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다음 그림에서 부자연스러운 것을 고르시오.



① 한겨울에 민소매 차림이다
② 백수 주제에 취업활동에 적극적이지 않다
③ 근무태도가 매우 불량하다
④ 겨드랑이털이 없다


물론 정답은 ④번입니다. ①은 팔뚝차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름 합리적인 사유가 존재함.

처음 볼 때부터 참을 수 없이 신경쓰였던 겨드랑이털의 행방...

시대극이라 해도 여자캐릭터나 뭐 10대까지라면 봐줄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색,계]의 이안감독은 범상치 않은 대인배) 다 큰 장정들이 말끔하게 민 겨드랑이를 과시하고 있으니 역시 제가 진정 신경쓰였던 것은 민소매라는 것보다는 실은 겨드랑이였던 겁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고민한 결과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 처먹고 호르몬 왕성한 총각들이 겨드랑이털이 안났을 것 같지는 않으니 결론은 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깎았을까?

이것은 각자 성격도, 환경도 다르니 동기가 다를 것이므로 따로 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나나시는...솔직히 말해 처음 등장할 때에는 겨드랑이보다는 얼굴이 말끔하다는 점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저런 꾀죄죄한 행색의 낭인이면 수염이 까칠까칠 자란 것이 자연스럽겠지요. 그런데 무슨 제비나 삐끼처럼 얼굴로 먹고사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왜 저렇게 관리하고 다니는 거야?

그 의문은 약 15분 뒤에 나오는 온천씬에서 밝혀집니다. 사실 나나시는 붉은 머리인데 궁상맞은 성격+째째하게 머리색깔 가지고 트집잡는 섬나라 환경 때문에 머리를 염색하고 다니죠. 머리가 붉은색이니까 다른 부위의 체모도 대략 비슷한 색일 겁니다. 평소에 가리고 다니는 곳이야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쳐도 그렇지 않은 곳은 무척 관리에 신경을 써야겠죠. 머리카락과 눈썹까지는 염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염이나 겨드랑이인데요. 물들이기에 애매한 부위일 뿐만 아니라 염색약의 독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과거 회상씬을 잘 보면 아직 천연 붉은머리였던 시절에는 그래도 살랑살랑한 머릿결이었는데 지금은 돼지털처럼 거칠게 뻗힌 재질이라 아무리 자연산이라도 지나치게 빈번한 염색약의 사용이 (10일에 한번은 염색) 머릿결의 영양에 얼마나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는 가령 파마나 염색을 자주 하시는 분들도 충분히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약을 턱이나 섬세한 겨드랑이 부위에 사용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염색할 수 없는 이상 남겨진 방법은 열심히 면도하는 것 뿐입니다. 남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아침에 면도해도 보통 오후쯤 되면 거뭇해지는데 큰일이겠습니다. 겨드랑이는 기실 잘 안 보이는 부위긴 하지만 행여나 보일까봐 악착같이 면도하는 것은 일종의 성격적 반영이겠지요. 사실 그냥 긴소매 옷을 입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도 같지만 가난하니 어쩌겠습니까. 내지는 몸에서 유일하게 생채기 없는 멀쩡한 부위라고 일부러 노출하고 다니는 건지도...

자, 이렇게 나나시의 겨드랑이털 관리의 이유는 튀는 색깔의 체모를 은폐하기 위해서+왠지 모르겠지만 긴팔 복장이 아니라서라는 이유로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럼 라로우의 경우는 어떨까요.

일단 확 튀는 내츄럴 금발을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다니고 궁상이나 델리케이트하고는 일억광년 정도 떨어져 있으니 외모 콤플렉스와 은폐설은 기각. 주목할 곳은 라로우의 머리색깔 뿐이 아니라 머리모양입니다. 모든 남자 캐릭터들이 시대에 맞게 머리를 적당히 길러서 묶거나 틀어 올리고 있는데 왠지 지 혼자 고고하게 짧은 머리입니다.
성격적 특성으로 짐작해 보면 실용적이라서, 관리하고 움직이기 편해서라고 추정됩니다.  

즉, 겨드랑이털을 깎은 것도 비슷한 실용적인 이유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녀 수영선수들이 겨드랑이털을 비롯한 체모를 전부 말끔히 면도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수중에서의 마찰과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비슷한 원리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겨드랑이털을 밀었을 겁니다. 아울러 마초한 코카시안이라면 수북해야할 것 같은 팔 털, 손등 털이 없는 것도 같은 연유로 설명 가능합니다. (단, 옷으로 가린 부위는 모르겠음. 혹시 이 쪽도 털에 땀 차는 게 싫다고 다 밀어버렸을지도;) 최강의 검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철저한 자기 관리와 꼼꼼한 제모과정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수염은 기르면서 (그것도 늘 가지런한 상태로 봐서 대충 기르는 게 아니라 나름 관리하고 있음) 겨드랑이털은 깎은 부조리함에는 모순이 느껴지지만...일종의 나르시시즘의 반영으로도 보입니다.


--겨드랑이란 말을 대체 몇번이나 쓴 거지...아무튼 이것도 개봉을 앞둔 나름 홍보성 포스팅.

남성미용품 제모관리 이런 검색에 걸릴 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