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09. 12. 28. 22:35

셜록 홈즈 조조로 보고 왔습니다. 간추리자면 21세기형 빅토리아조풍 액션 모험활극 버디무비더군요.

개인적으로 무척 재밌게 봤음. 오리지널 셜록 홈즈 팬도 그냥 블록버스터 보려는 영화관객도 즐길 수 있을 듯.

사실 캐스팅 과정에서 왓슨 역의 주드 로는 좋았지만 홈즈 역의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가 좀 많이 염려스러웠는데, 웬걸 홈즈의 병맛 폐인스러움과 괴짜스러움을 완벽히 살리고 있어서 기존의 정통파 홈즈 해석에는 잘 부곽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원작의 홈즈에게 존재했던 속성과 현대적 액션히어로를 합친 점에서 신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작 셜록 홈즈도 추리소설 장르의 설립 초기에 나온 거라서 (당시 기준) 액션 활극적 요소라던가 몸빵으로 해결하는 사건도 적지 않았으니 (안그래도 가디언지의 어떤 책 리뷰 기사에서는, '어른의 눈으로 홈즈를 다시 읽으니 생각 외로 내용이 단순얄팍해서 당황했다'고) 그런 사건에 액션성을 많이 가미한 거라고 보는 방법도^^

이런 근대 유럽 배경 영화 계열의 전형적인 요소들, 즉 비밀결사라던가 흑마술이라던가 과학 등등 익숙한 코드는 다 나와서 자칫하면 식상할 수도 있는 것들을 적절한 타이밍과 용도에 배치하고, 액션영화라는 점에서 원작과 대놓고 차별화하고 있지만 설정과 캐릭터는 상당히 원작을 분석하고 파악한 것이 드문드문 눈에 띄여서 재미와 동시에 원작 영화로써의 가치도 빛납니다. 가령 왓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입은 부상으로 다리를 절고 다니고, 처음에 홈즈와 만났을 때 잠깐 언급만 되었던 왓슨의 불독이 정말로 등장하고, 홈즈가 내기 격투장에서 권투를 하는 것도 그대로 나옵니다. 아울러 진상인간 홈즈가 엄격한 상식인인 왓슨과 툭 하면 티격태격하는 부분이라던지가 오랜 파트너이자 동거인 사이라 나오는 대화(특히 "내 옷 왜 입어 캬악~"하고 다투는 데서는 자매/형제 싸움이 연상되서 폭소)같은 부분은 콤비 플레이와 더불어 버디영화로써의 즐거움을 주어서 귀엽더군요.

또한 홈즈와 왓슨 뿐만 아니라 아이린 애들러, 레스트레이드 경감, 허드슨 부인 등 조연 캐릭터들도 재미있게 그려졌으니 즐거운 요소가 쏠쏠합니다. 아이린 팬들은 상당히 만족할 듯. 한즈 짐머의 음악도 빅토리아조스러운 클래식한 느낌이 살짝 나는 듯도 하면서 박진감이 있어서 취향이었습니다.

줄거리는 왓슨의 결혼으로 홈즈와 별거하게 되어 티격태격하는 불안정한 와중에, 블랙우드라는 흑마술사가 연쇄살인과 또 다른 음모로 런던을 어지럽히는 사건을 해결하려는 내용입니다. 대략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될 것 같은 재미있는 영화는 줄거리를 자세히 쓰지 않는 편인데 이번이 그 경우입니다. 궁금하면 직접 확인하세요.


결론: 마돈나 주연의 초절정 졸작 [Swept Away]를 찍은 이후 비웃고 있던 가이 릿치 감독 다시 봤습니다+앞으로 원작에서 이름만 따오거나 일부 설정만 흉내내면서 원작 영화라고 주장하는 영화들은 솔직히 좀 반성해야 함.


아쉬운 점: 원작 자체보단 자막에 대해서 좀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만들었으니까 너무 고어체는 사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시대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적절한 은유법이나 비꼬는 말투가 많고 한마디로 한국어로 치면 경어체를 잘 활용했어야 하는 번역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자막에선 거의 다 반말체고 별로 운치가 없더군요. 물론 자막의 의의는 의미만 통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래도 아쉽고, 실제로 의미와 뉘앙스 자체도 묘하게 비틀어진 경우도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 쪽에 적어봤습니다.





