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이 멸종 직전인 국내정식판 데즈카 만화와는 달리, 유일하게 한양문고 지하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붓다].
(요즘은 안가봐서 아직껏 남아있는지는 불명.)
단지 드문 데즈카 한글판 만화라는 이유만으로 구매해서 책장 한 줄을 차지하도록 꽂아둔 뒤, 왠지 읽어버리면 하루가 다 소진될 것 같아서 미루고...미루고...미루길 어언 XX개월.
학과 논문발표회 및 버스시간이 아슬아슬했던 회식에서 금요일 밤 돌아와, 그 동안의 밀린 잠을 채우려던 것처럼 폭면해 깨어난 것은 토요일 대낮. 사실 냉장고 청소, 장 보기 및 학교 업무로 떠맡은 문서작업을 해야 했지만 긴장도 풀려 컴퓨터를 멍하니 쳐다보다 문득...책장 맨 아래의 [붓다]에 눈이 간 것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이것이 오늘 하루 예정 스케줄의 파탄이자 종말임을 예감하면서도, 숙명적으로 1권을 뽑아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토요일은 쫑(...) 났습니다. 원래 장편 데즈카 만화는 무척 대미지가 큽니다(...)
하지만 그 댓가로 얻어내는 감동의 폭풍우와 깨달음의 섬광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책자 맨 앞 장에 각종 불교예술 사진이 실려있는 등 전체적으로 일반적 불교 독자를 위해 학산이 포장한 듯한 이 책은, 제목인 [붓다] 그대로 석가모니의 인생을 그린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대중들에게 익숙한 왕자 시절의 이야기도 있지만 성경과는 달리 단일된 하나의 절대적 경전이 없는 불교의 특성상 아마 불교도가 아닌 독자에게는 생소하고 신선한 이야기도 많고, 또한 작가 본인이 작품의 재미나 통일성, 자신만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타타)
만화의 시작은 주인공인 붓다의 등장에 앞서, 두가지의 '프롤로그'가 펼쳐집니다. 하나는 한 성자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모닥불에 뛰어든 토끼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고, 또 하나는 붓다가 태어나고 살아간 시대적 배경인 고대의 인도 사회의 특징과 갖가지 모순-주로 극심한 신분 제도인 카스트 제도와 험난한 대자연 양쪽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최하급 카스트인 파리야의 소년, 타타의 관점에서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타타는 그 순수한 성품으로 인해 동물과 뜻이 통해 몸을 바꿀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우연히 한 노예계급 모자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모험활극과 판타지, 드라마가 어우러진 굉장히 활기 넘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거대한 숙명...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둔 세계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속이거나 사랑하는 이를 배신하며 비참하게 죽어가고 이것을 목격한 타타는 복수를 맹세합니다. 누구에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원인은 신분제도, 전쟁, 정치 등 현실 그 자체라는 복합적인 원인이지만, 어린 소년에게는 그런 것이 모두 혼란스러울 따름이고, 단지 사랑하는 이들을 직접 앗아간 존재인 코살라국(싯다르타의 조국 카발라바스투의 종주국이기도 함)을 복수와 증오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를 평생 옥죄는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토끼의 이야기가 자기 희생, 그것도 종을 초월해 자신의 목숨마저 바친 궁극의 희생의 이야기였다면, 타타의 이야기는 인간의 이야기로,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증오, 모순이 판을 치며 인간의 선함이 좌절당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서로 이어질까요?
아직 주인공 싯다르타-붓다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지만, 이 '프롤로그'는 당시의 시대상과 비록 고대 인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인간 차별과 정치와 욕망과 고통을 묘사하고, 타타라는 한 인간을 예시로 인간의 '집착'의 근원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특유의 정념은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지고 떨쳐내기 힘든지, 동시에 후에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가르침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는지 납득시키는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동물과 만물은 인간과 동등한 생명이라는 점과 인간세상의 현실적 고통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이에는 단순한 윤회사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을 넘어선 어떤 초월적인 진리가 무아와 자비의 형태로 작품 전체를 균일되게 통일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대가 없다면 뭔가가 이상해질 것이다. 그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카발라바스투의 왕자로 태어나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란 싯다르타는 부모의 애정어린 과보호에도 불구하고-어쩌면 그 과보호 때문에-음침한 어둡고 허약한 아이입니다. 설사기가 있고 몸이 약해서 늘 죽음을 두려워하는 싯다르타의 근원적인 공포는 또래 아이와 아이가 사냥해 죽인 토끼의 죽음을 보며 구체화되고, 죽은 뒤의 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결국 타타의 손에 이끌려 나간 성 밖의 더욱더 덧없는 생명과 만연하는 죽음의 모습에 싯다르타는 큰 충격을 받고, 성으로 돌아갑니다. 겉으로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결혼도 하고 왕궁에 살지만 그 세월 동안 하나의 결심을 키우고, 결국 나라와 처자를 버리고 출가합니다.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극심한 고행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보며, 그러한 경험의 배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아니,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그는 평생 배우고 고통받고 베풉니다.
기적을 일으키고 대체로 무심하게 시크한 달관한 성자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붓다가 지극히 인간적이고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런 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처럼 결코 짧게 살다가 강렬하게 죽은 인생은 아닌, 허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오래 지속된 붓다의 삶이었으나, 동시에 그만큼 수많은 인간사의 고통에 노출되게 됩니다. 나라는 멸망하고 친우와 소중한 제자들은 고통 받고 죽어가고, 붓다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궁극의 목적이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삶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가르침과 배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최후의 가르침이 그러하듯이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작가 본인도 아니어서, 정확한 불교의 교리와는 다르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이자, 진정한 인간애인 것입니다.
