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2007. 5. 18. 02:01
스파이더맨의 저주(...)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새 블로그가 참 썰렁하군요.
사실 제가 그 동안 블로그는 커녕 공부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바쁜 일이 있어서 업을 통 못한 탓이 크지만...
아마도 수요일까진 계속 바쁠 것 같지만 말입니다...

이럴 때에는 스캔덜러스한 화제로 한번 확 휩쓸어 줘야겠죠.

예를 들면...어느 시점부터 2차 창작과 번역의 동질성과 이질성에 대한 화제로 넘어간 사건이라던가...

네...? 이미 지나갔다고요?....그래도 생각하던 바가 있으니 씁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있어서 의미있었던 것은, 사건 그 자체에 대한 것보다도, 스캔번역=2차 창작과 동급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의외로 많았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둘 다 해본 저로써는 (스캔번역은 이쪽. 정확힌 왜곡인가...) 어느 정도 발언의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일단 둘 다 불법행위입니다. 그러나 서로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이치대로라면 단순히 불법이라는 공통점만으로 스캔번역=2차 창작=속도위반=무면허수술=절도행위...가 되는 셈이니 끝도 끝도 없습니다.

스캔번역-scanlation-은 만화(주로 일본만화)가 인터넷을 통해 급격히 퍼지면서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오랫동안 자행되어 왔습니다. 자막제작도 영상이라는 매체만 다를 뿐이지, 원판 보정-번역-수정 작업이라는 데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근본적인 취지는 순수한 것으로, 특정 언어를 모르는 이들에게 그 언어로 번역되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며 같이 보고 즐기자는 데서 온 것입니다. (스캐너가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에도 일어 만화책에 꼼꼼히 한국어를 써넣은 흔적에서 개인번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실적으로 도무지 번역될 가망이 안보이는 작품도 많고 대부분의 경우 무상으로 수고를 들여 극히 자발적인 차원에서 하는 것이니, 불법이기는 하지만 금전적인 영리가 걸리지 않은 이상 경범죄의 레벨이고, 도덕적으로도 단순히 나쁘다고 단정짓기에는 [작품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행동동기라는 미묘한 점이 있습니다. 또한 스캔번역 작업 자체가 굉장히 공이 들고, 또한 제작자 중에는 정식판 출시와 동시에 올려놓은 이미지를 삭제하는 등 나름대로의 기준과 법칙을 지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반면에 영리를 목적으로 한 스캔번역, 내지는 번역해적판도 많습니다. 여전히 보이는 번역동인지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출판사로써는 앞서 말한 '양심적인' 스캔번역가의 경우도 번역본 판매량에 대한 잠재적 영향을 생각하면 불안한데, 아예 대놓고 찍어 파는 것은 더욱 눈 뒤집혀질 일인데다가 확실한 물증도 있으니 신고를 해도 당연하겠지요. 어쨌든, 스캔번역이란 기존의 만화책을 스캐너로 스캔해서 이미지 보정 후 (안하는 경우도 있음) 일본어 대사를 지우고 그 자리에 번역한 한국어 대사를 입력해, 공공장소에 공개, 공유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스캔과 이미지 보정, 대사 번역 및 입력 작업 등 굉장히 수고스러운 작업이고, 따라서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 사도로 빠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법은 합니다.

어쨌든, 이는 번역 작업이지 창작 작업은 아닙니다. 어느 한 쪽이 더 우수하거나 열등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번역업이 좋게 대우받는 국가의 경우도 번역과 창작을 혼동하는 일은 없으니, 단순히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번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어색함이 없게 옮기는 것입니다. 제 2의 창작이라는 말은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 그만큼 원문을 파해치고 분해하고 되살리는 치열한 작업임을 상징하는 것이고, 실제로 [번역자가 창작을 한다]라는 말을 듣는 번역은 비꼬는 의미로, 원문을 살리지 못했다-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번역과 창작의 경계점을 쉽게 알 수 있겠지요. 물론 모든 번역은 불가피하게 번역자의 지식과 글쓰는 투, 지향 등 많은 것을 반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의도적인 주관성-자신의 사견을 개입시키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는 결말이 싫다고 둘 다 살아나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고 쓰면 그건 개작이요 왜곡이지 제대로 된 번역은 아닌 것입니다. 모 거대기업 세탁기 광고를 번역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그 세탁기나 기업을 미워해도, 번역에 그것이 드러나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간단히 공식화하면, 이상적인 번역에 있어서 원작자의 의도>번역자의 주관인 것입니다.


