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22. 15:49

중세 문서에서 발췌했다는 것 외에는 본문과 별로 관련 없는 고양이 그림.


2월 22일은 일본에서 고양이의 날입니다. 일본에서는 숫자 2를 “니”라고 읽는데, “니 니 니”하면 고양이의 울음소리인 “냐- 냐- 냐-”와 비슷하다고 그렇게 붙었습니다. 참고로 한국 고양이의 날은 9월 9일이고, 미국은 10월 29일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고양이의 날 중 하나를 맞아서 고양이에 대한 옛 아일랜드어 시를 하나 올려봅니다. 아일랜드어를 몰라서 영어로 번역한 것을 번역한 중역이라 본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될 수 있음을 유의하고 읽어주세요.


판구르 반


판구르야, 하얀 판구르야,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학자와 고양이 단 둘이서 함께

매일매일 주어진 일이 있으니

너는 사냥을 하고, 나는 공부를 하네

너의 빛나는 눈은 벽을 지켜보고

나의 허약한 눈은 책에 묶여 있네.

네가 기뻐할 때는 그 발톱이 쥐를 옭아맬 때

내가 기뻐할 때는 생각 끝에 문제를 풀어낼 때

각자 자기 일 즐기며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니

우리 이렇게 지루함도 시기도 없이 살아가네


이 <판구르 반 (Pangur Bán)>이라는 시는 라이헤나우 수도원에서 발견된 문서 Reichenau Primer 중에 발견된, 필사하던 수도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쓴 것입니다. “반”은 아일랜드어로 하얗다는 뜻이고 판구르는 당시에 고양이에게 자주 붙였던 이름이라고 하네요. (우리식으로 “나비” 정도?) 그래서 저자의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로 추정됩니다.

판구르 반은 사실 문서 귀퉁이의 낙서에 불과한 위치에 있어서, 오랜 기간 묻혀 있다가 1903년 켈트어 학자 위틀리 스톡스 Whitley Stokes 와 존 스트라챈 John Strachan이 공저한 아일랜드 고문서 모음집 <Thesaurus Palaeohibernicus>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시인 로빈 플라워와 W. H. 오번 등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사실 로빈 플라워의 번역이 더 유명한 것 같지만 오번 쪽이 더 짧아서 편리해서 그 쪽을 번역...한 것만은 아니고, 짧은만큼 번역자의 해석과 개입이 적은 편일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일랜드어를 모르니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구글신에게 정확한 번역이 어느 쪽인지에 대해 물어봤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저기 왼쪽 하단이라는데 무식해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흑흑;


아무튼 그 옛날에도 고양이가 인간의 일을 방해했다는 이런 증거이런 증거가 남아있긴 해도, 이 시를 쓴 수도사의 경우처럼 결국은 귀여움을 받았으니까 곁에 둔 것이겠지요. 특히 가족 없이 속세에서 떨어져 엄격한 수도원 생활 속에서 필사에 매진하던 수도사에게는 큰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쥐를 퇴치하기 위한 실용적 기능도 충실했고, 실제로 많은 수도원과 수녀원에서 그 목적으로 고양이를 기르기도 했죠. 


쥐잡이(...)


결론은 <판구르 반>은 인터넷에 넘치는 팔불출 고양이 주인의 오글거리는 고양이 숭배질이 인터넷 이전에도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 주인들의 팔불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군요.


폰카가 없어서 타페스트리로 짜냄.jpg



출처: Pangur Ban 위키피디아 페이지 http://en.wikipedia.org/wiki/Pangur_B%C3%A1n

Pangur Ban MSS Still in Existence? http://suburbanbanshee.wordpress.com/2009/05/17/pangur-ban-mss-still-in-existence/

Reichenauer Schulheft - Reichenau Primer http://hildegard.tristram.de/schulh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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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2010. 2. 4. 14:35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주요 일간지에서 알아서 설설 기는 바람에 광고되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네티즌들이 대신 이 책을 광고하는 움직임에 나름 동참하기 위해 웹광고 버전을 만들어 봤지만...

아 이 웬 찌라시 황색언론스러운 천박센스 작렬하는 광고OTL;;
(게다가 왠지 산뜻하고 쿨시크한 표지와 전혀 조화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사용한 문구는 전부 책의 소제목으로부터 발췌해 사용한 것이긴 하지만 배치와 편집이...으음;

이럴 때마다 찌라시일보들과 유머감각이 안 맞는다는 사실이 통감스럽습니다. 방법론적 센스는 비슷한데TT

참고로 원래 신문에 게재될 예정이었고 현재 웹에도 돌아다니는 손발은 좀 오그라들지만 더 우아한 버전은 이쪽↓


 

마음에 드시는 쪽으로 퍼가세요~~^ㅂ^ (<<자폭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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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2009. 11. 22. 20:48

 

안 읽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

...부, 부러운 능력이다! 나는 다 읽어도 정리를 못해서 이 고생인데...


