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2015.03.30 23:31



[도검난무]는 DMM에서 서비스하는 웹브라우저 게임으로, 역시 DMM 서비스 게임인 [함대 컬렉션 (통칭 [칸코레])]와 유사한 시스템을 채용한 카드 콜렉팅+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칸코레]와의 가장 중요한 차별점이라면 군함이 아닌 역사상의 도검(창과 나기나타도 있긴 함)을 의인화한 남성 캐릭터 “도검남사(刀劍男士, 그런데 男士와 男子의 일본어 발음이 동일하게 “단시”라서 팬덤에서는 ‘도검남자刀劍男子’와 혼용되기도 함.)”를 내세워 여성층을 노렸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여성향 캐릭터 콜렉팅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성향에 비해선 압도적으로 수가 적었고, 그래픽이나 음성 등 객관적 퀄리티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던 시장에 [도검난무]는 [칸코레]의 검증된 시스템,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 캐릭터성을 잘 살려낸 대사, 풀 음성, 그래픽([칸코레] 식의 대미지를 입으면 옷과 갑옷이 벗겨지는 그래픽 외에도 농사나 말 돌보기같은 잡무를 시키면 나오는 작업복 그래픽이 있음)을 도입하고, 도검이라는 소재의 특징을 이용해 원래부터 많았던 전국시대 및 신선조 팬덤도 자연스럽게 포섭한 결과 올해 1월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에서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한국에서도 [도검난무]를 플레이하거나 [도검난무]의 2차 창작물을 찾아보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아무래도 [칸코레]와 동일한 회사가 서비스하고 있고 일본적 색채가 강한 무기를 의인화한 게임이다 보니 논란도 많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커뮤니티나 게시판은 들어가지 않고 트위터만 이용하지만, 그런 게시판에서 파생된 논란이 타임라인에도 종종 보일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보이는 화제는 “카슈 키요미츠(加州清光)는 A급 전범 도죠 히데키의 검”이라는 주장입니다. 카슈 키요미츠는 게임을 시작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다섯 자루의 타도(打刀) 중 하나로 (역시 원래부터 여성층에 인기가 많던) 신선조 대원 오키타 소우지의 칼이며, 팬덤에서는 미카즈키 무네치카 다음으로 2, 3위를 다투는 인기 캐릭터입니다. 

“신선조의 오키타 소지, 태평양 전쟁으로 유명한 도죠 히데키가 애용했습니다.”


논란의 짤방에서 나오는 이 주장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카슈 키요미츠”라는 칼을 오키타 소우지와 도죠 히데키가 애용했다고 하면 사실이지만, “85번 카슈 키요미츠” 즉 [도검난무]의 카슈 키요미츠가 처음엔 오키타 소우지가 애용했다가 나중에는 도죠 히데키가 애용한 검이라고 하면 거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뜻 궤변 같지만 사실입니다. 즉 두 인물 다 “카슈 키요미츠”라는 칼을 소장하였으나, 동일한 칼은 아니며, 제작자와 이름만 같은 동명이도同名異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입니다. 


사실 논란에서 출처로 삼고 있는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카슈 키요미츠 항목을 살펴봐도 답은 나와 있습니다.


카슈 키요미츠 (생년 불명~1687년) 카슈(현재의 카나자와 지역)의 도공. 정식 명칭은 카슈카나자와츄 쵸베후지와라키요미츠 (加州金沢住長兵衛藤原清光). 카슈카나자와츄 쵸베후지와라키요미츠는 6대째 ‘키요미츠’로, 1대 키요미츠는 “코지로(小次郎)”라고 하였으며 이즈미무라(泉村)에 살았다. 6대 쵸베후지와라키요미츠는 원래 도공 마을에 살았으나 별안간 비인소옥(非人小屋: 일본의 천민계급에 해당하는 비인非人과 그 밖에 걸인, 빈민 등을 수용한 주거지)에 들어가 그곳에서 여러 자루의 명검을 만들었다.

카가 번주 마에다 츠네노리(前田綱紀)가 1670년에 세운 빈민수용소에 일시적으로 살았기에 “걸식 키요미츠(乞食清光)”라고 불렸다. 1687년 서거. 신도기(新刀期: 1596년 이후로 만들어진 일본도를 신도新刀라고 함)의 도공. 

