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위...악역 역할로 화제가 되었으나 실제 영화를 본 관객들이 되려 그 눈빛에 보호본능만 일으켜 악역으로써 느껴야 하는 거리감, 혐오감은 커녕 동정, 보호하고픈 감정까지 일으키고 말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무섭고 소름끼칠 정도로 징그럽고 끔찍하지 아니한가. 이런 일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돈도 잘 벌고 자기랑 취향도 딱딱 맞고 잘생기고 요리도 잘하고 다정다감하여 보통 남자들은 무심하게 넘어가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초 이상적인 남편이, 사실 애시당초 내 아버지에게 복수하려고 마구 스토킹질 해가며 내 취향을 조사해 연애하고 결혼한 것이며, 맛있는 반찬도 실은 매일매일 수면제를 타 가며 나약하게 만들고 언젠가 아무 때나 쉽게 죽이려는 속셈이라는 것을. 그 배신감과 공포와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나. 예를 들면 욘사마가 사실 복수 땜에 친절하게 굴어 결혼한 거고,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배우자라는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 봐라. 욘사마가 취향이 아닌 사람은 좋아하는 이상형의 남자 아무나 넣어봐라...아무튼 부인을 사랑하고 배려할 때는 진짜 진심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실 어느 정도까진 진심일 수도 있지만 그것도 묻고 단번에 돌변해 죽여버릴 수도 있다는 게 진짜 무섭다) 사실 처음 단계부터 대략 복수를 위한 결혼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내심 믿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특히 자길 스토킹하던 전 강간범과 아내를 동시에 처리하려는 장면에서는 치를 떨며 무서운 기집~이라고 눈깔을 뒤집을 정도였다. 여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진짜 무서운 양조위였다. 동시에 그래도 눈이 이뻐서...용서가 되는 진진짜 무서운 양조위였던 것이었다....
이라크에서도 살아 돌아온 그녀는 결국 자기 집에서 사랑하는 남편이 짜 놓은 복수의 계획에 휘말려 살해당한다. 물론 폭발 자체에선 살아남았고 뒤늦게 후회한 남편의 정성어린 간호(+종군 기자를 하던 기본 몸빵도 있었을 것이다.)에 의식을 되찾지만, 그것은 동시에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기억, 복수 때문에 자신을 이용했다는 깨달음이 되돌아오는 것도 의미하기에 그녀는 삶의 의지를 잃고 죽는다. 상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 행위와 그로 인한 고통이 그녀를 죽게 한 것이다. 이 점에서 그녀는 아방의 자살한 연인, 레이첼과 비슷한 점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레이첼은 연인 아방과의 소통에 실패해 바람을 피우고 그 결과 아이가 생기지만, 그래도 아방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아이를 지우고도 새 애인과의 연을 끊지 못해 크리스마스 날 밤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다가, 결국 그도, 아방도 찾지 않은 텅 빈 집에서 쓸쓸히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두 남자의 배신-아방은 경찰로써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애인의 경우는 불의의 사고에 의한 것이었지만-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이지만. 어쨌든 워낙에 배신의 아픔이 큰 탓에, 그리고 딱부러지는 성격이라, 숙진은 [당신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결혼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한다.]는 유정희의 진심어린-하지만 모순되는-고백을 냉정하게 뿌리친다. 세상의 법칙상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으니까, 유정희가 거부당하는 것은 사실 아프지만 지당하다. 그리고 진정 독한 여자인 숙진, 죽어도 마지막까지 반지는 빼고 아예 그와의 인연을 끊어버린 채 죽는다. 베드트레이에 덩그러이 놓인 결혼반지만큼 아픈 결혼반지를 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정말 궁금한 것은 복수의 실행자인 유정희의 심정이다. 