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2007. 10. 12. 20:04
몇달 전....모 언니와 이야기하던 도중 옛날 작가들에 대한 화제가 나와서
[신동우 화집도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꺼낸 적이 있는데
그러고나서 몇일 전...만화계 뉴스를 확인하던 도중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신동우 컬렉션 발간 소식을 접하고
역시...이래서 말은 좋은 말만 해야한다는 것인가....라고 괜시리 감개무량해졌습니다.
고 신동우 화백이라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풍운아 홍길동]의 원작 만화를 그린 만화가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 밖에도 각종 동화, 어린이 소설, 교재 삽화까지 무척 활발히 활동하신 분.
70년대를 안 살아서 잘 모르지만 70년대에는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하셔서 대중적인 인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에 전래동화전집이나 교재로 이 분의 그림을 접하면서 매우 좋아했습니다.
[신동우 컬렉션]은 엄밀히 말해 화집은 아니지만 만화가로 활동한 6~70년대의 작품을 모아둔 중요한 자료.
비록 뒹굴거리지만 제 연구주제와도 통화는 부분이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겸 구입했습니다.



표지. 무려 하드커버입니다.
펜 색깔은 당시의 퍼렁색을 살리면서 종이질은 좋습니다.
일본엔 아카혼이었다는데 한국은 청색본인 것일까요?!



[날샌돌이](58년작)의 발췌부분...지면상 한계+자료 부족으로 물론 전집이 실린 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실림.
인상적인 것은...당시와 지금의 정서 차이랄지 요즘 시대가 거칠어진 것인지....아니면 신화백님 경향인지....
주인공들이 정의로운 것 이상으로...대부분 굉장히 개념있고 올바릅니다. 그냥 바른생활 어린이라는 게 아니라...
사람을 원수로 오해해 무례+폭력적인 위협을 지속적으로 당하는데도 무척 신사적으로 대하는 주인공 보세요.
홍길동도 그렇고 먼치킨스러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인공일 수록 유독 겸손하고 예의바른 경향이...컬처쇼크.

도중에 안중근이나 SF물도 있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전신 기계로 개조당한 군인이 주인공인 액션물도 있었는데
이 주인공은...악당 졸개A를 협박해 자기를 수리해주게 한 다음에
그 대가로 살려주겠으니 먼저 도망가라고 하고 다음에야 적 기지를 초토화되는 인간미가(...)
아아, 컬처쇼크입니다. 최근에 여러가지 일로 인간불신증에 걸릴 것 같은 요즘로써는 특히 충격입니다.
이 충격적인 건전함은...전쟁을 겪었어도 남아있는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나 낙천성 때문일까요?
.........물론 단순히 신화백님의 성향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신화백님의 진정한 능력은 명랑만화에 나오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 [심술 100단](63년작).
자명종 시계에 깨어난 게 화가 나 시계를 박살낸 심술이(주인공)를 아버지가 혼내며 집밖으로 쫓아내자
훈훈한 부자간의 야구를 하자며 아버지를 꼬여낸 뒤 간접적 데드볼을 먹여 앙갚음을 하는 심술이...
이에 앙갚음을 하려는 아버지는 책을 읽느라 저녁상에 늦게 오는 아들을 후려패고....
앞서 야구 사건의 복수임을 눈치챈 심술이는 집앞에서 [간디옹도 하는데 내가 못하냐]며 단식투쟁 앙갚음을...
가족 안에서 끝나지 않는 복수...아니 앙갚음의 무한사슬을 볼 수 있습니다.
....뭐 이런 부자가 다 있나.
신화백님의 어린이 주인공들이 청년 주인공보다 막장이라는 또다른 증거는....



시간...아니 어떤 것이든 스톱시킬 수 있는 [스톱이](65년작)에서...
...마침 금발(....인가?;)이겠다, 저게 커서 "시간은 멈춘다'라는 모 보스캐릭터가 생각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중국 어선....이라기엔 사실은 범죄자 같지만....에 대고 짱깨니, 짜장면이니 하는 인종차별적 언어로 도발한 뒤
총알을 스톱시켜서 방향을 돌려 중국인들의 배를 침몰시켜 버리는...무시무시한 애들입니다.