 

백인 여자와 데이트하는 법: 아시아 남성을 위한 지침서

...딱 집어 백인 여성아시아 남성용이라는 게 뭔가 참...할 말 없게 인종주의적...;
아무튼 한국인 루저녀따위보다 백인 개념녀(...)나 사귀겠다는 남자분들은 필독?



여성은 인간인가?

...도발적인 제목이지만 실제로는 국제적인 여성 인권 실태 조사서인 진지하고 멀쩡한 책입니다.


 

에로틱 점선 그림: 점선을 따라서 60종의 섹시하고 전율적인 그림을 그려보세요

점선 따라 그리기라는 유아적인 그림공부 매체와 성인에로의 조합이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이것만 있으면 누구나 에로화를 그릴 수 있겠군요!! (...하지만 필요없어!;)


 

갱스터 랩 색칠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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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터 랩이라면 야한 옷차림의 창녀들도 빼놓을 순 없겠죠?
그런데 총 안의 크레용을 보면 아동용인 것 같...




애완동물 및 인간용 D.I.Y 관 만들기: 자신의 작품 속에서 묻히고 싶은 목수들을 위한 가이드북

하긴 톱질 좀 하시는 분들은 문자 그대로 본인의 작품 속에 묻힐 수 있겠군요(...)


 

남성 분만: 근대 초기 스페인의 생식, 여성스러움, 그리고 임신한 남성들

남성분만이라는 메인 주제부터가 충분히 괴악스러운데 근대 초기 스페인으로 범위를 한정시킨 게 더더욱 충격적!
이 연구자...설마 '근대 스페인' '현대 스페인' 나아가 국가별로 따로 발표할 생각인가!!
내지는 근대 초기 스페인에 남성분만 사례가 급증할만한 역사적인 사건이라도 있었던 건가!
너무 궁금해져서 (구할 수 있으면) 찾아볼 생각입니다...-_-;




아기, 그리고 섹스의 다른 위험요소들: 집안에 있을 법한 도구로 9개월만에 작은 인간을 만드는 방법


육아에 대한 과도한 신성화, 미화에 일침을 날리는 진솔하고도 날카로운 통찰력의 제목!...이라는 평.
실제로는 육아 아빠였던 경험을 살린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솔한 육아체험 및 지침서라고 합니다.
제목은 피임권장서적같긴 하지만 그만큼 육아의 어려움과 책임감을 강조한다고 할까요?


 

거세: 장점과 단점

아마존 설명으로 대신합니다:

이 책에는 상당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세 시술 후의 다양한 효과에 대해 증명하고 있다. 이 간단한 15분짜리 수술은 13년하고도 반년의 놀라운 평균수명 증가에, 전립선암 치료효과 및 인체의 면역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저자에 대해: 저자는 은퇴한 미국 공군 중령으로 25년 동안 거세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해왔으며 전립선암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도 수술을 받았다. 그는 이 주제에 대해 책 한 권, 소책자 3권, 기사 11개를 썼으며 라디오에 3회, 텔레비전 방송에 3회 출연한 바가 있다.

 
자! 여러분도 진지하게 거세를 고려해 봅시다!^_^ >>라는 주제인 듯(...)

여기서 퍼옴.


...........안선생님 논문이 안 쓰러져요...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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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2007. 12. 13. 21:05
[해리포터]를 너무나 좋아하는 김순희씨. 자신의 이름과 좀 비슷한 '수니 킴'이라는 오리지널 주인공을 내세워 해리포터 팬 픽션(줄여서 팬픽. 특정 작품의 팬이 원작을 자신의 의도대로 비틀거나 캐릭터만 빌려 전혀 다른 내용을 전개하는 등의 팬에 의한 픽션 문학.)을 썼다. 수니 킴은 양친을 데스이터에게 잃고 고아원에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보라색 눈동자가 매력적인 밝고 순수한 미소녀로 호그와츠에 편입학한다. 해리, 론, 루핀, 블랙, 프레드와 죠지와 염분을 뿌리게 하고 공부도 한 과목 빼고는 (모든 것이 뛰어난 캐릭터가 요리만은 못한다던가 하는 식의 애교스러움을 의도한 흔한 설정) 다 잘하며 심지어 적대적 캐릭터인 말포이나 스네이프도 홀딱 반하게 만든다. 마지막에는 캐릭터 중 한명과 행복하게 이어지거나 볼드모트의 공격으로부터 해리를 지키고 죽어가며 영영 해리의 마음 속에 남는다는 엔딩으로 끝이 난다. 혹은 그 주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볼드모트마저도 홀려서 개과천선시키던가.

