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2011. 3. 25. 21:32

일본 대지진에 원전누출에 동남아시아에서도 지진이라니 참 뒤숭숭한데...부디 무사안녕했으면 좋겠습니다.
줄기창 트위터만 하다가 간만에 블로그 업데이트라고 한 것이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아둬서 나쁜 것은 없을...지도 모르는 취향 시리즈 제 1탄...퍼리특집입니다.
시리즈라고는 썼지만 계속될지 어쩔지는 저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릅니다^^


<스타폭스> 시리즈의 크리스탈. 대표적인 초인기 퍼리 캐릭터.

퍼리 furry, 복수형은 퍼리즈 furries, 첫 번째는 형용사로 털이 복실복실한 것을 의미하고, 두 번째는 형용사를 복수형으로 만들어 명사처럼 다룸으로써 특정 취향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퍼리, 혹은 퍼리즈는 영미권에 널리 퍼진 취향 장르의 하나로, 간단히 말해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에 대한 애호취향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러한 애호취향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단어의 의미가 ‘복실복실’이기는 하지만 꼭 털 난 동물에 국한되지는 않고 모든 의인화된 동물, 즉 뱀개구락지 등도 포함.)

의인화된 동물이라고 해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가령 네발로 걸어 다니는 등 현실적인 동물에 가깝게 그려지지만 사람의 말을 하는 종류도 있고, 인간처럼 이족보행을 하거나 옷까지 입고 있는 의인화 비율이 높은 동물까지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의 동물을 상상하면 간단합니다. 일본에서도 의인화 비율이 높은 동물캐릭터 모에속성에 대해서 ‘케모노’라는 단어가 있기는 한데, 퍼리는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취향입니다. 의인화된 동물캐릭터를 가리키는 ‘퍼리’라는 단어의 탄생과 팬덤 내 잡지의 발매 등 퍼리라는 취향의 성립은 1980년대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 기원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느 팬덤이 그렇듯이 퍼리 애호가들은 그림이나 글을 창작하기도 하고, 특정 작품의 팬아트를 제작하기도 하며, 그 중에서는 성인취향의 매우 성적인 내용물도 있고 (yiff라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동물옷을 뒤집어쓰고 동물의 우는 소리를 흉내 내며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페티쉬까지, 정말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게 표현합니다. 물론 팬덤답게 Anthrocon이나 Furfest같은 큰 규모의 정기적인 행사를 개최해서 코스프레, 작품 발표 및 판매, 토론 등 여느 행사와 비슷한 이벤트가 열리기도 합니다. (CSI에서도 다뤄진 적이 있죠.) 한편으로는 호오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취향이기도 합니다.



Furfest 2006 행사사진. 위키피디아에 공개되어 있었으니 괜찮...겠지.

간혹 퍼리를 일본의 네코미미 등 동물귀 모에속성의 양키버전이라고 정리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기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몇 가지 존재합니다. 동물귀가 인간에게 (매우 근소한) 동물속성을 부여한 것이라면, 퍼리는 동물에게 인간의 속성을 부여한 것입니다. 전신에 털이 나 있고 입과 코 부분은 주둥아리로 동물적 특성이 분명한 캐릭터와, 인간 미소녀인데 동물 귀와 꼬리가 돋아있는 캐릭터는 비주얼적으로도 명확한 차이가 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적 배경이 다릅니다. 퍼리의 기원은 디즈니로 대표되는 만화, 애니메이션 등 아동용 미디어 속의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라는 유구한 전통에 있습니다.
 


범인은 디즈니…?!

물론 동물을 의인화하는 전통 자체는 이솝우화 등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이야기 속의 동물들이 시각적 매체로 화하여서 다수의 대중에게 ‘캐릭터’로써 자리잡은 것은 인쇄매체와 대중소비가 발달한 근대에 와서야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이면서 획기적인 사례가 19세기에 (그리고 지금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포터의 <피터 래빗> 시리즈입니다. 사실 동물캐릭터는 시각적 매체에서 몇 가지 유리한 특성들이 있습니다. 특색이 분명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며, 남녀노소에게 널리 어필할 수 있습니다. 1914년 공개된 혁신적인 초창기 애니메이션 <공룡 거티 Gertie the Dinosaur>가 공룡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이나, 디즈니의 첫 성공작이 토끼 오스왈드였다는 점, 후발주자인 워너 브라더즈의 간판 캐릭터가 토끼 벅스와 오리 대피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일본만화도 노라쿠로 등 동물을 내세운 만화가 인기였지만, 종전 후에는 인간 캐릭터로 심도 깊은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데즈카 오사무 스토리 만화의 영향인지 (물론 데즈카 본인도 초기에는 디즈니 캐릭터와 흡사한 동물캐릭터를 그리곤 했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주류적 장르로 발달하지는 않았습니다. (...라고 쓰기는 했지만, <천하무적 멍멍기사> <명탐정 번개> 등 성인용 고전원작을 아동용으로 치환하는 방안의 하나로 역시 의인화된 동물캐릭터를 활용하는 유사한 패턴은 존재했음.) 아무튼 북미에서는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가 대세였으며, 여기에 디즈니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초기 디즈니 작품의 동물은 직접관찰을 통해 세밀하게 구사된 사실적인 움직임과, 인간의 감수성에 어필하는 사랑스럽고 표현력이 풍부한 표정의 조합으로 상당한 공이 들어간 캐릭터들이었으니, 관객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물론 좀더 의인화가 진행된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등의 캐릭터들이 펼치는 코미디 단편은 캐릭터 산업으로도 수월하게 연계되어 직접적인 수익을 벌어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부녀+과부 주인공에 젊고 참한 총각이랑 얽히는 모에설정의 The Secret of NIMH