[개천대왕](70년작)...저도 그렇고 대부분 신동우 스타일이라고 알아볼만한 그림이 성립된 듯한 시기입니다.
인물들 등신대도 더 크고, 붓의 느낌이 드는 특유의 선과 섬세한 배경이 그렇지요.
랄까 이 만화 혼자만 이런 극화체라서 책 안에서는 가장 튀어보이는....
만화에서 매번 이런 퀄리티로 그리기는 힘들어서인지 주로 삽화용으로 사용한 스타일인 걸까요?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한데 몇 페이지 안 남아 있어서....흑흑흑;;



같은 1970년에 그려진 [차돌이의 반장선거]도 비록 등신대는 작지만 스타일은 보입니다.
신화백님의 그림은 둥글둥글하고 귀여워 낙천적이면서도 담담한 서글픔도 보이는데
이 만화라던가 [저 하늘에도 슬픔이]같은 불행한 어린이가 주인공인 리얼계 스토리에 강하게 드러납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풍운아 홍길동]의 무려 200페이지 분량!
소년조선일보에 1965년부터 연재되었던 것이 1968년에 이르러 8권 분량 전집으로 발간되었는데, (각권 150원!)
그 중에서 1권 분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도중 일러스트...랄지 칼라 삽화도 착실히 들어가 있습니다.
고전 홍길동전을 그대로 옮겼다기에는 작가의 오리지널 요소가 많습니다.
홍길동의 사이드킥 차돌바위는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귀엽지 않은, 심술이에 가까운 얼굴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뭔가 범상치 않을 것 같은 히로인 곱단이의 첫 등장.
....황당한 것이 포졸들이 곱단이를 [여장한 홍길동]으로 착각해 쫓고 있다는 설정인데...
이건 인물 타입을 많이 못 그린다는 작가의 자폭?; 내지는 두 사람은 배다른 남매라는 복선?! (그런 설정 없...;)
....아니면 단순히 홍길동이 여자로 보일 정도의 미형이라는 의미?;;



힘도 좀 세고, 착한 짓도 하여 약간 먼치킨이 될 뻔한 홍길동이 백운도사에게 조교당하는 장면.
백운도사가 온갖 동물, 사물로 변신해 홍길동을 혼내주는 내용인데 연출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겸손이 신동우 월드에선 상당히 중요한 항목이라는 또다른 증거는 수수께끼의 검객 사자가면....



백운도사 휘하에서 수련중에....
이 이건 코간류!!!!!



포졸들과의 전투. 상당히 박력있음.
[애들이 다섯인데] [내일이 할아버지 제사인데]라며 적당히 목숨을 아낄 줄 아는 인간적인 포졸들(...)
요즘 시대의 만화에는 거의 전멸한 것 같은 여유와 재치가 느껴집니다.



탐관오리를 벌할 때에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산채로 제사를 지내주는 재치를 발휘합니다. 나이스 센스!
앞서 말했듯이 날쌘돌이와 같이 홍길동도 인간미와 정이 있는 주인공이라
이후에 나무에 걸어 방치해둔 사또가 분노한 백성들에게 린칭을 당하자 그래도 죽이는 건 나쁘다며 구해줍니다.

종이 질도 좋고, 주요 및 히귀 작품도 볼 수 있으니 신동우 화백의 팬이라면 필히 구입해야 하는 책.
가격은 2만원으로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아쉬운 점은...다음 편을 너무나 보고 싶다는....;;
[홍길동]은 그래도 보존이 좀 잘된 것 같은데, 8권짜리 다시 복간할 수 없을까요?
뭣보다 호피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는걸.......(퍼억!)
뭐랄까...제작진이 원작을 1권이라도 봤다면 95년도의 해괴한 극장판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만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저씨 (잘 그리는) 만화가를 찾아봅시다  (9) 2007.11.06
아...아아 드디어...!  (3) 2007.10.19
요새의 만화 구매 목록  (5) 2007.09.22
바벨 2세  (6) 2007.09.16
붓다  (10) 2007.07.10
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