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2007. 9. 16. 06:12


그 동안 한양문고에서 눈짓만 하다가 오늘 최면파에라도 당했는지(...) 질러버린 바벨 2세 애장판.
외계인 선조 바벨의 첨단 과학력+초능력을 물려받은 소년 바벨 2세가 세계정복을 꿈구는 요미와 대적하는 내용.
요코미쓰 SF라면 마즈에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바 있는 트라우마틱한 경험이 있지만
바벨 2세는...원작에는 한번도 주인공이 잘생겼다는 말이 안 나오는데도
어린 시절 해적판을 보고 자라신 어머니가 [바벨은 아름다운 소년이었지...]라고 말씀한 것이
강렬하게 기억에 각인되어버린 만화. (그리고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진실을 재확인시켜줌...)
단순히 등장인물이 여자캐릭터는 커녕 아저씨들만 득실거리다보니 상대적으로 빛나 보였을지도(...)
물론 바람머리에, 분명히 나름 요코미쓰형 미형 얼굴인 것도 있겠지만,
만화 속에서 이 가쿠란 소년이 얻어 터지고, 옷도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며 가쁜 숨을 들이쉬는 등의
각종 아슬아슬한 서비스 씬을 보고 있자면 아름답다는 언어적 묘사따윈 필요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얘기가 좀 샜지만 결코 미소년에 하악거리기 위한 불손한 목적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산 것은 아니고
요코야마 미쓰테루 특유의 [스펙타클하면서 경제적인 연출]을 참고하기 위함도 있다.
삼국지, 대망 등의 대하역사소설의 만화화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군더더기 컷 하나 없는, 엄청나게 알짜게 99% 스토리 진행만을 위한 연출기법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같은 쓸데없는(.....) 컷과 대사 많이 들어가는 연출은 배제하고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에 무게를 잡아, 인물은 기계적인 도구적 기능 정도만 하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이것은 다양한 인물들과 가치간이 공존, 대치하는 역사물에서는 확실히 효율적인 기법이긴 하다.
문제는 역사물이 아닌 창작물일 경우에도 그런 살벌한 테크닉이 그대로 사용된다는 점인데...
앞서 말한 군더더기 없는 스피디한 진행과, SF 장르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 기발한 상상력 덕분에
확실히 재미있다.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가고, 다음 스토리가 궁금하다.
한마디로 인터테인먼트로써 매우 우수한 것이다.
문제...라고 할지 특징이라면, 위에서 말한 캐릭터에 대한 도구적 취급이라던가
조금 잔혹한 의미에서의 [공평함]-즉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편을 들지 않고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공상과학 만화의 세계관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사실 작가의 입장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경우는 마즈의 엔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정녕 그렇다면 요코야마 미쓰테루는 단순한 비관론이나 염세주의를 넘어선 극단적 냉소주의자가 된다(...)
그렇다고 해도 그 냉정함-공정성 때문에 엑스트라 인간 캐릭터도, 특정한 상황의 인간으로써 보편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당연한 행동(선악을 떠나서)을 하는 것 뿐이기에, 아주 비인간적이지도 않은 점이 중요하다.

이 만화에서도 주인공 바벨 2세부터가 냉혹무비함의 극치고, 그와 대치하는 악역 요미가 훨씬 인간미가 있다.
바벨 2세는 인류를 지키는 입장이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딱히 정의감이 강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결단코 정이 넘치는 성격도 아니다. (부모와의 작별씬에서 두드러진다. 이가노 요원은...글쎄 왜일까?)
사실 작가에게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요미와 대적관계가 되야 한다는 점 뿐...
만화 내내도 인류의 안녕같은 것보다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요미를 방해(...)하는 데에 더 주력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국장이나 이가노 요원 외에는 (이들도 나중에야 등장하고) 아예 교류하는 인간이 없는 반면
수많은 부하들을 수하에 두고 바벨 2세에게 처절한 응징을 당한 그들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구조대를 보내고
그런 부하사랑 마음 때문에 부하들에게도 존경받으며 경애받는 요미가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바벨 2세가 자신의 초능력을 포함해, 로뎀, 로푸로스, 포세이돈이라는 강력한 부하들을 기본 옵션으로 갖추고 있고 요미처럼 세계정복이라는 야망도 없기에 (사실 요미에게 협력하기를 거부한 것은 단순히 귀찮아서라던가 요미의 첫인상이 안 좋아서라는 시시한 이유라도 그럴듯한 것이 바벨 2세의 인격이다;;) 거대조직을 만들 필요가 없고, 그 외의 인간관계도 '나와 있으면 (요미의 타겟이 되므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전에 차단해버리는 점 때문에 인간관계가 지극히 협소하고 따라서 인간미를 보여줄 여지도 부족하다는 것도 있겠다.
하지만 바벨 2세와 그 부하들의 거의 절대적인 힘에 처절하게 도륙당하는 요미의 부하들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아무리 적이라지만 대규모 살상에 대해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바벨 2세를 보고 있자면)
정녕 주인공을 응원해도 되는지, 복잡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벨 2세와 가장 거리적으로, 입지적으로 가까운 것은 세 부하인 로뎀, 로푸로스, 포세이돈인데
이 중 로푸로스와 포세이돈은 명령만 따르는 과묵한(...정확힌 말을 못 하는 것 같지만...) 거대로봇이고
그나마 T-1000같이 몸을 자유자제로 변형하는 흑표범 모습의 생명체(???) 로뎀은 말도 하고, 제안이나 조언도 하는 등 상당한 지능체로 볼 수 있으니 요미가 설치지 않을 때 바벨 2세와 놀아줄(?) 상대라면 로뎀 정도겠지.
그런데 이들도 전부 '부하'-그것도 기계적으로 명령을 따르도록 입력된 기계적 존재라는 점에서
바벨 2세를 절대적인 힘으로 지켜줄 수 있는 동시에 같은 바벨 유전자를 가진 요미에게도 조종당할 수 있는
지극히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물론 '바벨에 복종하는 기계'라는 태생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결코 이들의 책임은 아니지만, 동시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관계임을 명백히 제시하고 있다.
그래도 로뎀X바벨2세는 지지함...
마즈의 가이아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절대적인 힘의 기계 수호자라는 존재는 기계라는 점 때문에 강력한 아군이 되지만, 동시에 기계-프로그래밍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컴퓨터가 바이러스를 차단한답시고 꼭 필요한 웹사이트까지 차단해 버린다던가, 핸드폰을 잘못 건드렸다가 자동받기 기능을 걸어버려 해제하느라 골머리를 썩히는 등, 기계는 단순히 프로그래밍된대로 자기 할 일을 한 것 뿐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 많은 제한을 두기 때문에, 인간의 편리를 위한 기계가 되려 그 반대의 작용을 하는 경우는 실생활에도 더러 있다.
기계와 작가의 관계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기계에 웬수 진 기계치거나, 내지는 기계를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 같다. 어쨌든 그에게서 '아톰'같은 로봇은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은 기계에 대한 불신이나 냉소주의라기보다는 기계의 특성 그 자체를 충분히 숙지하고 따른 것 뿐이다. 인간의 특성과 본능을 이애하고 그것이 선악 수준의 가치를 초월한 행동에 이름을 염두하며 그대로 묘사한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이에 비해 요미는 절대 부하들에게 배신당하지 않으니, (물론 바벨탑의 세뇌성 최면장치를 보고 일시적으로 맛이 갈 때는 있지만, 요미의 사랑의 힘조절 충격파를 먹고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바벨 2세는 고독한 셈이다.
....물론 본인이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으니 의미 없겠지만....

