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2008. 3. 4. 22:14
1933년 헝가리 작곡가 레조 세레즈가 쓰고 1936년 미국에 [헝가리 자살곡]으로 소개되 인기를 끈

글루미 선데이-우울한 일요일.

사실 워낙 다양한 버전의 가사가 있어서, 앞서 연주곡부터 들어봅시다.



곡 자체보다는 아마도 관련 전설들이 더 유명한 곡인데요.

실연당한 작곡가가 연인을 되찾기 위해 이 노래를 작곡하고, 이에 감명받은 연인은 다시 그에게 돌아왔지만, 얼마 안가 자살하고 만다...[글루미 선데이]라는 말만 쓰여진 유서를 남긴 채...이 소식을 들은 작곡가 역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혹은 작곡가는 이 노래로 백만장자가 되었으나 그보다 훌륭한 곡을 쓸 수 없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린 끝에 자살한다. 그 후 유럽과 미국에서 이 곡을 듣고 자살한 사람들이 수두룩해 라디오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된다. 그래서 이 곡은 헝가리 자살곡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밖에 30년대 어떤 프랑스 교향악단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데, 시작부터 드러머를 비롯해 단원들이 차례차례 무대 위에서 목숨을 끊고, 마지막까지 남은 바이올린 주자도 목을 메어 자살했다는...아무리 봐도 뻥인 게 너무 티가 나는 야설도 네이버 지식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솔직히 너무 말이 안되서 웃기기까지 하잖아...-_-)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요? 듣는 이를 자살로 이끄는 곡이라니 딱 납량특집이나 호러영화의 소재로 적합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곡과 자살유발의 상관관계에 대한 정확한 통계적, 자료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입증된다면 학계와 의료계에 크나큰 공헌이...) 작곡가 레조 세레즈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1968년의 일이구요. 작곡 계기와 실연이 상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레즈 본인의 실연이 아니라 친구였던 시인 라즐로 야보르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에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는 이게 뭐 삼각관계 (나중엔 독일인까지 더해 사각...-_-) 로맨스로 표현되던데 순전히 픽션화된 것이구요.

뭐 어찌되었든 그만큼 곡이 우울하면서 아름답기 때문일텐데요. 또한 유난히 가사 개작을 많이 거쳤기도 합니다.

일단 레조 세레즈의 오리지널 버전을 볼까요.

이곳의 헝가리어에서 영작된 가사를 번역했습니다.


가을, 낙엽이 떨어진다
지상의 모든 사랑이 죽었다
바람은 구슬프게 울고
이 마음 다시는 새로운 봄을 바라지 않으리라
나의 눈물과 슬픔은 전부 헛되었다
사람들은 무정하고 탐욕스럽고 악하다...

사랑은 죽었다!

세상은 끝이 났다, 희망은 의미를 잃었다
도시는 파괴된다, 포탄의 음악이 들린다
들판은 피로 붉게 물들고
거리에는 시체가 널려있다
나 여기서 조용히 기도한다:
주여, 인간은 죄인입니다. 실수를 합니다...

세상은 끝났다!



굉장히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톤이 강합니다. 실연이고 자시고 하는 레벨이 아니지요. 정말로 세기말적 절망이 느껴지는 강력하면서 직설적인 가사입니다. 그래서인지 가장 덜 알려진 버전이기도(...)
덧붙여 이 버전을 헝가리어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링크는 이곳.

그런데 이 노래의 의뢰자이자 친구인 라즐로 야보르는 그래도 명색이 시인인지라...이 가사가 시적 로망이라던가 대중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개작을 했습니다.


하얀 꽃 수백 송이 흐드러진 우울한 일요일
내 사랑, 기도하며 그대를 기다렸네
꿈을 쫓던 어느 일요일 아침
그대 없는 슬픔의 마차만 돌아왔네
그 날부터 일요일은 영원한 슬픔의 요일
마시는 건 눈물이요 먹는 것은 슬픔뿐이니

우울한 일요일

마지막 일요일, 사랑이여 부디 와주오
신부와 관, 영구차와 수의가 기다리니
그대에게는 꽃다발을, 꽃다발과 관을
울창한 나무 아래 마지막 여정을 떠나니
최후까지 그대 볼 수 있게 두 눈 크게 뜨고 가겠소
내 눈을 두려워 말아요, 죽음에서조차 그대를 축복하는 것이니..