그의 검을 사용한 유명인으로는 신선조의 오키타 소우지나 도죠 히데키 등이 있다.

신도新刀 카슈 키요미츠는 여러 대(代)가 있으며 카슈 외에도 동명이인의 도공이 있기에, 칼자루에 키요미츠(清光)가 새겨져 있다고 비인 키요미츠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6대 키요미츠에 이어 7대 키요미츠도 비인소옥에 들어갔으나, 8대 이후부터는 코다츠노(小立野) 토취장(현재의 카나자와 대학 의학부 근처)에 살며 칼을 만들었다. 

9대 키요미츠는 후지에세이지로(藤江清次郎). 막부 말에는 그 지역의 대표적인 도공이었으나 1876년 불우하게 생을 마친 인물이다.

1967년 4월 7일, 카나자와시 카사마이마치의 제 4 토지구획 정리조합이 비인소옥이 있던 장소 부근에 “비인 키요미츠의 비”를 세웠다. 1.5미터 높이의 원통형 화강암 위에 곧날 모양으로 만든 청동 조각상이 올려져 있다. 제작자는 카나자와 미술공예대학교수를 지낸 이타사카 타츠지(板坂辰治).  


“...검을 사용한 유명인으로는 신선조의 오키타 소우지나 도죠 히데키 등이 있다.” 부분만 발췌되어서 논란의 근거가 제공되고 있지만, 항목 전체를 보면 특정한 한 자루의 칼이 아니라 카슈 키요미츠라는 도공들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장인이나 전통예술 전수자들은 대대로 이름을 물려받고 사적으로는 다른 이름이 있어도, 공적으로는 대대로 내려오는 이름을 걸고 몇 대째 000라며 작품을 발표하거나 공연을 합니다. 특히 도검의 경우 제작자의 이름이 자동적으로 붙는데, 이 이름을 명銘이라고 합니다. 즉 여러 명의 도공 카슈 키요미츠 중에서 가장 ‘네임드’인 6대 키요미츠가 만든 여러 자루의 칼 카슈 키요미츠 중에서 오키타 소우지가 사용한 것도 있고, 도죠 히데키가 사용한 것도 있는 것입니다. 

일본 도검의 이름에 대해 더 추가 설명을 하자면, 제작자가 명확한 경우(혹은 명확하다고 주장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붙는 명銘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옵션 이름 호号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명銘은 그 칼을 제작한 도공의 이름이며, 제작자를 분명히 하기 위해 칼자루에 이름을 새기던 관습에서 비롯됩니다. 사실 도공의 이름만으로 부르는 것도 극히 간략화된 형태로, 도명의 풀네임은 도공의 이름 외에도 출신지, 제작년도, 때로는 의뢰인이 들어간 매우 긴 이름(예: 九州日向住国広作 天正十八年庚刁弐月吉日平顕長)으로 기록에서 해당 칼을 구체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합니다. 반면 호号는 도공이나 칼의 소유주 등이 붙인 고유명입니다. 사실 일본만의 독특한 작명법도 아닌 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 악기도 기본적으로는 전부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불리고, 그 중에 몇 개는 sobriquet라는 고유명이 붙기도 합니다. 가령 같은 [도검난무] 캐릭터 중에는 쿠니히로라는 이름이 들어간 캐릭터가 세 명 있는데, 타도 야만바기리 쿠니히로山姥切国広, 태도(太刀) 야마부시 쿠니히로山伏国広, 그리고 신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가 애용했다는 와키자시(脇差) 호리카와 쿠니히로입니다. 



세 자루 다 저명한 도공 호리카와 쿠니히로堀川国広가 만든 칼로 알려져 있지만 유독 한 자루만 “호리카와 쿠니히로”라고 표기되는 이유는 야만바기리와 야마부시는 각자 고유명이 붙여졌지만, 히지카타의 와키자시에게는 따로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진품 쿠니히로가 아니라는 의혹도 있어서 캐릭터 대사에도 이 점이 반영됩니다. 다른 신선조 검들인 (그리고 짝퉁 의혹이 가장 강한) 나가소네 코테츠長曽祢虎徹,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和泉守兼定,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大和守安定 역시 호가 없어서 명으로만 표기된 도검들이고, 사카모토 료마의 호신검 무츠노카미 요시유키陸奥守吉行, 어전시합의 투구 깨기 일화로 알려진 도타누키 마사쿠니同田貫正国도 마찬가지로 호가 없고 특정한 유명인이 사용한 메이커 도검, 아니면 유명한 일화에 연관된 검이라는 식으로 캐릭터를 잡은 경우입니다. 