메리 수(Mary Sue)는 특정한 타입의 가상의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단어의 기원은 미국 팬 픽션 및 슬래쉬(Slash. 일본의 '야오이'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주로 여성이 제작, 향유하는 남성 동성애물을 의미함.)의 탄생지이기도 했던 스타트렉 팬픽계로 여겨지며, 1973년 파울라 스미스가 당시 팬픽계에 만연하던 타입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비꼬기 위해 쓴 A Trekkers Tale이란 단편의 메리수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리수는 대부분의 경우 여성 캐릭터다. 간혹 남성 메리수 계열 캐릭터가 보일 경우 마티 스튜(Marty Stu)나 게리 스튜(Gary Stu)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캐릭터 자체의 성별에 무관하게 메리수라는 명칭이 폭넓게 사용된다. 메리수 캐릭터란 대체로 나이가 10대 정도이거나 외모가 10대이며, 용모 등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었고, (종종 세계관에는 안 맞는) 특이하거나 막강한 특수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원작의 주요 캐릭터들을 재치고 대활약하고, 그들의 호감을 사서 사랑을 나누기도 하며 (간혹 그녀와 대립하거나 적의를 보이는 캐릭터도 있지만 99%의 확률로 작가에 의해 응징을 당함), 분명한 성격적 결점이나 단점 없이 과도하게 완벽한 캐릭터를 말한다. 때로는 극단적으로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과거나 트라우마, 숙명을 지니고 있고 일단 설정부터 복장까지 뭐든지 도를 넘어서 지나친 것이 특징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작가의 다소 사춘기적인 환상 및 원망충족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캐릭터인 것이다.

국내에 상응될만한 개념이라면 지나치게 강하고 유능하고 인기가 많은 주인공인 '먼치킨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메리수와의 차이점이라면 메리수가 주로 여성이 주도한 팬 픽션계의 산물로, 대체로 정서적, 인간관계적 우위에 대한 판타지가 강한 반면, 먼치킨은 남성 작가와 독자가 많은 국내 판타지 및 무협 소설에서 태어나 절대적인 힘의 우위에 대한 판타지를 더 강하게 추구하는 점이라고 들 수 있겠다. 전반적으로 메리수적(的) 욕망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다'이고, 먼치킨적 욕망의 요점은 '누구보다도 강해지고 싶다'인 셈이다. 물론 이들의 경계는 칼같이 나뉘어진 것이 아니어서, 먼치킨적 능력을 갖춘 메리수나 메리수적 인기를 누리는 먼치킨도 흔히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도하게 뛰어난 주인공의 정형이라는 공통분모이다.

즉 좋아하는 세계관 속에서 좋아하는 인물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좋아하는 모험을 펼치고 싶다는, 굳이 특정 작품의 팬이 아니라도 최소한의 상상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순수한 의미의 판타지인 셈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상당 부분 원망충족적 판타지(wish fulfillment fantasy)를 위해 탄생한 인물형이다.