*************************이하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홈즈는 가정부 허드슨 부인에게 조소와 애정을 담아 유모(Nanny)라고 부르는데 그게 안나와서 아쉬운 편. 차를 가져온 허드슨 부인에게 "책상 위는 건드리지 마세요, 유모." "차에 독 들었나요, 유모?" 이러고 있었습니다ㅎㅎ

-아이린 애들러는 직역하면 "여러 남편들 사이를 전전했지만 지루하거나 뚱뚱해서 질렸어요. 그래서 아이린 애들러(처녀적 이름)로 돌아왔지요."라는 대사를 통해서 첫 등장부터 자연스럽게 풀네임을 (관객들의 이해를 위해) 밝힙니다. 하지만 자막에서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아이린이라는 이름도 나중에 나오는 듯?;

-악당 블랙우드도 그렇지만, 아이린과 홈즈의 대화도 경어체로 이루어지는 편이 운치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대화 내용과 관계야 그 모양 그 꼴이지만, 일단은 19세기 신사숙녀...의 탈을 쓰고 있잖아요. (그 갭이 또 좋고.) 그나마 아이린'만' 존대말을 쓰는 것보다는 둘 다 서로 반말을 까는 게 나은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이왕이면...하는 아쉬움.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부하인 경관 '클라크'를 홈즈는 '클라키'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 굳이 말하자면 '클라크군'이라는 느낌이랄까요. 홈즈가 허드슨 부인을 비꼬면서도 지딴에는 애정을 담아 "유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것도 그런 뉘앙스이고 실제로 나중에 클라크가 지명수배된 홈즈를 감싸줄 정도로 정이 쌓인 사이기도 했죠.

-홈즈와 왓슨이 뒷골목에서 피시 앤 칩스(영국의 얼마 안된다는 고유의 음식인, 신문지에 돌돌 말아 먹는 생선+감자튀김)를 먹으며 걸어다닐 때, 왜 왓슨이 굳이 이 가게까지 와서 사먹냐고 따지자 홈즈는 [반죽에 맥주를 섞어서 맛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막에는 [거기 맥주가 맛있다]는...별 거 아니긴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음.

-유치장에 갇힌 홈즈를 레스트레이드가 풀어주며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저 범죄자들과 섞여버리겠소]고 핀잔을 걸자, 홈즈는 [적어도 (범죄자가 되는 쪽이) 우수한 경관보다는 낫겠군요]라고 비꼽니다. 반면 자막에서는 [무능한 경찰보다는 낫겠군요]라고 했는데 사실 [우수한 경관] 쪽이 겉으로는 상대방의 신경을 덜 거슬리게 배려하는 듯 하면서 실제로 내용상으로는 한층 더 재수없는(!) 의미를 내포하는 편이랄까요.

-토마스경이 블랙우드가 자신의 아들...임을 홈즈가 파악해 냈을 때 자막에서는 블랙우드의 어머니가 열렬한 신자였다는 것만 나왔던 것 같은데 원래는 "그놈의 어미는 내 처가 아니었소. 우리 조직의 비밀의식 중에 잉태된 아이였지."라는 비밀조직스러운 뽕빨스러운 비밀의식이 있었음이 살짝 암시됨.  

-홈즈가 왓슨의 결혼에 대한 심술부리기(...)의 일환으로 길거리 점쟁이를 고용해 메리의 악담을 시키고 나서, 내 형 마이크로토프의 농장...이라고 하는데 자막에는 동생이라고 되어있더군요. 분명 마이크로토프라는 익숙한 이름이 몇번이나 나오는데 왜 씹히는지, 그리고 왜 동생이라고 하는지...원작 팬들은 좋아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위의 장면에서 점쟁이는 "피가 아니라 인연으로 맺어진 형제(Brothers Not In Blood, But In Bond)"라고 했는데 이런 엄청난 모에적 묘사가 자막에서는 그냥 "피로 맺어진 형제가 아니야" 이랬던 것 같음.


첫 관람이라 기억나는 건 이 정도.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