2차 창작은 일본에서 나온 말로, 사실 개인적으로는 영어인 fan art, fan fiction이 더 적합한 것 같지만 왠지 우리나라에서는 팬픽=아이돌 스타 팬 픽션으로 각인되어버린 듯해서 편의상 부득이하게 일본식 표현을 사용합니다. [2차 창작]은 원작(1차 창작물)이 있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소설, 영화...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따 와서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쓰는 행위를 말합니다. [코믹월드] 등의 행사에서 '패러디' 항목으로 분류된 수많은 회지와 팬시들이 전부 2차 창작에 속합니다. 2차 창작은 스스로가 [2차] 창작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자기홍보 및 정체성에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다른 말로, 장르 표시라는 것을 통해 원작을 반드시 명시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원작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2차 창작물 구매자/향유자들 역시 [원작이 무엇이냐]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림을 좀 그린다는 사람이든 아니든,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연습장에 따라 그리거나 배껴 그린 경험은 있을 수 있으니, 2차 창작 행위 그 자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이 지점까지는 원작자/출판사 측이 터치할 것도 없고, 일일히 단속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독자그림엽서 코너]처럼 팬 증가를 위해 이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한 만화잡지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일본 출판사, 제작사들이 수많은 (개중에는 불건전한 것도 상당수인) 동인지를 묵인하는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그 전통 아래 있습니다. 미국 동인 사이트들이 대부분 소설 중심이고 전체적으로 한국, 일본에 비해 그림의 질이 떨어진다는 평을 듣는 이유도 사실은 [2차 창작]에 대한 미국의 엄격한 단속, 법률 및 유명한 고소 문화 때문도 있습니다. (실제로 [해리 포터] 영화 개봉 직후, 워너브라더즈에서는 온라인 상의 일체의 해리 포터 2차 창작물을 금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통제할 수는 없었지만...)

원작이 있다는 점에서는 스캔번역과 비슷하지만, 2차 창작의 경우 아무리 2차라도 일단은 [창작]인 경우 창작자의 주관, 취향, 성향, 원작에 대한 애정이 모든 것을 구축합니다. 세이버의 메이드 차림을 그리고 싶었다던가, 틴틴과 해독선장의 SM장면을 쓰고 싶었다던가, 아키라 공을 그리고 싶었다던가 등의 특정 작품 혹은 작품 캐릭터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출발해 같은 곳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당연히 퀄리티는 천차만별이지만, 어쨌든 이상적으로는 원작/캐릭터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며 그 애정을 전적으로 인정하면서 시작하는 2차적인 창작물인 것입니다. 그만큼 창작자의 주관 및 작업의 비중이 지배적이니, 따라서 창작자 자신이 좀더 나름대로의 [2차 저작권]을 주장할 여지가 생기고(예를 들어 어떤 화가가 슈퍼맨이 발레를 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치면, 비록 슈퍼맨 캐릭터를 채용했다는 점에서 2차 창작이기는 하지만, 그 그림과 발레라는 재해석 자체는 화가가 해낸 것이므로 발레하는 슈퍼맨 그림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차 창작 동인지/게임의 경우 판매행위에 대해 번역해적판 만큼의 윤리적 지적을 받지는 않은 것입니다. 당연히 법적으로는 불법이지만, 어차피 전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방송도 아닌 틈새시장 상품이고, 또한 원작을 인정하는 [2차 창작]이라는 데에서 표절보다는 한 차원 높은 도덕성과 특정 장르로써의 암묵적인 시민권을 부여받으며 계속되어 왔습니다.

물론 최근 몇년간 코믹월드를 통해 두드러진 상업성 짙은 2차 창작 상품-각종 팬시-나 팬시판매가 주가 아닌 일본의 경우는 동인시장의 팽창에 따른 특정 [오오테 동인]들의 상업성 문제가 대두되며, 이는 2차 창작의 근본적인 정신인 1.아마추어 정신 ([2차]창작인 이상 절대로 그 자체만으로는 프로의 영역에 진입할 수 없고, 스스로 그것을 시인하는 바이므로) 2.그에 따른 순수한 작품에 대한 애정 및 비영리성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돈을 받는가, 그렇지 않는가임.)이 왜곡되었다는 데에서 온 우려와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우려하는 여론이라도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기는 합니다만...어쨌든 번역의 목적이 원작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 옮기는 것이라면, 2차 창작은 원작을 자신의 주관대로 재해석,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멀쩡하고 건전한 원작을 SM 포르노물이나, 동성애 치정극으로 변질시키는 동인지를 보면 원작 자체의 의미보다는 그것에 대한 팬들의 재해석, 주관이 더 중요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2차 창작의 특징은 원작자의 의도<2차 창작자의 주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번역과 2차 창작은 서로 아주 다른 작업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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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바우치