이러한 판타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형태의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원망충족적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지극히 자연스럽고 근본적인 인간의 욕망에 해당한다. 그러한 욕망과 판타지를 현실 속에서나마 가장 가깝게, 가장 저렴하게 실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몸소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상 전래동화에서부터 블록버스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이러한 원망충족적 판타지에 바탕을 두고 있고 바로 그 판타지를 보는 이에게도 공감을 얻고, 또한 일부 충족시키기 때문에 영원히 계속되고 반복되는 것이다.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들은 온갖 미인을 후리면서 악당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하고, 여자 주인공들은 각종 고난을 극복하고 운명적인 상대와 행복하게 맺어지는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힘을 지니고 있는 것도 원망충족적 기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메리수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순수한 원망충족적 주인공의 전형인 셈이니까. 이야기-픽션을 탄생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 중 하나가 원망충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굳이 '메리수'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이유는 맥락의 차이점에 있다. 즉 팬 픽션 세계,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동인계라고 할 수 있는 팬 공동체라는 특별한 영역과 맥락 안에서 극단적인 원망충족형 주인공은 좀더 미묘한 위치에 놓인다. 패러디나 팬 픽션이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잘난' 주인공은 간혹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아니 오히려 주인공을 멋지고 잘나게 하려던 작가의 의도와 정반대로 작용해 수용자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국내의 먼치킨 주인공에 대한 개념 성립과 반발은 팬 픽션이 아니라 대부분의 작 판타지, 무협소설의 천편일률성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생겨났다. 즉 부분적으로는 소설이 많아졌다는 사회적, 경제적 특성과 그로 인해 독자 수준의 향상 및 다양화로 비슷한 이야기에 식상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가 귀했던 시절에는 아무리 막내로 태어난 주인공이 착한 일 한번 했다고 온갖 미물들의 도움을 얻어  공주도 얻고 왕위도 얻는 식의 먼치킨에 메리수스러운 패턴이 번복되도 진지하게 의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극단적 원망충족형 주인공에 대한 반발이 창작소설계보다 훨씬 앞서 70년대 미국의 팬 픽션계에서 먼저 드러난 것은, 앞서 말했듯이 팬 공동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창작은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에서 '2차 창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미 창작된 기존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빌리는, 따라서 '자기 것이되 자기 것이 아닌' 미묘한 위치에 놓인다. 즉 원작자와 팬 작가라는 두명의 작가가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팬 공동체 안에서 팬 픽션에 대한 권력과 소유권은 원작자와 작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공동체 자체로 확대된다. 즉 '나의 세이버땅 하아하아' 류의 특정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문장에서도, 엄밀히 말해 세이버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세이버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나'의 세이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공적으로 존재하는 캐릭터인만큼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극단적 원망충족형 주인공은 발생하기 쉬우면서 (작가 자신도 특정 작품의 팬인만큼 그 속에 개입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고 무엇보다 쓰기가 쉽다) 동시에 타인의 공감은 얻기 어렵다. 앞서 말한 영화 속의 원망충족형 주인공들이 계속 인기를 끄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과 자기이입을 통한 만족감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팬 픽션의 경우 좀 다르다. 물론 모든 캐릭터에게 사랑 받고 영웅이 되는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메리수나 먼치킨 주인공들이 존속하고 있는 것이니까. 동시에 그만큼 반발을 가지는 사람도 많다. 왜냐면 그 주인공을 독자가 감정이입이 가능한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과도한 자기삽입형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며, 게다가 여러 팬들이 공유하는 다른 저작물 작품의 세계 안에서 그렇게 '설치기에'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메리수에 공감하는 독자는 앞서 말한 [수니 킴]에 자신을 이입할 수 있는 사람이고, 메리수를 싫어하는 독자에게 수니 킴은 작가 [김순희]의 가증스러운 분신일 따름이다. 그것도 너무나 동경하는 호그와츠의 세계와 사랑하는 캐릭터들에 대해 '감히' 픽션을 통해서나마 소유권을 주장하고 '더럽히는' 것이다. 실제로 메리수 주인공은 문자 그대로 '우주법칙을 비트는' 능력이 있기에 팬들이 생각하는 '더럽힌다'는 주장은(영미권에서는 이렇게 원작 캐릭터가 진지한 의미로 '망가지는' 것을 character rape-캐릭터 강간이라고 표현한다) 어느 정도 타당한 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메리수는 작가의 자기삽입형 주인공이기에 대부분의 경우 작가 자신도 이 캐릭터를 다룰 때 가장 기피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미움받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 내는 물론 외적인 요소, 즉 독자들에게 미움받는 것도 포함한다. 그리고 창작 실력과 테크닉이 부족한 팬픽션 작가의 경우 그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원작의 세계를 비틀어 극도의 주인공 중심적 세계로 만든다. 원작에서는 어떤 과거로 두번 다시 제자를 안 들이는 캐릭터가 주인공만은 제자로 받아들이고, 절대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캐릭터가 주인공에게만은 마음을 열며, 결코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캐릭터가 주인공을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즉, 특정 원작-세계관의 기존 법칙을 싸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주인공을 위해 돌아가는 우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법칙의 파괴 자체는 개그나 원작의 모순점을 폭로하기 위한 풍자적 목적으로도 종종 사용되니 그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문제는 작가가 독자들의 재미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대리만족, 자신을 이입시키기 위한 캐릭터(참고로 꼭 오리지널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기존 캐릭터의 가죽 속에 들어가는 메리수 캐릭터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야오이는 그 특성상 작가와의 적당한 거리 유지가 이루어져 메리수 비난을 적당히 피할 수 있다는 점은 있지만 그래도 예외는 아니다.)를 위해 그렇게 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목적이니 (물론 여기에 이입해서 만족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 상대적이다) 특히나 원작에 대한 애정의 정도와 특성에 따라 팬들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는 팬 공동체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강한 저항감 때문에 영미권의 팬 공동체에서는 독자와 작가들의 의식 조성과 질적 향상을 위해 메리수의 정의 및 개념 정리, 그리고 메리수 리트머스 테스트라는, 자신의 캐릭터가 메리수인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테스트 등, 메리수를 둘러싼 많은 토론이 오갔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메리수를 긍정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메리수는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책없이 잘 나가는 사랑받고 유능한 주인공은 거의 모든 창작자가 필수적으로 거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자작 소설이나 스토리를 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심지어 프로가 되어서도 이런 식의 주인공을 잘 만들어 인기를 끄는 작가도 많다.) 일반적으로 숙달된 창작자가 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객관화가 어렵기 때문에, 그 속에 과도하게 자신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점점 숙련되며 주인공과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고, 세계관의 법칙을 지키면서도 내용을 재미있게 꾸려나가는 법을 알게 되고, 주인공에게는 메리수의 요란하고 어색한 화장보다 내츄럴하면서 매력을 잘 살리는 화장법을 입히는 법을 알게 되며 차차 성숙한 작가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따라서 비툴 커뮤니티의 '자캐러'든 무협 소설의 주인공이든 메리수의 형제자매들은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범람하고 있다. 그것이 원작이 있는 세계관이든, 창작된 세계관이든 말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다수의 팬들이 특정 작품의 세계관에 대한 애호를 공유하는 팬 공동체의 경우 일명 팬심적인 '소유권'이나 '캐릭터 강간' 등의 문제에 대해서 메리수 캐릭터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여전하긴 하지만, 역으로 그만큼 메리수를 원하는 독자도 많기에 지속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정말 치가 떨리게 싫으면 피하거나 안 보면 되고. TV 광고도 아니니 그 정도의 선택권은 있지 않은가.) 또한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게임같은 매체의 경우, 주인공이 게임 속 세계에 대해 메리수스러운 영향력이나 비중이 부족하면 이입도와 재미가 크게 떨어지니, 매체에 따라서는 오히려 매우 유용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온갖 이성(혹은 동성)을 사랑의 포로로 만드는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사람들의 칭송과 도움을 받으며 세계를 구하는 RPG 게임이나 주인공이 갈 수록 어마어마하게 강해지는 액션 게임이 소설이나 만화로 만들어지면 대체로 재미가 없어지는 이유가 극도의 메리수스러움이 게임에는 자유롭게 허용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얼마나 메리수스럽게 만드는가-게임 내에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랄 수 있겠다.) 이렇게 메리수는 버릴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모든 창작자가 거치는 사춘기이자 원형이며 어느 시점에서는 훈훈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추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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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2007. 10. 29. 23:57