마지막 일요일



....이건 개작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것이 전혀 다른 내용이 되버려서(...)
인류 자체로써의 절망이 여기서는 개인 레벨, 그것도 실연한 연인의 레벨로 포커스 되었습니다.
'꽃'이라는 표현의 남발 등 죽음을 미화하는 낭만적이고 시적인 톤과, 자살에 대한 더 노골적인 암시가 (그것도 눈 뜨고 죽겠다는...) 개인적 차원의 절망감을 멜랑꼴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사실 덕분에 이 곡이 대중화되기도 하고, 영국, 미국에 영작되어 소개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헝가리 자살곡]은 미국 로컬라이징 마케팅 과정에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미국인 가수이자 작사가인 샘 루이스가 야보르의 가사를 바탕으로 개작한 것이 후에 폴 롭슨도 부르고, 빌리 할리데이도 부르고, 사라 맥라한도 부르고, 헤더 노바도 부르고, 자우림의 김윤아와 MC Sniper도 부르거나 조금씩 인용한 [글루미 선데이]의 가장 대중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요일은 우울하네, 잠 못 이루는 시간들
사랑이여, 나는 수많은 그림자와 살아가네
작고 하얀 꽃들조차 그대를 깨우지 못하네
슬픔의 검은 마차가 데려갔으니
그대 돌려주지 않는 천사들은
내가 그대와 함께한다면 분노할까

우울한 일요일

일요일은 우울하네, 그림자와 보내는 나날들
이 마음과 나는 모든 것을 끝내려 하네
그리고 촛불과 슬픈 기도가 이어지겠지
그들이 슬퍼하지 않기를, 나는 기쁘게 그대를 뒤따르니
죽음은 꿈이 아니라네, 죽으면 그대를 어루만질 수 있으니
마지막 한 숨까지 그대를 축복하리

우울한 일요일

꿈이었네, 나 꿈을 보았네
깨어나 마음 속 깊이 잠든 그대를 발견하네
사랑이여, 내 꿈 두려워 말기를
이 마음 그토록 그대를 갈망했을 뿐이니

우울한 일요일


뒤의 [꿈이었네] 부분은 개작에도 불구하고 곡이 여전히 자살, 혹은 죽은 연인과 함께하고 싶다는 절망감을 담고 있기에 레코드사의 압력으로 추가했다는 일설이 있습니다. 실화인지는 불명이지만 분명한 것은 곡의 절망감을 어느 정도 순화, 완화시키기 위한 장치로써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뒤로 갈수록 순화되고 낭만적으로 변해온, 덕분에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각종 전설을 탄생시켰던 [글루미 선데이]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헝가리 근현대사를 보면 작곡가가 자살한 게 별로 저주같은 부자연스러운 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저 곡이 쓰여졌던 30년대 헝가리는 대공황의 타격을 크게 받고 있었고 나치 독일에 경제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었으며 파시즘이 판치고 반유태인 법이 몇개나 개정되는 등 매우 뒤숭숭한 정국이었습니다. 따라서 독일의 전쟁에도 우방국으로써 참가해야 했고 불가침조약을 맺은 사이였던 유고슬라비아 침공에도 참전할 수밖에 없어, 이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 헝가리 수상 텔레키가 자살을 합니다. 게다가 독일과 소련 사이 길목에 놓인 바람에 히틀러의 개뻘짓 스탈린그라드 침공에도 가세하여 헝가리 군력의 대부분을 소진하고 역전한 소련군에게 침공당해 2차 대전 후에도 소련 치하에 헝가리인들은 처참하게 고통받게 됩니다. 뭐 헝가리에서 끔찍한 차별을 당하고 유태인 대학살 사망자의 3분의 2에 달한 헝가리 유태인들이 봤을 때는 정당한 응징일 수도 있겠지만요. 이처럼 2차 대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써의 국가적 입장이 가장 극명하게 공존했던 나라인 셈입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면서 동시에 프랑크톤 대학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입장이랄까요. 이런 환경에서 작곡가가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그런 절망적인 가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괴담이나 불가사의 사건을 재미있어하는 종족 중에 하나이지만, 대개 이 곡을 논할 때 이런 역사적 배경을 제거한 채 그냥 [자살유발곡]이라고만 하니 아쉽기도 하고 좋은 역사교육(!)의 기회가 묻히는 것 같아 몇 자 적어봤습니다. 괴담이나 전설의 근원을 찾아가면 시시하다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더 흥미롭거나 혹은 이야기보다도 더 처참하고 무서운 현실이 배경이 될 때가 많지요. 이야기, 픽션, 예술이란 것은 사실 현실도피라기보다는 현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필수적 생존수단이라는 생각이 가끔 드는 요즘입니다.

...뭐 어찌됐든 헝가리는 이 곡을 적절히 관광산업에 활용하고 있긴 합니다만...
부다페스트의 Kispipa Vendéglő라는 유서깊은 레스토랑은 이 노래를 연주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불렀습니다만 대체로 멀쩡히 살았던 걸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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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