어릴 때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를 보며 자란 아이들이, 약간은 더 진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볼 나이가 되었을 때 동물 캐릭터는 아동기의 이야기와 어른 이야기 중간의 매개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령 1958년 아동용 소설로 출시되고 1986년 디즈니사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베이커가의 바실 (국내 제목은 위대한 명탐정 바실)>은 셜록 홈즈의 패러디 작품이자, 본격적인 셜록 홈즈 소설을 읽기에는 좀 어린 독자들을 위해 홈즈 자택의 지하실에 사는 생쥐탐정 바실과 조수 도슨의 모험을 그린 아동소설이지요. 암울하고 진지한 동물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The Secret of NIMH 마우스 킹>이나 <Watership Down>도 원작은 아동소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친근감을 쉽게 가질 수 있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분쟁, 정치, 죽음 등 인간세상의 복잡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좀 더 세밀해진 동물우화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죠. 비슷한 발상으로, 여우 로빈 훗이 활약하는 디즈니의 <로빈 훗>처럼 원래는 인간이 나오는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모조리 동물로 바꾸며 자동적으로 아동용으로 치환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비주얼화되면서 다양한 성격과 매력을 지니고 복잡한 내러티브 내에서 활약하는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들의 종류도 늘어나게 되었죠. 이 중에서는 연애 내러티브를 다룬 것도 있고, 따라서 의도적으로 성적인 매력을 풍기도록 제작된 동물 캐릭터도 많습니다. 즉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질 때까지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에 대한 취향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된다는 뜻입니다.

 

1978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고양이 댄서 오마하>. 드물게 정식출판된 성인용 퍼리만화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북미 성인코믹, 특히 에로만화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

퍼리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부분은 주로 성적인 퍼리 콘텐츠에 대해서입니다. 실제로 구글에 그냥 furries로 이미지 검색을 해도 엄청나게 떠오를 테니 굳이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동심파괴적인 이미지도 많으므로 단단히 각오하지 않으면 시도하지 말 것.) 보기에 따라서는 수간물보다 혐오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취향일 수 있겠지만, 앞서 말한 ‘어린 시절부터 자리잡은 취향’ 그리고 ‘매력적이고 복잡한 캐릭터, 내러티브의 존재’를 염두에 두면 생각보다 괴상하지는 않고 오히려 그 사회문화적 배경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에 익숙한 우리나라나 일본의 수요층이 성장해서 에로만화를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 속 인간캐릭터의 데포르메된 묘사가 낯선 영미권에서는 ‘그런 것에 욕구를 느낀다니 이해할 수 없다, 만드는 쪽도 이상하다, 변태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라 HENTAI라는 단어가 모든 2D 에로틱 묘사의 총칭이 되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인상과 거부감을 자극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캐릭터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층에게는, 특히 아직 실사-3D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혹은 2D 쪽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층에게는 그렇게 부자연스럽지 않겠지요. 성적인 퍼리 콘텐츠를 즐기는 층도 결국은 비슷한 흐름의 일환으로 느껴집니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취향이 향유자의 성장에 따라 그 욕구에 부합하도록 ‘성숙’해진 셈이지요.

따라서 어쩌다가 양웹에서 퍼리 그림과 마주치게 되더라도, 대패닉하여 벽에다가 머리를 박으며 변태 양키색휘들 하고 욕해댈 필요 없이 이러저러 하다보면 그런 취향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사실 양웹에서 검색질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한두개는 튀어나오게 되므로 예비지식 없이 당한 나 같은 피해자를 한 사람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이런 글을 쓴 것도 있음.) 한편 단결력과 취향소비가 강한 팬덤인 만큼, 국내 작품 중에서 퍼리들의 불끈불끈을 자극할 속성의 웹툰들을 퍼리 팬덤에 집중적으로 마케팅하는 것도 유용한 전략입니다. 가령  <위대한 캐츠비>나 <TLT>는 미려한 작화와 성인취향 스토리라인, 섹시한 암컷…아니 여성캐릭터의 묘사로 퍼리들의 취향에 직격할 작품들입니다. 또한 본인이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에 남다른 애정 혹은 욕정을 느끼지만 이 취향을 어디 가서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는 분이시라면, 영어사전으로 무장하고 광활한 퍼리 팬덤에서 천국을 영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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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