이 쯤 되면 [도검난무]의 캐릭터 작성 패턴이 대략 뻔히 보이는 게, 대다수는 호가 있는 도검들이 나오고(그 이름 뒤의 사연이나 이름 자체만으로도 캐릭터 만들기가 쉬우니까), 다음엔 고유명은 없어도 유명인이 사용했거나 유명 일화가 얽힌 도검을 등장시켜 주인의 인기에 편승(!)시키는 전략입니다. 여하튼 [도검난무]의 카슈 키요미츠는 “6대 키요미츠가 만든 오키타 소우지의 검”이고, 오키타 소우지와는 달리 여자 오타쿠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도죠 히데키와의 관련성은 전혀 묘사되지 않습니다. 군복스러운 복장이 도죠에 대한 오마쥬라는 의혹도 있지만 아직 공식에서 밝힌 바는 없고, 그보다는 같은 오키타 검으로 전형적인 신선조의 푸른 하오리 차림인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와 구분하는 한편, 디자인적으로는 상당히 19세기적 비실용성이 풍겨 나오는 구식이라(긴 상의, 쓸데없이 많은 단추 등) 도죠가 군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 군복보다는 무진전쟁 때 신선조 및 막부군과 신정부군이 입은 과도기의 서양식 군복이 모티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사진으로 남아 있는 히지카타 토시조의 군복)


개인적으로는 힐이 더 충격적.


물론 그럼에도 여러 자루의 카슈 키요미츠 중에 오키타가 사용한 것을 나중에 도죠 히데키가 물려받았을 수도 있지 않느냐! 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요. 오키타의 카슈 키요미츠도, 도죠 히데키의 카슈 키요미츠도 현재 행방이 불분명하고 도죠가 카슈 키요미츠를 얻은 경위(가보로 내려온 칼이라는 설도 있는데 불명확하고, 그나마 확실한 것은 패전 후 도죠 히데키의 과부가 팔려고 긴자의 고미술품 가게에 내놓았지만 반년 동안 팔리지 않고 진열된 채 먼지만 쌓였다는 회고)도 불확실합니다. 카슈 키요미츠 관련 2차 창작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케다야 사건 이후 카슈 키요미츠가 만신창이가 되어 수리하려고 내보냈으나 고칠 수가 없었다는 설”도 역사가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기록에서 나와서 근거가 모호합니다. 반면 두 자루가  동일 검이라는, 즉 오키타의 검을 나중에 도죠 히데키가 얻었다는 명확한 증거 역시 딱히 없습니다. 그리고 도공 카슈 키요미츠가 만든 칼은 한 두 자루가 아니며, 따라서 서로 다른 칼이라고 보는 것이 동일 칼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근거가 명확합니다. 오키타 소우지의 사망년도가 1868년, 도죠 히데키의 부친 도죠 히데노리는 1855년에 태어났으니까 굳이 동인지를 쓰겠다면 쓸 수도 있겠지만 둘을 잇는 사료적 접점은 없습니다. 물론 우연의 일치라도 하필 전범과 같은 메이커의 물건이라는 데에 혐오감을 가지거나, 일단 무기의 의인화라는 점 자체가(특히나 실전 사용률=살상률이 매우 높았던 신선조의 칼이니) 싫을 수는 있습니다만, 일본도의 작명법에 대한 오해나 의도적 곡해로 잘못된 지식이 퍼지며 소모적인 키배, 진실공방의 근거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차후 논쟁에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도검난무]가 까여야 할 포인트는 콜렉팅과 노가다 외에는 즐길 거리가 별로 없다던가 아마도 그걸 개선하려고 새로운 보스 시스템을 추가했으나 신규 서버가 열린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그것도 강제적으로 모든 맵에 나오게 만들었다던가 고치라고 욕을 먹어도 절대 보스 전용맵이나 사라지는 장치를 안 넣은 아무래도 폭주 기미의 시바무라 유리로 추정되는 고집이라던가 스토리적으로도 아귀가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던가 전체적으로 등신같은 운영이라던가 등등 굉장히 많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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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