어린 나이에 목격한 가족의 참살과 경찰-아버지의 동료이기도 한-에게도 갈 수 없던 고립감이 분명 심한 상처를 남기며 어린 아이로 하여금 (사실 이 단계에선 아직 복수라기보단,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을 때 숨을 죽이고 입을 틀어막아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동물적인 생존본능에 불과했던-) 자기 이름을 숨기게 한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은 물론 가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장 위태로울 때에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어른들이 자기가 살아남은 것을 알면 죽임당할 것이라는 사실도 더해) 기본적으로 어른에게 의지함으로써 생존하는 어린아이에겐 크나큰 충격이자 배신이요, 급격히 성숙화시킨 폭력적인 성장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이 단계에서 구체적인 복수의 계획이나 심지어 복수할 생각이 있었는지는 불명이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기에, 일단 가명을 쓰고 고아원에 몸을 의탁하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 경찰대학에 들어간 것은 복수라기보단 그러한 나쁜 사람들을 벌해야겠다는, 막연한 정의감에 의한 동기부여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말한 대로 자신과 같은 이름의 전과자를 찾은 것이 복수계획의 구체적인 계기이자 시발점일 것이다. 사실 잘 나가는 형사인 그에게는 충분히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법의 이름으로 옛 사건을 파낼 수도 있었고, 25년 전의 일은 그 동안 그랬던 것처럼 묻고, 후배 아방과 함께 건실하게 경찰로써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평소의 유능하고 이지적이면서 상냥한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여유로움을 발휘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험하고 끔찍한 복수의 길을 선택한다. 사실 자신의 대역을 할 남자를 찾아낸 것도 있지만, 같은 시기에 아방이 경찰을 그만 두어 그의 곁을 떠난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계획의 초기 단계에서 그를 말려줄 사람이 곁에 없었던 것도 대역의 남자의 발견과 같이, 어떻게 보면 복수를 위한 지극히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조건의 설치였다. 또한, 마지막으로 본래의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날의 기념품, 최후의 어린 시절의 유품, 그리고 동시에 가장 끔찍한 그 날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인 탁구채를 20년이 넘도록 소중히 간직해 왔다는 것이, 그리고 강간살해범을 태연한 얼굴로 마구 구타하던 모습이 암시하듯이 평소에 자기 자신을 얼마나 죽이고 억누르며 살아가는지 암시해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드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경우 그 이드가 본래의 자신-본명의 자신-어린 시절의 자신 그 자체와도 겹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억제가 훨씬 강압적이었을 것이고, 그만큼 탈출구를 모색하려는 충동이 컸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복수의 과정 중 그는 잃고 싶지 않은 것-가족-아내-를 얻지만 복수를 함으로써 그것을 잃게 된다. 그가 숙진을 사랑한 건 진심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에게 중상을 입히고 나서야 그 진실성을 깨닫는 것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주로 자신의 과실로 인해) 나서 그 의미를 깨닫는 인간적 어리석음의 전형성인 동시에, 복수의 길을 택한 자에 대한 인과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을 거부하고 고개를 돌려버린 숙진의 모습이 그에게 심한 고통이었을 테지만, 결정적으로 그녀의 죽음과 죽어서까지도 그와의 결별을 확실히 한 빼내어진 반지가 드디어 다시 얻은 가족, 잃고 싶지 않은 것과의 단절을 확실히 각인시켰을 것이고, 그렇게 삶의 의지를 잃고 자살한 것이다. 아방이 말리기에는 그는 너무나 멀리 가 버린 것이다.
...사실 이 영화가 커플관에 놓인 것은 어쩌면 단순히 마지막 씬이 커플로 끝나니까.....가 아닐까 생각된다.
앞서 한 커플이 서로 완전히 단절되고 부서진 채 자살을 했는데 이 커플은 깨알을 뿌리니 마구 화가 치미는 관객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뭐랄까...하얀거탑 최종회 직후 케세라세라 예고를 보는 느낌?) 아마 이 정도의 희망을 남겨주지 않으면 너무 절망적이었을 것 같다는 감독들의 배려같기도 하다. 무간도 식이라면...묘지 앞에서 끝났겠지만...그래도 영화 내내 금성무/양조위라 그림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