익하지만, 왕과 광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같은 요소는 범세계적인 소재죠. [웰컴 투 동막골]이 히트작이고 실제로는 어렵지 않은 영화였음에도 불구, 해외에서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6.25라는 "한국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질"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서구인들이 평소에 동양문화에 접목시킬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 코드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저런 식으로 잘 만들어서 히트친 경우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 같군요. 물론 아름다운 한복 디자인도 당연 한몫....^^) 무엇보다 내용이 알기 쉽습니다. 편집이 매끄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난해하고 어렵게 만들어진 영화도 아닙니다. 게다가 이 영화 역시 유머의 중대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내용을 지나치게 무겁고 지루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것이 바로 조연들의 뛰어난 코믹 연기입니다. (물론 유머 요소를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적절히 배치하는 것도 센스입니다만.) 작품이 어느 정도 대중성을 띄려면, 유머는 필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간단히 말해 보는 이에게 잠시 긴장을 풀고 한숨 돌리게 되는 여유랄까요?
인물과 인물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히 많은 평이 오가기에 제가 굳이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그 인물들을 잘 버무려 다소 독특한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전체적으로 대중의 입맛에도 잘 맞춘 작품과 내용 그 자체에 흥미가 있기에 간단히 짚고 넘어갑니다...만 사실 그렇게 간단히 다룰 인물이 별로 없긴 하군요; 일단 오피셜로는 주인공이라고 언급되는 장생에게서는 전형적인 한국적 순정 마쵸상을 보았고 (여기서 말하는 마쵸는 가치기준이 아니라 단순히 "보편적인 사회적 관점의 기준으로 지극히 남성적인 남성"), 아마 이것이 우리나라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는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공길에 대해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호적이고 독점적이라던가, 맹목적으로 순정적이고 극적으로 자기희생적이라는 요소가 그러합니다. 예를 하나 든다면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 정도가 있겠군요. (프라하의 연인...인가의 여주인공에게 막 반말 까대는 형사도 그런 타입인 듯...다 안봐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국적 감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에게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어필하고 여성들에게는 (전부는 아닐테지만) 남자다운 순정파 터프가이로 좋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공길은 일단 이준기 군의 외모로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저는 본의 아니게 순수한 소년 S군을 또다시 상처입히고 말았습니다;;...랄까....이전에도 당했으면서, 혹시 학습능력 제로??;) 타고난 용모도 있지만 일단 잘 꾸며두기도 해서 일단 영화의 이미지로써 매우 중요한 "얼굴마담" 역할은 확실히 해냅니다. 그런데.....구체적으로 뭘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래서 연극을 볼 생각입니다.) 아무튼 장생과 엄청나게 절절한 ㅎㅁ신파극을 영화 시작 10분에서 (영화가 과연 동성애적 요소를 얼마나 살렸냐 우려했던 분들은, 이미 영화 시작 10분만에 [우하하하하하하!!!! 이거 순 BL이잖아!!!]--하고 안도(?)의 파안대소를 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다시 한번 영화 마지막에서 땅땅땅 피니쉬 블로우를 날리는 팀플레이를 하지요. 일단은 스스로 행동하는 것은 꽤 적지만 (평소에는 얌전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샥~~ 대범하게 변신한다는 마야틱한 설정을 좀더 살려주었으면...) 역할상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되는....히로인 역할이기는 합니다.
연산은 무표정과 극한 감정의 표정의, 한마디로 극과 극을 달린달까요. 그만큼 불안정함과 광기와 슬픔이 있는 인물이라 미워할 수 없고 오히려 연민이나 공감까지 불러일으킵니다. 처음 등장시, 무표정한 얼굴이 공길의 재치로 팍~풀어지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 하나로 그런 극단성과 불안정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현실상으로는 반경 1km 내에는 있지 않았으면 하는 요주의 위험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전...살아서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몸이라...) 남색 곤룡포가 매우 잘 어울려 더더욱 수려해 보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맛이 가면 임금님이 아니라 두목님이 되는군요...;) 덧붙여 활 쏘는 장면도 매우 멋져서, 구미권에 수출되면 레골라스 이후로 [활의 전설]로 남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니다, 지긋한 연세에도 불구, 눈엣가시인 광대를 몸소 해치우려는 중신 레골라스 영감님 쪽인가;;←이름 멋대로 붙히지 마!!!) 그런 남자를 잘도 제압하고 있는 녹수야말로 간만의 여왕님 캐릭터죠. (아름답습니다!!) 뭐 결국은 나쁜 계집애!!--하고 공길을 질투하게 되긴 합니다만; 그러고보니 장생도 연산과 공길이 정말 말 그대로 엄청나게 건전하게 놀기만 한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멋대로 나쁜 자식!!!--하며 연산에게 괜히 이 변태호모자식아~(요즘 말로 번역하면 대략 이럼)--하고 시비를 걸다가 험한 꼴을 당하고, 중신들도 장생이랑 공길을 흥! 나쁜 자식들!! 언젠가 죽일꺼얌!---하고 벼르고 있고......뭔가 삐짐과 질투의 연속이군요 이 영화는(...)
참, 신하들 중에서 유일하게 광대들에게 비교적 호의적이면서 연산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처선도 매우 인상깊은 인물이어서, 그가 원하는대로 연산을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게 와닿았습니다. 물론 광대들 6, 7, 8 (K언니 이거 나이스센스...인데 맞는 말이긴 하군요;;) 없이는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재밌지 않았을 겁니다. 한마디로 정말 최강최고의 개그 트리오!!! 제가 영화제 심사위원이었으면 전부 남우조연상을 쥐여줬을 겁니다.
[왕의 남자], 원작 연극에 비해서는 아직 잘 알 수 없습니다만 독특하면서 보편적인 주제를 시대극이라는 장르 속에 잘 사렸고, 허구와 역사를 적절히 버무려 재미를 이끌어낸 점, 광대와 왕이라는 대치되는 입장과 그것을 통한 시대적 비극을 잘 살린 점, 적합한 캐스팅과 배우들의 호연, 또한 아름다운 한복과 궁궐 세트 등 훌륭한 요소가 많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BL코드라는 것은 좀더 쉽게 일반인을 설득시킨다는 점에서 단순히 얕보기만 할 장르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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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