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22. 15:49

중세 문서에서 발췌했다는 것 외에는 본문과 별로 관련 없는 고양이 그림.


2월 22일은 일본에서 고양이의 날입니다. 일본에서는 숫자 2를 “니”라고 읽는데, “니 니 니”하면 고양이의 울음소리인 “냐- 냐- 냐-”와 비슷하다고 그렇게 붙었습니다. 참고로 한국 고양이의 날은 9월 9일이고, 미국은 10월 29일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고양이의 날 중 하나를 맞아서 고양이에 대한 옛 아일랜드어 시를 하나 올려봅니다. 아일랜드어를 몰라서 영어로 번역한 것을 번역한 중역이라 본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될 수 있음을 유의하고 읽어주세요.


판구르 반


판구르야, 하얀 판구르야,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학자와 고양이 단 둘이서 함께

매일매일 주어진 일이 있으니

너는 사냥을 하고, 나는 공부를 하네

너의 빛나는 눈은 벽을 지켜보고

나의 허약한 눈은 책에 묶여 있네.

네가 기뻐할 때는 그 발톱이 쥐를 옭아맬 때

내가 기뻐할 때는 생각 끝에 문제를 풀어낼 때

각자 자기 일 즐기며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니

우리 이렇게 지루함도 시기도 없이 살아가네


이 <판구르 반 (Pangur Bán)>이라는 시는 라이헤나우 수도원에서 발견된 문서 Reichenau Primer 중에 발견된, 필사하던 수도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쓴 것입니다. “반”은 아일랜드어로 하얗다는 뜻이고 판구르는 당시에 고양이에게 자주 붙였던 이름이라고 하네요. (우리식으로 “나비” 정도?) 그래서 저자의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로 추정됩니다.

판구르 반은 사실 문서 귀퉁이의 낙서에 불과한 위치에 있어서, 오랜 기간 묻혀 있다가 1903년 켈트어 학자 위틀리 스톡스 Whitley Stokes 와 존 스트라챈 John Strachan이 공저한 아일랜드 고문서 모음집 <Thesaurus Palaeohibernicus>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시인 로빈 플라워와 W. H. 오번 등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사실 로빈 플라워의 번역이 더 유명한 것 같지만 오번 쪽이 더 짧아서 편리해서 그 쪽을 번역...한 것만은 아니고, 짧은만큼 번역자의 해석과 개입이 적은 편일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일랜드어를 모르니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구글신에게 정확한 번역이 어느 쪽인지에 대해 물어봤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저기 왼쪽 하단이라는데 무식해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흑흑;


아무튼 그 옛날에도 고양이가 인간의 일을 방해했다는 이런 증거이런 증거가 남아있긴 해도, 이 시를 쓴 수도사의 경우처럼 결국은 귀여움을 받았으니까 곁에 둔 것이겠지요. 특히 가족 없이 속세에서 떨어져 엄격한 수도원 생활 속에서 필사에 매진하던 수도사에게는 큰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쥐를 퇴치하기 위한 실용적 기능도 충실했고, 실제로 많은 수도원과 수녀원에서 그 목적으로 고양이를 기르기도 했죠. 


쥐잡이(...)


결론은 <판구르 반>은 인터넷에 넘치는 팔불출 고양이 주인의 오글거리는 고양이 숭배질이 인터넷 이전에도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 주인들의 팔불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군요.


폰카가 없어서 타페스트리로 짜냄.jpg



출처: Pangur Ban 위키피디아 페이지 http://en.wikipedia.org/wiki/Pangur_B%C3%A1n

Pangur Ban MSS Still in Existence? http://suburbanbanshee.wordpress.com/2009/05/17/pangur-ban-mss-still-in-existence/

Reichenauer Schulheft - Reichenau Primer http://hildegard.tristram.de/schulh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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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