나츠메 소세키.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 소설가. 구 1000엔 화폐에 얼굴이 실려지기도 했음.
수많은 대표작이 있지만, 그 중에 읽어본 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번역본 정도...
[코코로(마음)] 원본이 있어 읽어보려고 했지만, 친척이 저에겐 너무 어렵단 이유로 가져감.
...하지만 진작에 읽어 보았어야 한다고 조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

도이 타케오. 일본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지난 학기에 기말 페이퍼를 위한 자료 조사를 하다가 자료 옆에 꽂힌
[일본인의 의식구조-아마에의 구조]라는 책도 눈에 띄길래 같이 빌려서
딴짓...아니 참고할 겸 넘겨봤는데, 이 중에 도저히 안 읽고는 넘어갈 수 없는 챕터가...
[아마에의 병리-동성애적 감정]이라는 제목....
70년대이니까 아직 동성애적 감정을 병리로 분류하는 건 그렇다 쳐도
그 예시로써 제공되는 게 나츠메 소세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코코로]라는 점.

(도이 선생의 글에 의하면) 주인공 총각은 해변을 거늘던 '선생'이라는 연상의 남자에게 끌리는데
'선생'은 이전 하숙집 총각을 짝사랑했다가 실연당한 이후 사랑불신증에 자살충동 증상을 보여

모 이○시키 노△무 선생을 대입시키고 싶은 분은 마음대로 하시오
주인공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고...
어긋나는 마음과 고독의 끝에 존재하는 것은 정녕 무엇인가...


....적어도 도이 선생님의 글에 의하면 저런 내용이었던 겁니다.
제 기억력 필터로 조금 이상하게 조정되었을 수는 있지만
동성애적 해석으로 저 소설을 분석한 건 사실입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이런 초순정 비엘 소설을 썼다니.

게다가 그것이 일본 청소년 추천도서라니.

무...무서워!!!


...어쨌든 도이 선생님은 저걸 통해 '아마에'가 충족되지 못했을 경우를 예로 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보다 제 뇌리 속에 남는 건...나츠메 소세키는 근대 비엘 소설을 썼다는 거랑....

70년대에 일본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는 그걸 국제적으로 알려진 자기 책에다 소개했다는 점....
(얼마나 유명하냐면 일본 연구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책임...)

그러다 시간이 흘러 2학기.
일본 연구하는 인류학과 강의 시간에 다시 저 책이 나왔습니다.
아무튼 드디어 이번이 기회! 일본 연구 전문가인 교수님에게 확인받을 기회!

"교수님, [코코로]의 인간관계를 동성애적으로 해석해 '충족되지 못한 아마에'를 설명한 챕터 말인데요..."

"아, 그거 사실 저도 왜 [코코로]를 그렇게 읽었는지 알 수 없더군요. 나츠메 소세키가 알면 화낼 걸요."


!


뭐...뭣이라?!

그럼 원작은 멀쩡한 소설인데.....


/


이 분이 비엘로 해석한 것인???!!!!


이 분 동인남??@@$%@!!!!!!


오~~~~노~~~~~~~~~!!!!!!!!!!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어어어어!!!@$%~!!!!!!!


.........이 혼란을 타개할 방법은 딱 하나....

