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2009. 7. 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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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신작 극장용 3D 애니메이션 [업]은 우선 풍선으로 하늘을 나는 집이라는 동화적으로 아름다운 이미지로 눈을 사로잡는다. 푸른 하늘로 끝없이 떠오르는 색색의 풍선, 누구나 한번은 상상했을 법한 동화적 감수성으로 가득 찬 상상의 모습을 강렬한 비주얼로 구현해낸 것은 분명 픽사의 빼어난 기술력과 미적 감각이며, 그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관객을 끌어들일 매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업]은 단순히 하늘을 나는 동화 같은 집, 그 이상이다. [업]에는 이야기가 있다. 인생에 대한 고찰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있다. 따라서 [업]은 온 가족이 봐도 좋지만 무엇보다 어른에게 추천하고 싶은 진정한 ‘성인용’ 애니메이션인 것이다.


무뚝뚝하고 고독한 노인, 칼 프레드릭슨도 한 때는 소년이었다. 유명한 모험가를 동경하던, 오명을 씻기 위해 남미의 깊숙한 정글로 떠난 그 모험가를 따라 남미로 가고 싶다는 꿈을 품던 수줍은 안경잡이 소년이었다. 소년은 같은 꿈을 공유하는 말괄량이 소녀 엘리를 만나 같이 놀고 꿈꾸고 사랑하며 결혼한다. 부부는 허름한 집을 예쁘게 가꾸고 꾸미며 함께 남미로 모험을 가는 꿈을 나누지만, 세월이 흐르며 늙고 병들고 결국 칼은 홀로 남겨진다. 이것이 한 노인이 재개발로 시끄러운 공사판이 된 동네를 뜨지 못하고, 강제로 퇴거 당하게 되자 아예 집 채로 남미로 떠나는 배경이다. 그에게 집은 아내와의 추억, 공유하던 꿈, 살아온 인생 그 자체이다. 정확히는 그것들의 유품, 그림자, 부스러기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만이라도 붙잡고 있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노인의 삶은 절박하고 고독하다. 그렇게 칼은 오래된 꿈을 기억해내고 실현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예상치 못한 동행자, 아이다운 산만함과 순수함을 지닌 소년 러셀과 함께.


보청기와 보행보조기 없이는 주위를 감지하고 거동하기도 어려운 불편한 육체를 이끌면서도 집을 놓지 않으려는 칼의 집착은 고집스럽고 우스우면서도 슬프고 낯익다. 누구에게나 어린 날의 장래희망, 복권 쪼가리, 자기만의 원칙 등등 어떤 집착과 미련의 대상이 있고—커다랗게 뭉뚱그려 ‘꿈’이라고 부를 수 있는—그것이 자아를 정의하고 살게 하며 힘을 주고 때로는 사람을 미치게도 죽이기도 한다. 칼이 아내와 공유하던 ‘꿈’이야말로 그를 깨어나게 하고 험난한 남미의 정글로 향하게 하는 저력을 발휘시키는 원동력이긴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집착과 미련의 위험함과, 그 정수만을 간직한 채 낡은 허물은 탈피할 줄 아는 현명함에 대해 말한다. 칼에게 있어 구현된 꿈, 혹은 그 유품은 아예 아내의 이름을 붙인 집이고, 한편 정글에게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인물에게는 훨씬 끔찍하고 슬픈 결과를 초래하는 무엇이다. 따라서 과거보다는 미래를, 추억보다는 꿈을 쫓는 소년 러셀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과거에 엘리가 그랬듯이 러셀은 삶이라는 모험을 공유하는 동반자이자 진정한 소통과 교류를 통해 꿈과 영혼의 지표와 방향을 잡아주는 소중한 타인이자 구원자이다. 꿈과 삶은 공유됨으로써, 타자를 통함으로써 비로소 진실된 모습으로 구현된다.


[업]은 영화 CG의 진정한 가치가 기술력 과시가 아닌 작품에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데에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드문 사례이다. 실존할 법한 낡은 집과 울창한 정글부터 만져질 듯한 옷감과 인물의 잔수염까지 세세한 리얼리티에 신경 쓴 정밀한 묘사는 (비록 그런 세부적인 부위를 일일이 살펴보는 관객은 적더라도) 전체적으로 물리와 질감이 실재하는 하나의 생생한 세계를 짜낸다. 이러한 묘사는 시각적 쾌락뿐만 아니라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에 진실성을 더하며 예술적으로 기능한다. 수십년의 세월과 몇 일간의 모험을 매끄럽게 연출하는 스토리텔링과 결코 적지 않은 귀여운 유머의 조합은 가희 환상적이다. 아카데미에서 애니메이션 카테고리가 생기는 바람에 일반 영화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의 걸작이다. 또한 본편 시작 전의 사랑스러운 단편 애니메이션과, 스텝의 업무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영화 마지막의 스텝롤도 결코 놓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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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메가박스 시사회에 당첨되서(럭키--) 본 것은 7월 중순이지만 30일 개봉이니까 지금 올림.

요즘 콘티 외의 것들은 열심히 잘되는군요 오호호호 깔깔깔...OTL

솔직히 최대한 영화 내용을 모르고 가야 재미있습니다. 나중에는 스포일러 감상문도 쓰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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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