"그대들이 누군가를 구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도 그대들을 구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산 것은 서로 한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한 젊은 왕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저 역시 가슴을 강타하는 감회를 느꼈습니다만, 역시 그만큼 결정적인 운명이 쌓여지고, 설득력 있게 묘사되는 과정이 있었기에 감동과 깨달음도 배인 것이겠죠. 그리고 가공의 인물들이 더해진 것도 있지만, 상당히 모험활극의 부분이 많이 들어있어서 말하자면 종교에 대한 만화인데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과하게 무게잡지도 않고, 유유히 흘러가는 이 자연스러움. [붓다]가 서양 출판사에서 히트작인 이유도 ([불새]가 대체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동양권과 차이라면 차이랄까요) 서구인들이 관심은 있지만 성경같은 경전이 없다는 이유로 잘 알아보지는 않는 석가모니의 일생과 불교의 사상을 재미있으면서 깊이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자 붓다와 인간 붓다 어느 쪽에 지나치게 기울지 않고,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해 묘사한 것은 성인이나 성인급의 추앙을 받는 다루기 힘든 인물의 묘사로써 보기 드물게 탁월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요는...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려고 굳이 여자랑 결혼시키지 않아도 된다 이 말...) 혹시 저처럼 이 책을 어리석게 썩혀두고 있는 분이 있다면 황급히 꺼내서 읽으실 것을 강력히 권장하는 바입니다.
...........진지한 감상은 이것으로 끝.
이제부터 폭주.
요는 [붓다]는 어떤 만화냐면......
부처님 모에물.
.........
정말입니다.
뻥 아닙니다. 직접 만화 보세요....
오죽했으면 데즈카 선생님이 신약성서를 만화로 안 그려서 아쉬울 정도입니까...
만약 그리셨다면 마...마 장난 아니었을 듯....오우 맨.....
일단은 부처님 모에물이라 캬~~악!>o< 엄청 다양한 버전의 부처님이 나와! 쇼타 청년 중년 노년 버전! 머리스타일도 제각각! 무심하고 시크한 카리스마에 이나라 왕 저나라 왕 다 넘어가네! 죄많은 당신!
.....이라는 부처님 빠돌빠순용 만화였던 겁니다...과연 그래서 불전과 꼭 정확하진 않아도 불교만화로 홍보된 이유가 당연한...부처님 모에물이니 당근 불교 신자들에게...쿨럭쿨럭...-_-;
여담이지만 이게 잘만 팔렸으면 불교신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지도...
그리고 불전에 나온 인물들도 모에.....
모든 것은 모에로 만드는 무서운 데즈카 파워!
사실 불전대로라면 아난다가 제일 미형이어야 하는데, 왠지 데바닷타가 미형...그것도 꽃미남계로...
밀교 만든 것도 부처님 꼬실려다가 실패해서 열받아서로밖에 안 보임-_-
그나저나 뭘 어떻게 하면 그 부모들에서 이런 미형이 나옵니까? 격세유전도 정도껏.... 그리고 실연당했다고 해도 데바닷타 아빠같은 짓은 하지 맙시다 남성여러분...아니...여자분들도...제발...
아니, 물론 아난다도 괜찮지만...붓다 제자 되고 나서 뭔가 더 레벨 업이지요. 노예 소녀 상대로 츤데레질 하다가 좋아하는 건 정석이요, 갈수록 망가져서 귀여워지는 섹시 여자 악마에게 스토킹 당하질 않나, 아난다를 붓다에게 빼앗긴 것을 질투해 되찾으려고 활활 타오르는 아힌사까지...아 하긴...불전대로 인기 많구나(...단지 여자에게만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것과 남자가 섞여 있다는 게......)
그리고 강력한 충격고백. "내게는 붓다가 제일 소중해!" 쿨럭...;
그리고 루리왕자! 처음엔 그냥 재수없는 애였는데 왠지 갈수록 모, 모에...이 츤데레가!!! (쿨럭;)
특히 붓다와 몇일 밤낮을 뭘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마침내 마음속을 사로잡던 복수심을 떨쳐낸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니 진지하게 라니까요...?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사실 왕 꼬시기 첫 희생자는 빔비사라-세냐 왕이었죠. (라고 쓰고 록크라고 읽음...미묘한 중간단계가 생략되어서 중년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 록크의 늙은 버전이라기보단 그냥 젊은 시절을 록크가 했음...정도긴 하지만...그래도 아저씨 버전도 나이스!) 이 경우는 완전...러브러브였고...우어ㄹ(.....) 아들이 질투할만도 해.....
물론 삼눈이나 레드공이나 히게오야지나, 본인이 아닌 환각(?) 정도로 지나가지만 우리의 블랙잭 선생님 등, 스타시스템 카메오도 당연히 볼거리구요...보통 버섯은 그냥 그렇지만 표주박 버섯 맛은 궁금한(...)
타타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의 캐릭터인데 후반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랄까 사실 초반엔 마누라가 더 빨리 죽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질기더라는(...) 어쨌든 모든 인간에게 깨달음이나 구원이 닿지는 않고, 그만큼 인간의 집착이란 것이 족쇄가 된다는 의미의 최후였지만 동시에 붓다의 가르침에 번뇌도 하며 꼭 자신의 의지가 아닌 습관이나 신분적 상황 때문에 수라의 길을 가게 되는 타타의 인생은 공감이 가는 만큼 슬펐습니다. 원래 동물과 마음이 통해 몸을 바꿀 수 있던 타타가 나이가 들고 마음이 황폐해진 나머지, 그 능력을 잃고 코끼리에 밟혀 죽다니, 정말 잔인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선택한 길이기도 했으니, 그의 삶을 인간사의 한 형태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심경입니다.
....그나저나 타타 부부, 아무리 봐도 블랙잭에서 아들을 위해 최신형 전투기 타고 망명한 장교 부부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