직접 [코코로]를 읽는 것 뿐이군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이번에야말로 원본에 도전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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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2007. 9. 13. 20:25

9월 13일은 웨일즈 작가 (노르웨이 출신. 생몰년 1916-1990) 로알드 달의 생일입니다. 그래서 구글도 이런 모습.
마틸다,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찰리와 초콜렛 공장이군요. 매우매우 바람직합니다^^

어렸을 때 로알드 달 책들을 참 열심히 읽었습니다. 마법과 환상에 가득 찬 상상력이 넘치는 면, 예를 들어 모든 어린이...뿐만 아니라 단 거 매니아들의 판타지의 초결집체인 초콜렛 공장같은 것도 좋았지만 어딘가 기묘하게 추하고 일그러진, 그러면서 눈을 뗄 수 없는 느낌으로 더 인상이 강합니다. BFG의 식인 거인들의 더럽고 끔찍하면서 이상하게 익살스러운 묘사라던가, 어린이의 타인에 대한 공포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Witches의 마녀들이나, 좀더 일상적인 차원에서는 빛나는 재능을 가진 천재소녀 마틸다와 그녀와 대조적으로 딸의 가능성을 보려고도, 인정하려고도 안 하는 무식하고 무책임한 부모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라고 들 수 있겠지요.

그런 다소 과격하고 시니컬한 점 때문인지 로알드 달이 쓴 동화들은 영화화되면서 대중 취향을 위해 많이 "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동화 쪽도 충분히 어린이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고 같은 어린이들을 상대로 만드는 영화인데 굳이 착해질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영화는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개입하니 어쩔 수 없겠지요.
(그래도 어렸을 때 마틸다 영화판을 보고 실망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음...)

로알드 달의 동화책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역시 영국의 만화가 퀸틴 블레이크의 삽화겠지요.
익살스럽고 가볍고 장난스러운 그림체가 로알드 달의 블랙유머를 잘 살려주면서 한편으로는 적절하게 순화시키는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로알드 달 책=퀸틴 블레이크 그림이 너무 인상이 강해서, 가끔 (주로 현실세계 배경의 비교적 리얼한-예를 들어 Danny the Champion of the World)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가 맡을 경우는 위화감이 들거나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읽으면 현실적인 책들도 매력적입니다만.

생전의 로알드 달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맹비난하는 글을 쓰는 바람에 유태인/이스라엘 혐오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고 일설에는 그런 오명 때문에 기사작위를 못 받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뭐...나이 든 유럽인이니 어느 정도 유태인에 대한 차별심리가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아무튼 작가는 글 조심, 이라는 것이죠.
...그래도 뭐 전쟁한 게 잘못한 짓이긴 한데, 문제는 이스라엘 정책 비난자=유태인 비난자=나치와 동류라는 논리가 서구에서는 종종 이스라엘 정책 옹호가들의 철벽방어책으로 사용된다는 점이죠.