사실 바벨 2세와 가장 강한 유대관계를 가진 존재는 아니러니컬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숙적인 요미다.
같은 바벨의 유전자, 비슷한 능력을 물려받았지만 요미는 선택받지 못했다.
상대방이 서로에게 유일하게 적대적인 존재이고, 따라서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는 계속 부딪쳐야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만화도 인기작이 흔히 그렇듯이 끝을 내지 못하고 질질 끄는 패턴을 보여주는데,
흔한 소년만화의 패턴대로 한명의 강적을 쓰러뜨리면 더 강한 강적이 속속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피콜로 마왕 다음에 라데츠, 다음에 베지터, 다음에 프리더, 다음에 셀...이 바로 전형적인 에스칼레이트 패턴.)
처참하게 죽었던 요미가 사실 죽지 않았다던가 되살아났다던가 해서 좀더 강력해져서 돌아오는 식이다.
(죠죠 4부의 키라 요시카게와 같은 성장하는 보스라고 할 정도로 강화된다. 문제는 그 나이에 성장은 약점이...)
세계관을 유지하겠다는 작가의 욕구와 함께새로운 보스를 등장시키기 귀찮다는 귀차니즘도 있을지도...
'바벨 2세에게 대적할 존재는 요미 뿐'임을 강조하며, 두 사람의 숙명적인 관계를 강화한 것이다.
솔직히 이것도 한두번이 아니니 마지막에 요미가 죽었을 때도 정말 죽었어?--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지만...
어쨌든 냉혹하게 시크한 가쿠란 미소년과, 사실은 정 많고 예민한 세계정복 매니아 아저씨라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전대미문의 숙명의 라이벌 관계를 남긴 만화사에서 역사적인 사례다.
대체 왜 요즘 라이벌들은 나이차/성별차가 거의 없냐는 말이지...

마지막으로 바벨 2세가 된 이후 그나마 정기적으로 접촉하는 보통 인간인, 보안부 국장과 이가노 요원은...



별로 쓸모가 없으니(차원이 다른 적이니 어쩔 수 없지만) 응원단(...)이 되고 말았다.
이가노의 경우 바벨 2세에게 대놓고 [방해만 되요]라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지만,
그냥 힘이 센 친구를 두고 싶은지 내지는 순수한 흑심에서인지,
포기하지 않고 바벨 2세 근처에 붙어 있다가 초능력 게이지가 바닥나서 쓰러진 바벨 2세를 업고 달리기도 하고
바이러스 면역약을 전달하는 등 인간의 범위에서 최대한 바벨 2세를 도와준다.
그래서인지 바벨 2세가 유일하게 반복적으로 구해주는 인간이기도 한 특이한 위치...
적에게 일시적으로 세뇌당한 이가노를 걷어찬 바벨 2세의 발길질을 매정하다고 볼 의견도 있겠지만,
다른 인간이었으면 0.1초만에 충격파 통구이가 되었을 것을 감안하면 나름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동시에 지른 만화도 많은데 결국 이 만화에 대해서만 쓰게 만든 바벨 2세...
일단 한 번 보면, 스피디하게 넘어가는 페이지와 함께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닌 것이 실감이 날 것이다.
그리고, 꿈 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홀로 서 있는 아름다운 소년의 손길에
짜릿한 충격파의 찰나의 고통을 느끼며 모래밭에 뒹구는 아련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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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