로알드 달의 매력은, 시니컬하고 삐둘어졌으면서도 일종의 궁극적인 선을 믿는 이상주의적인 면이 아닐까 합니다. 2차 대전 참전 용사였다는 점도 있고, 인간이 가장 추해질 수 있는 참혹한 현실을 보면서도 그만큼 꿈과 유머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의 동화는 신랄한 냉소주의와 소박한 낭만주의가 뻔뻔스러울만큼 천진한 유머와 상상력으로 인해 하나로 조화되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로알드 달을 재조명하다 보니 책을 다시 보고 싶군요. 본가에서 들고 올 걸 그랬나, 조금 후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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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2007. 5. 1. 00:39
[유리망치]를 계기로 번역된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 있는) 기시 유스케 책을 찾아보던 도중 [푸른 불꽃]과 같이 발견. 오늘 마침 휴강이라 아슬아슬하게 마감인 공과금 처리 등의 은행 업무 및 핸드폰 AS로 기다릴 일이 많아서 [천사의 속삭임] 쪽을 먼저 독파했습니다.
아마존 탐험대에 참가한 사람들이 일본으로 귀국한 후 연이어 자살하는데, 기이한 것은 평소에 강박증이 있었거나, 공포증이 있던 방법으로 자살한 것입니다. 주인공은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미인 정신과 의사인데, 죽음공포증이던 약혼자가 그 탐험대에 다녀오면서 갑자기 죽음에 과한 흥미를 보이고 탐닉하는 등의 이상증세를 보입니다. 한편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오타쿠 청년은 ([덴시가오카 고등학교]라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 올인중이고, 가장 공략이 어려운 히로인 캐릭터인 '사오리'에 푹 빠져 있음...) 게임 캐릭터를 검색하다 들어간 사이트를 통해 [가이아의 자식들]이라는 모임에 대해 알게 됩니다.
보다시피 추리는 아니고, 호러/스릴러 장르입니다만, 작가가 작가이니만큼 풀어나가는 방법은 매우 과학적, 체계적입니다. 동시에 인물들도 인간적인 고민에 시달리니, 균형을 잡아줍니다. 사회파스러운 사회 비판(이번의 주 타겟은 후생성인 듯)도 있고, 신화, 공포, 생물학, 오타쿠(...)를 잇는 특유의 연쇄능력 덕분에 재미도 있고요.
기시 유스케의 최대의 강점은, 다양한 자료 조사 뿐만이 아니라 그 자료들을 적절하고 절묘하게 연결시키고 버무려 재미를 이끌어내는 데에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실 연결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어려우니까요. 만화가로 비교하자면.....사사키 노리코 정도? 물론 센스와 경향은 전혀 다르지만....
본격 추리나 범죄물이 아닌 스릴러라서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스포일러는 피하고 싶어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공포와 쾌락, 죽음과 삶을 잇는 테마는 상당히 흥미로우면서, 묘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신빙성 있게 묘사가 치밀한 것도 있겠지만요. 수수께끼의 정체가 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보다는 신화와 생물학의 만남과 현대인의 문제를 절묘하게 버무린 장점에 주목하고 싶네요. 여담이지만, 오덕후를 마냥 비난, 한심한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 객관성(?)도 좋습니다.
검색해보니, 두권을 한권으로 합친 판본도 판매중이더군요. 구입할지 고민중입니다.  
아무튼 스릴러나, 미스테리틱한 호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덤으로 [유리망치]는 더 말할 것 없이 필수구매소설. 이상.
덤 2. 천사가 싫어질지도 모릅니다. 저야 원래 딱히 아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천사 매니아라서 마음에 안 드는 친구가 있으면, 이 책을 쥐어주면 되는 겁니다. 빅토리아조 판타지병을 고치는 특효약이 [죠죠의 기묘한 모험 1부 팬텀 블러드]인 것처럼 말입니다. (덤으로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에 대한 판타지도 치료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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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2007. 4. 26. 21:45

이어서 또 책 포스팅. 간만에 소설을 이것저것 보고 있군요. 단지 전공서적 읽기 싫어서 도피하는 걸지도...
고사카 지로의 [바다의 가야금]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투항한 왜장, 사야가 (후에 선조에게 김충선이라는 이름과 양반 직위를 받음)에 대한 소설로, 이름 발음의 유사성 및 철포부대가 있었다는 기록에 의지해 사야가=사이카 마고이치 설을 주장합니다. 정확히는 마고이치 본인은 역시 나이상 무리가 있었다고 느꼈는지 아들인 코겐타이-마고이치로라고 나오지만 아무튼 사이카슈의 대장인 것이죠.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는 많지만, 자료는 그다지 남아있지 않은 인물이라 (실제로 연구가 잘 안되어 있습니다!;) 진작에 이런 소설이 있다는 것을 듣고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이....이건....

90%가 그냥 일본에서 사이카슈가 전쟁하는 이야기...-_-

조선은 뒷부분에 10% 혹은 그 이하...

경상도에서 한번 만난 과부 된 양반 부인이 별안간 청계천에서 의병대장을 하고 있지를 않나, 곽재우도 나오고, 별안간 그나마 존재하던 역사소설로써의 나름대로의 신빙성이 날아가는...

거의 그냥 후일담 식으로 처리....

물론 작가가 단순히 성의가 없었다기보단 조선측 자료 부족이 뼈져리게 느껴지는 결과이긴 합니다만...-_-

사실 소설작가가 아닌 연구자들의 문제고, 게다가 가뜩이나 잘 모르는 조선 얘기인데 자료도 없으니 막막해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물론 일본/조선의 분량 배분이 너무 언밸런스한 나머지, [단순히 사이카슈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후일담이 께림찍하니까 그냥 조선에서 정착한 걸로 떼우려는 건가...]는 의혹도 들지만...

아니, 물론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도 전국무장 일화 지식이 쏠쏠이 늘어난다는 데서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아마 한국 독자들은 그걸 기대하고 보는 건 아니었을 것 같아서......

아무튼 제가 가장 궁금했던 [주인공의 투항/일본 배신 원인].....

사실 이 원인은 아무도 뚜렷이 모릅니다. 참고로 특정 연령대의 분들이 도덕책에서 읽었을, 조선민중의 덕심에 감동해서 어쩌고...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개뿔이니 제외합니다. 물론 투항 편지에는 비슷한 말이 쓰여 있지만, 이것은 상대방을 치켜 세워줌으로써 자신에 대한 신용을 최대한 높여 보이려는 화법이고 (사실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적 대장이 별안간 투항하겠다고 편지 보내면 누가 믿겠습니까. 따라서 투항하는 측은 온갖 방법으로 설득해야죠.), 무엇보다 그런 이유만으로 자기 나라를 버리고 투항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야가는 본명이나 고향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았기에 일제시대 때는 일본 사학자들이 조선이 날조한 가공의 인물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생각해보면 가문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알기 쉽습니다. 예시: 건너 마을 박씨네 아홉째 아들이 세상에 월북해서 공산당에 들어갔대요!-뭐? 박씨네 아홉째 아들이? 그런 배신자 자식! 박씨네는 배신자! 박씨네는 집 빼라!-고향에 있는 가족들은 대략 박씨네와 같은 신세에 처하겠지요. 그리고 투항시 보낸 편지나, 평소에 유교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나 문집을 세권이나 남긴 것을 보면,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듯하니, 다른 말로 그러한 교육을 받을만한 집안의 자제였다는 뜻이겠죠. 사이카가 사야가와 발음이 비슷하긴 하지만, 저런 점에선 캐릭터적으로 어긋난달지...그래서 일본 학자 중에는 규슈 하라다 가문의 하라다 노부타네라는 설을 내세우는 학자도 있습니다. 노부타네는 조선 출병 후 전사 혹은 행방불명으로 기록되었고, 하라다 가문은 히데요시에 대한 반란에 가담했다가 영지를 몰수당해 적대적인 관계였으니 출병 그 자체에 불만이 깊어 투항할 배경도 충분하고, 또한 50명의 철포대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다는 점도 있습니다. 뭐 어느 쪽이든 추측이지만...

어쨌든 사야가=사이카인 소설 [바다의 가야금]에서의 투항 이유는...

애인(13~14세. 크억 로리콘!←그 시대니까)이 히데요시의 측실 스카웃맨에게 걸리는 바람에, 결국 자살해서...

게다가 주인공의 충실한 소꿉친구이자 부하는 그걸 알려주려고 무려 한양까지 찾아온다...얼씨구-_-;
(사실 마지막엔 둘다 싱글이 되버리므로 심심하면 주인공이랑 커플링 가능함.)

그래도 히데요시 본인은 인질 신분인 주인공을 대우 잘해줬는데, 부하가 뻘짓했다고 배신하는 주인공이라니...

작가 입으로 두번이나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사나이라고 묘사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천지 차이!

오다 노부나가의 하나뿐인 맹우라고 묘사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어찌 비교할 수 있으리오!


................


뭐....뭐지?


이 알 수 없는....


위화감은....!


뭐어....딱히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맹렬한 우정(.............)을 그린 소설은 아니므로 넘어가도록 하죠.......
사실 작가는 이에야스X노부나가였다던가! 엄청난 마이너!

어쨌든 적어도 작가가 기록한 참고문헌에 대해서는 참고할만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기슈 출신이라 사이카 빠돌이인 듯하니, 사이카슈 좋아하는 사람들도 볼만할지도...

그나저나 완벽했던 유리망치는 별로 쓸 말이 없었지만 꽤나 부실했던 책에 대해서는 말이 많아지다니...

뭔가 반비례적 상관관계가 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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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2007. 4. 25. 19:40
뭘 잘 못 먹었는지 또 장염이; 그래도 포스팅을 게을리 하면 안되니까...
어제 기시 유스케의 [유리 망치]를 완독했습니다.
[검은 집]도 꽤 재미있게 읽었고 추천도 있어 [유리 망치] 구입.
완전밀실 살인사건인데...
사람 죽는 수만 팍팍 늘리거나, 독자를 기만해 놓고서 반전이라 우기는
넘쳐나는 요즘 추리소설에 질린 사람에게는 필히 추천해주고 싶은
간만에 보는 진짜 초 본격파 추리소설...
무엇보다 작가의 치밀한 자료 조사로 완성된 탄탄한 리얼리티 및 특유의 논리정연함이 뒷받힘하고 있으니, 더 신빙성도 있고 스릴 있었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쓰는 데 4년이나 걸리는 것이겠지만...
간병~방범~유리~하고 중얼대며 조사하는 작가가 눈앞에 선합니다-_-;
탐정 역의 캐릭터도 괜찮구요...(그런데 지인이라면 좀...미묘한 녀석;;)
한번에 무섭게 사람을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맛이 있어서, 추리소설을 원래 좋아하시는 분은 물론, 그렇지 않은 분께도 적극 추천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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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2006. 10. 20. 01:55
어느날, 무료함에 신문 (매일 구독하지는 않지만 가끔 사 봄)을 뒤척이다가, 대문짝만한 책 광고 발견.



제목은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광고문구는 이러하였습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고 한 편의 거대한 비극적 드라마로 창조된 9.11테러소설.

암호명'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암호를 해독한 수사요원들은 전율과 공포에 휩싸이고,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슬픈 게이를 찾아 세계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뒤진다.

전편에 흐르는 전율과 공포, 잔혹의 순간들은 숨을 멈추게 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적과 도주의 미학은 현대 추리소설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흐음.

그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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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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